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3.일본근대사

일본의 근대는 무었인가 (정당정치.자본주의.식민지제국.천황제 형성)

동방박사님 2021. 12. 6. 0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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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앞으로 일본의 권력 형태는 ‘입헌적 독재’ 경향, 실질적으로 ‘전문가 지배’로 강화 될 것이다”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로 살펴본 일본정치사 대가의 일본 근대에 대한 총론


이 책은 일본 정치사의 대학자인 미타니 타이치로가 노년에 쓴 일본 근대에 대한 총론이자 대중역사서이다. 마르크스와 동시대 영국의 정치경제 학자인 월터 바지호트는 ‘토의에 의한 통치’를 중심 개념으로, ‘무역’과 ‘식민지화’를 파생 개념으로 ‘근대’를 말한다. 미타니는 이를 일본 근대에 적용한다. 1장은 일본에서 ‘토의에 의한 통치’로서 의회제와 정당정치가 어떻게 성립했는지, 2장은 근대화의 추진력인 ‘무역’문제를 ‘왜 일본에서 자본주의가 형성하는지’로 넓혀서 고찰한다. 3장은 왜 일본이 군사적 의존도가 높은 식민지제국으로 돌진했는지를 다룬다. 4장은 정교분리의 유럽 종교를 ‘기능주의적 등가물’로 도입한 일본 천황제의 탄생과 전개, 그리고 붕괴를 살핀다. 이로서 미타니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정치지도자의 주체성 결여가 전문가 집단의 기능적 권위의 확대로 이어져, ‘토의에 의한 통치’를 정지시키고 ‘입헌적 독재’로 나아갈 위험성을 현대 일본 정치에서 읽고 있다.

목차

서장 일본의 모델, 유럽 근대는 무엇인가?

제1장 왜 정당정치가 성립했는가?

1. 정당정치 성립을 둘러싼 문제
2. 막번체제의 권력 억제 균형 메커니즘
3. ‘문예적 공공성’의 성립: 모리 오가이의 ‘사전’이 갖는 의미
4. 막말 위기 하 권력 분립론과 의회제론
5. 메이지 헌법 하 권력 분립제와 의회제의 정치적 귀결
6. 체제통합 주체로서 번벌과 정당
7. 미국과 비교해 본 일본의 정당정치
8. 정당정치의 붕괴와 ‘입헌적 독재’

제2장 왜 자본주의가 형성되었을까?

1. 자립적 자본주의로 가는 길
2. 자립적 자본주의의 네 가지 조건
(1) 정부주도 ‘식산흥업’ 정책의 실험
(2) 국가자본의 원천인 조세제도의 확립
(3) 자본주의를 담당할 노동력 육성
(4) 대외평화의 확보
3. 자립적 자본주의의 재정 노선
4. 청일전쟁과 자립적 자본주의로부터 전환
5. 러일전쟁과 국제적 자본주의로 가는 결정적 변화
6. 국제적 자본주의 지도자의 등장
7. 국제적 자본주의의 몰락

제3장 왜, 어떻게 식민지제국이 되었는가?

1. 식민지제국으로 발을 내딛은 일본
2. 일본은 왜 식민지제국이 되었는가?
3. 일본은 어떻게 식민지제국을 형성했는가?
(1) 러일전쟁 후: 조선과 관동주조차지 통치체제의 형성
(2) 타이쇼 전반기: 주도권 확립을 노리는 육군
(3) 타이쇼 후반기: 조선의 3?1독립운동과 그 대응
4. 새로운 국제질서 이데올로기로 등장한 ‘지역주의’
(1) 1930년대: ‘제국주의’를 대신할 ‘지역주의’의 대두
(2) 태평양전쟁 이후: 미국의 ‘지역주의’ 구상과 그 후

제4장 일본 근대에서 천황제는 무엇인가?

1. 일본 근대를 관통하는 기능주의적 사고양식
2. 기독교의 기능적 등가물로서 천황제
3. 독일 황제와 대일본제국 천황
4. 「교육칙어」는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5. 다수자 논리와 소수자 논리

종장 근대의 경과로부터 일본의 장래를 생각하다
1. 일본 근대의 무엇을 문제로 삼을 것인가?
2. 일본 근대가 도달한 곳은 어디인가?
3. 다국 간 질서의 유산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

저자 후기/ 역자 해제/ 색인
 

저자 소개

저 : 미타니 타이치로 (三谷太一郞)
 
토쿄대학 법학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조수, 조교수, 교수 및 세이케이대학 법학부 교수, 일본정치학회 이사장, 한일역사공동위원회 일본측 좌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일본학사원 회원, 토쿄대학 명예교수이다. 주요 저서로 『근대와 현대의 사이: 미타니 타이치로 대담집』(2018), 『인간은 시대와 어떻게 대면할 것인가』(2014), 『학문은 현실에 얼마나 관여하는가』(2013), 『월스트리트와 극동―정치에서 국제금융...
 
역 : 송병권
 
고려대 사학과(학사), 고려대 일반대학원 사학과(석사), 도쿄대 대학원 총합문화연구과(학술박사)를 졸업했다. 국사편찬위원회 편사연구사, 고려대학교 아세아문제연구소 및 한국사연구소 연구교수를 거쳐 현재 연세대 근대한국학연구소 HK연구교수로 재직중이다. 지은 책으로 『東アジア地域主義と韓日米關係』(クレイン, 2015), 『동아시아, 인식과 역사적 실재』(아연출판부, 2014, 공저), 번역서로 『GHQ-연합국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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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일본 토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일본문화연구전공 박사(문학)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신대학교 일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저로는 『아베 코보의 전후―식민지 경험과 초기 텍스트를 둘러싸고』(2009), 「전후 담론에 나타난 ‘고도성장’의 표상―가토 노리히로의 『아메리카의 그늘』을 중심으로」(2019), 역서로 『일본근대문학의 상흔―구 식민지 문학론』(오자키 호츠키,...
 
 
 

책 속으로

일본의 근대는 19세기 후반의 최선진국으로 국민국가 건설에 착수한 유럽 열강을 모델로 형성되었습니다.
--- p.9

바지호트의 『자연학과 정치학』은 ... 정치학에서 ‘자연학’적 차원을 개시해, ‘정치적 자연’을 강화하고 발전시킬 동력으로 ‘자유’에 바탕을 둔 정치, 즉 ‘토의에 의한 통치’의 확립을 목적으로 두었습니다.
--- p.14

‘관습의 지배’에 인류의 자유가 구속되어, 독창성은 정체됩니다. 그러한 세계를 종결시켜 인류를 ‘관습의 지배’에서 해방시킨 것이 ‘근대’의 역사적 의미였습니다. 바지호트는 그것을 ‘토의에 의한 통치’의 확립이란 명제로 집약합니다.
--- p.29

바지호트의 ‘근대’ 개념은 ‘토의에 의한 통치’를 중심 개념으로 하고, ‘무역’ 및 ‘식민지화’를 파생 개념으로 삼은 것입니다.
--- p.38

오가이는 카테이의 자손에게 남아 있던 편지를 통해, 하나오카 세이슈를 점묘하면서, 당시의 지적 공동체가 얼마나 풍요로운 존재였는지 인상 깊게 그려냈습니다. 거기에는 분명히 ‘정치적 공공성’의 전단계로서의 ‘문예적 공공성’이 기능했습니다.
--- p.68

일본에서는 타이쇼 말기부터 정당정치가 본격적으로 작동했지만, 만주사변과 5.15사건으로 상징되는 1930년대 초기에 연이은 내외의 충격으로 말미암아, 정당정치의 권위가 흔들리게 됩니다. 정치학자 사이에서도 ‘데모크라시의 위기’를 부르짖는 사람이 나오게 됩니다. 그리고 ‘데모크라시’를 대신할 이데올로기로서 일종의 ‘입헌주의’가 부상했던 것입니다.
--- p.88

나는 앞으로 일본의 권력 형태가 일찍이 1930년대에 로야마 마사미치가 제창한 ‘입헌적 독재’라는 경향, 실질적으로는 ‘전문가 지배’라는 경향이 강화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이에 대해 ‘입헌 데모크라시’가 어떻게 대항할지가 중요한 문제가 될 것입니다.
--- p.90

일본의 경우에는 ... 국가주의적 측면이 중시되었습니다. 따라서 일본에서는 내무성을 추진기관으로 하는 국가 주도의 자본주의가 형성되었습니다. 정치적 리더가 동시에 경제적 리더가 되었습니다.
--- p.95

1930년대 초 오랫동안 금본위제를 지지했던 영국이 여기서 이탈하고, 만주사변 이후 일본이 동아시아의 평화를 지탱했던 국제협조주의를 방기함으로써, 국제적 자본주의 그 자체가 붕괴합니다. 그때 이노우에는 경제지도자 및 정치지도자의 기반을 상실했습니다. 그리고 위기는 일본의 ‘토론에 의한 통치’ 그 자체에까지 미쳤던 것입니다.
--- p.163

본국의 ‘법의 지배’로부터 소외된 영토를 포함한 국가가 ‘식민지제국’이었습니다. 그런 의미의 ‘식민지’에 대해서 ‘법의 지배’에서 해방된 본국에 의한 제약 없는 정치적, 경제적, 군사적 지배가 미쳤던 것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 p.167

일본이 식민지제국으로 첫걸음을 내디딘 것은 청일전쟁 전후입니다. ... 일본의 자본주의가 불평등조약 아래 자립적 자본주의에서 조약 개정 후의 국제적 자본주의로 전환한 시기였습니다.
--- p.168

일본이 ‘자유무역 제국주의’를 통한 ‘비공식제국’의 확대보다도, 현실의 식민지 영유를 우선한 또 하나의 이유는,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상이 경제적 이익에 관심을 두기보다 군사적 안전 보장에 관심을 두었기 때문으로, 일본 본국의 국경선의 안전 확보에 관한 관심과 불가분했습니다.
--- p.174

식민지 관제 개정의 기본적 방향은, 하나는 식민지 통치의 탈군사화, 특히 탈육군화였고 또 하나는 식민지와 본국의 ‘동화’였습니다. 그러한 식민지 입법 개정의 방향을 내세운 것은 반드시 일본의 자발적인 기획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이는 1919년에 조선에서 폭발한 3.1독립운동으로 상징되는 조선의 내셔널리즘을 시작으로, 남만주 등 다양한 내셔널리즘에 직면한 일본 정부의 이른바 불가피한 대응에 다름 아니었던 것입니다.
--- p.200

타이쇼 후반기 이후, 주로 1920년대 ‘동화’ 정책과 관련해, 일본의 정부 당국자는 식민지라는 명칭을 공식 명칭으로 사용하는 것은 물론, 그것을 연상하는 것도 피하고자 했던 것입니다. 거기에 ‘동화’ 정책의 특징이 현저하게 드러납니다.
--- p.217

제국주의의 유산을 탈제국주의 시대에 적합한 형태로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문제의식이, ‘동화’ 정책의 근저에 있었습니다.
--- p.217

1930년대에서 1940년대 전반의 일본 ‘지역주의’는 한편에서는 군사력을 주요 수단으로 한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에 저항하는 중국 등 여타 민족주의를 부정함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서는 동아시아, 나중에 동남아시아를 포함한 ‘대동아’에서 구미의 선진적 제국주의에 대항하는 의미가 부여되었습니다.
--- p.219

일본도 한국도, 각각의 근대사를 일국사로서 쓸 수는 없습니다. 적어도 일본의 근대는, 한국 그리고 한반도 전체의 근대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일본의 근대에 가장 중요한 특질 중 하나는 아시아에서는 예외적인 식민지제국의 시대를 가졌다는 것에 있지만, 그 시대의 인식은 같은 시대의 한반도 전체의 현실 - 오늘날 이야기되는 한국에서 ‘식민지 근대’의 현실 - 에 대한 인식 없이는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일 양국 근대의 불가분성을 구체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양국이 역사를 공유하는 첫걸음입니다. 이것은 또한 중국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 p.231

당시 일본에서 마르크스 경제학은 비이데올로기화해 대국 소련의 경제 건설이란 시련을 거친 가장 실용적인 계획경제 이론으로 간주되었습니다.
--- p.239

일본 근대는 메이지 유신 전후의 ‘폐불훼석’ 정책과 운동으로 상징되듯이, 전근대로부터 ‘신’을 계승하지 않았습니다.
--- p.246

교육칙어는 입헌군주제 원칙과 충돌을 회피하면서, ‘정치적 국가로서 메이지 국가’의 배후에 ‘도덕 공동체로서 메이지 국가’를 출현시켰습니다.
--- p.273

식민지제국은 일본 근대에서 최대의 부정적 유산입니다. 그것은 오늘날에도 청산되지 않았습니다. 일찍이 식민지였던 타국의 정치, 경제, 문화뿐만 아니라, 일본 자신에도 아직 치유되지 않은 상흔을 남겼습니다.
--- p.285

일본 근대는 막말 일본을 기점으로 출발했습니다. 그것은 동시대 프랑스의 나폴레옹 3세를 모델로 한 토쿠가와 요시노부 정권의 근대화 노선에서 출발했다고 봐도 좋을 것입니다. ...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란 슬로건은 당시 이 근대화 노선의 방향을 결정짓는 것으로 만들어져, 후쿠자와 등에 의해 주창되었습니다.
--- p.287

‘강병’ 없는 ‘부국’ 노선의 자명성에, 2011년 3월 11일에 일어난 동일본 대지진과 원전 사고가 근본적인 의문을 던졌습니다. ... 전후 일본의 근대화 노선 자체에 수복이 극히 곤란할 정도의 심각한 좌상을 남겼습니다.
--- p.289

일본에서는 ‘안전 보장 환경’의 변화를 강조하고, 나아가 군사력 강화(‘강병’)의 필요성마저 부르짖고 있습니다. 전후 부국노선이 막다른 골목에 다다르자, ‘강병’의 주장을 다시 소환하는 듯합니다.
--- p.290

앞으로 일본이 걸어야 할 길 ... 지금까지 일본 근대화를 떠받치던 사회적 기반을, 이제는 다양하고 구체적인 국제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공동체에 두고, 그 국제공동체를 잘 조직 운영함으로써, 글로벌한 규모로 근대화 노선을 재구축하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아시아에 대한 대외평화의 확대와 국가를 넘어선 사회를 위한 교육이 불가결합니다.
--- p.291

오늘날 미국과 유럽에서는, 단락적인 보호주의 충동과 일국주의로 향하는 좁은 시야가 강화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워싱턴 체제는, 그 좌절에 이르게 된 다양한 약점에도 불구하고, 군축조약에 바탕을 둔 평화적이고 현실적인 다국 간 질서라는 점에서, 무질서와 무이념으로 흐르는 오늘날의 세계 및 일본에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적어도 워싱턴 체제의 중요한 유산을 헌번 제9조에 남긴 일본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생각해야 합니다.
--- p.302

나는 학문의 발전을 위해서는 학제적 대화 이외에 프로페셔널과 아마추어의 교류가 아주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 때문에도 ‘총론’은 없어서는 안 되고, 그에 대한 공헌이 ‘노년기 학문’의 목적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 p.305

이 책에서 내가 시도했던 것은 일본 근대를 대상으로 한 ‘직관’에서 ‘개념’으로 인식 발전을 모색하는 것이었고, 이 책은 결과보다는 그 의도에 많은 의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p.311

출판사 리뷰

“앞으로 일본의 권력 형태는 ‘입헌적 독재’ 경향,
실질적으로는 ‘전문가 지배’로 강화 될 것이다”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제국, 천황제로 살펴본 일본 근대

한반도가 식민지일 때, 일본은 무엇인가


1. “일본의 근대는 19세기 후반 최선진국으로 국민국가 건설에 착수한 유럽 열강을 모델로 형성되었습니다.” 이 책의 방향을 대변하는 문장이다. 저자인 미타니 타이치로는 유럽으로 대표되는 서양 근대와 비교로서 후발국 일본의 근대화 과정(형성, 발전, 위기 그리고 종언)을 살핀다. 저자는 19세기 말 월터 바지호트가 성찰한 유럽의 근대를 참조하면서 정당정치, 자본주의, 식민지, 천황제라는 주제로 제국 일본이 근대의 붕괴로 돌진했던 이유를 곱씹는다. 저자는 역사 인식을 둘러싼 정치지도자의 주체성 결여가 전문가 집단의 기능적 권위의 확대로 이어져, 이것이 ‘토의에 의한 통치’를 정지시키고, ‘입헌적 독재’로 나아갈 위험성을 현대 일본 정권에서 읽고 있다.

2. 저자의 총론적 연구는 각론의 좁고 깊은 분석을 통해 확보한 지식을 바탕으로, 저자 자신의 50여 년에 걸친 학문 인생을 뒤돌아보며, 통사적으로 펼치는 향연으로 일본 근대의 현재적 의미를 찾고자 하는 열의가 돋보인다. 먼저 정당정치로 ‘토의에 의한 통치’와 관련된 주제다. 저자는 바지호트가 영국 근대의 정치 분석을 통해 획득한 ‘토의에 의한 통치’라는 개념을 원용한다. 아시아적 특성으로 거론되는 동양적 전제주의와는 다른 결로 ‘문예적 공공성’, 에도 막부의 ‘권력 억제 균형 시스템’을 일본 전통에서 석출하여 ‘토의에 의한 통치’의 맹아로 봤다. 막번체제의 세력균형시스템을 살펴서 메이지 헌법 하 권력분립제가 의회제적 정당정치로 이어지는 과정을 추적한다. 저자는 막부를 무너뜨린 번벌정치가 실질적인 정당정치의 출현을 가져왔고, 나아가 본격적인 입헌정치로의 이행을 끌어냈던 점을 살피며, 체제통합의 주체로서 막부, 번벌 그리고 정당정치의 위상을 자세히 분석한다.

이는 일본 정치사에서 ‘타이쇼 데모크라시’론의 한 축을 담당했던 저자의 청년기부터 이뤄진 연구가 바탕에 깔려 있다. 또 저자는 하라 타카시로 대표되는 입헌정치의 프로페셔널적 흐름과 요시노 사쿠조로 대표되는 입헌정치의 아마추어적 흐름에서 일본 근대 정당정치의 발전과정을 살펴본다. 저자는 ‘비권력 세계’에도 관심을 보이는 데, 책에서 메이지 시기 후쿠자와 유키치, 타이쇼 시기 요시노 사쿠조, 전후 마루야마 마사오라는 정치교육자들에 대한 관심으로 잘 나타난다. 저자는 정당정치와 군부의 관계를 분석하면서, 일본 근대 정당정치의 몰락과 군국주의의 대두가 일본을 전쟁의 소용돌이로 몰아갔던 점에 주목한다. 저자는 로야마 마사미치가 제기한 ‘입헌적 독재’를 비판하며, 이를 정당정치의 부정이자 ‘토의에 의한 통치’의 상실로 보았다.

두 번째는 자본주의, 즉 일본 근대 자본주의의 형성, 성장, 몰락을 다룬다. 후발주자인 일본 근대 자본주의는 선진 자본주의 열강의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나려는 ‘자립적 자본주의’로 출발했다. 자립적 자본주의는, ① 정부 주도 ‘식산흥업’ 정책의 시행, ② 근대적 조세제도의 확립으로 국가자본의 원천 확보, ③ 자본주의에 필수인 노동력 육성, ④ 대외평화의 확보를 조건으로 성립한다고 저자는 파악한다. 청일전쟁으로 자립적 자본주의를 확립한 근대 일본은, 러일전쟁을 거치면서 국제적 자본주의로 이행했고, 이를 일본 근대가 세계 자본주의의 한 멤버로 성장한 상징으로 보았다.

저자는 국제적 금융가와 연결된 일본의 정치, 경제 지도자의 형성과 몰락을 통해서 일본 근대의 국제적 자본주의가 붕괴하는 과정을 성찰한다. 세계 경제가 대공황을 거치면서 국제적 자본주의의 몰락과 지역주의를 표방하는 지역 내 패권 경제구조로 전화하는 과정을 고찰하면서, 일본 근대 자본주의는 국가자본의 시대이자 자유무역이 종말을 고한 전쟁의 시대가 되었다고 평한다. 국제적 자본주의 문제를 고찰하며, 저자는 일본의 타이쇼 데모크라시가 미국의 데모크라시의 한 모습이라고 보았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적으로 전개된 미국화(americanization)는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인 것을 모두 포함하였고, 이것이 일본에도 나타났다고 보았다. ‘타이쇼 데모크라시’를 일본에 한정된 로컬적 현상이 아니라 동시대적인 세계사적 움직임이었다고 보았다.

세 번째로, ‘공식적 식민제국’으로 내달린 일본과 식민지와 관련된 문제를 다루고 있다. 저자는 ‘자유무역 제국주의’로 ‘비공식제국’을 모색한 세계적 패권국인 영국을 대표로 한 유럽의 근대와 달리, 비용이 많이 드는 군사적 의존도가 높은 ‘공식제국’으로 돌진한 일본 근대의 모습을 성찰한다. 저자는 당시 일본이 선진 식민지제국에 필적하는 실질적인 국제사회의 멤버가 아니었다고 파악한다. 따라서 일본의 식민지제국 구상은 유럽 열강과 달리, 경제적 이익에 대한 관심보다 자국의 군사적 안전보장에 대한 지대한 관심에서 유래했다는 것이다. 일본의 식민지 건설 방향은 자국의 국경선에 직결되는 공간의 확대라는 형태를 띠었고, 이는 일본 내셔널리즘의 발전이 제국주의와 결합한 특성이었다고 설명한다.

이는 식민지 문제를 필연적으로 유발하는데, 제국의회가 아닌 정부, 군부 그리고 추밀원의 영향권 하에서 제정되고 입법되었던 식민지 입법은 결국 제국 헌법 체제와 모순 관계를 형성했다. 이는 ‘이법구역’ 혹은 ‘특수통치구역’으로서 식민지의 존재가 비입헌적 정치공간으로 남게 되는 문제와 관련되는데, 이는 ‘동화’를 둘러싼 방향성 즉, 식민지의 ‘자치’와 ‘참정권’ 문제로까지 확산되는 것이었다. 한편 저자는 미국, 영국이 중국 내셔널리즘과 타협을 선택한 것과 달리, 제국주의적 입장에서 중국과 대립을 견지했던 일본의 선택이 미국 및 영국과의 국제협조 정책을 포기하고 전쟁으로 나가게 하는 요인이었다고 평가했다. 이는 제국주의를 대체할 지역주의의 대두와 깊은 관련이 있다. 저자는 제국 일본이 정당화하며 확대한 ‘대동아공영권’이라는 ‘지역질서’로서 지역주의가 아시아 여러 민족의 내셔널리즘 저항 속에서 형성되었다고 고찰하고 있다. 저자는 국제질서 속에서 지역주의와 제국주의의 관계성에서 식민지 문제를 파악함으로써, 이것이 일본이 패전한 이후 미국 중심의 동아시아 지역주의로 전화하는 계기를 찾고자 했다.

네 번째로, 사상사적 측면이다. 정교분리를 전제로 한 유럽 근대의 종교와 달리, 정교가 결합한 ‘근대천황제’를 둘러싼 문제를 다룬다. 유럽 근대의 기독교적 전통과 대비해 일본 천황제를 유럽 기독교의 ‘기능주의적 등가물’로 파악해, 서양 근대에서 기독교가 한 역할을 일본 천황제에서 찾았고, 이 관계성에서 일본 근대의 사상사적 천이를 이해했다. 기능주의라는 근대 합리성을 비합리적인 종교로 설명하는 부분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는 이렇듯 일본 근대천황제의 탄생과 전개 그리고 붕괴 과정을 종교와 분리된 정치 공간이 부재하다는 측면에서 파악했다. 전체를 아우르는 키워드는 ‘기능주의적 등가물’이라는 개념인데, 이는 일본 근대가 유럽 및 미국의 근대를 수용하는 방식을 특징지었던 개념이었다. 구미 사회와 달리 일본 사회는 내용적 변동보다는 형식적 근대성을 중시했지만, 그럼에도 상호침투성은 예상할 수 있는 것이었다. 이를 통해 일본 근대의 특수성과 보편성을 파악하겠다는 것이 저자의 목표 중 하나로 보인다. 이는 화혼양재, 동도서기, 중체서용이라는, 동아시아가 서양 근대를 수용했던 방식의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하다. 이는 일본 강좌파적 해석과 일정 정도 조응 관계를 이루기도 한다.

3. 일본 근대에 대한 이해가 우리나라의 근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인 조건 중 하나다. 이런 의미에서 균형 잡힌 일본 근대에 대한 총론적 파악은 매우 필요한 작업이다. 일본 근대의 역사는 일본 제국주의 혹은 일제로 상징되는 것처럼, 우리나라를 침략하며 식민지로 지배했던 역사이기도 하다. 따라서 침략자로서의 이미지가 강력하게 남아 있고, 이는 현재에도 과거사 문제라는 그늘을 드리우고 있다. 일본과의 역사 대화를 통해 양국 사이의 과거사를 풀어가기 위해서도 우리는 일본 근대에 대해 파편적이고 각론적인 이해를 넘어 이를 포괄할 수 있는 총론적인 이해가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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