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1.서울지역

승동교회

동방박사님 2016. 5. 1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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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동교회

승동교회는 1893년 3월19일 미국선교사 무어 (Samue. F.Moore. 모삼열)가 지금의 롯데호텔자리인 곤당골의 한 가정집에서 16명으로 첫 예배를  드리면서 시작하였다.  무어목사는 백정등 천민등을 대상으로 복음을 전해 곤당골교회는 "백정교회"로 불리기도 했다. 1895년 양반이 천민과 함께 에배드릴 수 없다고  하면서 양반출신힌 신자들이 길 건너 홍문섯 골에 독자적인 예배당을 마련하고 나갔다. 1898년 곤당골교회에서 화재가 나자 곤당골교회와 홍문섯골교회에서 화재가 나자 곤당골교회와 홍문섯골교회는 통합하였으며  교회의 명칭은 "홍문섯골교회"로 하였다.


1905년 미국교인 컨버즈 (JH Converse)의 도움을 받아 " 절골" (寺洞)로 불린 현재자리 (서울특별시 종로구 인사동137)에 한옥예배당을 마련하였다. 교회명칭은 "중앙교회" 로 바뀌었으며 승동(勝洞)교회로 불렸다.

1913년 한옥 예배당을 헐고 그자리에 100평 규모의 서양식 벽돌예배당을 지었다. 건축에 조예가 깊었던 선교사  클라크 (Chareles A.Clark 곽안련) 가 설계하였고 중국인 모문서 (毛文序 )가 공사를 맡은  새 예배당은 지하층을 갖춘 단층건물 이었지만  지상건물 2층 높이로 되어 있어 멀리서보면 3층 건물로 보였다. 건물 외형은 고딕양식에 충실한 반면  내부는 칸막이나 기둥이 없는 단순한 양식으로 1천명을 수용할수 있었다. 1958년 부분증축을 하였지만 예배당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다. 2001년 서울시 유형문화재 제130호로 지정되었다.


승동교회는 문화재로서의 가치만이 아니라 교회사적으로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을 지닌 교회이기도 하다. 승동소학교교사로 사용된 교회 지하층은 3.1운동 당시 연희전문학교 학생이자 승동교회 면려청년회장이던 김원벽이 서울시내학생 대표들과 만세시위를 모의한 곳이다. 1940년에는 승동교회 장로 김대현  이곳에서 조선신학교 (한신대학교의 전신)를 시작하였고 1959년 장로교가 WCC 가입문제로 분열될 당시 "승동측"으로 불린 예장 (합동측)이 탄생한 장소이기도 하다. 승동교회 앞뜰에는 서울시에서 세운 "3.1운동발상지" 표지석과 교회에서 세운 3.1운동 안내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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