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역사이야기 (책소개)/7.독립운동이야기

간도특설대

동방박사님 2021. 12. 12.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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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간도특설대는 우리 현대사에서 대표적 치부의 하나다.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항일 무장 세력을 섬멸하기 위해 일제가 괴뢰국가인 만주국에서 소수의 일본인 장교를 제외하고는 전원 조선인만으로 구성한 부대다. 만주국 내 특수부대의 하나로, 1938년 관동군 통제 아래 창설됐다. 하지만 이런 개략적 사실조차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학계에서의 연구도 지지부진한 편이다. 몇 개의 단편적 논문이 나와 있는 정도다.

이 책은 ‘친일토벌부대’를 둘러싼 진상이 무엇이었는지 갈증을 느끼는 일반인을 위해 간도특설대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최초의 책이다. 또한 항일무장부대와 ‘친일토벌부대’의 2분법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한때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간도에 조선인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가 어떻게 등장해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더 넓은 시각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펼쳐 보인다.

목차

프롤로그

1장 1930년대 만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초대 해병대 사령관 신현준
이다 소학교와 일본인 국제주의자 전사들
박지영?박남표 부자
김동한과 간도협조회
반민생단 투쟁

2장 간도특설대 창설과 ‘토벌’ 그리고 …

간도특설대 창설과 모병
‘토벌’과 반토벌
투항, 배신, 변절의 계절

3장 간도특설대의 최후

간도특설대의 러허 성 이동과 철석부대
간도특설대의 최후
일제 유산 청산과 냉전의 장벽
간도특설대, 그 이후

에필로그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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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자 : 김효순
김효순은 1974년 서울대 정치학과를 나왔다. [동양통신] [경향신문]을 거쳐 [한겨레] 창간에 간여해 도쿄 특파원, 편집국장, 편집인을 지냈다. 2007년부터 취재 현장에서 대기자로 활동하다가 퇴직했고, ‘포럼 진실과 정의’ 공동대표 등을 맡고 있다. 한일 관계, 동아시아의 평화, 화해, 시민운동 등을 테마로 글을 쓰고 있으며, 역사에서 버림받은 사람들에 대해 관심이 많다. 무엇보다도 지리산과 가수 밥 말리, 임희숙을 좋아한다. 저서에 《역사가에게 묻다》(2011) 《나는 일본군, 인민군, 국군이었다》(2008) 《가까운 나라 모르는 나라》(1996)이 있다.
 

출판사 리뷰

1930년대, 한때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간도에
‘친일토벌부대’가 어떻게 등장해 활동할 수 있었을까


간도특설대는 우리 현대사에서 대표적 치부의 하나다. 간도특설대는 조선인 항일 무장 세력을 섬멸하기 위해 일제가 괴뢰국가인 만주국에서 소수의 일본인 장교를 제외하고는 전원 조선인만으로 구성한 부대다. 만주국 내 특수부대의 하나로, 1938년 관동군 통제 아래 창설됐다. 하지만 이런 개략적 사실조차 일반인들에게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학계에서의 연구도 지지부진한 편이다. 몇 개의 단편적 논문이 나와 있는 정도다.
일제의 앞잡이부대였던 간도특설대는 왜 이제까지 제대로 조명이 되지 않았을까? 자료 부족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사회가 친일파 청산문제를 제대로 마무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간도특설대가 ‘민족의 자랑’이었느니 ‘무적의 상승부대’였느니 하는 친일파의 일방적 주장이 앵무새처럼 되풀이되곤 했다.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근무했던 한 인사는 “일제 탄압하에서 조국 땅을 떠나 유서 깊은 만주에서 독립정신과 민족의식을 함양하며 무예를 연마했다”는 주장을 공공연히 펴기도 했다.

이 책은 ‘친일토벌부대’를 둘러싼 진상이 무엇이었는지 갈증을 느끼는 일반인을 위해 간도특설대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최초의 책이다. 또한 항일무장부대와 ‘친일토벌부대’의 2분법적 대립구도에서 벗어나 한때 독립운동의 성지였던 간도에 조선인으로 구성된 간도특설대가 어떻게 등장해 활동할 수 있었는지를 더 넓은 시각에서 틀에 얽매이지 않고 펼쳐 보인다.
간도특설대에 복무한 이들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그들을 뒤에서 부추기고 조종한 사람이나 세력은 누구였는지, 1930년대 파시즘과 군국주의에 대한 투쟁이 전 세계적 과제로 등장했을 때 그들이 선 자리는 어디였는지, 그들이 집요하게 말살하려 한 ‘공비’의 정체는 무엇이었는지, ‘공비’는 어떤 풍상을 겪었는지, 일제 패망으로 만주국이 붕괴된 후 서로 대립해서 싸우던 이들은 어떤 인생 유전을 겪었는지 그리고 특설대 간부였던 사람들이 한국 사회에서 어떻게 주역으로 자리 잡았는지를 담담하게 전달한다.

저자는 중국 옌볜조선족자치주에서 1950년대 간도특설대 복무자를 대상으로 조사해 정리한 문서를 비롯해 관동군헌병대, 노조에토벌대 자료는 물론이고 간도특설대 창설에 참여한 일본인 장교 고모리야 요시이치의 회고록, 만군에 근무했던 일본인들이 전후 남긴 희귀한 자료집 등을 치밀하게 활용해 간도특설대를 추적하고 있다.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근무한 한국인 가운데 현재 생존자는 백선엽 장군이 유일하다. 그는 국내에서 출간한 여러 종의 회고록에서 간도특설대 복무경력은 짤막하게 언급하면서 구체적 내용은 철저히 함구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낸 [대게릴라전] [젊은 장군의 조선전쟁]에서는 국내에서는 일체 발설하지 않고 있는 내용이 제법 들어가 있다. 예를 들어 백선엽은 ‘게릴라 소탕’ 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눈 내린 산길에서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게릴라를 며칠씩이나 매복해서 기다리는 것이라고 지적한 뒤 훈련이 철저하고 ‘사명감에 타오르는’ 부대가 아니면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가 말하는 사명감이란 과연 무엇인가? 저자는 백선엽 자신의 기술을 토대로 그의 이중적 자세를 추궁하고 있다. 동시에 일제 말기 그의 직속상관이었던 일본인의 증언을 토대로 그가 만군 헌병장교로 활동한 사실도 소개하고 있다.

1930년대 만주,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1930년대 만주는 항일 조선인의 해외 전초기지였다. 저자는 그곳을 거쳐 간, 또 어쩔 수없이 감내해야 했던 여러 인물의 다양한 삶을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는 유용한 창구로 삼았다. 초대 해병대 사령관인 신현준이 어떤 인생 유전을 거쳐 만주군 장교가 됐고, 간도특설대에 복무하게 됐는지를, 또 그가 특별히 위화감을 갖지 않을 수 있었던 시대적 배경이 펼쳐진다. 또한 육군 소장으로 예편한 박남표에게 그의 조부와 부친의 항일투쟁 경력이 장벽이 되었던, 수난의 가족사가 이어진다. 한편 천황제와 일본 파시즘에 정면으로 저항한 일본인의 일화도 소개한다. 탄약 10만 발을 항일 부대에 넘겨주고 자살한 일본군 병사 이다와〈간도 빨치산의 노래]를 남긴 반전시인 마키무라 고 이야기다.
김동한이 만든 친일 주구조직 간도협조회가 있었다. 상황에 따라 정보원, 밀정, 토벌대원의 역할을 수행한 이들에게 체포되거나 투항한 항일 부대원의 수는 최소한 2500명이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들의 잔혹한 활약과 더불어 조선인 혁명가가 중국인 공산주의자 또는 조선인 혁명가에 의해 무차별 살해되는 참극이 일어난다. 반만 항일투쟁을 벌인다고 하면서 어처구니없게도 일본의 특무조직이나 밀정이 아니라 조선인 항일 혁명가를 주요 투쟁 대상으로 삼은 치명적인 ‘민생단 사건’이 그 시대를 생생히 말해준다.

간도특설대 창설과 ‘토벌’ 그리고 …

간도특설대는 1938년 9월 만주국 치안부 산하 부대의 하나로 창설이 결정돼 이듬해 3월 정식으로 발족했다. 주요 임무는 항일 무장 세력의 소탕, 섬멸에 있었다고 봐야 한다. 당시 만주에서 항일 무장 세력의 핵심은 관동군과 만주국 치안기관이 말하는 ‘공비’, ‘토비’였다. 항일 진영 중에서도 간도 지역의 조선인을 중심으로 구성된 동북항일연군 2군이 출범한 것은 1936년 3월이고, 3년 뒤 간도특설대가 본격적으로 이들의 토벌에 나서게 된다.
저자는 간도특설대가 만군산하부대로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 또 일본인 장교와 조선인 장교는 어떤 사람들이었는지 그들이 남긴 기록을 토대로 꼼꼼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제 패망으로 해산되기까지 간도특설대에 입대한 사병 수는 2100명에 이른다. 간도특설대 복무 장교의 절반 정도는 일본인이고 나머지는 조선인 장교다. 크게 세 부류로, 펑톈 군관학교 출신, 신징 군관학교 출신, 그리고 특설대에 사병이나 하사관으로 입대해 단기 교육을 마치고 장교가 된 육군훈련학교 출신으로 나뉜다.
또한 만주국의 역사를 ‘토벌’과 ‘반토벌’의 기록이라고 하듯이, 저자는 쫓고 쫓기는 항일연군과 본격적으로 토벌에 나선 간도특설대 사이의 처철했던 투쟁 현장을 생생하게 복원하고 있다. 풀숲에 가려진 다샤허 전투 기념비를 둘러보고, 중국의 ‘항일영웅’ 양징위의 최후와 ‘동양귀’라고 불린 기시타니 류이치로를 통해 당시 상황을 입체적으로 들려준다. 특히 조선인 항일 혁명가에게 남은 길은 두 가지밖에 없었음을 얘기한다. 싸우다 죽든가 아니면 변절해서 목숨을 부지하든가, 만주의 무장투쟁을 둘러싼 환경은 그 정도로 엄혹했다. 그리하여 항일혁명에 몸담았던 많은 사람이 여러 이유로 변절, 투항해서 일제의 앞잡이가 됐음을.
한편 간도특설대는 1943년 말께 러허(열하)성으로 이동해 팔로군 등 항일부대 소탕에 투입됐으며 45년초에는 철석부대 산하로 편입됐다. 만군 정예부대로 편성된 철석부대 안에서도 간도특설대는 다른 만군 부대와 달리 정보 수집 기능을 강화해 토벌작전에 대대적으로 활용했다. 간도특설대에서 장교로 복무했던 한국인들이 후에 ‘공비 토벌’을 했을 뿐이라고 주장해도, 일제의 이이제이以夷制夷 전략에 철저하게 이용당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철석부대를 관할한 ‘북지北支특별경비대’의 사령관은 북지파견군 헌병대 사령관인 가토 하쿠지로加藤泊治郞 중장이었다. 그는 일본이 미국 하와이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 전쟁을 일으켰을 때 총리이자 육군대장이었던 도조 히데키東條英機의 심복이었다.
이후 소련 참전과 만주국 붕괴, 일본군 무장해제 그리고 철석부대의 붕괴가 이어졌다. 간도특설대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에도 일제의 항복 선언을 통보받지 못한 채 팔로군 토벌작업을 계속했다. 우스꽝스럽게도 특설부대에 일제의 항복 소식을 전해준 것은 팔로군이었다.
이 책은 특히 일제 패망 이후 간도특설대 복무 장교들의 다양한 귀환 경로를 추적하고 부대원들의 전후 행적, 하사관에서 출세한 사람들이 누구였는지 등을 자세하게 펼쳐 보인다. 이와 함께 한국전쟁 때 맹활약한 백선엽과 만군 시절 백선엽의 상관인 일본인들이 기억하는 백선엽 등을 중국과 일본에서 발굴해낸 자료를 토대로 기술하고 있다.


지금까지 왜 간도특설대는 드러나지 않았는가

우리 사회에서 간도특설대 문제가 그나마 일반의 관심을 끈 시점도 일제의 강제병합 100년을 맞은 2010년인 듯하다. 그전에도 이런저런 논란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해에는 한국전쟁 발발 60년과 겹쳐 군 일각에서 백선엽 장군을 원수로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일면서 관심이 증폭했기 때문이다.
간도특설대 출신 가운데 한국에서 장관, 군사령관, 고위관료 등으로 출세한 사람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 자발적으로 당시의 일을 고해한 사람은 없다. 게다가 함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전혀 앞뒤가 맞지 않는 말로 당시의 행적을 합리화한 사람도 있다.

그동안 일방적 주장이 엄밀한 검증 없이 그대로 받아들여진 데는 복잡한 국내외 정세가 작용했다. 일제가 패망한 뒤 우리 민족이 갈라져 독립된 통일국가를 세우지 못한 데다 냉전의 격화 속에 ‘반공’이 모든 가치를 압도해버렸기 때문이다. 따라서 시시비비를 논하려 하면 실상을 냉정하게 접근하기보다는 말꼬리잡기식 공방으로 흘러가기 일쑤였다. 지금까지 간도특설대가 역사적 청산 대상의 하나라는 공론조차 제대로 형성되지 않았던 셈이다.

간도특설대에 대한 학계의 연구 또한 지지부진하다. 한국뿐 아니라 중국, 일본에서도 본격적으로 연구된 적이 없다. 그런 탓인지 발굴된 자료가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다. 저자는 현재까지 드러난 간도특설대 관련 자료는 주로 중국에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특설부대의 작전일지 같은 1차 자료는 거의 없고, 옌볜 조선족자치주 차원에서 특설부대 복무자들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부대 조직, 구성원, 토벌 실태 등을 기록해놓은 것이 대부분이다. 이에 따라 중국 현지 취재와 함께 일본에 남아 있는 노조에 토벌대의 작전 명령 등 한·중·일의 각종 자료들을 수집, 발굴해 면밀하게 검토했다. 특히 백선엽이 간도특설대에 관해 얘기한 부분에서 국내 출판물과 일본 출판물 사이에 양이나 질적인 면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음을 밝혀냈다.

“일제의 폭압적 통치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항일의 잣대를 일률적으로 들이밀어서는 안 된다. 항일 행위는 당사자의 목숨은 말할 것도 없고 집안의 몰락을 초래했던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그런 고난의 길을 걷지 않았다고 모든 사람에게 따질 수는 없다. 그렇지만 항일운동의 반대쪽에 섰던 사람이 자신의 과거를 미화하고 정당화하는 파렴치한 짓은 결코 용납돼서는 안 된다. 어떤 경우에도 항일 무장부대와 간도특설대를 같은 반열에 놓고 논할 수는 없다. 간도특설대가 민족의 자랑거리였느니, 민중의 편이었느니 하는 새빨간 거짓말이 돌아다니게 해서는 안 된다.”_에필로그 중에서
 

추천평

만주에서 항일 무장세력 ‘소탕’ 임무를 맡은 특수부대로, 하사관 이하 사병 전원이 조선인으로 구성되어 일본 군인보다 더 철저하게 ‘황국 군인’이 되고자 했던 간도특설대는 그간 주목은 받았지만 알려진 사실이 너무 빈약했다.
이 책의 저자는 일본 중국 측의 여러 증언 등 새 자료를 찾아냈고, 특히 얼마 전 명예원수 추대 문제로 논란이 된 백선엽의 국내 회고록보다 일본에서 나온 회고록이 훨씬 상세하고 ‘긍지’에 차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역사서는 과거를 통해 현재를 집요하게 묻고 있다. 곳곳에서 간도특설대·군 인맥과 항일 무장세력·만주 빨치산을 극명히 대조시켜 군의 정체성을 묻고 있으며, 과거 청산이 현대사에서 어떠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를 묻고 있다.
대기자 출신답게 쉽게 재미나게 쓴 것도 이 책의 강점이다. 현장 취재감이 물씬 풍기고 까다로운 자료를 풀어썼다. 읽어감에 따라 진실이 점점 확연하게 드러나는 문장 구성법도 이 책에서 손을 못 떼게 한다.

서중석(역사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