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한국근대사 연구 (책소개)/1.한국근대사

한국 대학의 뿌리, 전문학교

동방박사님 2022. 9. 19.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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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스카이(SKY)라는 극단의 대학 서열 문화는 언제부터 어떻게 탄생했을까
대한민국 대학과 고등교육의 역사적 기원을 낱낱이 살펴본다


같은 값이면, 아니 같은 성적이면 누구나 ‘고려대’보다 ‘서울대’에 들어가고 싶다. 이 두 개 대학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는 대학 간판에, 그 간판을 획득할 수 있는 대학 입시에 가족 모두가 생사를 걸고 달려든다. 미국도, 유럽도 우리와 비슷할까? 아니, 그렇지 않다. 한국에는 오래전부터 한국만의 독특한 대학 구조가 있었다. 세계적인 명문대는 거의 모두 사립이지만, 우리는 유독 ‘국립대’를 ‘사립대’보다 선호해 왔다. 모든 대학은 각자의 서열과 등수를 가지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인기 있는 주요 대학은 모조리 서울이라는 도시에 몰려 있기도 하다. 대학에서 ‘사립’의 비중은 또 어찌 이다지도 높은지. 이제 이 책을 열고 ‘전문학교’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한국 대학의 뿌리를 살펴보자.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한국 대학과 고등교육만의 뒤틀린 기원이 바로 눈앞에 펼쳐진다.

 

목차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 · 5

들어가는 글 성균관에서 대학과 전문학교로―개항기 조선의 고등교육과 그 유산 · 16

조선, 외국의 대학과 고등교육기관을 만나다┃대학 설립의 좌절과 법관양성소·의학교의 전문학교화┃사립 법률학교의 깨어진 꿈┃고등교육 단계의 폐지

제1부 전문학교로 시작된 한국 대학의 역사―일제 강점기 조선의 전문학교 정책

제1장 식민지 전문학교 제도를 도입한 까닭 · 63
구마모토의 2단계 학제 개편안┃법학교와 의학교의 처리┃재일 조선인 유학생이라는 문제

제2장 민족별 정원 제도에서 ‘실력주의’로―관립 전문학교의 조일공학 정책 · 89
일본인 정원제도의 폐지┃차별 철폐와 실력주의라는 허상┃관립 전문학교의 척식학교화

제3장 사립학교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말뿐인 관립 전문학교 증설 계획 · 111
중등학교 졸업자와 척식인력 수요의 증가┃끝내 설립되지 않은 음악·미술학교와 체육전문학교┃교원양성소에 그친 고등사범학교 설립 계획┃전시체제기에야 설립된 부산고등수산학교┃수의축산과로 축소된 수의전문학교┃사립 여자전문학교로 대체된 관립 여자전문학교┃조선인의 고등교육 기회와 사립 전문학교

제4장 관립은 일류, 사립은 이류―전문학교의 서열 구조 · 139
관립 전문학교라는 ‘모델 학교’┃관립 전문학교 졸업장은 전문직으로 가는 ‘패스포트’┃사립 전문학교의 자격획득운동┃전문학교 서열 구조의 고착화

제5장 전쟁(1937~1945)의 소용돌이, 전시 전문학교 정책 · 171
이과계 기술자를 양성하라┃사립 전문학교의 조일공학 정책┃수업연한 단축과 학교교련, 근로 동원

제2부전문학교 졸업장을 얻기까지―고등교육 기회를 얻기 위한 조선인의 노력

제6장 입신출세를 위한 학교 선택과 극심한 입학 경쟁 · 203
진학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입신출세의 욕구와 교육열┃관립 전문학교의 극심한 입학 경쟁┃관립 전문학교에는 어떤 학생들이 입학했을까

제7장 대안적 고등교육기관,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 · 225
까다로운 사립 전문학교 설립 규정┃유치원 교사를 길러 내기 위한 보육계 학교┃직업 예술가와 교원 양성을 위한 음악·미술계 학교┃예비 목회자를 위한 신학계 학교┃사립 전문학교, 사립대학의 요람

제8장 그 시절에도 전문학교는 경성에 몰려 있었다―지방의 전문학교 설립운동 · 253
경성에 몰려 있는 전문학교┃의학전문학교 유치운동┃평안남도의 고등공업학교와 고등상업학교 설립운동┃경상남도의 고등상업학교와 부산고등수산학교 유치 노력┃주요 산업지역의 고등농림학교·고등공업학교 설립운동

제9장개천에서 용 나도록―가난한 학생들을 위한 장학단체 설립 · 283
억! 소리 나는 전문학교 학비┃손기정과 신진순에게 장학금을 준 성재육영회┃각 지역의 육영회와 장학회

나가는 글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연속과 단절 · 312

부록 1 관·공·사립 전문학교 설립 현황 · 316
부록 2 「제2차 조선교육령」(1922) 제정 이후 조선의 학교 체계도 · 318

주석 · 319
찾아보기 · 333

 

저자 소개 

저 : 김자중
 
한국 근현대 고등교육 연구자, 교육자. 고려대학교 대학원 교육학과에서 교육사를 전공하여 2018년, 〈일제 강점기 전문학교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한국교육학회로부터 2019년 교육학박사학위논문상을, 2020년 제1회 지식의날개 교육학술콘텐츠상을 수상했다. 2019년부터 2020년까지 ‘일제 식민지기 고등교육기관의 입시제도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박사 후 연수를 했고, 현재는 여러 대학에서 강의하면서...
 

책 속으로

이 책은 오늘날 한국 대학의 제도적 ‘뿌리’인 전문학교의 역사에 대해 쓴 글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한국 근대(개항기와 일제 강점기, 1876~1945)라는 시기에 전문학교가 생겨난 경위, 조선총독부의 전문학교 정책, 그리고 전문학교를 통해 고등교육 기회를 얻기 위한 조선인들의 노력에 대한 기록이다. 주로 일제 강점기 전문학교에 대해 썼지만, 그 이전 시대를 모르고서는 이 시대를 이해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처음으로 전문학교의 설립이 논의된 개항기 고등교육에 대해서도 약간 덧붙였다. 모든 시대가 그렇듯이 한 시대는 그 이전 시대로부터 많든 적든 영향을 받기 마련이다.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서울대학교가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해 살펴볼 필요가 있다. 해방 후 서울대학교는 말도 많고 탈도 많던 이른바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 파동(국대안 파동)’ 속에서 1946년 8월 22일에 제정된 군정법령 제102호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에 관한 법령」에 의해 설립됐다. 그런데 이는 경성대학(경성제국대학의 해방 직후 교명)뿐만 아니라 여기에 6교의 관립 전문학교와 1교의 사립 전문학교가 통합되는 형태였다. 그러니까 서울대학교의 전신은 경성제국대학만이 아니라 전문학교이기도 한 것이다.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한국에서 오랜 역사를 갖고 있는 대학 중에는 전신이 전문학교인 경우가 많다. 연세대학교는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 고려대학교는 보성전문학교, 숭실대학교는 숭실전문학교, 이화여자대학교는 이화여자전문학교, 동국대학교는 중앙불교전문학교, 숙명여자대학교는 숙명여자전문학교, 성균관대학교는 명륜전문학교가 그 전신이다. 그 밖에 경북대학교 의과대학은 대구의학전문학교, 고려대학교 의과대학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 부경대학교 수산과학대학은 부산고등수산학교, 전남대학교 의과대학은 광주의학전문학교가 그 전신이다. 이것이 바로 한국 대학의 뿌리가 전문학교라고 말하는 이유다.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는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모두 있지만, 사립대학의 비율(약 80%)이 압도적으로 높은 체제, 또한 서열 구조가 있고 그 꼭대기에는 국립대학(서울대학교)이 놓여 있는 체제다. 대학이 대체로 국립이고 평준화되어 있는 유럽 나라들이나 주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모두 있지만 주립대학의 비율이 더 높고 또한 서열 구조가 있더라도 그 꼭대기에는 사립대학이 있는 미국의 고등교육 체제와도 다른, 세계적으로 매우 독특한 유형이다. 비슷한 유형의 나라로는 일본 정도를 꼽을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이런 독특한 고등교육 체제는 언제, 어떻게 만들어졌을까.
---「머리말. 한국 대학의 뿌리를 찾아서」중에서

총독부는 관립 전문학교의 ‘종래의 비율제도’, 즉 민족별 정원제도의 폐지와 이를 계기로 생겨난 민족별 입학자 수의 역전 현상을 “실력주의로만 나가게 된 바 조선인 학생의 실력이 일본 내지인만 못”한 결과라고 주장했다. 일반적으로 실력주의란 인종, 민족, 신분, 계급, 학벌, 연고 등과 관계없이 능력만을 기준으로 개인을 평가하는 태도를 말한다. 따라서 앞의 인용문에서 실력주의란, 관립 전문학교가 입학자 선발 과정에서 ‘민족’을 배제하고 오직 실력, 즉 학업 능력만을 기준으로 입학자를 선발했다는 점을 의미한다. 즉 총독부는 실력주의라는 논리로 민족별 입학자 수의 역전 현상을 학업 능력을 기준으로 한 공정한 선발의 결과라며 정당화했다.
---「제2장. 민족별 정원 제도에서 ‘실력주의’로」중에서

여자전문학교가 이화여자전문학교밖에 없었다. 그만큼 조선 여성은 고등교육 기회를 얻기 어려웠다. 또한 남성에 비해 일본을 비롯한 외국에 유학을 가기도 어려웠다. 특히, 전시체제기에는 대한해협의 남쪽 바다가 전쟁의 장이 됨에 따라 일본 유학은 더욱 위험해졌다. 당시 대구고등여학교를 다녔던 스기야마 토미는 “제가 5학년 무렵에는 연락선이 위험하다는 소문이 돌고 바다에 기뢰가 있어서 현해탄을 건너는 것이 위험하여 배를 탈 때 전부 구명조끼를 입던 시대였지요. 일본에도 학교는 있었지만 그런 상황에 여자 혼자 현해탄을 건너는 것은 위험했고, 저희 집에서는 허락할 리가 없었지요”라고 회고했다.
---「제3장. 사립학교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중에서

총독부는 사립 전문학교의 설립 인가에도 소극적이었다. 그럼에도 총독부는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연희전문학교(1917), 보성전문학교(1922), 숭실전문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1925),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1929), 경성약학전문학교·중앙불교전문학교(1930),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대동공업전문학교·숙명여자전문학교(1938), 명륜전문학교(1942)의 설립을 허가했다. 그 결과, 1938년에 관립 전문학교 5교, 공립 전문학교 2교가 설립되어 있었던 데 반해, 사립 전문학교는 11교가 설립되어 있었다.
---「제3장. 사립학교의 비중이 높아진 이유」중에서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서열 구조 안에서 가장 꼭대기에는 경성제국대학이 있었으며, 그 아래에 관립 전문학교, 그 아래에는 사립 전문학교 그리고 맨 아래에는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가 있었다. 이런 서열 구조는 관립 전문학교와 사립 전문학교 간에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기 위한 경쟁의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총독부의 관립 전문학교 우대정책에 의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따라서 그 안에서 사립 전문학교가 아무리 교육의 질을 끌어올리더라도 관립 전문학교보다 높은 서열로 올라서는 것은 불가능했다. 관립 전문학교와 사립 전문학교 간에 고착화된 서열 구조는 사회적으로도 관립 전문학교 졸업자를 우대하는 풍토를 만들어 냈다.
---「제4장. 관립은 일류, 사립은 이류」중에서

관립 전문학교는 경성제일고보를 비롯해서 비교적 학업 능력이 우수한 학생들로 채워졌다. 이는 학업 능력이 우수한 학생일수록 입신출세의 욕구를 실현시키기 위해 경성제국대학 예과나 관·공립 전문학교에 입학하는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만큼 입신출세의 욕구는 학교 선택에 강력한 동기였다.

바꿔 말하면, 이는 총독부가 관립 전문학교 우대정책을 실시함으로써 식민지 전문학교 체제의 서열 구조를 만들어 냈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통해 관립 전문학교로 학업 능력이 우수한 조선인들을 끌어들이는 데도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다시 관립 전문학교의 높은 서열을 정당화하는 요인이 됐다. 이런 순환 작용 역시 식민지 전문학교 체제의 서열을 더욱 공고하게 했다.
---「제6장. 입신출세를 위한 학교 선택과 극심한 입학 경쟁」중에서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 중에는 해방 후 정규 고등교육기관, 나아가 사립대학으로 승격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즉, 중앙보육학교는 1948년에 중앙대학을 거쳐 1953년에 중앙대학교로 승격됐다. 숭의여학교 보모과는 1963년에 숭의보육학교로 재건되어 1978년 숭의여자전문대학을 거쳐 2012년에 숭의여자대학교로 승격됐다.

마찬가지로 상명고등기예학원은 1965년에 상명여자사범대학을 거쳐 1987년에 상명여자대학교로 승격됐다. 감리교회신학교는 1959년에 감리교신학대학을 거쳐 1993년에 감리교신학대학교로 승격됐다. 성결교회경성신학교는 1959년에 서울신학대학을 거쳐 1992년에 서울신학대학교로 승격됐다. 조선신학원은 1951년에 한국신학대학을 거쳐 1992년에 한신대학교로 승격됐다. 동아고등공업학원은 1948년에 한양공과대학을 거쳐 1959년에 한양대학교로 승격됐다. 즉,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는 해방 후 사립대학의 요람과 같은 역할도 했던 것이다.
---「제7장. 대안적 고등교육기관,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중에서

전문학교는 지역적으로 어떻게 분포되어 있었을까? 단적으로 말하면 대부분의 전문학교는 경기도,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경성과 그 부근에 몰려 있었다. 1925년 이전까지 전문학교는 모두 경기도(경성 포함)에 설립되어 있었으며, 1925년에는 전체 10교 중 9교, 1935년에는 전체 15교 중 12교, 1945년에는 전체 20교 중 13교가 경기도에 설립되어 있었다.
---「제8장. 그 시절에도 전문학교는 경성에 몰려 있었다」중에서

1944년 4월 20일에 광주의학전문학교와 함흥의학전문학교가 설립됐다. [조선총독부 관보] 1944년 4월 13일자에 실린 ‘생도 모집 광고’를 보면 두 학교의 모집 인원은 각각 100명이었다. 같은 해에 두 학교의 입학 지원자는 합계 2,130명으로 평균 입학 경쟁률은 10.7:1이었으며, 1945년 2월에 함흥의학전문학교는 입학 지원자 800명으로 입학 경쟁률이 8.0:1, 광주의학전문학교는 입학 지원자 4,400명으로 입학 경쟁률이 44:1에 달했다.
---「제8장. 그 시절에도 전문학교는 경성에 몰려 있었다」중에서

전문학교 재학생이 내야 하는 비용이 매우 컸으므로 경제적으로 혜택받은 계층이 아니면 고등교육 기회를 얻기가 쉽지 않았다. 이를 간접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전문학교 재학생 부모의 직업을 살펴보자.
---「제9장. 개천에서 용 나도록」중에서

1937년에 손기정은 양정고보를 졸업하고 보성전문학교에 입학한 후 7월에 성재육영회의 급비생으로 선발됐다. 즉, 성재육영회는 손기정을 다른 급비생과 달리 학업 능력이 뛰어나다는 이유가 아니라 베를린올림픽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것을 이유로 선발했다. 다만, 이후 손기정은 총독부의 감시가 심해짐에 따라 같은 해 2학기에 보성전문학교를 중퇴하고, 일본 메이지대학에 입학했다.
---「제9장. 개천에서 용 나도록」중에서

해방 후 전문학교는 어떻게 됐을까. 당시 휴교 상태에 있던 전문학교들은 1945년 9월 28일에 미군정청이 중등 이상 학교에 대해 10월 1일부터 재개교를 허가하자 하나둘 다시 학교를 열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12월 14일에 미군정청 학무국의 교육정책 자문 기구인 조선교육심의회는 〈현행 교육제도에 대한 임시 조치안〉에서 전문학교의 운영을 한시적으로만 허가할 것을 제안했다. 이어 1946년 5월 20일에 문교부(학무국의 후신)는 다수의 전문학교를 대학으로 승격시켰다.
---「나가는 글.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연속과 단절」중에서

가장 주목할 점은 고착화된 서열 구조의 유사성이다.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서열 구조 안에서는 가장 꼭대기에 경성제국대학, 그 아래에 관립 전문학교, 그 아래에 사립 전문학교 그리고 마지막에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가 자리하고 있었다. 해방 후 경성제국대학과 관립 전문학교는 통합되어 국립 서울대학교로 개편됐으며, 사립 전문학교와 몇몇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는 사립대학으로 승격됐다. 그럼에도 이전 시기의 고착화된 서열 구조는 서울대학교와 사립대학 간에 거의 그대로 다시 나타나고 있다.
---「나가는 글. 식민지 고등교육 체제의 연속과 단절」중에서
 

출판사 리뷰

서울대 1등, 고려대 2등… 사람이 아닌 대학에도 등수가 있다고요? 언제부터요?

일제 강점기 한반도에는 단 하나의 대학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모두가 다 알고 있는 경성제국대학이다. 경성제대 다음에는 관립(오늘날의 국공립) 전문학교가 있었고, 그다음으로 내려가야 오늘날 주요 사립대학들의 전신인 사립 전문학교를 만날 수 있다. 여기서 의문! 경성제대 다음이었던 관립 전문학교들은 어떻게 되었길래 오늘날 서울대 다음에는 사립대학들이 위치하게 된 것일까?

이 책에서는 우리가 몰랐던 사실을 하나 알려 준다. 서울대는 경성제대만이 아니라 6개의 관립 전문학교와 1개의 사립 전문학교까지 합쳐져 탄생한 학교라는 것. 알고 보니 오늘날 대학에 매겨진 등수는 일제 강점기 때부터 그대로 이어져 온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하다… 고려대는 1905년, 연세대는 1885년, 이화여대는 1886년에 설립되었다고 했는데, 대학이 하나밖에 없었다고? 이것이 우리가 ‘전문학교’라는 또 다른 형태의 고등교육기관, 한국 대학의 뿌리를 살펴보게 된 이유다.

어디서 유래했나 싶었다. 오늘날과 똑 닮은 일제 강점기의 전문학교 문화, 구조

오늘날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는 궁금하다. 앞서 말한 대학의 서열은 물론 가족 모두가 생사를 걸고 치러 내는 대학 입시며, 왜 주요 대학은 모두 서울에 밀집해 있는지, 그리고 우리나라에는 왜 유독 등록금 비싼 사립대학의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고(80%), 지난날 농업 사회에서도 소를 팔아가면서까지 부모님이 자녀를 대학에 보내려고 했는지. 한국에만 존재하는 독특한 대학 구조와 높은 교육열은 과연 언제부터 존재했던 것일까. ‘전문학교 시대’에도 오늘날과 똑같았다. 경성제대를 서울대로, 보성전문을 고려대로, 연희전문을 연세대로 바꾸고 나면 거짓말처럼 오늘날의 대학 문화와 구조를 그대로 빼닮은 그때 그 시절의 고등교육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일제 강점기에도 ‘입신출세’를 위해서는 학력이 필요했다. 더 좋은 학교 졸업장이라면 금상첨화다. 1938년, 관·공립 전문학교는 7개교가 있었던 데 반해, 사립 전문학교는 11개교나 설립되어 있었다.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는 제외했는데도 그렇다. 서울 집중은 어떨까? 1925년까지 모든 전문학교는 수도권에만 존재했다. 1935년까지도 15개 학교 중 12개 학교가, 해방 당시에도 20개 학교 중 13개 학교가 경기도에 소재하고 있었다. 이것뿐일까? 그때도 사람들은 로스쿨(법학교)과 의대(의학교)를 선망했다. 1945년 광주의학전문학교 입학 경쟁률은 44:1이었으니 오늘날보다도 더하다.

기득권을 가진 일본인들은 오늘날 능력주의라 불리는 ‘실력주의’를 내세우며 민족차별을 정당화하기에 바빴다. 그때 그 시절에도 이공계 졸업생은 부족했고, 사람들은 전문직 자격에 환호했다. 오늘날 한국 고등교육 구조와 문화, 문제점은 ‘전문학교 시대’에도 똑같이 존재하고 있었다.

전문학교, 한국 고등교육의 출발점이자 우리나라 거의 모든 대학교 역사의 시작

모두가 선망하는 서울대 의대의 전신에는 경성의학전문학교가 포함되어 있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은 경성법학전문학교 역사를 포함하며, 이 외에도 서울대가 탄생할 때 5개의 전문학교가 더 합쳐졌다. 연세대는 이름 그대로 연희전문학교와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를 전신으로 하며, 보성전문학교가 전신인 고려대에서도 의과대학만은 경성여자의학전문학교가 그 뿌리이다.

공교롭게도 양대 사학이 모두 2개의 전문학교를 전신으로 삼는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밖에도 이화여대는 이화여자전문학교, 성균관의 역사를 계승한다는 성균관대조차도 실은 명륜전문학교가 그 전신이다. 동국대는 중앙불교전문학교, 숙명여대는 숙명여자전문학교, 숭실대는 숭실전문학교를 전신으로 삼는다.

지방으로 눈을 돌려 보자. 대구의학전문학교는 경북대 의대가 되었고, 광주의학전문학교는 전남대 의대가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부산고등수산학교는 부경대학교 수산과학대학의 전신이다. 서열 구조상 전문학교의 아래에 있었던 전문 정도 사립 각종학교들도 해방 후 오늘날의 대학으로 승격했다. 중앙대, 숭의여대, 상명대, 한신대, 한양대는 물론, 감리교신학대, 서울신학대의 시초와 발전 과정도 이 책에서 확인할 수 있다.

당시 전문학교에 설치되어 있던 학과와 대학들의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왜 오늘날 그 대학이 어떤 점에서 강점을 보이는지 알 수 있는 재미가 있다. 세브란스연합의학전문학교는 일제 강점기에도 한반도에서 경성의학전문학교에 이어 두 번째로 의사 면허를 획득한 학교였다. 보성전문학교는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제외하고 판검사에 특별 임용될 수 있고, 변호사시험 예비시험을 면제받을 수 있는 유일한 학교였다. 한양대가 공대가 강세를 보이는 까닭은? 아마도 전신이 동아고등공업학원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독특한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 역사를 통해 그 해결책을 찾자

우리 고등교육은 국공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모두 존재하지만, 사립대학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체제, 명백한 서열 구조가 존재하면서도 그 꼭대기는 국립대학(서울대학교)이 차지하고 있는 체제다. 대학이 대체로 국립이면서 평준화되어 있는 유럽이나 주립대학과 사립대학이 모두 있으면서도 정점에는 사립대학이 위치하는 미국의 고등교육 체제와도 다른, 세계적으로 매우 독특한 유형이다. 확고한 대학 서열 구조는 극심한 입시 경쟁을 불러 왔고, 학벌주의를 낳았으며, 중등교육을 입시교육으로 변질시켰다.

사립대학은 고등교육 대중화에는 기여하였으나, 동시에 공공성을 위협하는 존재이기도 하다. 이제 우리는 한국의 고등교육 체제 자체를 문제 삼고, 이를 극복해 나가야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오늘날과 꼭 닮은 일제 강점기 전문학교 시대의 고등교육 체제는 고등교육의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해 나가려는 우리에게 좋은 거울이 되어 줄 것이다.

지은이는 이 책의 원고로 2019년 한국교육학회에서 교육학박사학위논문상을, 2020년에는 제1회 지식의날개 교육학술콘텐츠상을 수상했다. 현재는 한국 고등교육 문제의 역사적 기원을 탐색하는 연구를 꾸준히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