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문교양 (책소개)/1.인문교양

마녀 : 서구문명은 왜 마녀를 필요로 했는가

동방박사님 2021. 11. 30. 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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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찬란한 이성의 시대에 벌어진 광기의 마녀사냥
서구 문명의 일시적 일탈이었나 아니면 필연이었나?


르네상스와 과학혁명을 거쳐 곧 찬란한 계몽주의의 빛이 온 세상을 환히 비추게 되는 근대 유럽에 휘몰아쳤던 ‘마녀사냥’의 광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마녀사냥은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잠깐 일탈했던 예외적인 사건이었을까? 아니면 서구의 근대성에 이르기 위한 필연적 과정이었을까?

‘서구 근대사의 재해석’으로 주목을 받고 있는 주경철 교수는 이 책에서 마녀사냥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이 책은 마녀 개념의 고대적 기원에서부터 중세에 서서히 발전하여 근대 초에 폭발하고 소멸하기까지의 역사를 다룬다. 특히 저자는 마녀사냥이 중세가 아닌 근대 초에 정점을 이루었다는 점에 주목한다. 서구 근대성은 진리에 관한 엄격한 기준을 세우고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형성되었다는 것이다. 즉 최고의 선을 확립하기 위해 최악의 존재를 발명해야 했던 것이다. 빛나는 문명의 이면에 야만의 심연이 숨겨져 있었다.

마녀 개념이 어떻게 형성되었고, 현실 속에서 어떤 변화의 과정을 거쳤으며, 어떻게 수용되고 확산되었는지를 다룬다는 점에서, 이 책은 마녀의 지성사·문화사·사회사라고 할 수 있다.

목차

들어가며

I. 유니우스의 비극
II . 기독교화와 마술: 서기 1000년까지
III. 민중 신앙과 마술 59
IV. 권위의 확립과 이단: 대권과 대죄
V. 마녀 개념의 도약
VI. 『개미 나라』
VII . 『말레우스』, 악의 고전
VIII . 재판과 처형의 매뉴얼: 개념에서 실천으로
IX. 광기의 폭발
X. 마녀사냥의 쇠퇴

나가며

주석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주경철 (朱京哲)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도시사학회 회장, 서울대 중세르네상스연구소 및 서울대 역사연구소 소장을 역임했다. 유럽 근대사의 여러 분야를 연구해 왔으며, 최근에는 글로벌 히스토리, 해양사 등으로 관심분야를 넓혀 연구하는 한편, 일반대중에게 역사학을 소개하는 교양서적도 다수 출판했다. 저서로 『대항해 시대』...
 

책 속으로

한 가지 사실을 먼저 지적해야 할 것 같다. 흔히 마녀사냥을 중세 현상으로 오해하지만 사실은 근대 초에 정점을 이루었던 사건이다. 르네상스 이후 찬란한 문화의 빛이 되살아나고, 과학혁명과 계몽철학의 결과 세계에 대한 합리적 해석이 가능해졌으며, 조만간 산업혁명의 성과를 바탕으로 유럽이 세계의 패권을 장악하게 될 바로 그 시대에 그와 같은 몽매한 일들이 일어난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근대 유럽의 긍정적인 측면과 마녀사냥은 전혀 별개의 현상인가? 그렇지 않다. 마녀사냥은 유럽 문명 발전의 궤적에서 한때 잠깐 일탈했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라 오히려 문명의 내부에서 필연적으로 자라나온 현상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는 법, 근대 유럽에서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신성과 마성 등이 함께 규정되었다. 이런 의미에서 유럽 문명은 마녀를 필요로 했다. 최고의 선을 확립하고 지키기 위해 최악의 존재를 발명해야 했던 것이다. 지극히 엄격한 기준을 세운 후 이를 어기는 세력을 억압하기 위해 권력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동원하는 방식으로 진리를 수호하려 한다는 점에서 마녀사냥은 분명 서구 근대성의 측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들어가며」중에서

마녀사냥의 광풍이 불면 그 누구도 안심할 수 없었다. 누구든지 마녀·마법사로 몰려 죄를 뒤집어쓰고 죽음으로 내몰릴 수 있었다. 그런 때에는 유니우스의 사례가 잘 보여주듯 사회 상층 인사들이라고 해서 안심할 일이 아니었다. 그 과정은 실로 처참하기 짝이 없다. 유니우스는 육체적 고통과 죽음의 위협에 더해 자신이 거짓으로 하느님을 부인해 사후에 영혼의 구원을 못 받지 않을까 엄청난 고뇌에 빠진 듯하다. 진실과 다른 말을 할 수밖에 없었던 유니우스는 자신의 내면의 이야기를 고해하기 위해 신부를 만나게 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재판관으로 봉직하는 ‘박사님들’은 그것마저 거부했다. 대신 자백의 기미를 보이자 하루 말미를 주었을 뿐이다. 유니우스는 딸에게 자신이 처한 사정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자기 영혼의 진실한 고백을 기록으로 남기려 했다. 자신이 할 수 없이 하느님을 부인하게 된 사정을 이런 식으로라도 간접적으로 세상에, 그리고 하느님 앞에 밝히고 싶었던 것 같다.---「Ⅰ. 유니우스의 비극」중에서

그러나 정말로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믿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 또한 확인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고문 집행관의 말에서 그 점을 읽을 수 있다. 재판에 끌려오면 설사 무고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꼼짝없이 마녀의 죄를 뒤집어쓰게 된다는 것을 그는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고, 또 그 사실을 유니우스에게 말해 주며 차라리 빨리 자백하라고 권한다. 적어도 그는 이 재판이 결코 공평정대하지 않으며, 고문을 통해 허위로 죄를 조작하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 악랄한 거짓의 무대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중이다. 이야말로 설명하기 힘든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분명 모든 사람이 마녀사냥의 허구를 있는 그대로 믿지는 않으며 적어도 일부 사람들은 열린 틈새를 통해 또 다른 진실을 보고 있지만, 그럼에도 시대의 거대한 흐름은 정해진 방향대로 도도히 흘러갔다. ---「Ⅰ. 유니우스의 비극」중에서

이전 시대의 아우구스티누스나 캐자리우스의 문건과 비교했을 때, 이 문건은 유사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분위기가 현저히 달라 보인다. 이전 시대에는 기독교에 적대적인 세력이 가하는 위험성을 의식하고는 있다 해도 기본적으로는 그 사악한 세력이 결코 ‘우리’를 이기지 못한다는 점을 강조하는 데 비해 이 문건은 위험을 느끼는 정도가 훨씬 더 강하다. 기독교 세계 전체가 심대한 위험에 처해 있다는 것이다. 나아가 과거의 이교도 신이 많은 사람들에게 잘못된 믿음을 불러일으켜 진실한 신앙에서 멀어지도록 하고 있으니 교회가 적극 나서서 대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II. 기독교화와 마술: 서기 1000년까지」중에서

유럽의 일부 지역들, 특히 주류 문화의 지배력이 약한 산간 지역이나 변방 지역에서는 상당히 늦은 시기까지도 기독교가 농민들의 심성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음에 틀림없다. 물론 표면적으로는 유럽은 기독교가 지배적인 사회였으며, 모든 유럽인들은 스스로 기독교도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표면적으로 교회를 다니느냐 안 다니느냐가 아니라 농 민들이 과연 어느 정도 기독교 교리를 이해하고 또 그것을 따르고 있었느냐 하는 관점에서 보면 기독교는 결코 사람들의 마음을 전적으로 지배하지는 못했다. 농민들은 수없이 많은 ‘미신’을 좇고 있었다. 미신이란 알고 보면 ‘과거의 종교’인 경우가 많다. 베난단테처럼 농업을 수호하고 병을 고쳐주는 신앙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생계 와 직접 연관된 이런 종류의 믿음이 자신의 삶에 더 생생한 의미를 가지는지도 모른다. 기독교의 표피 아래 이런 고대적인 믿음이 면면히 이어져 왔을 터이지만, 결국 교회의 공격을 받아 악마 숭배로 몰리게 되었다. ---「Ⅲ. 민중 신앙과 마술」중에서

이제 교황청이 사바스의 존재를 거론하고 그것을 척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최고의 권위를 가진 기관에서 최악의 죄를 규정한 것이다. 이 문서 내용이 아직 교회법에 들어가지는 않았지만 교황청이 사바스를 공식적으로 거론했다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사실이다. 물론 이런 문건은 일방적으로 비방하는 입장에서 작성한 것이므로 과연 당사자들이 정말로 루시퍼를 신과 동급으로 파악하는 과격한 이원론 교리를 주장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마도 성체성사를 부정하는 경향, 말하자면 반反성직자주의의 움직임을 띠는 강고한 파당을 고발하는 가운데 이들을 악마숭배자로 몰아갔을 가능성이 크다. 문제는 이런 식의 비난, 곧 이 세상에 악마가 심대한 영향을 미치려 하며 그를 좇는 사악한 인간들이 모여 파당을 이루고 있다는 개념이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는 사실이다. 민간 신앙의 마녀가 정식으로 악마의 숭배자이자 하수인으로 ‘업그레이드’되기 시작한 것이다. ---「Ⅳ. 권위의 확립과 이단: 대권과 대죄」중에서

15세기 중엽에 와서도 마녀들의 비행을 주장하기는 분명 쉬운 일이 아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일부 저술가들은 이와 관련하여 특이한 설명을 제시했다. 예컨대 1460년경 조르단스(Jordanes of Bergamo)는 사악한 영이 마녀의 체액을 뇌로 올라가게 하는데, 이것이 온갖 상상을 만들어내서 마녀가 기이한 마법을 부리며 날아 이동한다는 것으로 착각하게 된다는 의학적 설명을 했다(Maxwell-Stuarrt, 43). 알퐁소 드 스피나(Alphonso de Spina) 역시 기이한 설명을 제시한다. 악마가 마녀들의 환상을 이 끌어 이동시킨다는 것이다. 이때 몸은 안 보이고, 다만 환상으로만 그곳에 가서 악행을 벌이며, 이 일이 끝난 후 악마가 환상과 몸을 다시 결합시킨다. 결국은 몸은 움직이지 않고 영혼만 움직인다는 설명이다(Broedel 2013, 45). 이는 마녀 혐의자의 잘못을 거론하면서도 실제 비행은 부인하는 어정쩡한 주장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실제로 육체가 날아가서 사바스에 참석하고 악마와 실제로 육체적 성관계를 해야 본격적인 마녀가 된다. 15세기 이후 사바스 개념이 자리 잡아 가는 동시에 점차 더 많은 사람들이 마녀가 날아다닌다는 사실을 수용하게 되었다. ---「Ⅴ. 마녀 개념의 도약」중에서

특히 문제가 되는 것은 경계에 서 있는 존재였다. 천사와 악마 어느 쪽의 지도를 받는지 애매한 존재, 아군과 적군의 경계를 넘나드는 자, 무엇보다 신이 정한 남녀의 질서를 교란하는 자가 최대의 의심의 대상이었다. 더구나 자신이 신의 뜻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여성들은 극도의 의심을 받았다. 잔다르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니더 역시 잔다르크를 중요한 사례로 지목하고 있다(Nider, 8.09). “나는 신학자이며 파리 대학 대사인 니콜라스 아미쿠스(Nicolas Amicus)에게 소식을 들었다”고 말하는 데에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바젤 공의회에 참석했다가 잔다르크에 대한 정보를 들었을 것이다(Nider, 8.11). 그가 들어 알고 있는 중요한 정보는 그녀가 남자 옷을 입는다는 점, 그러면서도 자신은 여성이며 처녀라고 주장한다는 점, 그리고 신이 그녀를 보내 프랑스를 도우라고 주장한다는 점 등이다. 그녀는 군인처럼 말을 타고 장래 있을 수많은 승리를 예언하며, 실제 여러 번 군사적 성공으로 이끄는 등 많은 놀라운 일을 수행하여 프랑스뿐 아니라 다른 나라 사람들도 놀라게 한다고 기술했다. 이런 사실을 두고 니더는 놀라움과 동시에 강한 의심을 표한다. 당대 많은 사제들과 수사들 모두 그녀를 인도하는 게 악마적인 영인지 신적인 영인지 궁금해 하며, 박학한 학자들이 이 주제에 대해 글을 썼는데 의견이 다르다 못해 상반된다는 것이다(Nider, 8.10). 니더 자신도 그녀가 성녀인지 마녀인지 고민하다 결국 마녀라는 쪽으로 기울었다. ---「Ⅵ. 『개미 나라』」중에서

마녀는 막연하게 사악한 존재가 아니라 말세에 이 세상을 위협하고 인류 구원의 길을 방해하는 악마의 기획의 하수인으로 명료하게 규정되었다. 가혹한 마녀사냥이 일부 지역에서 시작되고 그런 사례들이 다시 마녀 개념의 정립에 되먹임(feedback)되었다. 『말레우스』의 저자들은 그들이 비난하는 마녀와 마법이 ‘새로운 성격의 행위’라고 주장했다. 그것은 곧 자신들이 살아가는 시기가 바로 말세이며, 그 때문에 즉 적그리스도의 공격이 본격화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VII. 『말레우스』, 악의 고전」중에서

흥미로운 점 중 하나는 마녀를 알아보는 능력이 있다고 주장하며 수많은 사람을 고소한 ‘마녀 감식인’의 존재이다. 이들은 대개 악마 표식(stigmata diaboli, sigillum diabolic) 혹은 마녀 표식을 통해 마녀를 찾아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들의 주장은 몸에 있는 외적인 징표(exterior homo)를 근거로 인간 내부(interior homo)에 접근할 수 있으며, 마음의 비밀을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이런 표식을 찾아내는 것이 재판의 중요한 과정이었으며, 실제로 고문과 처형의 결정적 근거가 되었다. 악마 표식과 마녀 표식은 원래는 구분되었지만, 나중에는 혼동되었다. 원래 악마 표 식은 상처, 점, 타투와 유사한 데 비해, 마녀 표식은 돌기 모양으로 특히 영국에서는 마녀가 키우는 퍼밀리어(familiar, 사악한 영)들이 이를 통해 피를 빨아먹는다고 알려진 부분이다(Robbins, 135~137). 사실 거의 모든 사람들이 피부에 사마귀나 점, 과거의 상처 흔적, 피부색이 변한 부분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사실 누구나 마녀 표식을 가진 자라는 의심의 여지를 안고 있는 셈이다. ---「VIII. 재판과 처형의 매뉴얼: 개념에서 실천으로」중에서

마녀사냥은 어느 공동체에서나 작동할 가능성이 있지만, 그것이 폭발 상태로 가려면 몇 가지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 전통 문화와 공동체 갈등이 얽혀 누적된 폭발 에너지가 어떻게 분출하느냐 하는 것은 사법 기구와 지배 엘리트의 태도 등에 따라 다르게 나타난다. 지배 엘리트가 두려움을 느껴 방향을 선회했든지, 그렇지 않으면 어떤 이유에서든 - 예컨대 전쟁으로 인한 대 격변의 결과로 - 사회적 구성이 완전히 바뀌어 아래로부터의 압력이 소진되었을 때 마녀사냥은 종식된다.
지금까지 우리가 고려하지 않은 요소는 이 모든 지방적 사태 위에 존재하는 최상위 권력 기구, 곧, 프랑스, 잉글랜드 혹은 신성로마제국 같은 국가기구이다. 지방 권력 엘리트들의 태도는 그 상위 권력 기구와 관계 속에서 결정된다. 최상위 권력체가 어떻게 대처하느냐는 특히 마녀사냥의 종식 문제에서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IX. 광기의 폭발」중에서

정신적 각성이나 사상적 영향 같은 것은 장기적으로 마녀사냥 종식의 큰 흐름과 일치하지만 그것이 마녀재판을 중지시킨 결정적 요인은 되지 못했다. 앞서 본 것처럼 무엇보다 시기상으로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다. 슈페가 그의 저서에서 주장하다시피, 마녀사냥의 폐해를 줄이는 데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사법개혁이었다. 결국 정치 변화가 중요하다는 의미다(Levack 2013, 438). 특히 중앙 정부의 지배력이 강화되어 지방의 사법 행정을 통제할 필요가 있었다. 잔혹한 마녀 처형을 주도한 것은 주로 지방 사법당국이기 때문이다. 중앙 정부 인사들은 대개 더 많은 트레이닝을 거쳤고, 마녀나 악마 문제에 신중하게 접근했다. 또한 이들은 마녀 피의자와 동향인이 아니기 때문에 사적인 사정에 휘둘리지 않고 객관적으로 대했다. 따라서 중앙 정부의 영향력이 커지면 마녀재판이 위축되는 경향을 보인다. ---「X. 마녀사냥의 쇠퇴」중에서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으며, 현대까지도 이어진 것이 사실이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파시스트들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 사회 전체를 위험에 떨어뜨리는 마녀를 창안하고 동원한 것은 근대 초기 유럽 문명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근대 문명을 어둠의 세계로부터 역으로 규정하는 자신의 역할을 마친 후 마녀는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나가며」중에서
 

출판사 리뷰

‘마녀’ 개념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확산되었나?

마녀사냥이라는 ‘광기’가 근대 유럽을 휩쓸었다. 밤에 짐승으로 변신하여 악마와 성관계를 맺고 그렇게 얻은 가공할 힘으로 사람을 죽이고 폭풍우를 일으킨다는 기이한 혐의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 참혹한 고문을 가해 마녀 혐의를 자백하게 하고 다시 더 많은 사람의 이름을 불게 만들어 희생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

마녀는 인류의 구원을 방해하려는 악마의 계획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초자연적인 힘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악마의 하수인이라는 특별한 개념이다. 마녀가 헛된 망상 속의 존재가 아니라 실제로 악마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 변모하게 되는 것은 서기 1000년 이후부터다. 중세 유럽은 표면적으로는 기독교가 지배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내면적으로는 귀신이나 요정, 특정 장소에 고착된 영들, 고대 이교 신들의 흔적들이 강고하게 잔존해 있었다. 이와 같은 초자연적 힘들이 물질세계에 실제로 영향을 끼친다고 보는 마술적 세계관이 민중 문화 내에 뿌리 내리고 있었다.

중세 중엽 이후 신앙과 이성의 담당자인 교회와 국가는 자신의 정체성을 명료하게 정립하고 신민에 대한 지배력을 강화하고자 했다.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선을 수호하기 위해서 악을 억눌러야 했다. 지극히 사악한 존재는 지고의 선을 지탱해주는 역할을 하고, 극단적인 마녀사냥은 권력을 강화하였다. 점을 치거나 불임을 치료해 주는 민간 신앙의 전파자들은 어느덧 악마의 하수인으로 몰렸다. 마녀사냥은 국가와 교회, 마을 공동체 간의 복합적인 관계 속에서 발전하며, 16~17세기에 이르러 하나의 광기로 유럽을 휩쓸었다.

근대 문명을 어둠의 세계로부터 역으로 규정한 마녀

자신의 정당성을 위해 악을 필요로 하는 현상은 초역사적으로 존재했다. 나치에게는 유대인이, 파시 스트들에게는 공산당이, 스탈린주의자들에게는 미제(美帝) 스파이가 마녀 역할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상징적 의미가 아니라 문자 그대로 악마의 사주를 받아 인간 사회 전체를 위험에 떨어뜨리는 마녀를 창안하고 동원한 것은 근대 초기 유럽 문명의 특이한 현상이었다. 근대 문명을 어둠의 세계로부터 역으로 규정하는 자신의 역할을 마친 후 마녀는 서서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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