09.해외성지순례 (1997~2018) (여행지)/2.이집트 (애굽)

이집트 피라미드

동방박사님 2013. 5. 15.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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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대 이집트 묘의 한 형식으로 사각추형의 구축물을 말한다. 고왕국시대에서 신왕국시대에 걸쳐서(B.C. 2826년경~B.C. 1085년경) 건조되었고, 주로 왕묘로 채용됐다. 피라미드의 본체(本體)는 각면이 동서남북으로 향한 각추형(角錐形)의 돌이나 일건벽돌 즉 흙벽돌로 만들어져 있다. 묘실은 거의 중앙에 있으나 그 높이는 지하, 저면(底面)의 위, 본체 내부 등 각각 다르다. 묘실 입구는 북쪽면의 어느 정도의 높이에 혹은 북쪽 지표면에 있다. 매장 후 통로는 돌로 채워지거나 돌문으로 엄중히 봉쇄되어 입구까지도 완전히 막아버리고 있다.

피라미드의 형식은, 제3왕조 제세르 왕(B.C. 2660년경)의 사카라의 계단형 피라미드, 제3왕조 말 내지 제4왕조 초 스네프루(B.C. 2650년경)의 다하슈르의 피라미드 2기(굴절피라미드 및 북피라미드) 등을 거쳐, 제4왕조시대 기자의 피라미드에서 완성되었다. 그중에서도 쿠프 왕(B.C. 2580년경)의 제1피라미드는 저변이 사방 230.4m, 당초의 높이 약 146.6m(현재의 높이 137.8m)라는 최대의 규모에 달하며 극히 정확한 시공으로 알려져 있다. 피라미드 주위에는 벽을 두르고 그 동쪽면에 장제전(葬祭殿)이 접해 있으며 또 거기에서 나일의 골짜기를 바라보는 유역전(流域殿)까지는 수백미터의 참배를 위해서 만든 길이 있다. 그의 원형은 기자의 카프라 왕(B.C. 2560년경) 제2피라미드에서 잘 볼 수 있다. 이 피라미드 복합체(컴플렉스)의 주위에는 왕족이나 귀족의 마스타바가 정연히 늘어서 있다.

 

 제5~7왕조의 피라미드는 평균적으로 저변의 길이가 80m 정도로 축소되고, 장제전(葬祭殿)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졌다. 제12왕조(B.C. 1991년경~B.C. 1786년경) 때에는 평균적 저변의 길이가 약 100m로 벽돌 혹은 절석조(切石造)의 뼈대 사이에 깬돌을 채워 넣어 건조되었다. 그러나 묘실에 이르는 회랑(回廊)은 복잡해지고 이것을 폐쇄하는 방법 역시 대단히 교묘해졌다. 왕묘로서의 피라미드는 제17왕조(B.C. 1650년경~B.C. 1567년경)까지 만들어졌다. 신왕국시대에는 사인묘(私人墓)에 소규모의 피라미드가 부설된 예가 있다(디르 엘 마디나). 그후에도 나파타 및 메로에 왕족이 많은 석조 피라미드를 세웠으나 규모는 작다(쿠르루, 누리).

 

 

 

이집트 문명

 

이집트 문명의 형성에 골격이 된 제1, 2왕조는 기원전 3200~기원전 2700년경에 존속하였는데, 그 수도가 나일 강의 중류에 있었던 티니스(Thinis 또는 This)였기 때문에 티니스 시대(Thinite Period)라 하고, 제3왕조에서 제6왕조까지를 상고 왕국 시대(Old Kingdom, 2700?~2200? B.C.), 또는 피라미드를 많이 세웠다 하여 피라미드 시대(Pyramid Age)라 한다. 그 후, 제8왕조에서 제10왕조까지의 제1차 혼란기(2200?~2050? B.C.)를 거쳐 중고(中古) 왕국 시대(Middle Kingdom, 2050?~1800? B.C.)에 이르며, 이 시대는 제11왕조와 제12왕조의 통치 시기와 일치된다. 제12왕조가 내분과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침입한 힉소스(Hyksos) 족에 의하여 망한 후, 이집트는 제13왕조에서 제17왕조까지의 제2차 혼란기(1800?~1570? B.C.)를 거쳐 근고(近古) 왕국 또는 이집트 제국 시대(New Kingdom 또는 Egytian Empire : 제18~24왕조, 1570?~708? B.C.)로 연결된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Author=Ricardo Liberato]

그 이후는 쇠퇴기(제25~30왕조, 708~332 B.C.)인데, 이것을 다시 세분하여 에티오피아 점령기(715~663 B.C.), 사이트 부흥기(제26왕조, 663~525 B.C.) 및 페르시아 점령기(525~332 B.C.)로 나눌 수 있다. 티니스 시대에 왕은 곧 신이라는 신왕(神王, God-King)의 개념이 확립되었다. 그러나 신왕은 결코 독선적으로 통치한다는 뜻이 아니고, 우주의 삼라만상처럼 마트(Maat : 진리, 정의, 질서)에 순종하여 통치한다는 것이다. 왕은 또, 이 마트의 표현 매개체이며 구현체(具現體)였다. 신왕과 마트의 개념은 그 때까지 전래되어 온 신화와 통합된 것이다. 이 개념은 상고 왕국 시대에 더욱 발전하였으며, 제4왕조(2650?~2500? B.C.) 때에 건립된 거대한 피라미드는 지금도 그 웅자를 자랑하고 있다

 

고대 이집트 인의 주신(主神)은 프타(Ptah)였다. 그는 본래 멤피스(Memphis) 시의 신에 지나지 않았으나, 후에 우주와 이집트의 창조신으로 받들어졌다. 이 신은 태양신을 비롯한 다른 모든 신도 창조하였다. 헤브루족의 신이 자연을 초월한 절대적 존재로 믿어지는 데 비하여, 우주의 창조신 프타는 자연적 요소의 구현체로 우러러보인 것으로 고대 이집트의 신화 속에 묘사되어 있다. 즉, 그는 도시와 주(州)를 창조한 지신(地神)의 역할도 수행한 것이다. 다른 모든 신은 프타 자신과 우주 만물 ― 나무, 돌, 흙 등 ― 로 만들어진 존재로 보았다. 삼라만상과 모든 신을 창조한 후 주신 프타가 쉬고 있는 동안 태양신은 모든 생명을 키우는 원천으로 추앙되었다. 이 태양신 아툼(Atum)이 매의 머리와 인간의 몸뚱이로 구현되었을 때 그의 분신, 즉 아들인 호루스(Horus)로 받들어진다. 그가 죽었을 때에는 오시리스(Osiris)로 모시게 되는 것이다. 즉, 호루스와 오시리스의 관계는 죽은 왕이 살아 있는 후계자에게 왕위를 세습시키는 상징으로 보는 것이다.

 

왕의 즉위식에서는 죽은 부왕의 상(像)을 매장하는 의식을 행하였는데, 이것을 통하여 권력을 계승한다는 뜻이다. 이것은 단순히 지상에서 이루어지는 의례의 의미 이상이다. 즉, 신의 섭리에 속하는 우주 질서의 한 부분으로 믿어지는 것이다. 오시리스는 단순히 죽음의 신만이 아니고 부활의 신으로도 추앙되었다.

 

상고 왕국 시대의 이집트는 문자 그대로 신정국(神政國)이어서 신왕(神王)의 권력과 위신이 크게 드높았다. 이 시대의 이집트 인들은 신, 공동체 및 자연 등을 모두 신성한 우주의 구성 요소로 보았기 때문에 종교적인 것과 세속적인 것의 구분은 있을 수 없었다. 왕은 곧 신이며 국가였기 때문에 왕 이외의 어떠한 다른 권위도 상상할 수 없었다. 즉, 신왕의 개인적 권위가 절대적이어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에서처럼 특별한 법의 제정이 필요하지 않았고, 간단히 그의 명령만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왕은 신이기에 그의 권력은 영원한 것으로 믿어졌으며, 그 상징으로 이루어진 것이 바로 피라미드이다. 그 구조와 형태는 태양신의 숭배 의식을 나타내고 있다.

 

왕위의 계승은 이미 예정된 질서를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 이탈은 단순한 정치적 변화로 보지 않고 우주 질서에 대한 도전으로 믿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상고 왕국(2700?~2200? B.C.)을 뒤따른 제1차 혼란기(1200? ~2050? B.C.) 중에 신왕의 중앙 집권적 권위가 무너지고 귀족들이 각각 독립하여 서로 싸우는 혼란과 무정부 상태로 나타났다. 또, 중고 왕국(2000~1800 B.C.)을 뒤이은 제2차 혼란기(1800~1570 B.C.)에도 상황은 마찬가지였으나, 팔레스타인에서 힉소스족이 침입하여 한동안 다스린 것이 색다른 점이다. 즉, 이들은 제2의 혼란기에 제15, 제16왕조를 세웠다. 이러한 중앙 집권의 중단에도 불구하고 혼란기를 수습한 왕조는 고대 이집트의 두 지역, 즉 적과 흑을 통합한 원초적 질서로 되돌아가서 고대 이집트의 문명을 부흥시킨다는 원칙에 집착하였다

 

 

 

  

 

 

 

 

 

 

이집트

아프리카 대륙의 북동부에 있는 나라

 

정식명칭은 이집트 아랍공화국(Arab Republic of Egypt)이다. 북동쪽으로 이스라엘과 가자 지구, 서쪽으로 리비아, 남쪽으로는 수단과 국경을 접하고, 북쪽과 동쪽으로 지중해와 홍해(紅海)가 있다. 국토의 일부인 시나이 반도가 이스라엘과 접경하여 중동지방에 걸쳐 있다. 고대문명 발상지로, 16세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인구가 많았으며 오늘날 아랍과 중동지역에서 정치적·문화적인 중심국가를 이룬다. 아랍에서는 '2개 해협' 또는 '국가'라는 뜻의 아랍어(語)인 '미스르(Misr)'라는 국명으로 부르며 현지 발음으로는 '마스르'라고도 한다. 행정구역은 26개 무하파자(muhafazah)로 되어 있다.

 

동경 30° 00"", 북위 27° 00"", 면적 약 100만㎢,

인구 약 8,000만 명(2007년)

정식명칭은 이집트 아랍공화국으로 1922년 이집트 왕국에서

부분적으로 독립하였으며 제2차 세계대전 후 완전한 주권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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