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대한민국 현대사 (책소개)/5.대한민국대통령

박정희와 개발독재시대 (2007) - 5·16에서 10·26까지

동방박사님 2023. 5. 31. 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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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역사전공자가 아닌 일반인을 위한 역사교양서. 20세기는 한국역사의 최대 격동기였다. 개항 이후 일제의 폭압을 경험했고, 해방과 더불어 한국전쟁이란 민족의 비극을 맞았다. 식민지 경험과 전쟁의 참화는 다시 독재의 암흑시대를 낳았지만, 민주주의를 향한 진보는 결코 좌절되지 않았다. 이제 100년에 걸친 한국역사의 역동적인 드라마 속에서 오로지 자유와 진실의 힘을 믿고 힘차게 걸어온 한국인의 발자취를 정직하게 기록한다.

목차

책머리에- 박정희를 다시 읽기 위하여

1장 5·16군사쿠데타, 개발독재시대의 개막
개혁과 통제의 이중주, 쿠데타정권의 초기정책 / 식민화된 군인에서 정치군인으로 / 민심을 얻기 위한 경제개발 드라이브 / 신악(新惡)이 구악(舊惡)을 빰친다 / 〈스페셜 페이지〉 박정희 시대의 미국

2장 한일회담의 진통 속에서 개발의 돛은 올라가고
군사정권의 첫 위기, 한일회담 반대투쟁 / 수출 아니면 죽음을 / 일석이조의 베트남 파병 / 3선개헌으로 가는 길 / 〈스페셜 테마〉 반독재 진영은 경제를 어떻게 인식했는가

3장 개발동원체제의 ‘성공의 위기’
극단적 반공체제의 강화,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 / 3선개헌, 장기독재의 길을 열다 / 단군 이래 최대의 토목공사, 경부고속도로 개통 / 내 죽음을 헛되이 말라 / 유신 전야의 총체적 위기 / 새로운 돌파구, 남북대화와 복지정책 / 〈스페셜 테마〉 박정희 시대의 부패

4장 영구집권을 위한 유신체제의 등장
유신쿠데타, 체제의 파시즘적 재편 / 제2의 한국전쟁, 중화학공업화 / 독재가 길어질수록 저항도 거세지고 / “잘살아보세”, 새마을운동의 명암 / 청년문화의 등장 / 〈스페셜 테마〉 애국과 성(性)

5장 긴급조치 9호와 민주주의의 암흑기
긴급조치 9호의 시대 / 권력 엘리트의 도덕적 균열 / 경제적 집중과 중복투자의 한계 / 긴급조치 9호와 저항운동 / 노동자와 농민, 저항의 주체가 되다 / 선도하는 국가, 신세대의 출현 / 〈스페셜 테마〉 “공해라도 배불리 먹었으면 좋겠다”

글을 맺으며- 민주화 이후에 박정희를 다시 본다는 것
시대정신을 둘러싼 경쟁 / 보수적으로 박정희를 읽는다는 것 / 진보적으로 대안모델을 찾는다는 것

부록 : 주요 사건 일지 / 참고문헌 / 이 책에 쓰인 사진의 출처 /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조희연
 
서울특별시교육감. 전북 정읍 출생. 전주 북중학교와 서울 중앙고를 거쳐,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하고 연세대 사회학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남가주대(USC)에서 한국학 객원교수와 일본 케이센대, 대만 국립교통대, 영국 랑카스터대,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UBC)에서 교환교수를 지냈고 비판사회학회장, 학술단체협의회 공동대표 등을 역임했다.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이자 민주주의연구소장,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을...

책 속으로

무엇보다 경제개발에 따르는 문제의 핵심은 노동문제였다. 산업화 초기에는 노동자의 ‘저임금?장시간’을 기반으로 하는 노동집약적 산업을 육성했다. 따라서 노동자들은 산업 역군 혹은 산업 애국자로 불리었고, 그들은 그런 정체성에 만족하면서 새로운 산업 현실에 적응하고 있었다. 그러나 1970년대 초반부터는 이런 상황에 변화가 나타났다. 이런 노동계 상황에 극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이 벌어졌다. 1970년 11월 13일에 전태일이 분신을 한 것이다. 전태일은 너무나 ‘평범한 요구’를 외치며, 홀연히 분신했다. 그의 일기에는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고 적혀 있다. 또한 그는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매달 휴일을 이틀 늘려서 일요일마다 쉬기를 원한다”라는 소박한 요구를 남겼다.
전태일의 죽음이 한국사회에 준 충격은 엄청난 것이었다. “내게도 대학생 친구 하나 있었으면 원이 없겠는데”라는 전태일의 탄식 어린 한 마디가, 수많은 지식인?종교인?대학생의 양심을 일깨웠다. 그의 죽음으로 인해 노동 문제는 여론에서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되었다. 11월 16일에 서울대 법대생 100여 명이 전태일의 시신을 인수해 학생장으로 치르겠다고 했다. 서울대 상대생 400여 명도 무기한 단식농성에 돌입했다. 11월 22일에는 새문안교회 소속 대학생 40여 명이 스스로를 참회하고 사회문제를 고발하는 의미로 금식기도회를 열기도 했다. 전태일의 분신으로 기독교는 산업문제에 관심을 갖고 산업선교에 돌입했고, 노동운동도 벌판의 불길처럼 거침없이 번져가기 시작했다. 한국사회는 전태일로 인해 비로소 노동문제에 주목하게 되었고, 더 나아가 노동문제를 피할 수 없는 사회문제이자 정치문제로 인식하게 되었다.
--- p.120~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