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해외성지순례 (1997~2018) (여행지)/8.중국심양 (존로스)

4. 성경병원

동방박사님 2017. 7. 5. 18: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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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시병원(盛京施醫院)

1855년에 때어난 듀걸드 크리스티(Dugald Christie, 1855~19360은 1881년에 영국 에딘버러대학 의과대를 졸업하고 이듬해에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파송을 받아 의료선교사로 중국에 왔다.  1882년 11월 신혼의 아내와 함께 우장에 도착하여 8일 만에 봉천에 도착하지만 거처를 마련하지 못하여 우장으로 돌아갔다 이듬해 봄에 다시 봉천에 도착하여 소하연(小河沿)에 자리를 잡았다.  

병원을 개설한 마땅한 집을 구하지 못한 크리스티 선교사는 집 마당을 진료소로 삼아 무료로 환자들을 치료하기 시작하였다. 12명 정도의 환자도 수용 가능한 집 뒤편의 허름한 건물을 사용하여 소위 병원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을 때에는 이미 봉천에서 거주한지 2년이 가까이 되는 시점이었다. 이후에 외지로 전임하는 정부관원의 주택을 사서 병동으로 삼고 넓은 마당에 진료실 건물을 신축하여 1887년 10월 10일에 성경 병부시랑의 참석하에 성경시병원(盛京施醫院)의 개업식을 거행하였다. 이어서 1894년에는 여자 전문병원을 개설하였다.  

그러나 1900년 6월 30일에 의화단에 의해 병원 전체가 전소되었다.



1903년 여자 전문병원을 먼저 재건하고 이듬해 남자 병원 재건을 계획하는 중에 일로전쟁이 발발하여 재건이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전쟁 중에 여자 전문병원을 임시 환자 진료소로 하고 부근의 타다 남은 삼의묘(三儀廟)를 빌려 병실로 사용하는 한편 적십자회와 함께 '구제원'을 설치하고 중국인과 일본인, 러시아인을 포함한 수백 명의 사상자를 치료하였다.

성경시병원의 재건에 있어서 성경장군 조이손(趙이巽)의 적극적인 지지를 얻었다. 1906년, 조이손은 은전 4000냥을 지원해줌과 동시에 봉천상회에서도 지원하라는 지시를 내려 상회로부터 2만여원의 지원을 받아 1907년 3월에 1기 공사를 마무리하고 정부 각급 관리와 각국 총영사, 교회와 사회 각 계층이 참석한 가운데서 3월 5일에 '봉천 성경시병원(奉天盛京施醫院)' 개원식을 성대히 거행하였다.

 


1907년 11월 말에 2기 공사가 마무리되면서 성경시병원은 완공되었다. 1914년에 동북군별 장작림이 X-선 검사기를 증정하여 방사선 진단기술을 응용하게 되었고 1916년에는 여자 전문병원에 '산원'을 증설하고 이층으로 된 산부인과 병실도 신축하였다.





의료선교사 크리스티는 40년이라는 긴 세월을 심양에서 봉사하고 1922년에 귀국했지만 귀국 후에도 1936년 세상을 떠나기까지 14년 동안 꾸준히 병원과 학교를 위한 모금활동을 진행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