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중국.동아시아 이해 (책소개)/1.중국역사문화

아틀라스 중국사

동방박사님 2021. 12. 2.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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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내 최고 필진의 핵심을 찌르는 역사 서술.
입체감이 생생한 음영기복지도.
신석기 문명의 탄생부터 개혁, 개방까지
동아시아라는 넓은 공간에서 새롭게 되살아난 중국의 역사!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는 정통 중국사 개설서


『아틀라스 중국사』는 사계절출판사 아틀라스 역사 시리즈의 세 번째 권으로, 국내의 대표적인 중국사 연구자 5명을 필진으로 하여 한국 중국사학계의 최신 연구 성과를 체계적으로 반영한 정통 중국사 개설서이다. 필자들은 각 시대사의 최고 전문가답게 자신의 독창적인 역사관을 드러내면서도 통사적 안목을 같이 하여, 다양한 시각을 일관된 흐름 속에 통합적으로 담아냈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본문의 내용을 지도에 압축적으로 표현하여 시간 속에 갇혀 있는 역사 이해의 폭을 공간으로 넓혔다는 점이다. 이 책에 실린 총 142컷의 지도는 정치적 사건의 전개, 인구와 물자의 이동, 산업과 문화의 분포, 여행자의 경로 등 중국사의 다양한 국면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목차

개정증보판 서문
초판 서문

고대
다원적 신석기 문명
초기 국가 단계로의 발전
상과 주변의 청동기 문명들
서주의 봉건제
춘추 시대 패자의 회맹 질서
전국 시대 각국의 개혁
전국 시대 전쟁과 외교
춘추전국 시대 제자백가 사상
진의 전국 통일
진시황과 한 무제의 순행
군현제의 실시와 제국의 형성
흉노의 성장
진한 제국의 외경과 내경
한사군의 설치와 한반도
염철 전매와 평준균수법
장건의 서역 원정
유교의 정립과 왕망의 사회 개혁
후한 시기 호족의 성장

중세
영웅 시대의 도래
오호십육국 시대
교구체제
북강남약 시대
귀족제의 시대
호한체제
효문제의 한화 정책
호한 합작 정치 집단의 출현
민중의 종교, 황제의 종교
귀족 문화의 개화
중화의 분열과 천하 세계의 다중화
수의 남북조 통일
수당 세계 제국과 동아시아
율령 체제의 전개
정관의 치세
여자 황제의 시대
장안의 사계
번진과 환관
양세법 체제의 등장
세계 제국의 붕괴
수당의 문화
황제, 가한국과 동아시아 세계

근세 전기
오대십국 시대
송의 중국 통일
거란족과 요
서하의 흥기
왕안석의 신법
사대부 사회의 성립
북송 말의 당쟁
여진족의 발흥
남송 초의 대금 전쟁
고려와 송, 요, 금
주자학의 확립
금의 화북 지배
송대의 경제 발전
남송의 최후
칭기스 칸의 초원 제패
몽골의 대외 정복 전쟁
원의 성립과 사한국
몽골과 고려·일본
베트남의 독립과 중월 관계
원조 치하의 지식인
서민 문화의 등장
유라시아 초원의 여행자들

근세 후기
명의 건국
정난의 변과 북경 천도
대항해 시대
호광의 쌀 생산과 유통
휘주상인과 산서상인
양명학의 탄생
북로남왜
마테오 리치의 선교 활동
장거정의 개혁
명 말의 반란
명청 교체와 조선
조공 책봉과 조명양익론
청으로 간 조선인
만주족의 중국 정복
강희제의 시대
옹정제의 개혁 정치
건륭제의 대일통
도시의 발전
신사층의 활동
고증학의 만개
백련교 반란
광동 무역 체제

근현대
1, 2차 아편전쟁(중영전쟁)
태평천국운동
중화 질서의 붕괴
자강 운동
무술개혁과 의화단운동
근대 중, 한 관계의 변용
청조의 신정과 입헌 준비
신해혁명과 중화민국의 성립
중화민족론과 20세기 중국
신문화운동과 5·4운동
1차 국공합작과 국민혁명
남경국민정부의 ‘황금 10년’
중체서용론과 전반서화론
새로운 사회 계층의 등장
홍군과 대장정
일본의 중국 침략
2차 국공합작과 항일 전쟁
국공내전과 중화인민공화국의 성립
건국 초기의 중화인민공화국
대약진운동과 인민공사
문화대혁명
개혁, 개방 체제
중국의 역대 황제

도판 출처
참고문헌
찾아 보기
 

저자 소개 

저 : 박한제 (朴漢濟)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2012년 서울대학교 동양사학과 교수로 재직하였으며,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2000~2002년에 한국중국학회 회장, 2005~2007년에 한국동양사학회 회장을 지냈다. 저서로 『중국중세호한체제연구』(1988), 『유라시아 천년을 가다』(공저, 2002), 『아틀라스 중국사』(주편, 2007), 『대당제국과 그 유산―호한통합과 다민족국가의 형성』(2015), 『중국 도성 건설과 입지―수당 장안성의 출현전야』(2019), 『중국 중세도성과 호한체제』(2019), 『중국중세 호한체제의 사회적 전개』(2019)가 있다. 역서로 『진인각, 최후의 20년』(공역, 2008), 역주서로 『이십이사차기』(전 5권, 2009), 답사기행기로 『박한제 교수의 중국 역사기행』(전 3권, 2003)이 있으며, 중국 중세 민족 관계 논문이 다수 있다. 제49회 한국출판문화상(번역 부문, 2008), 제3회 서울대학교 학술연구상(2010), 우호동양사학저작상(2017)을 수상하였다.
 

출판사 리뷰

8년 만의 개정증보판

2007년 출간된 『아틀라스 중국사』는 독자들의 호평과 지지 속에서 지난 8년 동안 총 10쇄, 3만 부 이상의 판매고를 올리며 가장 신뢰할 만한 중국사 개설서로 자리 잡았다. 아울러 일본에 수출되며 한국 중국사학계의 연구 수준을 한층 끌어올리는 역할까지 했다. 그 사이 중국은 ‘G2’로 상징되는 강대국을 넘어 세계의 중심국가로 발돋움했고,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대중국 관계를 새롭고 안정적으로 모색, 설정해야 할 과제를 안게 되었다. 고등학교 교과과정에 ‘동아시아사’ 과목이 포함된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이번에 출간한 『아틀라스 중국사』 개정증보판은 이러한 시대적 과제에 부응하기 위해 기획된 것이다.

동아시아로 범위를 더욱 확장한 최신 중국 통사

이번 개정증보판의 주요 목적은 역사 속에서 중국과 주변 국가들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왔는지를 살펴보고, 특히 중국의 역대 정권이 취한 한반도 정책의 특이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중국을 중심으로 한 동아시아 관계사를 주요 주제로 삼아 고대, 중세, 근세전기, 근세후기, 근현대 등 5개 부문에 각 2개씩 총 10개의 주제를 추가하고(초판 96개에서 106개의 주제로 증보) 초판의 내용도 필자에 따라 수정, 보충했다.

각 장의 주요 내용과 증보된 내용

1장 고대


동아시아 지역의 고대 문명은 황하 지역에 국한되지 않았다. 양자강, 내몽골 등 동아시아 전역에 걸쳐 기원과 계통이 다른 다양한 신석기 문명이 널리 확인된다. 최초의 국가 하夏는 실재 여부를 단언하기 힘들지만, 고고학적 문화로서의 하 문화는 인정해도 좋을 것이다. 반면 상商에 대해서는 갑골문을 통해 왕실 계보 및 각종 정치적 사건 그리고 제사 의식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한편 양자강 상류 사천 지방을 중심으로 상 문화와는 별개의 청동 문명이 존재하고 있었다. 주周의 시대에는 봉건제가 실시되어 주 왕조 중심의 정치 질서가 형성되었다. 춘추 시대에는 주 왕실을 보호해야 한다는 명분을 내걸고 패자가 주 왕을 대신하여 정국을 주도하였지만, 전국 시대에는 약육강식의 시대로 변모하였다. 각국은 부국강병을 위해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고자 했다.

격심한 전쟁과 치열한 외교 속에서 결국 진秦이 나머지 국가를 멸망시키고 통일 제국을 만들어냈다. 진시황은 군현제를 전국적으로 실시하고 여러 통일 정책을 시행했지만 곧 멸망하고 한漢이 뒤를 이었다. 한 초기에는 제후왕의 세력이 강했지만 무제 시기까지 강력한 제후왕 대책이 성공을 거두면서 본격적인 황제 중심의 중앙 집권 체제가 자리 잡았다. 사상적으로는 유교가 황제 지배 체제를 뒷받침해주는 이념으로 사용되었다. 그러나 후한 시대에 들어와 호족이 크게 성장하면서 기존의 국가 방향은 다시 한 번 조정 국면을 맞이하였으며, 이러한 변화는 곧 위진남북조 시대를 준비하는 것이기도 하였다.

[증보된 내용]

진한 제국의 외경과 내경 _ 38~39쪽
중국 최초의 통일 제국 진나라와 한나라는 흉노, 서역 등 주변 나라들과의 관계를 어떤 식으로 풀어나갔는지를 ‘외경’과 ‘내경’ 개념으로 설명한다.

한사군의 설치와 한반도 _ 40~41쪽
여기에서는 기원전 108년 고조선이 멸망한 뒤, 한나라와 한반도의 관계가 어떻게 전개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서술한다. 한 무제가 고조선을 멸망시킨 이래 한반도와 관계 맺은 방식의 다양한 양상을 살펴볼 수 있다.

2장 중세

위진남북조와 수당 시대는 중국사 가운데 나름으로 독특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두드러진 특징은 동아시아 세계에서 민족 이동의 시대인 동시에 그 결과 세계 제국이 출현한 시대라는 것이다. 북방 최초의 유목 제국이었던 흉노의 서천西遷과 남흉노의 후한 제국으로의 복속은 유목 민족의 중원 진출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후한 제국의 붕괴와 분열 시대의 도래는 소위 오호(흉노·선비·저·강·갈)의 중원 진출을 촉진했다. 그리고 중국 역사상 최초로 유목 민족과 농경 민족이 농경 지역인 화북 지역에서 각축하는 국면이 전개되었다.

유목 민족의 중원 진출은 화북의 한인들을 강남으로 이동시켰다. 화북의 한인은 강남인과 강남에서 각축하는 국면을 맞게 되었다. 이런 점에서 후한 말 이후 유목 민족의 중원 진출로 야기된 인구 이동은 ‘민족 이동’이라 부를 수 있다. 이동이란 단순히 사람만의 이동이 아니라 문화의 이동을 의미한다. 각기 다른 습속을 가진 사람들과 상이한 문화가 한 지역에서 접촉함으로써 기존 문화의 형태를 변모시켰다. 뿐만 아니라 상이한 민족 간의 접촉은 중국 문화의 진폭 자체를 넓혔을 뿐만 아니라 서로 다른 풍습과 언어 그리고 문화를 가진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찾아가게끔 하였다. 그 결과 ‘모든 길은 수도 장안으로 통한다’는 수당 세계 제국이 등장했고, 화려한 문화가 꽃을 피웠다. 수당 제국의 역동적인 모습은 민족 이동의 결산이었다. 제국의 화려한 봄은 길지는 않았지만, 민족적인 폐쇄성을 넘어 중국의 개방적인 문화를 만드는 데 기여하였으며 중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제국의 시대를 연 것도 이 민족 이동이 가져온 결과였다.

[증보된 내용]

중화의 분열과 천하 세계의 다중화 _ 72~73쪽
진한 이래 중국은 동아시아 여러 나라들과 조공 책봉 관계를 맺었는데, 결코 ‘하나의 중심’과 ‘나머지 주변’이라는 도식으로 설명될 수 없다. 다중적이었던 중국-동아시아 관계의 양상을 보여준다.

황제·가한국과 동아시아 세계 _ 94~95쪽
서로 다른 세계로 인식되었던 중국 중원 국가와 유목 민족은 중세에 접어들어 점차 서로의 공통점을 찾아갔다. 당 태종이 중원의 황제이자 유목 민족들의 천가한으로 불린 것도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3장 근세 전기

당에서 송으로 이행하면서 중국 사회는 급격하게 변화했다. 황제 독재 체제가 수립되었으며 문벌 귀족을 대신하여 사대부가 사회 지배층으로 부상하였다. 계약에 의거한 소작제라 할 수 있는 전호제도 널리 확산되었다. 농업 생산력이 비약적으로 증대되었고 이와 병행하여 상품 경제도 크게 발달하였다. 문화적으로는 중국 역사상 최초로 서민적인 색채를 띠는 여러 문화 요소들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여러 변화를 총칭하여 당송 변혁이라 부른다.

한편 송은 역대 정통 왕조 가운데 군사적으로 가장 허약한 존재였다. 건립 이후 지속적으로 북방 민족이 세운 국가들의 위협에 시달렸다. 북송 시대에는 거란족의 요와 탕구트족의 서하가, 남송 시대에는 여진족의 금 및 몽골 제국이 끊임없이 송을 압박하였다. 요와 금 그리고 몽골 제국 등을 정복왕조라 부르거니와, 이러한 북방 민족의 민족적 자각과 정복왕조의 등장은 당송 간 변혁의 또 다른 단면이기도 했다.

몽골 제국은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유라시아 대륙에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대제국을 건설하였다. 12세기 말 몽골 초원 내 군소 부족의 하나에서 미증유의 대제국으로 발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수십 년에 불과하였다. 몽골 제국은 13세기 후반 중국의 원 왕조와 서방의 사한국으로 분열되었다. 칭기스 칸의 등장 이래 14세기 중엽에 이르는 150여 년 동안 지구 상에는 몽골족이 역사를 주도되는 시대가 펼쳐졌다.

[증보된 내용]

고려와 송·요·금 _ 116~117쪽
이 책에서 다루는 중국사의 두 왕조 거란(요)과 송이 각각 고려와 어떤 역사적 관계를 맺었는지를 보여준다. 거란(요)과 고려의 전쟁, 송에 건너갔던 고려의 의천을 중심으로 서술한다.

베트남의 독립과 중월 관계 _ 134~135쪽
중국과 베트남의 관계를 주로 다룬다. 우선 한 대부터 1000년 가까이 지속된 베트남의 중국 복속 상황을 개괄한 뒤 베트남이 중국 송 대에 이르러 독립하고, 대몽골 항쟁을 벌인 역사를 다룬다.

4장 근세 후기

명청 시대는 면면히 이어온 중화 제국을 정점으로 발전시킨 완성의 시기인 동시에 전통의 테두리 속에서도 근대 중국의 모습을 어렴풋이 갖추어가는 준비의 시기이기도 했다.

정치적으로는 명 태조 주원장이 고심하며 구축한 황제 독재 권력이 청조의 옹정제와 건륭제의 치세를 거치며 절정에 달하지만, 신사층을 중심으로 한 지방 분권의 요구에 직면하게 되었다. 사회 경제적으로는 농산품과 수공업 제품의 활발한 생산에 힘입어 이들을 교역하는 대상인 집단들이 출현하여 유통의 시대를 열었으며, 각지에 대도시는 물론 중소도시가 우후죽순처럼 등장하였다. 이들 상인 집단과 도시는 전통에 안주하다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운명에 처하기도 했지만, 자기 변신을 통해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며 끈질긴 생명력을 과시하기도 하였다.

문화적으로는 신분 질서를 철저하게 강조하는 성리학적 사고를 극복하고 사농공상의 동등함과 인간성에 대한 전폭적 신뢰를 표명하는 양명학이 만개하였다. 성리학의 거센 반격에 양명학은 시들고 말았지만, 청대에 탄생한 고증학은 전통 학문을 완성한 동시에 근대 학문의 싹을 틔워놓았다. 또 굴곡은 있었지만 대외 교역과 천주교 포교자의 활동을 용인함으로써 중국은 서양과의 교류에 나서고 세계사의 흐름 속에 참여할 수 있었다.

[증보된 내용]

조공 책봉과 조명양익론 _ 166~167쪽
명과 조선의 조공 책봉 관계가 어떻게 변화해왔는지를 주로 다룬다. 두 나라의 관계는 만주족의 발흥과 함께 변화하는데, 명에 사신으로 갔던 이익의 조명양익론을 통해 그러한 양상을 보여준다.

청으로 간 조선인 _ 168~169쪽
조선과 청(후금) 사이에 군사적 외교적 접촉이 늘어나면서 인적 이동도 늘어났다. 그 과정에서 청에 들어가 정치, 경제 각 분야에서 활약하는 조선인이 증가했는데, 그들이 양국 관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5장 근현대

명 말부터 시작되었지만 아편전쟁 무렵 본격화된 서구 열강의 도전은 쇠퇴기에 접어든 근대 중국에 큰 타격을 주었다. 또한 19세기 중반 태평천국운동을 비롯한 내부의 민중 반란은 청조를 거의 무너뜨릴 뻔하였다. 더구나 잇따른 패전과 불평등 조약의 체결, 거액의 배상금 지불은 청조가 독자적인 근대화의 길을 추구할 때 큰 장애가 되었다. 이리하여 근대 세계 체제에 효율적으로 대응하면서 민족과 국가의 위기를 구할 수 있는 국민 국가의 수립이 시급한 과제로 등장하였다. 그 결과가 청조를 대신한 중화민국의 수립으로 나타났지만, 성급하게 받아들인 중화민국의 공화제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하였다. 20세기 들어 대세가 된 서구식 근대화도 그 꾸준한 성과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혼란을 극복하지는 못하였다.

이 때문에 1920년대 이후 국가 권력의 장악과 바람직한 근대화의 방향을 놓고 경쟁하던 중국국민당과 중국공산당은 모두 국가(지도 엘리트)가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할 수 있는 일당 독재 체제를 선호하면서 경쟁하게 되었다. 1930년대 본격화된 일본의 침략은 이 경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였고, 결국 대중의 힘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인 중국공산당이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성립시켰다. 하지만 이후에도 사회주의적 건설 방향을 둘러싼 혼란이 지속되면서 결국은 문화대혁명이란 비극적 내란으로 치닫게 되었다. 문화대혁명의 종결 이후 개혁·개방 정책이 수행되면서, 중국은 다시 19세기 이래 최대 과제였던 근대화의 과제에 매진할 수 있게 되었다.

[증보된 내용]

근대 중·한 관계의 변용 _ 200~201쪽
중국과 한국의 조공 책봉 관계는 근대에 들어 양국 모두 불평등 조약 체제에 편입됨에 따라 변화를 맞는다. 결국 한청통상 조약의 체결로 평등 관계를 맺게 되지만, 일본이 아시아의 강국으로 부상하면서 다시 한 번 변화를 겪는다.

중화민족론과 20세기 중국 _ 206~207쪽
신해혁명으로 청이 무너지고 중화민국이 들어서자, 한족과 다른 민족의 관계도 변화한다. 한족은 처음에는 다른 민족을 배척, 배제했지만 결국 이민족을 동화·포섭하여 ‘중화민족’으로 수렴시켰다. 그 흐름은 지금까지 지속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