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대한민국 현대사 (책소개)/2.정부수립이후

브루스 커밍스의 한국현대사

동방박사님 2022. 9. 18. 0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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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80년대 운동권 학생들의 필독서였던 '한국전쟁의 기원'의 저자이며 수정주의 사회학자로 시카고대학에서 연구하고 있는 브루스 커밍스는 1997년에 그의 시각으로 본 한국의 현대사에 대한 새로운 책을 내놓았다.

그의 전작들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 책에 대해 그가 '생각을 바꾸었다'고도 얘기한다. 그러나 그는 서문에서 이렇게 얘기한다.

" 나는 한국 현대사를 다루는 다른 책을 몇권 쓴 바 있다. 하지만 이 책에 나오는 모든 것은 새로운 접근법과, 또한 동료들의 최근 연구를 최대한 숙지한 결과로써 해석된 것이다. 나는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성장의 신호라는 원칙 아래, 여전히 나에게 옳게 보이는 해석을 유지할 권리와 내 예전 연구에 나왔을지도 모르는 견해를 수정할 권리를 행사했다. "

그가 전작에서 얘기했던 것이 한국전쟁의 원인에 대한 '시작하는 내전'이 아닌 '자라나는 내전'이었다면 이 책에서 그가 강조하여 바라보는 것은 김영삼, 김대중을 포함한 좀 더 넒은 범위의 현대사이다. 넒게 바라볼수록 정확해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면 입맛이 당길 것이다. 방대하고 막강한 자료를 무기로 하여 그는 꼼꼼하고도 자세히, 그리고 한편으론 객관적으로 우리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다.

목차

- 일러두기
- 한국어판을 내면서
- 서문과 감사의 글

제1장. 미덕
한민족의 기원│삼국시대│신라 통치기의 한국│왕건, 고려의 이름으로 통일│조선시대: 번영기│고려사회의 변형│가문, 유동성, 교육│한국의 양지│영조와 사도세자│조선시대: 쇠퇴기│상업적 발효?│결론

제2장. 이익
은자의 왕국│무산된 개방과 그 대안│중흥, 개혁, 혁명│동학운동: 다른 이름의 개혁│근대 한국의 탄생│“이루 말할 수 없이 판에 박힌 세계”: 서양인이 받은 한국의 인상│결론

제3장. 망국 1905∼45년
조선왕조의 종말│행정식민주의: 근대화인가 착취인가│한국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발생│개발식민주의│식민지의 압력솥

제4장. 열정, 1945∼48년
한국의 분단│수백명의 보수주의자들: 초기의 협력│남한의 좌익과 우익│대한민국의 건국│제주반란과 여수반란│북한│경찰과 정보기관│결론

제5장. 충돌, 1948∼53년
북한과 중국│남한에서의 유격전│1949년 38도선상의 전투│전쟁 전야│옹진 사건│서울에서 부산으로, 다시 인천으로: 봉쇄전쟁│부산 총공세│반격전쟁│남한이 북한을 점령하다│중국의 참전│워싱턴의 경악│결론

제6장. 한국의 일출: 산업화, 1953년∼현재
미국 이용하기│한강의 기적│금융의 기술자들: 서울의 국제적 금융업자들│한일 국교정상화와 베트남전│대대적인 중공업 추진정책│대재벌│위기와 개혁│한씨의 기적│그다지 기적적이지 않은│비도덕적 가족주의│결론

제7장. 미덕 II: 1960년∼현재의 민주주의운동
4월혁명│군부통치│유신체제│1970년대의 중앙정보부│노동운동│광주│반미주의와 반한주의│6월의 돌파구│한국인들은 어떻게 독재와 민주주의의 통치를 고쳐 썼는가│결론

제8장. 태양의 왕국: 북한, 1953년∼현재
‘위대한 태양’: 북한의 조합주의│김정일의 권력승계│북한의 경제│농장에서의 생활│떨어진 태양의 왕│결론

제9장. 미국의 한인들

제10장. 세계 속의 한국의 위치
침범할 수 없는 경계선?│영변의 의혹들│일촉즉발에서 긴장완화로│미국의 한국 내 핵정책의 배경│긴장완화를 향해│햇볕정책│한국의 통일?│결론

- 옮긴이의 말
- 참고문헌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브루스 커밍스 (Bruce Cumings)
1943년에 태어나 현재 미국 시카고 대학에 재직중인 브루스 커밍스는 1960년대 후반, '평화봉사단'의 일원으로 한국에 온 이래 한국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한국현대사 연구에 몰두해왔다. 저서로는 한국전쟁의 기원에 관한 방대한 연구로 유명한
 
역자 : 이교선
서울대 강사, 영문학
역자 : 이진준
아주대 강사, 영문학
 

책 속으로

1945~60년 사이에, 대한민국이 통일되지 않거나 일본과 긴밀한 연계를 맺지 않고서도 시쳇말로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미국 관리를 찾기는 힘들었다. 1950년 8월 부산 방어선에서 최악의 전투가 한창일 때 죠지 케넌이 내린 판단 역시 그러했다. 그는 애치슨에게 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단일요인" 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너무 약해서 경쟁력을 갖지 못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일본이 원래의 정상적인 힘과 위엄을 회복하면" 한국에서의 영향력을 되찾을 수 있으리라는 것이었다. "한국의 명목상의 독립이 유지되느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일본의 영향력이 국제적으로 부적절한 반향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언젠가는 소련의 영향력을 서서히 대체할 수 있는 탄력적인 도구를 한국의 독립이 제공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예외적일 만큼 솔직힌 진술이지만, 사실 이것이 기본적으로 애치슨과 그 후임의 미국 관리들이 믿는 바엿고,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을 "일본과 공산권 아시아 사이의 완충지대" 로서는 유용하지만 다른 면에서는 별 소용이 없는 나라로 여겼다. 한 관리는 1960년에 한국에 대한 기획에 참여한 아이젠하워 행정부의 "20명의 관료들 중에 고작 한둘만" 이 남한이 통일을 하지 않고서도 "경제적으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보고했다. 196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일부 학자들의 글에서 남한은 마치 손발 잘린 병신이라도 되는 것처럼 묘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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