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사회학 연구 (책소개)/2.여성젠더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2019)

동방박사님 2024. 2. 16. 07:14
728x90

책소개

흔히 프랑스는 자유, 평등, 박애 등 프랑스혁명의 정신을 뿌리로 하는 선진적 민주주의국가로 알려져 있다. 인간이라면 당연히 가지는 기본 권리인 인권이 무엇보다 존중되고, 모든 시민이 자유와 평등의 가치를 공유하며 누리는 나라. 그런데 여기서 말하는 인간 또는 모든 시민은, 구체제를 거침없이 뒤집어엎은 프랑스혁명의 시대에조차, 이후로도 꽤 오랫동안, 불행하게도 21세기인 오늘날에도 때로는, 오직 남성만을 의미한다.

프랑스혁명기에 많은 여성들이 최전선에서 적극적으로 발언하고 투쟁했다. 그러나 혁명을 통해 권력을 잡은 남성 정치인들은 ‘뜨개질이나 하는 여자들’의 정치 참여에 공공연하게 거부감을 드러냈고, 여성들이 해야 할 일은 ‘살림살이에 힘씀으로써 남편들과 아이들이 권리를 행사하도록 환기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여성들에게서 정치적 목소리를 제거했다. 프랑스혁명의 인권선언은 ‘자유롭게 태어난 모든 인간’을 언급하지만 여성은 ‘인간’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남성만의 이런 불합리하고 불평등하며 불공정한 사회에 이의를 제기한 것이 바로 올랭프 드 구주다. 그는 남성만을 인간으로 전제한 「인간과 시민의 권리 선언」의 형식을 빌려 1791년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을 발표한다.

목차

1부 여성들을 위하여
유용하고 유익한 계획에 대하여 09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20
프랑스인의 양식 46

2부 노예제에 반대하며
‘흑인종’에 관하여 51
깨달음을 얻고 싶어 하는 식민지의 개척자 또는 미국인 투사에게 띄우는 답신 59

3부 자코뱅에 대한 증오 속에서 조국을 지키고자
한 양서 동물이 막시밀리앵 드 로베스피에르에게 내리는 진단 73
유언을 대신하는 글 80
혁명재판소에 보내는 청원 94

옮긴이의 말: 올랭프 드 구주, 이토록 인간적인 혁명주의자 106

역 : 박재연

아주대학교 문화콘텐츠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 서울에서는 불어불문학을, 파리에서는 미술사학과 문화인류학을 공부했다. 민기와 민재, 사랑하는 두 아이들과 뒹굴거리며 그림책을 즐기는 엄마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는 『돌봄과 작업』(공저), 『미술, 엔진을 달다』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는 『모두의 미술사』, 『파리의 작은 인어』, 『샤샤의 춤』, [필로니모] 시리즈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그 어떤 기술도 고통을 덜어주지 못해 며칠 밤낮으로 찢어지는 통증을 겪다가 산파의 품에 안긴 채 죽어가는 젊은 여성들을 종종 본다. 이들이 겪는 참으로 비참한 고통에 여태껏 신경 쓰지 않던 남성들에게 생명을 안겨주고, 이 여성들은 죽는다. --- p.15

남자여, 그대는 정의로울 수 있는가? 그대에게 이 질문을 던지는 건 여자다. 여자에게서 적어도 이 권리만큼은 빼앗지 말아 달라. 말해보라. 나의 성별을 억압하는 지상 최고의 권한을 누가 그대에게 주었는가? 그대의 힘인가? 그대의 재능인가? 창조주의 지혜를 살피고 그대가 닮고 싶어 하는 위대함으로 가득한 자연을 들여다보라. 그런 후에 이토록 전제적인 제국의 예를 들 수 있으면 내게 알려달라. --- p.24

제3조 모든 주권의 원칙은 본질적으로 여성과 남성의 집합인 국민에게 있다. 어떠한 단체나 개인도 국민으로부터 명시적으로 유래하지 않는 권력을 행사할 수 없다. --- p.27

제10조 그 누구도 근본적인 견해 때문에 위협을 받아서는 안 된다. 여성은 단두대에 오를 권리가 있다. 마찬가지로 여성은 그 의사 표현이 법이 규정한 공공질서를 흐리지 않는 한 연단에 오를 권리를 가져야 한다. --- p.29

자연이 만든 모든 동식물과 광물이 그렇듯 인간의 피부색에도 미묘한 차이가 있다. 왜 낮이 밤과, 태양이 달과, 별이 창공과 색을 두고 다투지 않는가? 모든 것은 다양하며, 바로 그래서 자연이 아름다운 것이다. 그런데 왜 자연의 작품을 파괴하려 드는가? --- pp.53~54

저는 항상 로베스피에르를 재능과 정신이 결여된 야심가로 여겨왔습니다. 독재정치를 펼칠 수 있다면 언제고 나라 전체를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이 광기 어린 피의 야심을 견딜 수 없었고, 제가 폭군이라 생각한 이들을 여기는 것처럼 그를 대했습니다. 오랫동안 감춰져온 이 비열한 적의 증오는 그와 그의 동료들이 탐욕스럽게 권력을 차지하자마자 저를 희생시킴으로써 복수를 행하고 있습니다.
--- p.96

출판사 리뷰

소수자에 대한 부당한 차별에 정면으로 맞선 전위적 인권운동가

여성에게 결혼이나 매춘 외에 다른 선택이 존재하지 않았던 시대에, 남편과의 사별 후 남편의 성을 따른 과부로 불리기보다 새로운 이름으로 독립적 삶을 추구하고, 재혼보다 사회계약 형태의 동거를 택한 올랭프 드 구주. 시몬 드 보부아르가 『제2의 성』을 발표하기 한 세기 반 전에 이미 ‘사회 발전을 막는 여성 혐오의 해악’을 지적했을 만큼 선구적인 페미니스트였던 그의 문제의식은 성차별에 국한되지 않는다. 민중의 빈곤과 고통, 사회적 불평등과 경제적 소외, 즉 여성은 물론 빈민, 병자, 과부, 노인, 고아, 사생아, 실업자 등 사회적 약자이자 소수자가 겪는 부당한 처우는 올랭프 드 구주의 주된 관심사였다. 공공 보조 체계, 과부와 노인과 고아를 위한 돌봄 기관, 실직 노동자를 위한 공동 작업장, 재산 규모에 따른 부유세 도입 등 사회보장 기획을 제안한 「애국적인 고찰」 같은 글에서 보편적 인권에 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그는 특히 인종차별의 극단인 흑인 노예제의 폐지를 위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는데, 「‘흑인종’에 관하여」를 통해 노예제 폐지를 직접적으로 주장했고, 노예무역을 다룬 희곡 「흑인 노예 시장」을 발표하기도 했다. 또한 노예무역의 즉각적인 폐지 및 노예제의 점진적 폐지를 주장하는 ‘흑인의 친구들’ 협회에 가입해 활동했고, 1808년 ‘흑인 노예제 폐지를 위해 행동한 용기 있는 자들’의 명단에 여성으로서는 유일하게 이름을 올린다.

그들을 그 끔찍한 노예 상태로 단죄한 것이 힘과 편견이었음을, 여기에 자연은 아무 책임이 없으며 오직 백인들의 부당하고 강력한 욕심이 모든 걸 야기했음을 명백히 알게 되었다. (…) 인간 무역이라니! 세상에나! 자연이 전율할 만하지 않은가? 그들이 동물이라면 우리도 동물이 아닌가? 백인은 어떤 점에서 그들과 다른가? 차이점이라고는 피부색뿐이다……. (…) 보편적인 자유는 백인과 마찬가지로 흑인을 중요한 존재로 만들어줄 것이라 추측한다.
_52~55쪽 / 「‘흑인종’에 관하여」 중에서

단편적인 남녀평등의 문제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사회 정의를 추구하고 독재에 항거한 전방위적 인권운동가 올랭프 드 구주의 사상과 행동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그것은 안타깝게도 부당한 차별과 혐오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의 유언을 곱씹게 되는 이유다.

나의 조국에는 나의 심장을, 남성들에게는 (그들에게 꼭 필요한) 나의 정직함을 남긴다. 나의 영혼은 여성들에게 남긴다. 그녀들에게 별것 아닌 것을 선물할 수는 없으니 말이다.
_91쪽 / 「유언을 대신하는 글」 중에서

꿈꾼문고 ‘ff 시리즈’는

‘fine books x feminism’
인류 역사에서 가장 낡은 부조리인 성차별과 그에 단단한 뿌리를 둔 남성중심적 가부장제의 폭력과 위선을 파헤치고 고발하고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선언, 연설, 이론, 문학 들을 소개하는 기획이다. 인류가 이룩한 찬란한 문명과 지적 성취 속에서 인간의 표상은 왜 항상 남성인가, 여성은 대체 어디에 있고 무엇인가, 이와 같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하여, 여성은 남성에 부차적인 제2의 성이며 2등 시민이 아니라 동등한 인권을 가진 대등한 인간임을 끊임없이 증명하고 역설해야 하는 기울어진 세상을 바로잡기 위한 연대의 힘찬 전진에 함께하길 소망한다.

ff 시리즈는 올랭프 드 구주의 『여성과 여성 시민의 권리 선언』, 시몬 베유의 『시몬 베유의 나의 투쟁』을 시작으로, 페멘의 『페멘 선언』, 엘리자베스 그로스의 『몸 페미니즘을 향해』, 제인 갤럽의 『페미니즘과 정신분석』, 로지 브라이도티의 『변신』, 뤼스 이리가레의 『반사경』, 베릴 베인브리지의 『포도주병 공장 야유회』 등이 출간될 예정이다.

ff 시리즈의 첫 주자로서 올랭프 드 구주와 시몬 베유를 선택한 것은 선언적이며 상징적인 이유가 있다. 두 사람은 약 200년의 차이를 두고 페미니즘의 역사에 손꼽히는 위대한 업적을 남겼을 뿐만 아니라, 여성해방을 위한 투쟁을 넘어 모든 사회적 약자 및 소수자에게 가해지는 일체의 차별과 혐오에 맞서 싸웠다는 공통점이 있다. 시대를 대표하는 페미니스트이자 일평생 부조리에 저항한 인권운동가인 두 사람의 삶과 사상이야말로 페미니즘, 더 나아가 진정한 정의를 상징한다 할 수 있다. ff 시리즈의 행보에 길잡이가 되어준 올랭프 드 구주와 시몬 베유의 선언과 연설은 분명 더 나은 사회를 위해 연대하고자 하는 모든 이들에게도 빛을 밝혀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