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기독교-개신교 (책소개)/1.기독교의 역사

리처드 후커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V : 성공회 신앙과 예배에 대하여

동방박사님 2022. 10. 5. 1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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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성공회 고전 선집 1편

성공회 신앙이란 무엇인가?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신학을 일군 뿌리는 무엇인가?
성공회 신학과 신앙의 근간을 마련한 리처드 후커의 저작


리처드 후커는 성공회 정신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해석상의 쟁점들이 다양해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사백년이 지난 오늘날 후커의 저서를 다시 끄집어내어 읽는 것은 결코 공허하고 헛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책이든 성공회 신학을 다룬다면 리처드 후커가 쓴 저작들과 마주해야 한다. 성공회 신학을 다룰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성공회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자들에게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 후커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는 20세기에 원전 비평 연구의 대상이 된 유일한 성공회 신학자였다. 이는 뉴먼조차 받지 못한 특전이었다”라는 채프먼의 말은 이 점을 뒷받침해준다.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제5권 한국어 번역본 첫 번째 판은 예배, 교회, 설교를 다룬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짧은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성공회 정신의 창시자인 후커가 청교도들과 가톨릭 사이에서 어떠한 입장을 견지했고 이를 통해 성공회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해냈는지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면, 이 첫 번째 판은 결코 짧지 않다. 아무쪼록 이 번역본이 후커의 이해를 진작시키고 사백년 전의 후커의 고민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목차

대주교 존 위트기프트에게 바친 헌정사

서론

참된 신앙은 모든 참된 미덕의 뿌리이며
모든 질서 정연한 공국의 기초다
무신론은 참된 종교와 정반대다
― 마키아벨리에 대한 주해
미신의 원인: 그릇된 열정과 무지한 두려움
교회의 미신에 대한 정죄

예배

우리 교회에 제기된 네 가지 일반적인 비난
명제 1: 규정된 예배 형식의 중요성
명제 2: 예배의 형식에 대한 타당한 근거로서의 관습과 전통
명제 3: 예배의 형식은 신앙 교리와는 달리 교회법에 의해 변경될 수 있다
― 성서와 이성, 전통이 안내자이다
명제 4: 교회법을 특정 사례에 적용함에 있어 상식과 단순한 형평성의 중요성
명제 5: 사적인 의견과 계시는 교회 관행의 문제에서 신뢰할 수 없다

교회

교회 건축의 간략한 역사
우리가 교회를 봉헌하는 이유
교회 건축물의 오용 가능성
교회는 단순히 예배자들의 모임이 아니다
우리가 교회에 명칭을 부여하는 이유
우리 교회와 유대인 회당과의 유사성에는 아무런 해가 없다
우리 교회의 호화스러움에 대하여
교회가 하느님을 경배하기에 가장 좋은 장소인 이유
교회 건물을 악용의 혐의를 두어 무너뜨림이 잘못된 이유

설교

교리문답 교육과 설교에 관하여
설교의 일환으로서 성경 독서와 성경 해석
성경 해석에 있어서 상식적인 판단을 하라
예배에서 성경을 독서하는 데 필요한 순서는 없다
외경을 중심으로 한 설교와 가르침
정경은 우리의 영적 삶의 배타적인 원천이 아니다
교회의 외경 독서의 역사
설교만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니다
설교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니다
성경에 대해 쓰고 읽는 것은 ‘설교’의 형태들이다
설교와 성경독서의 비교
성경의 목적은 설교를 위한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설교는 구원을 위해 필연적이지 않다
설교의 참람함
성사도 설교가 필요하지 않다
무엇이 ‘좋은’ 설교를 만드는가?

리처드 후커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V, 역자 서문
 

저자 소개

저 : 리처드 후커 (Richard Hooker)
 
영국성공회의 신학자다. 1568년 옥스퍼드 코퍼스 크리스티 칼리지에 입학하여 성서, 교회역사, 철학 등의 다양한 분야를 공부하였다.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Laws of Ecclesiastical Polity)』를 저술하여, 청교도와 로마 가톨릭에 대해 영국성공회를 옹호하였다. 리처드 후커는 교회정치법에서 나라의 권력이 교회 안에서 정당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보았으며, 교회의 전통과 이성이 성서와 더불어 신...
 
역 : 노철래
 
영국 카디프 대학교에서 신학석사, 박사 학위를 받았다. 한국 성공회 사제로서 2010년부터 성공회 대학교에서 성공회 신학을 강의하고 있다. 『성공회 신학: 성공회 신학의 형성과 발전』(마크 채프먼, 비아, 2017)을 우리말로 옮겼다.
 
 

책 속으로

전 잉글랜드의 관구장이자 각하이시며 캔터베리 대주교이시고 제 선한 주인이시자 하느님과 함께하시는 대주교님께 이 책을 바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하시는 대주교시여, 각하께서 저에게 기꺼이 베풀어 주신 그 크신 각별한 은혜에 저의 글로써 감사의 뜻이 전해지길 기원합니다. 또한 저는 하느님의 교회에서 낮은 지위와 성직을 가진 이들이 자신들의 글을 승인받고자 한다면 권위 있는 윗사람들에게 제출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고대의 규율을 기꺼이 따르고자 합니다. 그렇기에 저는 각하께서 우리 교회의 규율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저의] 이 단순하고 평범한 수고를 선의로 받아 주실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교회의 규율이 타당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의 법이 제대로 이해되지 않는 측면이 존재해왔기 때문입니다.

확실히 우리의 법은 훌륭합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 법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습니다. 악법을 개혁하고자 노력하는 것은 칭찬할 만한 일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고쳐야 할 대상은 바로 태만한 우리 자신입니다. 모든 면에서 우리는 하느님을 향한 이전의 열정을 대부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이러한 타락과 관련해 ‘예전의 모습으로 다시 돌아가자’(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y of Nazianzus, 329-89),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 강론 2장)는 성 그레고리우스의 권면은 일리가 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교회를 위해 지금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규율을 좀 더 유익한 규율로 대체하자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이와 관련해 우리가 다른 교회의 법들을 검토하면 할수록, 현재의 규율을 계속 유지하더라도 그 해로움은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라는 결론이 날 소지가 다분합니다. 공적 권위가 제정해 온 규칙들을 열렬하게 비판하는 비판자들은 언제나 자신만만하고 대담합니다. 하지만 이들의 자신감은 오류에서 자유롭지 못한 지성에서 나온 것입니다.

당신께서도 우리가 쇄신하고자 하는 이 같은 개혁가들의 오류를 친히 공격했습니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이러한 오류는 온건하게 해결되어 왔습니다. 뻔뻔한 자신감을 침착하게 제어하고 고통받는 이들이 승리하도록 말입니다. 이러한 논쟁의 본질과 종류, 이러한 논쟁에서 생겨났을 법한 위험천만한 결과들, 그리고 이로부터 우리가 배운 수많은 것들과 관련해 저는 다음과 같이 과감하게 말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겪은 가장 중대한 분쟁은 교회의 머리이신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와 관계된 분쟁입니다. 그다음으로 중요한 것은 오늘날까지 우리와 로마 교회 사이에 존재하는 교회의 관습과 관련한 문제입니다. 이에 비해, 교회의 특정한 의례 및 의식(ceremonies)과 관련해 생겨난 최근의 문제들은 너무나 어리석은 불평들이며 대단히 단순해서 진지하게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교회의 여러 주교와 그 외 다른 현자들은 자신들의 재능을 더 중요한 문제에 바쳐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각하의 모범을 따라, 저는 진리의 토대를 탐구함으로써 진리를 찾는 방법을 사용해 이 모든 문제를 헤쳐 나아가는 것이 시의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 pp.9~11

교회는 각각의 사람이 내적으로 지녀야 하는 바를 외적으로 표현해야 합니다. 예배의 거행은 비가시적인 하느님에 대한 우리 내면의 애정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나타내는 가시적인 표현입니다. 몸짓은 몸짓이 의미하는 내용과 유사해야 합니다. 신앙이 우리 마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면, 교회가 보증하는 범위 내에서 우리의 외적 신앙 의식은 이 신앙을 나타내어야 합니다. 할 수 있는 한 전체 사회가 수행하는 신앙 의식에는 우리가 경배하는 그분의 위엄에 상응하는 탁월함이 있어야 합니다(2역대 2:5). 실로, 하늘에서 승리한 교회를 축복하는 신비로운 위엄과 영광을 지상의 교회가 본받을 때 공적 신앙의 실천은 최상의 질서를 갖추게 됩니다.

심지어 온 세상의 생명인 태양의 열기가 광야를 헤매는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극심한 괴로움을 주었듯이(놀라운 선하심을 지니신 하느님께서 이들을 보호할 그늘로 구름 기둥을 드리우셨다), 일반적으로 유익한 것들이 뜻밖에도 몇몇 사람들에게는 편치 않을 수 있습니다. 한 치의 불편함도 없는 완벽한 어떤 것이 이 세상에 과연 있을까요? 각각의 문제에 맞는 각각의 해결책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공중의 행복을 방해하진 않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첫 번째 요구 사항은 신앙의 외적 형태와 관련해 신심을 증진시키는 데 적합할 뿐만 아니라 신심을 증진시키는 것으로 증명될 수 있는 관행들은 경건하게 치러지도록 놔두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관행들은 하느님의 위대하심이나 신앙 의식의 일반적 위엄 혹은 사람들 마음속에 있는 신성한 생각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 일부가 보기 드물고, 진귀하며, 우발적이고 다소 불편하더라도 말입니다.
--- pp.60~61

교회 건물의 특별한 중요성과 미덕에 관한 저의 견해에 이단적인 흠이나 오점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 다른 모든 것들과 마찬가지로, 교회의 완전함은 교회가 진력하는 목적에 있습니다. 교회의 주된 목적은 하느님께 공적 예배를 드리는 데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더 작은 목적에 진력하는 곳들보다 훨씬 큰 존엄성을 갖습니다. 제대로 축성 받지 못해 교회의 명성과 명예가 실추되었을 때, 교회는 교회 본연의 지위가 상처 입고 강탈당했다는 듯이 슬퍼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장소의 위엄이 예배와 일치하지 않을 때, 하느님께 대한 예배는 은총과 매력에 있어서 완전성이 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물론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드리는 참된 예배를 받으실 수 있으십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신실하게 거행될 때 어디서 예배가 드려지든지 간에 그다지 상관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 홍해 한가운데 있는 모세, 거름더미 위의 욥, 침상 위에 있는 에제키엘, 수렁에 빠져 있는 예레미야, 고래 뱃속의 요나, (사자) 굴 속에 있는 다니엘, 용광로에 있는 아이들, 십자가에 달린 도둑, 그리고 감옥에 갇힌 베드로와 바울로, 이 모든 이들이 부르짖은 소리를 하느님께서는 들으셨습니다.

그럼에도 성 바실레이오스가 지적했듯이 예배 장소의 위엄성과 거룩함이 우리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는 헌신을 불러일으킬 뿐만 아니라 우리의 가장 훌륭하고 성스러운 예배 행위를 고양시키는 감정적인 효과를 교회가 자아낼 때입니다(성 바실레이오스(c.330-79), 카이사리아의 주교, 『세례를 위한 권고』(Exhortatio ad baptismum), p. 538). 우리는 모든 이에게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예배하라고 강력하게 권고합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백성이 예배를 드리기에 좋은 장소로 교회만 한 곳은 없으며 ‘오 거룩함의 아름다움으로 주를 경배하여라’(시편 96:9)라고 말한 다윗의 권고만큼 적절한 권고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pp.123~124

이러한 설교자들이 종종 말려드는 애매모호함, 그러니까 참되신 하느님의 말씀과 그 말씀에 추가된 것을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는 사태를 피하기 위해 우리는 하느님의 말씀이란 영생의 문제들과 관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이 인간(특별히 예언자들과 사도들)에게 주신 것이며 예언자들과 사도들이 하느님께 받은 이러한 직접적인 신성한 영감이 책과 글의 형태로 우리에게 전해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성경과 별도로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기록한 사람들에게 사도들의 설교는 사도들의 글과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설교는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의 설교는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에서 이끌어내고 빚어낸 것들이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말을 쓸 때마다 그것은 언제나 성경에 있는 것만을 의미합니다.

하느님 말씀의 목적은 구원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말씀을 생명의 말씀이라 부릅니다.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르침 받는 진리를 앎으로써 사람들은 구원을 얻습니다. 영원한 생명은 누구나 받을 수 있으므로 구원에 필요한 수단인 하느님의 말씀은 반드시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야 합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소중한 생명의 말씀은 이해하기 쉬울 뿐만 아니라 얻기도 쉬운 보화였습니다. 이해를 방해하는 불필요한 장애물로 인해 생명을 갈망하는 자가 멸망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교리적 도구의 역할을 합니다. 디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편지의 말씀처럼, 사람들은 ‘구원에 이르는 지혜’ 덕분에 구원을 얻습니다(2디모 3:15). 말씀은 성경에 무지한 사람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으로 사는 사람은 성경에 대해 잘 압니다.

성경은 하느님께서 인간들의 마음에 구원에 대한 지식을 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마련하신 도구입니다. 그렇다면 신성한 일에 대해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우리를 추동하여 이러한 신성한 일을 시인하도록 하는 가장 적절하고 합당한 수단이 성경이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이유가 어디에 있습니까? 자신의 지혜의 풍성한 보화를 아시고 드러내시는 하느님께서 자신의 보화를 세상에 전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성경을 택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원한 생명을 얻는데 필요한 모든 지식을 알릴 경우 성경은 그 자체로 완전하고 완벽하게 이해되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고백합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명제, 모든 문장은 우리에게 천상의 원칙입니다. 이 안에 있는 모든 명제는 가장 확실하고 실로 무오한(infallible) 성경의 일부를 이루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으로 이끄는 진리에 속합니다. 가치 있는 모든 일들처럼, 이러한 원칙은 희생을 요구합니다.

우리는 하느님에 대한 지식의 산파 노릇을 하지 못합니다. 우리 자신의 배경이나 행운이 적을수록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을 더 많이 받을수록 우리는 하느님께 나아가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이 믿음에 관한 교리를 가르치지 않는다면 어느 누구도 하느님을 믿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말씀의 신비를 전하는데 적합한 수단이 무엇이든 간에, (우리가 설교라고 부르는) 교회에서의 공적 전함이든 사적 전함이든 간에, 하느님의 말씀은 모든 수단 심지어 가장 흔한 수단을 통해서도 구원을 이루십니다. 이러한 일이 오로지 설교를 통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 pp.168~170
 

출판사 리뷰

[ 성공회 고전 선집 ] 1편

성공회 신앙이란 무엇인가? 세계성공회 공동체의 신학을 일군 뿌리는 무엇인가?
성공회 신학과 신앙의 근간을 마련한 리처드 후커의 저작


리처드 후커는 성공회 정신의 창시자로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그가 누구인지 묻는다면 해석상의 쟁점들이 다양해서 정의하기가 쉽지 않다. 그럼에도 그의 저서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제5권에 한정해서 살펴본다면 해석의 주된 열쇠가 잉글랜드 교회의 권위에 관한 논쟁에 놓여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그의 신학이 가진 목표는 근본적으로 질서를 옹호하는 데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다. 그렇지만 주의해야 한다. 후커가 옹호하는 질서가 과거에 집착해 어떠한 개혁도 바라지 않는, 소위 오늘날의 근본주의적 신앙의 이미지라고 생각한다면 곤란하다. 많은 부분에 있어서 종교개혁가들의 주장에 그가 동의했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결코 그럴 수 없다. 게다가 한걸음 더 나아갈 수도 있는데, 캐나다 뉴펀들랜드 메모리얼 대학교의 명예교수인 랭포드는 자신의 책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The Tradition of Liberal Theology)』에서 후커를 전통으로부터 자유를 추구한 인물이며 그렇기에 자유주의 신학의 전통에 포함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심지어 무신론자에게도 후커는 회심을 불러일으키는 의미심장한 인물로 비쳐질 수 있다. 한때 무신론자이기도 했던 C.S. 루이스는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아직 기독교를 싫어하던 시절, 나는 마치 너무도 익숙한 냄새처럼 거의 불변하는 어떤 것을 알아보는 법을 배웠는데, 그것을 이제 청교도 버니언의 작품에서, 국교도 후커의 작품에서, 그리고 토마스 아퀴나스와 단테의 작품에서 만났다.”

그렇다면 사백년이 지난 오늘날 후커의 저서를 다시 끄집어내어 읽는 것은 결코 공허하고 헛된 일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어떠한 책이든 성공회 신학을 다룬다면 리처드 후커가 쓴 저작들과 마주해야 한다. 성공회 신학을 다룰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성공회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자들에게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 후커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는 20세기에 원전 비평 연구의 대상이 된 유일한 성공회 신학자였다. 이는 뉴먼조차 받지 못한 특전이었다”라는 채프먼의 말은 이 점을 뒷받침해준다.

『교회 체제의 법에 관하여』 제5권 한국어 번역본 첫 번째 판은 예배, 교회, 설교를 다룬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짧은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성공회 정신의 창시자인 후커가 청교도들과 가톨릭 사이에서 어떠한 입장을 견지했고 이를 통해 성공회의 정체성을 어떻게 구현해냈는지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보면, 이 첫 번째 판은 결코 짧지 않다. 아무쪼록 이 번역본이 후커의 이해를 진작시키고 사백년 전의 후커의 고민을 오늘날의 상황에 맞게 어떻게 발전시켜 나갈지 고민하는 출발점이 되었으면 한다.
 

추천평

“리처드 후커는 우리 자신을 개인으로 인식하기 훨씬 이전에 서로가 서로에게 연결되어 있음에서 사고를 시작하는 탁월한 사상가다. 우리는 이 시각을 통해 교회와 관련된 왜곡되기 쉬우며 일그러지기도 하는 시각을 교정해, 오래된 진실과 마주할 수 있다.”
- 로완 윌리엄스 (전 캔터베리 대주교, 케임브리지 대학교 모들린 칼리지 학장,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제자가 된다는 것』 등 지은이)

“어떠한 책이든 성공회 신학을 다룬다면 리처드 후커가 쓴 저작들과 마주해야 한다. 성공회 신학을 다룰 때 가장 자주 언급되는 사람일 뿐 아니라 성공회 역사에서 가장 논쟁적인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신학자들에게는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역사적 후커로 되돌아가는 경향이 생겼는지도 모른다. 그는 20세기에 원전 비평 연구의 대상이 된 유일한 성공회 신학자였다. 이는 뉴먼조차 받지 못한 특전이었다.”
- 마크 채프먼 (옥스포드 커드스톤 리펀 칼리지 교수, 신학자, 『성공회』, 『성공회 신학』(비아)의 지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