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6.교육의 이해 (책소개)/2.교육문제비평

교육은 왜 교육하지 않는가 (2019) - 교육 낭비의 사회학

동방박사님 2023. 2. 24.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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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교육을 도구적 수단으로 삼는 관행에서 탈피하고
지식 중심 교육으로 돌아갈 것을 제안하다

오늘날 교육은 경제발전에 잠재적으로 기여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고 있지만, 더 이상 교육 자체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영국의 사회학자 프랭크 푸레디는 교육이 제대로 교육하기 위한 방안을 교육 그 자체에서 찾는다. 그는 이 책에서 학교의 역할을 사회화, 동기부여, 실용성 등에 한정하는 이론들을 반박하고 교육을 정치적 또는 사회적 어젠다에 종속시키려는 경향을 비판하며 교육은 그 자체로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푸레디는 교육이 다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활용되어온 여러 사례와 그 폐해를 꼬집어 비난하는 한편, 학습 자체의 가치와 무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교과과정 및 교육 논쟁의 공허함을 꿰뚫어본다. 또한 고대 그리스인들에서부터 현대의 비평가들에 이르기까지 여러 사상가들의 이론을 바탕으로 학교가 우리에게 무엇을 해주어야 하는지를 설명한다.

목차

서론. 교육의 역설
제1장. 일회용 교육학
제2장. 교육의 의미
제3장. 어른의 권위를 둘러싼 혼란
제4장. 역사회화
제5장. 사회공학
제6장. 교육에 대한 믿음의 상실
제7장. 행복으로의 불행한 전환
결론. 교육에서 교육 구하기

저자 소개

저 : 프랭크 푸레디 (Frank Furedi)
 
헝가리 출신 사회학자로, 현재 영국 켄트대학교 사회학 석좌교수로 있다. 건강, 아동, 음식, 신기술, 테러 등과 관련한 문제의 위험 및 공포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며, 여러 방송매체에 출연하고 대중잡지에 많은 기고를 하는 등 활발한 사회활동을 하고 있다. 우리말로 번역되어 출간된 책으로 『치료요법 문화』, 『그 많던 지식인들은 다 어디로 갔는가』, 『우리는 왜 공포에 빠지는가』, 『공포정치: 좌파와 우파를 넘어서』...

역 : 박형신 (朴炯信)

 
고려대학교 문과대학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 사회학과에서 석사와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간 강원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연구교수, 고려대학교 인문대학 사회학과 초빙교수 등을 지냈다. 지금은 다시 연세대학교 사회발전연구소 연구교수로 일하고 있다. 사회이론, 감정사회학, 음식과 먹기의 사회학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정치위기의 사회학』(1995),『감정은 사회를 어떻게 움직이는...
 

책 속으로

이 책은 현재의 많은 교육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치는, 그리고 학교 교육 문화에 편협하고 반지성적인 성격을 부여하는 ‘낮은 기대의 풍조’에 이의를 제기함으로써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쓰였다. 이 책에서 내가 가장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내가 교육의 역설이라고 간주하는 것, 다시 말해 사회가 교육에 투자하고 기대할수록 학교와 대학은 학생에 대해 덜 요구한다는 것이다. --- p.10

교육은 성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의 집합소가 되었고, 이것이 바로 교육의 역할이 그토록 극적으로 확대되어온 이유의 하나이다. 불행하게도 학교는 자신에게 할당되어온 문제들을 해결할 마법의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동기부여 기법과 교육학의 전문지식은 21세기 어른들의 모호한 권위행사 방식을 벌충할 수 없다. 설상가상으로 교육의 소관사항이 확대되면서 가르치는 일은 더욱 복잡해지고 있다. 교육이 모든 것이 될 때, 교육은 교육이기를 멈춘다. 우리는 교육을 사회의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만능의 제도로 전환시키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교육을 구출할 필요가 있다. --- p.19

현재의 많은 교육 정책과 교수법 관행은 어른의 권위 행사를 둘러싼 어려움을 상쇄하거나 그 어려움들을 회피하기 위해 시도되는 반(半)의식적 노력들이다. 교육 자체 내에서는 이 어려운 문제를 우회할 수 있는 동기부여 기법을 발명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으며, 새로운 교육의 어휘는 어른 권위의 쇠퇴에 대응하는 용어들로 가득 차 있다. ‘학습하는 법의 학습’, ‘성찰적 학습’, ‘평생학습’, ‘e-학습’, 또는 ‘체험 학습’과 같은 용어들은 강조점이 가르치기에서 학습하기로 이동하고 있고 또 권위가 교사에서 학습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p.24

청소년들의 실존적 불안이 잠재적인 정신건강 문제로 다루어질 경우, 그것은 청소년들로 하여금 무력하고 아프다고 느끼게 만들 가능성이 크다. 공허한 칭찬을 먹고 살고 좀처럼 도전받지 않고 심지어 실패와 맞설 것을 강요받지 않은 아이들은 삶의 테스트를 견딜 준비가 제대로 되어 있지 않다. 이 경우 비교적 흔한 에피소드들조차도 감정적 방향감각의 상실을 유발하는 원인으로 경험될 것이다. --- pp.31~32

오늘날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교육 에토스는 자주 실제 세계의 현실과 완전히 동떨어진 낡은 엘리트주의적 관념으로 치부된다. 대학에서조차 지식 그 자체를 추구하는 이상은 중세적인 편견의 한심한 표현으로 인식되어 거부된다. 교육은 긴급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임무를 부여받는다. 많은 교육자가 청소년들이 지식에 대한 사랑에 의해 동기지어지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에 근거하여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접근방식을 학교 교육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일축한다. --- p.37

교사의 권위를 지원자 또는 촉진자의 역할로 격하시키는 것은 새로운 것에 대한 집착이 초래하는 필연적 결과이다. 지식의 유통기한이 짧은 세계에서 교사들은 전달할 ‘적절한’ 지혜를 거의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들의 역할은 ‘학습자’가 학습하는 법을 학습하는 과정을 ‘원활하게 진행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역할 변화는 교사에게 학습자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하는 수사적 전략에서 분명하게 포착된다. 어떠한 ‘확실한 답’도 거의 존재하지 않은 상황에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시대에는 학습할 필요만 있을 뿐 가르칠 것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 p.59

내가 새로움에 대한 오늘날의 집착을 비판하는 이유는 변화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가 아니라 변화를 객체화하는 경향 때문이다. 변화의 객체화는 변화를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하나의 장애물이다. 물론 교육과 지식은 갱신되어야 하지만, 항상 과거의 지적 유산을 발전시킴으로써 그렇게 해야 한다. 아동 교육을 아이들과 직접적으로 관련된 경험을 통한 학습으로 제한하려는 현재의 프로젝트는 어린 세대가 그들의 정당한 지적 유산을 상속할 권리를 박탈하는 것이다. --- p.67

청소년들에게 성인의 삶을 준비시키는 일에 몰두하는 것은 그 자체로 교육의 임무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그러한 작업은 성인의 삶을 위한 준비가 어떤 지적·문화적 토대 위에서 이루어져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회피한다. 교과과정이 일상생활에서 제기되는 즉각적인 실용적 질문들에 고착될 경우, 교사가 학생들로 하여금 그들의 상황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근본적인 지적 질문들에 관심을 갖게 하기란 어렵다. --- p.91

정책 입안자들이 아이들의 지적 자본 계발이라는 목적을 암묵적으로 부정함으로써 초래된 가장 극적인 결과가 바로 이론적인 교과목 중심 교육의 중요성이 축소되었다는 것이다. 교육 전문가들은 학교에서 경험하는 학문적·지적 차원보다 ‘전인적 욕구’를 우선시하는 학교 교과과정을 거듭 주장한다. … 이러한 접근방식은 반지성적·반학문적 교육학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 p.93

학생 발언권의 제도화는 교사들로 하여금 자신들이 심문받고 있다는 사실에 더더욱 민감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조장하는 역효과를 초래할 것이다. 슬프게도, 권위 있는 목소리로 교육을 지배해야 할 집단―교사―이 자신들의 목소리를 표현하는 데 주저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아이들이 어른의 권위와 통제를 이전의 어느 때보다 덜 경험하는 시대에 교사들로 하여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은 몹시 해로운 일이다. --- p.127

역사회화라는 심란한 현상이 부모의 권위를 제거하려는 의식적인 시도로 해석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이 부모를 우회해서 아이들을 기꺼이 직접 사회화하려고 한다는 것은 한 세기를 거치며 아주 분명해졌다. … 교육자와 정책 입안자들이 역사회화 현상과 관련된 전술들을 노골적으로 지지하게 된 것은 단지 최근의 일일 뿐이다. 하지만 그들도 역사회화 현상의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 중 한 가지, 즉 역사회화가 부모 권위의 감소에 기여하게 된 것에 대해서는 환영하지 않을 것 같다. --- p.160

교육을 정책 입안자가 선택할 수 있는 도구의 하나로 격상시키는 것은 불가피하게 실망을 낳을 수밖에 없다. 경제적 쇠퇴에서 반사회적 행동에 이르기까지 교육이 다루도록 요청받는 사회악과 사회문제들은 계속해서 사회적 풍경을 황폐화시킨다. 그 결과 교육은 해결할 것을 요청받은 바로 그 문제들로 인해 비난받으며, 사회에 존재하는 위기가 교육의 위기로 해석된다. --- p.163

일반적으로 ‘진리’가 일시적인 부수현상으로 여겨지고, 지식습득은 “사실들의 기계적 학습”으로 희화화된다. 이처럼 교육적 지식을 실리적으로 구성하는 것이 사회공학적 어젠다를 옹호하는 입장의 또 다른 측면이다. 진리와 지식을 불안정하고 일시적인 현상으로 제시하는 것은 이론 중심의 학교 교과과정을 반대하는 사람들에게 핵심적인 암묵적 가정의 하나가 되었다. --- p.207

이론적 교과목들은 학생들에게 그 과목이 기능하는 방식을 이해하고 자신들의 인식을 심화시킬 수 있는 지적 틀을 제공한다. 교과목 중심 학습은 창조성과 교과과정 전반의 혁신을 방해하는 장애물이 아니다. 반대로 핵심적인 이론적 교과목들의 기초를 튼튼하게 쌓을 경우, 아이들이 서로 다른 교과목의 통찰들 간에 존재하는 연관성을 포착할 가능성은 훨씬 더 커질 것이다. --- p.215

개별 맞춤 학습은 아이들의 차이가 공통점보다 더 중요하다는 가정에 토대하여 자리를 잡아왔다. … 사람들이 처한 사회적 환경을 반영하여 수립된 위계적 교육기회는 아이들이 사회에서 서로 다른 역할에 적합하도록 태어났다는 것을 근거로 하여 정당화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이용된 논거 중의 하나가 아이들은 IQ로 측정되는 서로 다른 능력을 타고나기 때문에 이론 학습은 오직 소수의 아동에게만 적합하다는 것이었다. --- p.226

이론 학습이 아이들의 웰빙과 정신건강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주장은 새롭지 않으며, 그러한 주장은 아이들이 학교에서 하는 일의 많은 부분이 부자연스럽고 따라서 아이들의 개인적 발달을 망쳐놓는다는 믿음에 기초하고 있다. 교육의 격식성 자체가 자주 아이들의 자연적 성향을 억제하고 정신적 고통을 유발한다고 비난받는다. 이러한 우려는 숙제가 아이들에게 초래할 수도 있다고 추정되는 위험과 관련하여 반복적으로 제기되어왔다. --- p.241

시대에 뒤떨어지고 부적절한 19세기 교과과정의 유산이라고 빈번히 묘사되는 역사 과목을 예로 들어보자. 겉으로 보기에 역사 과목 공부는 전적으로 부자연스럽고 아이들의 경험과 무관하다. 고대 그리스 또는 중세 유럽에 대한 공부가 지구화된 하이테크 세계의 도전들에 맞서야 하는 21세기 아이들에게 얼마나 적실성을 지니겠는가? 하지만 적절히 이해되기만 한다면, 아마도 역사는 상상력을 확장하는 데 가장 크게 기여할 수 있는 과목일 것이다. --- p.246

르네상스 시대 이래로 인본주의적 전통은 인지와 감정 사이에 창조적 긴장관계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따라서 감정에 대한 교육을 중시했다. 인본주의자들이 교육을 강조했던 이유는 교육이 그 자체로 중요할 뿐만 아니라 감정을 계발하는 힘을 지니고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21세기의 감정 교육은 감정적인 것을 강조하면서, 감정 교육을 독자적인 치료요법적 프로젝트의 하나라고 인식한다. --- p.252

지금까지의 경험을 통해 볼 때, 동기부여 기법들은 동기부여의 위기가 가져온 결과들을 극복하는 데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좋은 감정을 느끼게 하고 아이들의 자존감을 높이고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들은 좀처럼 행동을 일관되게 개선하지 못한다. 교사의 권위 행사를 대신할 치료요법적 대안이란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 --- p.264

아마도 행복운동을 추동시키는 가장 중요한 힘은 서구 사회에 만연해 있는, 도덕적 방향감각 상실이라는 강력한 분위기일 것이다. 서구 문화는 좋은 것과 나쁜 것, 또는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명시하는 언어를 사용하여 일상 경험에 의미를 부여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하지만 행복운동은 도덕 프로젝트라기보다는 도덕화 프로젝트이다. 그 프로젝트의 성공은 도덕적 확신이 증가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관리 기법을 성공적으로 적용하는 것에 달려 있을 것이다. 정책 입안자들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 우리가 직면하는 도덕적 도전들을 명료화하기보다는 인지 행동 치료요법을 제도화하는 것에 의존한다. --- p.267

수십 년 동안 정부가 발의한 교육개혁들이 실패한 까닭은, 학교 문제는 기술적 해결책을 통해서는 극복할 수는 없다는 아주 단순한 이유 때문이었다. 정부가 하부구조나 산업에 더 많은 투자를 할 경우, 그것은 자주 긍정적인 결과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교육의 경우, 그러한 투자는 내포적 성장이 아닌 외연적 성장으로 이어지는 경향이 있다.
--- p.285
 

출판사 리뷰

지식 중심 교육이 학습의 장애물로 여겨지는 현실을 비판하다

고대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교육은 언제나 논쟁의 중심이자 개혁의 대상으로, 끊임없는 실험이 시도되어왔다. 학교의 교과과정은 때로는 감정교육이나 동기 부여를 중시했고, 때로는 기술적 훈련에 집중했으며, 사회 정책을 실험하는 장으로도 활용되었다. 하지만 그토록 많은 관심과 우려를 받으면서도 교육에 제시된 해결책들은 문제를 악화시키기 일쑤였고, 그 결과 오늘날 교육은 성인 사회가 가지고 있는 문제들의 집합소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 책은 수많은 교육 개혁이 시도되고 학생들 또한 점점 더 많은 시간을 공부에 투자하는데도 학업수준이 향상되기는커녕 점점 더 떨어지는 역설적인 상황을 비판하면서 교육이 제대로 교육하고 있지 못한 현실을 분석한다.

교육은 그간 사회 문제를 해결하는 도구적 수단이나 성인의 삶을 준비시키는 과정으로 인식되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관점은 교육의 임무를 과소평가하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들에게 지적 질문을 제기하는 것이 학교의 임무라고 주장한다. 한 인간의 삶은 지적·문화적 토대를 기반으로 할 때라야 의미를 가질 수 있으며, 지적 호기심을 통해 더욱 넓은 세계를 통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과과정이 일상생활에서 제기되는 실용적인 질문들에만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

인지와 감정 간 창조적 긴장관계를 중시한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교육 강조

영국의 사회학자 푸레디가 이 책에서 밝히는 영국 교육의 역설은 사회가 교육에 투자할수록 학교와 대학은 학생에 대해 덜 요구하고, 사람들이 교육에 대해 기대할수록 교육은 그 자체로 덜 평가된다는 것이다. 푸레디는 이 문제를 자유주의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교육관과 실용주의 철학자 존 듀이의 교육관을 대비시키며 풀어나간다. 또한 푸레디는 교육 이론가 롭 무어의 주장을 인용해, 교육의 위기는 ‘구체적으로는 자유주의적 인본주의 교육의 위기’라고 진단한다.

그러나 푸레디가 자유주의적 교육관과 실용주의적 교육관 중 어느 하나가 옳고 다른 것은 그르다는 식의 양자택일적 사고를 전개하는 것은 아니다. 교육은 두 교육관 사이에서 ‘창조적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하지만 듀이가 끊임없이 변화하는 세계에 대한 적응을 강조한 이후 현대 교육학은 실리주의에 크게 치우쳤고, 그 결과 교육 현장이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어버린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푸레디에 따르면, 이 역시 실용주의적 교육 정책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그러한 정책의 기저에 깔린 가정이 발현한 결과이거나 실리주의적 정책에 대한 집착이 낳은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이다.

‘교육’이 아닌 ‘사회적 기술 학습’이 지배하는 현실에 경종을 울리다

푸레디는 이 책에서 교육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되짚어보고 교육제도를 하나의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가치 있는 것으로 긍정하고 교육 자체와 지식의 습득을 높이 평가할 필요가 있다고 역설한다. 지금까지의 전례를 볼 때 우리나라의 교육 정책은 선진국의 정책을 답습하거나 그와 유사한 경로를 거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이미 서구에서 실행된 정책들에서 발생한 의도하지 않은 결과들을 미리 짚어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책에 묘사되어 있는 영미권 교육 현장의 부정적 모습, 즉 어른과 교사의 권위 상실, 학생들의 규율 문제, 교실 교육에 대한 외부의 개입 등은 우리 사회에서도 동일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대학생들의 학업능력 저하는 이제 학교의 문제를 넘어 지식사회의 기반 상실이라는 문제로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점들을 고려해볼 때, 영미권의 교육 현장에 대한 푸레디의 사회학적 진단은 우리 교육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여러모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