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2.한일과거사

빈 의자에 새긴 약속

동방박사님 2021. 12. 9. 0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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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대사관 앞 [평화의 소녀상]을 제작한 부부조각가 김서경 김운성이 [평화의 소녀상 작가 노트 ?빈 의자에 새긴 약속]을 펴냈다.
이 책은 1부에서는 2011년 12월 14일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해서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게 된 사연과 소녀상 작업 과정이 사진과 함께 담겨 있으며, 소녀상의 12가지 상징이 지니는 의미를 실었다. 2부에서는 사회 예술, 공공조형물로서의 소녀상에 대한 예술적, 사회적 평가를 실었고, 부부 조각가를 인터뷰해서 작품세계를 들여다봤다. 3부에는 소녀상 미니어처와 함께 여행을 떠난 제주 곶자왈작은학교의 여행사진, 올해 3월 1일부터 보름간 고도갤러리에서 열린 [소녀상] 전시회 작품 소개, 전국 29곳과 해외 3곳의 소녀상 사진과 건립 일화가 들어있다.

목차

머리말 도대체 왜?
우리 자신의 자성과 다짐을 표현한 소녀상

1부 평화의 소녀상 작업 과정과 상징 이야기

평화의 소녀상 만들게 된 배경과 사연
소녀상과의 대화 “괜찮아, 괜찮아”
소녀상 작업 과정은 이렇습니다
소녀상 작가의 작업실 들여다보기
주물 공장 풍경
‘할머니그림자’ 아이디어 낸 딸 소흔
평화의 소녀상이 품은 열두 가지 상징
소녀상 이야기 열여덟

2부 소녀상 현상과 작가 탐구

사회 예술로서의 소녀상 현상
공공조형물과 평화의 소녀상
인터뷰 평화를 비는 부부 조각가

3부 지상 전시와 탐방

평화의 소녀상 미니어처 들고 떠난 여행
지상전시 고도 갤러리 〈소녀상〉 초대전
국내 29개 평화의 소녀상 지상 탐방
“세우세 세우세 소녀상을 세우세”
미국, 캐나다에 세워진 소녀상
“위안부(성노예) 범죄를 세계인에게 널리 알리고 교육해야”
평화의 소녀상 영문 해설
세계 평화의 소녀상 지도
 

저자 소개

저자 : 김서경, 김운성
부부조각가로 김서경은 1965년 서울에서, 김운성은 1964년 춘천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조소학과를 졸업하였다. 공동 작업 조형물로 동학 100주년 기념 무명 농민군 추모비, 중앙대학교 이내창 추모 조형물, 서울 교대 박선영 추모 조형물 등을 제작하였으며 안면도 국립 휴양림에 채광석 선생 시비 조형물 설치 등의 작업을 하였다. 2011년에는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하여〈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하였으며 이후로도 미선 효순 추모비, 김구 선생 기념 조형물 등을 설치하였다.

2011년 12월 14일 서울 일본대사관 앞에 첫 번째 평화의 소녀상을 설치한 뒤 2016년 7월 현재 전국 29곳, 외국 3곳에 추가로 소녀상을 세웠다. 2016년에는 지속적인 소녀상 설치와 함께 베트남과 제주도 강정마을에 〈베트남 피에타〉상을 건립할 계획이다.
 
 
 

책 속으로

“어쩌면 작은 비석은 물론 어떤 것이라도 세우는 게 어려울 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비석도 좋지만, 우리는 조각을 주로 하는 사람이니 비석을 포함해 좀 더 사람들에게 다가가 공감하고 어울릴 수 있는 작업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합니다. 단 하루를 세워 놓고 나서 철거되 는 한이 있더라도 아예 의미심장한 조형물로 제작해 보면 어떨까요?” (김운성) --- p.19

지금까지 작가로서 작업을 하면서 이번처럼 아파하면서 작업한 적은 또 없습니다. 소녀상이 모습을 갖춰 갈수록 쉼 없이 밀려오는 분노와 아픔, 슬픔과 고통……. 3개월의 흙 작업 기간 내내 시시때때로 울기도 하고, 화를 내기도 하고 답답함에 숨이 막힐 것 같았습니다. (김서경) --- p.27

원래 할머니들의 1000차 수요집회를 기념하기 위해 비석 디자인으로 시작한 형상은 일본 정부가 비석 설치를 반대하는 것에 격분해 할머니 형상으로 구상이 바뀌었습니다. 그러다가 고민을 거듭한 끝에 전쟁의 피해자로 처참한 상처를 받았던 당시 나이 대의 소녀상으로 작업을 진행하던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딸아이의 상상력에 힘입어 할머니 그림자를 작품에 도입하면서 전체 디자인을 완성하게 되었습니다. (김서경) --- p.59

소녀상을 세운 지도 5년이 지났습니다. 20년의 수요집회는 이제 만 25년이 되었습니다. 그 사이 돌아가신 할머니도 많습니다. 수요집회 30주년이 되고, 35주년이 되었을 때 몇 분의 할머니가 살아계실지 아무도 알 수 없습니다. 모두 그 자리를 떠나셔도 우리 미래세대가 끝까지 이 자리를 지켜내겠다는 다짐이 필요합니다. 그렇게 돌아가신 할머니 대신 소녀상이 그 자리를 끝까지 지킬 것입니다. --- p.92

수십 번, 수백 번의 손놀림을 거치는 반복의 연속이었습니다. 찰흙과 손의 온기가 같아지고 부드러워질 대로 부드러워졌습니다. 마무리 작업하던 눈 매무새에서 손을 떼고 소녀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았습니다. 마침내 찾았던 얼굴이 나온 것에 감사하고 감사하며, 작업실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습니다. --- p.103

2015년 12월 30일에 열린 그해 마지막 수요집회에서는 고 이효순 할머니의 아들이 참석해 어머니를 위한 시를 낭송하기도 했습니다.
“모진 세월 죽지 못해 살아왔는데/내 원한이 풀릴 때까지 싸워줄 것을/약속하자고 하신 어머니 말씀/얼마나 깊은 멍울의 고통이 있었으면/이 말을 남기셨을까……/
어머니, 약속할 게요, 약속드릴 게요/고통 없는 곳에서 편히 쉬세요.” --- p.129

소녀상이 민족적인 작품인 것 맞습니다.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바는 일본이 우리 민족을 침략함으로 생긴 민족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일어난 한민족 수난의 문제이고, 이 민족문제는 아직도 후속 처리가 끝나지 않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그런 면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민족적인 표현이 맞지만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문제를 담고 있습니다. --- p.145

소녀상을 세계 곳곳에 세우려는 이유가 일본 국민을 비하하거나 일본 정부를 비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진정한 의미의 한일화해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해자의 진심어린 반성이 필요합니다.
일본 정부가 진정으로 과거 침략사를 반성한다면 소녀상 건립을 방해하지 말고 앞장서서 후원을 해야 할 것입니다. --- p.155

〈평화의 소녀상〉은 사회적 소통 과정을 거쳐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회예술(Social Art)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위하여 결과 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회예술의 면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회예술은 비판예술, 행동주의예술, 공동체예술, 공공예술 등 사회적 소통 맥락을 강조하는 예술이다. --- p.172

부부 작가는 앞으로 소녀상이 국내뿐만 아니라 중국, 동남아, 미국, 유럽 등 세계 곳곳에 세워지길 기대한다. 특히 일본과 북녘에도 평화의 소녀상을 건립할 날을 손꼽아 기다린다. 그리되면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이 꿈꾸는 전쟁 없는 세상에 한 걸음 더 바짝 다가서게 될 것이다. --- p.219

소녀상 설치 이전에 소녀상 설명을 하기 위해 남해로 내려간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만난 박숙이 할머니가 “나도 여자라고……. 왜 자꾸 같은 얘기를 묻는 거야! 나도 여자야!”라고 하시며 눈물을 훔치시는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습니다. --- p.267

임대아파트에 거주하는 할머님들께서 천안시 소녀상 건립에 대한 얘기를 듣고 눈물을 글썽이며 “어렸을 때 동네에서 끌려가는 것을 봤었다…… 난 그때 너무 어려서…… 피할 수 있었는데…… 내 대신 끌려가 고통당한 분들이다. 그분들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라며 모금에 동참해 주셨습니다.
--- p.287
 

출판사 리뷰

소녀상을 만든 조각가는 김서경, 김운성 작가이다. 중앙대 예술대 조소학과 84학번 동기인 이들은 부부작가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책에서는 ‘김서경운성’으로 부르기도 한다. 소녀상 작품은 이들 부부의 공동작품이지만 흙작업 등의 주요 작업은 김서경 작가가 맡아서 했다. ‘위안부’ 할머니 문제를 알게 되면서 김서경 작가는 소녀상에 남자 손이 닿는 것이 싫었다고 한다.

“피해자가 모두 여성이잖아요. 소녀상 구상을 할 때 같은 여성으로서 피해자의 아픔을 온몸으로 공감했어요. 피해를 당한 ‘위안부’ 소녀에게 빙의된 심정이었죠. 그래 그런지 남자가 만드는 게 싫었어요. 남자의 손으로 작업하면 다른 느낌이었을 거예요. 남자와 여자가 느끼는 전쟁의 의미와 감수성이 다를 거라는 생각도 했고요.”(김서경, 197쪽)

사회예술에 관심 많은 부부 조각가

이들은 그동안 공동 제작을 많이 했는데, 대표작으로는 동학 100주년 기념 무명 농민군 추모비 (정읍, 1994), 민족시인 채광석 선생 시비 조형물(안면도 국립 휴향림, 2000), 지각생의 하루(서울 역사박물관, 2010), 평화의 소녀상 (일본군 위안부 수요집회 1000회 기념 설치, 일본대사관 정문 앞, 2011), 박봉우 시비 (임진강역, 2001), 미선 효순 추모비 (2012), 독립운동가 조문기 선생 기념비(화성시 매송초등학교, 2014) 등이 있다.

올해(2016년) 7월 22일부터 사흘 간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전쟁없는 세상을 위한 프로젝트 전’을 열기도 했다. ‘칼을 쳐서 보습으로’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진행된 이 전시회에는 미군의 포사격장이었던 평택 매향리의 포탄과 탄피 1천여 개를 소재로 만들어진 작품이 전시됐다.

대학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고 사회 역사적인 의미가 담긴 다수의 조각물 작업을 했던 이들 부부조각가의 〈평화의 소녀상〉 작품에 대해 김준기 평론가는“사회적 소통 과정을 거쳐 예술적 소통을 매개하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사회예술(Social Art)의 면모를 지니고 있다. 그것은 예술의 사회적 소통을 위하여 결과만큼이나 과정을 중요시하는 사회예술의 면면을 잘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평했다. 사회예술은 비판예술, 행동주의예술, 공동체예술, 공공예술 등 사회적 소통 맥락을 강조하는 예술이다.

저자가 직접 그려 넣은 소녀상의 12가지 상징

이 책은 1부에서는 2011년 12월 14일 수요시위 1000회를 기념해서 평화의 소녀상을 만들게 된 사연과 소녀상 작업 과정이 사진과 함께 담겨 있으며, 소녀상의 12가지 상징이 지니는 의미를 실었다. 2부에서는 사회 예술, 공공조형물로서의 소녀상에 대한 예술적, 사회적 평가를 실었고, 부부 조각가를 인터뷰해서 작품세계를 들여다봤다. 3부에는 소녀상 미니어쳐와 함께 여행을 떠난 곶자왈작은학교의 여행사진, 올해 3월 1일부터 보름간 고도갤러리에서 열린 〈소녀상〉 전시회 작품 소개, 전국 29곳과 해외 3곳의 소녀상 사진과 건립 일화가 들어있다.

소녀상에는 잘린 머리카락, 새, 할머니그림자, 나비, 소녀, 한복, 빈 의자 등의 12가지 상징 장치가 있다. 김서경 작가는 이 12가지 상징의 의미를 독자들에게 보다 정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12장의 삽화를 그려 이 책에 넣었다.

12가지 상징 중에 ‘할머니그림자’는 2011년 11살 나이에 소녀상 모델을 섰던 딸 소흔의 아이디어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일본군 성노예로 당한 상처와 해방 이후에 받은 멸시와 천대, 고통스러운 시간의 상징을 소녀상의 그림자에 담기로 했는데, 소흔이가 그 그림자를 할머니그림자로 하자고 제안한 것이다. ‘할머니그림자’는 긴긴 세월이 흘렀지만 소녀가 할머니이고 할머니가 소녀임을 보여준다.

일본 정부의 철거 압력

소녀상의 상징성을 극대화한 것은 일본대사관 앞에 설치됐다는 장소성에 있다. 소녀상이 남산 꼭대기나 여의도공원에 설치됐다면 그 의미는 지금과 다를 것이다. 일본 정부는 소녀상이 해외에 설치되는 것에 극도로 민감하게 반응하고 온갖 외교력, 경제력을 동원해서 저지한다. 그리고 서울 일본대사관 앞의 소녀상은 어떤 방식으로든 철거하려 한다.

오죽하면 한일 협상 테이블에서 소녀상 철거를 조건으로 10억 엔을 제시했을까요. 일본의 고위 관료는 한일 합의 이후에 “(재단이 설립돼) 설립기념식을 하는 날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 위안부 소녀상이 그대로 남아있거나, 거기서 집회를 하는 것은 우리로서는 상상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111쪽)

해외에 첫 번째로 세워진 미국 캘리포니아 글렌데일의 소녀상을 철거하기 위한 작업을 미국 내의 일본인들이 끈질기게 벌이고 있다. 이들은 소녀상이 세워지기 전에도 조직적으로 반대했는데, 소녀상이 세워진 후에도 ‘인종문제’ ‘지역갈등’ 등의 이유를 내세우며 철거운동을 하고 있다.

너무 민족주의적이지 않는냐?

소녀상 작품을 둘러싼 몇 가지 논쟁도 있다. 그 중의 하나는 너무 민족주의적인 작품 아니냐는 문제제기이다. 이때의 ‘민족적’이란 말은 구태의연하거나 좀 낡고 오래된 느낌을 준다는 의미일 것이다 이에 관해 작가는 “결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소녀상이 민족적인 작품인 것 맞습니다.”라고 말한다.

평화의 소녀상에 담긴 바는 일본이 우리 민족을 침략함으로 생긴 민족 문제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일본 제국주의 시기에 일어난 한민족 수난의 문제이고, 이 민족문제는 아직도 후속 처리가 끝나지 않은 역사적 사건입니다. (144쪽)

그런 면에서 〈평화의 소녀상〉은 민족적인 표현을 취하고 있지만 더불어 인류의 보편적인 인권문제를 담고 있음을 강조한다. 작가는 또한 이 작품은 인륜에 반하는 일본의 미성년 성범죄, 전시 여성인권 유린을 고발하고 있으며, 가난하고 힘없는 식민지의 피지배자, 노동자와 농민의 딸만 끌려갔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말한다.

베트남 피에타상

김서경운성 작가는 올해에는 베트남 피에타 상을 만드는 작업에 집중했다. 한국군에 의해 학살당한 베트남 피해자를 위로하는 이 상징물의 이름은 ‘베트남 피에타’(엄마와 무명 아가상, 베트남어 이름은 ‘마지막 자장가’)이다. 부부 조각가는 2015∼2016년에 베트남 평화기행을 같이 다녀왔는데 그때 호치민의 전쟁박물관에서 한국군이 저지른 학살을 접하고 작품을 만들기로 마음먹었다.
2016년 4월에는 베트남 종전 41주년(4월 30일)에 즈음하여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회관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한베평화재단건립추진위원회(추진위원장 노화욱)가 재단 발족 기자회견을 했다.
올해 안에 베트남과 한국에서 동시에 세울 계획인데, 한국의 피에타 상은 제주도 강정마을에 세울 계획이라 한다.

기억과 약속을 위해 만들어진 책

이 책의 주제목을 〈빈 의자에 새긴 약속〉으로 정한 이는 김서경 작가다. 빈 의자는 1차적으로 돌아가신 할머니를 상징한다. 1991년 김학순 할머니의 세상을 향한 용감한 외침이 있은 뒤, 이백서른여덟 분의 할머니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로 등록했다. 2016년 7월 현재는 마흔 분의 할머니만 생존해있다. 세월이 흐르는 동안 많은 분들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생긴 자리에 ‘빈 의자’를 놓았다. 아쉽게도 그 빈자리는 앞으로 계속 늘어날 것이다. 김서경 작가는 빈 의자의 의미를 이렇게 쓰고 있다.

할머니들이, 소녀들이 만들어 놓은 빈자리
할머니와 소녀의 심장을 느끼며 바라보아야 하는 곳
할머니가 앉았던 곳, 그리고 우리가 함께해야 할 빈자리
우리 아이들의 평화로운 미래를 위해 앉아야 하는 약속의 자리
그 자리는 그런 빈자리입니다.(93쪽)

그리고 이 책의 1장(평화의 소녀상 작업과정과 상징이야기) 우측 페이지 밑에는 빈 의자에 꽃을 얹은 그림을 작게 그려 놓았다. 페이지가 넘어갈 때마다 의자 위의 꽃은 하나씩 늘어간다. 돌아가신 분들에게 바치는 꽃, 빈 의자에 바치는 약속의 꽃이 늘어났으면 하는 마음을 담았다.
이 책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의 삶을 기억하고, 그분들과의 약속을 지키려는 사람들이 보면 좋을 책이다. 소녀상을 세워 할머니를 추모하고 기억하려는 후손들이 두고두고 봐야 할 책이다.

중국, 북한, 일본에도 소녀상 세워지길 기대

이 책에는 국내 29곳의 소녀상과 해외 3곳의 소녀상의 사진과 설명이 담겨있다. 그런데 해가 갈수록 소녀상의 숫자는 늘어날 것이다. 1년 후 10년 후, 혹시라도 이 책의 개정판을 낼 경우 국내외 소녀상의 숫자가 몇 개로 되어 있을까? 어쩌면 50개, 100개의 소녀상으로 늘어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은 해외 소녀상은 미국과 캐나다에만 있지만, 앞으로는 중국과 북한에도 세워질 수도 있다. 작가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일본에 소녀상을 세우는 것이라 말한다.
정대협과 할머니들이 수요시위를 통해 일본 정부에 요구하는 일곱 가지는 전쟁범죄 인정, 진상규명, 공식사죄, 법적 배상, 전범자 처벌, 역사교과서 기록, 추모비와 사료관 건립이다. 만약 일본이 진심으로 사죄할 마음이 있다면, 오히려 앞장서서 소녀상이나 추모비를 일본에 건립해야 할 것이다. 그리해야 진정한 화해가 가능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