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세계사 이해 (책소개)/1.세계사

전쟁의 세계사

동방박사님 2021. 12. 29. 0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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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지난 천년 동안 인류가 겪어온 전쟁의 역사를 다루면서 석궁에서 핵무기, 군산복합체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군사기술상의 변화를 서술하고 있다. 전쟁을 중심으로 세계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며, 오늘날 인류가 공멸의 위기에 직면하게 된 과정을 되돌아본다. 저자는 인간이 핵전쟁을 벌여 공멸하든가, 아니면 단일한 세계정부를 세워 일단 핵무기를 제거하고 최소한의 국지적인 전쟁만을 허용하던가 선택해야 한다고 말한다.

목차

머리말

1. 고대와 중세 초기의 전쟁과 사회

2. 중국 우위의 시대, 1000~1500년
중세 중국의 시장과 명령
중국 국경 밖에서의 시장의 활성화

3. 유럽에서의 전쟁이라는 비즈니스, 1000~1600년
북부 이탈리아에서의 전쟁 비즈니스의 선구
화약혁명과 대서양 연안 유럽의 발흥
시장이 주도권을 쥐다

4. 유럽 전쟁기술의 진보, 1600~1750년
지리적인 확산
군대에 대한 통제의 개선
유럽 각국 군대의 표준화와 준(準)고정화

5. 유럽의 관료화된 폭력, 시련을 맞다, 1700~1789년
변경지대의 확대로 인해 생겨난 불균형
의도적인 재편에서 생겨난 도전

6. 프랑스의 정치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이 군사에 미친 영향, 1789~1840년
인구압을 완화하는 프랑스의 방식
인구압을 완화하는 영국의 방식
전후의 안정, 1815~1840년

7. 전쟁의 초기 산업화, 1840~1884년
국가간의 상업적인 군비경쟁
새로운 패러다임, 프로이센식 전쟁
전지구적인 영향

8. 군사·산업 간 상호작용의 강화, 1884~1914년
영국의 전략적 우위의 붕괴
영국에서 출현한 군산복합체
해군 군비와 경제의 정치화
합리적 설계와 합리적 경영의 한계
국제적인 영향

9. 20세기의 두 세계대전
제1·2차 세계대전에서의 세력균형과 인구변화
제1차 세계대전기 경영의 변모: 첫 번째 국면, 1914~1916년
제1차 세계대전기 경영의 변모: 두 번째 국면, 1916~1918년
전간기의 반동과 제2차 세계대전기 '관리경제'로의 회귀

10. 1945년 이후, 군비경쟁과 명령경제의 시대

결론/ 지은이 주/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자 : 윌리엄 맥닐(William H. McNeill)
1917년 캐나다에서 태어났다. 유년시절 미국으로 이주하여 1934∼1939년에 시카고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했다. 코넬 대학 박사과정에 입학한 후 군에 입대하여 5년 동안 군복무를 하고 복학, 1947년에 박사학위(Ph.D)를 받았다. 이후 40년간(1947~1987) 시카고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했으며, 미국역사학회 회장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유럽 문화와 학문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인으로서는 ...
 
감수 : 이내주
1957년 충남 태안에서 태어났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서강대학교 대학원에서 영국사 전공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영국 서섹스 대학에서 영국현대사 전공으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저서로 『세계문화사』(공저)가 있고, 역서로 『세계 육군장교 교육』 『전쟁술』 『군수산업과 경제발전』 『진보와 보수의 영국사』 등이 있다. 현재 육군사관학교 사학과 정교수이다.
역자 : 신미원
1961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났다. 이화여자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10여 년 동안 출판사 편집자로 일했다. 저서로 『답사여행의 길잡이―전남』 『답사여행의 길잡이―충북』 등이 있고, 역서로 『세계 5대제국 흥망의 역사』 『명화를 보는 눈』 등이 있다. 현재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책 속으로

이번에 <전쟁의 세계사>(The Pursuit of Power)에서는 인간들 사이의 거시기생 패턴에 때때로 일어나는, 마찬가지로 갑작스러운 변화를 해명하려 한다. 인간이 상대해야 하는 여러 가지 미시기생생물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병원균이라면, 인간에게 유일하고 중요한 거시기생체는 다른 인간, 즉 폭력행위의 전문가로서 자기가 소비하는 식량이나 생활물자를 스스로 생산하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종류의 인간이다. 따라서 인간들 사이의 거시기생을 연구하려면 그 연구대상은 단연 군사조직이며, 거기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전사(戰士)들이 사용하는 다양한 장비의 변화이다. 전사의 무장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병원체의 돌연변이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즉 무장이 달라짐에 따라 새로운 지리적 공간을 착취할 수 있게 되거나 혹은 그때까지 숙주사회 내부에서 실력을 행사하는 데 걸림돌이 되었던 제약이 해소될 수도 있는 것이다.
--- 머리말 중에서
전쟁의 산업화라는 현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문명 자체만큼이나 오래되었다. 청동야금이 도입된 후로 무기와 갑옷을 제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기능을 지닌 직인이 불가결해졌기 때문이다. 더구나 청동은 원료를 구하기 어렵고 값이 비싸서 소수의 특권적인 전사계급만이 청동 무기와 갑옷 일체를 갖출 수 있었다. 그것은 청동야금 전문가가 생겨남에 따라 전쟁 전문가도 생겨났음을 뜻한다. 적어도 처음에는 전쟁 전문가만이 야금 전문가가 제작한 물건들을 거의 독점적으로 사용했다.

그렇지만 큰 하천 유역에 꽃핀 메소포타미아·이집트·인도·중국의 고대문명 중 어느 것도 '전쟁의 산업화'라는 말과 딱 들어맞지는 않는다. 첫 번째, 숙련된 직인이 만드는 청동제품 등의 소비자로서 신관(神官)과 사원이 전사나 사령관들과 경합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명기의 통치자들은 권력의 토대를 자신이 수행하는 군사적 역할보다 종교적 역할에 두는 경우가 많았다. 두 번째, 사회 전체적으로는 인구의 압도적 다수가 아직 농업생산자로 자신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는 것조차 버거워하고 있었다. 잉여생산이 매우 적었고 그에 따라 지배계급?신관이든 전사든 그 둘을 합쳐서든?의 수도, 직인의 수도 얼마 안되었다. 그 적은 직인들 중에서도 산업활동 종사자의 수는 훨씬 더 미미했다. 무기나 갑옷은 일단 거푸집에서 주조해내면 거의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었고 전투 중에 이가 빠지거나 우그러지더라도 잠깐 갈거나 두드리면 다시 쓸 수 있었다. 따라서 무기 직인의 수는 전사의 수보다 훨씬 적을 수밖에 없었다.
--- p.14
 

출판사 리뷰

중국 우위의 시대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를 아우르고 있지만 고대와 중세 초기는 간결하게 압축적으로 기술하고 서기 1000년 이후부터 집중적으로 다룬다. 맥닐이 인류역사의 획기적인 변화의 출발점을 중국의 송원대(宋元代)로 보는 이유는 구태의연한 상명하복의 행동양식이 아닌 시장가격의 변동에 따라 행동을 바꿔 나가는 '시장지향형 행동양식'이 역사상 처음으로 임계량을 넘어서 작용하기 시작한 때가 바로 이 시기였던 것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즉 세계사에서 근세는 중국 송원대에 싹텄고, 송원 두 나라가 견인차의 역할을 했다는 것이다. 특히 송조는 문관 중심의 국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무기 제작에 필요한 철을 공급하는 제철업과 시장경제의 발달이 뒷받침되었기에 100만의 군사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중국에서 시장경제의 발달은 지배계급인 사대부층이 상인의 치부(致富)에 반감을 가졌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서 한계에 도달했다. 반면 시장경제가 거침없이 발달한 지역은 여러 나라로 이루어진 유럽이었다. 유럽에서는 군주들이 세금을 부담하는 상인이나 직인이 경쟁국으로 도망가는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개인에게 무제한적인 자본축적을 허용했다.

유럽에서 전쟁이라는 비즈니스

중국에서는 상인뿐만 군인도 천대를 받았지만 유럽에서는 군인 역시 대접받는 존재였다. 유럽의 군인은 '전쟁기술'을 구사하는 전문직업인으로서 고용주인 군주와 거의 대등한 청부계약관계를 맺고 전장에서 독자적인 활약을 펼쳤다. 유럽에서 상인과 군인이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었던 것은 상호간의 관계가 없어서 그랬던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20세기 군산복합체의 전신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군상복합체'를 이루고 있었고, 유럽의 군주들은 경쟁국에 대항하려면 '군상복합체'에 의존하여 '상업화된 전쟁'을 벌이지 않을 수 없었다. 세율을 적정 수준으로 묶어 상인들이 기꺼이 세금을 내게 하고 그 세금으로 군사전문가를 고용하여 전쟁에 임하게 했으며, 군사전문가 휘하의 군인들은 자신이 받은 봉급을 민간에서 소비하여 민간경제를 자극했다. 이런 유효수요를 통해 경제가 더욱 활발해지면 그만큼 세수가 증가했고, 세수가 증가하면 군주는 다시 군사력을 강화해 나갔던 것이다. 유럽에서 시장경제의 급성장과 비유럽 세계에 대한 '전쟁기술'의 절대적 우위 확립은 결국 동전의 양면 같은 것이었다. 이탈리아에서 발생한 '군상복합체'는 17세기에 발렌슈타인의 보헤미아 및 구스타프 아돌프의 스웨덴 같은 후진지역에까지 보급되었고, 동시에 마우리츠는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군사훈련법을 고안했으며, 프랑스와 부르고뉴 공국에서는 공성포와 함재포 제작기술이 진일보함으로써 ‘상업화된 전쟁’의 위력은 점점 커졌다.

영국과 러시아의 급부상

유럽이 비유럽 세계에 군사적으로 압도적인 우위를 차지하게 되면서 유럽의 동서 양끝에 위치한 변경국가 러시아와 영국은 가장 큰 이득을 누리며 빠르게 강국으로 부상했다. 이어서 18세기 프랑스에서는 그리보발 같은 신세대 지성파 군인이 속속 등장하여 야포를 개발하고, 사단조직을 채택하고 평시에 군사작전계획을 입안해 두는 참모업무를 개설하는 등 군사적 변화를 주도했다. 이런 변화된 군사체계는 프랑스 혁명과 나폴레옹 전쟁의 기초가 되었다.

프랑스 혁명과 영국의 산업혁명

카르노와 나폴레옹은 18세기의 인구증가로 인해 농촌에서 흘러나온 혁명적 군중을 그리보발 시대에 거의 완성되어 있었던 시스템에 투입한 것에 불과했다. 한편 영국의 산업혁명은 군사적 수요의 도움을 받아 인구증가를 완전히 흡수했지만 나폴레옹 전쟁 이후의 군사기술은 오히려 예전으로 돌아가는 경향을 보였다. 아무튼 그 성과를 전쟁에 응용하는 일은 19세기 후반을 지나면서 현실화되었다.

전쟁의 산업화

19세기 후반에 영국 산업혁명의 성과는 마침내 '군산복합체'가 지배하는 '산업화된 전쟁'을 낳았다. 미국에서 개발된 선반기술에 의해 후장식 라이플총의 대량생산이 가능해지고, 그때까지 유럽 최강을 자랑하던 러시아 육군은 산업기술에서 뒤떨어짐으로써 크림 전쟁에서 패배를 맛보았다. 이 시대의 특징은 민간의 산업기술이 육해군의 조병창보다 앞서가고 있었다는 점이다. 크림 전쟁 중에 영국의 사업가 윌리엄 암스트롱은 민간기업의 제조기술을 무기생산에 응용하면 획기적인 신무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고 판단, 별 어려움 없이 후장식 강선포를 개발했다. 이것이 크루프사로 대표되는, 전세계를 고객으로 상대하는 근대 무기제조 비즈니스의 효시였다. 아군과 적군 모두 후장식 라이플총을 사용하는 새로운 전쟁은 사실 방어하는 쪽이 공격하는 쪽보다 훨씬 유리해지는 특성이 있었으며 이것은 미국 남북전쟁에서 예시되었다. 하지만 때마침 프로이센이 오스트리아와의 전쟁과 보불전쟁에서 신속한 승리를 거두자 신시대의 전쟁에 대한 잘못된 이미지가 퍼져나갔고 아울러 독일 참모본부는 실력 이상의 명성을 얻었다.

군사·산업간 상호작용의 강화

19세기 말 영국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해군 군비경쟁은 1906년 드레드노트급 전함의 출현으로 절정에 달했다. 하지만 민간에서 자발적으로 개발한 기술을 군사에 적용하는 패턴은 여기까지였다. 이후 이런 식으로는 군비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없었기 때문에 해군측이 실현하고자 하는 성능을 지정해서 민간 군수기업에 개발을 위탁하는 '관제(管制) 기술개발'의 시대가 도래했다. 이것은 20세기에 국가와 모든 민간기업 사이에 유착관계가 생겨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너무나도 빠르게 진행되는 기술진보 때문에, 장비 선정과 관련해서 해군수뇌부는 판단능력을 상실했고 군수기업도 납품가격을 얼마로 정해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으며, 정부 역시 점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해군 예산을 통제할 수 없어 누진소득세에서 새로운 재원을 마련해야 했다. 명령의 원리가 우위를 차지한 20세기의 '관리경제'는 바로 이 해군군비경쟁을 통해 마치 암세포처럼 19세기 자유주의 시장경제 시스템의 체내에 발생했던 것이다. 이후 각국의 관리경제는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서 전쟁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전 국민을 총동원하여 전시경제체제로 몰아넣었고, 전후에는 무한 군비경쟁을 벌이는 미소냉전시대로 이어졌다.

선택의 기로

오늘날 인류는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세계사를 돌이켜보면 이것은 너무나도 역설적인 결과였다. 인간은 매 순간 고비마다 끊임없이 합리성을 추구했다. 시장이 발달한 것도, 국민국가를 만든 것도, 전쟁을 벌인 것도, 혁명을 한 것도, 인간으로서는 최선을 다한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난 천년 동안 인간의 합리적인 노력은 엄청나게 비합리적인 결과를 가져왔다. 과학과 문명이 발달할수록, 즉 합리성을 더 치밀하게 추구할수록 인간은 감당하기 힘든 결과에 직면했다. 이제 인류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맥닐은 실현가능성 여부를 떠나서 앞으로 인간의 선택은 둘 중 하나라고 말한다. 핵전쟁을 벌여 공멸하든가, 아니면 단일한 세계정부를 세워 일단 핵무기를 제거하고 최소한의 국지적인 전쟁만을 허용하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