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4.청주.충북

청주 기독교의전래

동방박사님 2017. 11. 20.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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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기독교 전래

 

청주에는 20세기 초 복음이 전래되었다. 먼저 경기도 이천에서 예수를 믿는 감리교 전도인 박해숙의 순회 전도가 있었고, 북감리회 선교사 스웨어러(Wilbur C. Swearer 서원보) 역시 청주를 방문하여 공주 스테이션과 연결된 이곳의 감리교공동체와 접촉한 바 있다. 장로교 역시 비슷한 시기에 청주에 들어왔다. 1901년 설립된 것으로 추정되는 신대교회(청주시 흥덕구 신대동)는 당시 청원군 강서면 신대리에 살던 오천보, 문성심, 오삼근 등이 19021월 개최된 경기도 죽산군 둔병리 사경회에 참석한 이후 지속적인 성장이 이루어졌다.

 

그 후 본격적인 청주 선교는 북장로회 선교사 밀러(Frederick S. Miller, 민로아)가 주도하였다. 19019월 북장로회선교부로부터 충청도 선교책임자로 임명받은 밀러는 한국인 전도인 김흥경과 함께 청주를 돌며 전도하였다. 곧 청주의 지역유지와 젊은이들이 예수를 믿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김원배, 방흥근, 이영준, 김재호, 이범준 등이었다. 밀러는 이들을 중심으로 1904년 남문밖에 초가집 한 채를 마련하여 청주읍교회(현 청주제일교호)를 시작하였다. 또한 교회와 함께 방흥근의 집에서 청남학교도 시작하였다. 초기 청주 기독교인들의 이러한 행적은 19세기말 20세기초 한강 이남 기독교의 초기 전파 과정에서 흔히 관찰되는, 지역사회 내부에서 기독교 수용을 주도하는 인사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즉 구 체제에 대한 미련은 없으면서 어느 정도의 경제력과 교양을 갖추어 지역민들의 신망을 받는 한펴, 유교적 공동체의 기능이 파괴된 향촌사회의 정신적도덕적 공백 상태를 기독교의 교회와 새로운 학교 환경을 통해 개선하려는 의지를 갖고 있던 사랍들이었다. 그들은 성리학주의 대신에 이른바 문명개화론을 받아들여 자신이 속한 지역사회에 교회와 학교의 설립을 병행하고 있었다. 당연히 그들은 자신들이 세운 교회와 학교의 유력한 후원자들이었다.

 

1901년 밀러를 충청도에 파송한 북장로회선교부는 다시 1903년 청주에 스테이션을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이것은 청주를 중심으로 충북 선교에 주력하겠다는 북장로회의 의지를 드러낸 것이기도 하다. 그 후 1904년 가을 탑동 청주 스테이션 부지 매입이 시작되었고 이듬해에는 밀러가 가족들과 함께 청주에 이주하였다. 밀러는 스테이션 조성공사에 박차를 가하는 한편 후임 선교사들과 힘을 합하여 전도와 교육 그리고 의료사업 중심의 유기적인 선교 활동을 벌여 나갔다. 밀러 이후 청주에 부임한 선교사들로는 우선 1907년 가을에 온 카긴이 있고 그 다음 1908년 임지에 도착한 의사 퍼비안스 부부와 쿡부부 그리고 여선교사 도리스 가 있다. 이듬해인 1909년에는 여선교사 데이비스와 로간 부인도 청주 선교에 가세하였다. 이로써 청주 스테이션의 진용이 어느 정도 갖추어졌다. 이후 청주에서 활동한 대표적인 선교사로는 솔타우, 로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