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1.서양고전문학

43.분노의 포도 (존 스타인백)

동방박사님 2022. 1. 1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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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미국의 현대 서사시! 미국 최대의 프로문학이며 예술 작품

이 작품은 구체적인 체험과 조사를 토대로 탄생했다. 소설 속에서 ‘오키’라고 불린 이주민을 낳게 한 1930년대의 특유한 역사적 사실과 그 시대의 독특한 분위기가 상세히 묘사되어 있다. 1930년대는 1928년 경제공황의 뒤를 이어 세계적으로 대불황이 군림하는 시기로 많은 은행과 공장이 심각한 영향을 받아 문을 닫는 형편이었으며, 실업자가 전 미국에 넘쳤다

시대 풍조와 분위기 속에서 쓰인 『분노의 포도』에서 스타인벡의 “백만 에이커를 가진 한 사람의 대지주를 위하여 10만 명이 굶주리고 있었다.” 라는 말은 저자의 ‘분노’를 실감케 한다. 산 빈민에게서 프로 문학이 필연적으로 생겨나는 것인데 이 책에는 울고, 웃고, 사람을 죽이고, 서로 돕는 인간미가 풍부한, 현실적으로 움직이는 빈민이 담겨있다.

저자 스타인벡의 소설 중 사회주의적 성향이 가장 짙은 작품이며, 출판되자마자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켜 1940년 존포드 감독에 의하여 영화화되기도 하였다. 미국 사회 전반의 움직임을 간결하게 표현하고 포관적인 시야에서 농민의 생활을 극명하게 묘사하였으므로 고난을 비롯한 인간미는 물론, 예술성 또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목차

분노의 포도
작품 해설
스타인벡 연보

저자 소개

저 : 존 스타인벡 (John E. Steinbeck, John Ernst Steinbeck Jr.)
 
이른바 로스트 제너레이션(Lost Generation)을 이은 30년대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대표하는 작가로, 사회의식이 강렬한 작품과 온화한 휴머니즘이 넘치는 작품을 썼다. 미국 캘리포니아주 설리너스에서 출생, 1962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였다. 군청의 출납관리였던 독일계 아버지와 초등학교 교원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가정이 어려워 고등학교 시절부터 농장일을 거드는 등 고학으로 스탠퍼드대학교 생물학과에 진...
 

책 속으로

대공황 시대를 그린 사회주의 리얼리즘 문학
배고파 가만히 있지 못하는 사람들이 험한 산을 넘어 밀려와서 개미 떼처럼 안절부절못하며 일자리를 찾아 뛰어다녔다. 들어 올리는 일, 미는 일, 끄는 일, 따는 일, 자르는 일. 양식을 얻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아무리 무거운 짐이라도 좋다. 자식들은 배를 곯고 있다. 우리들은 살 장소가 없다. 개미처럼 헐레벌떡 일자리를 찾아, 먹을 것을 찾아, 무엇보다도 우선 땅을 손에 넣기 위해서 허둥대고 있는 것이다. (…) 사람들이 산더미처럼 버려진 오렌지를 주우러 털털거리는 차를 몰고 오지만 거기엔 석유가 뿌려져 있다. 사람들은 우두커니 서서 감자가 떠내려가는 것을 지켜본다. 구덩이 속에서 죽어 생석회가 뿌려지는 돼지들의 비명을 들어야 하고, 썩어 문드러져 물이 흘러나오는 오렌지의 산을 지켜본다. 사람들의 눈에 패배의 빛이 떠오르고, 굶주린 사람들의 눈에 분노가 서린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분노의 포도가 한가득 가지가 휘게 무르익어간다. 수확의 때를 향하여 알알이 더욱 무르익어간다.
---p.본문중에서
 
 

분노의 포도 서평

맨 처음 분노의 포도가 선정된 후, 사실 처음에는 양이 많아 부담스러웠다. 얼마나 많은 내용이 있길래 600페이지가 넘는다는 말인가.

일단 물릴 수도 없기 때문에 책을 구매하였고, 어떠한 내용일지 책을 읽기 전에 아주 잠깐 상상을 해보았다. 포도가 분노한다는 것인지? 아니면 포도로 인해 분노가 된다는 것인지? 그것도 아니라면 어떤 사건을 포도에 빗대어 분노를 표현한 것일까

책을 다 읽고 나서 저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어하는지 100%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어느 정도의 맥락은 생각할 수 있었다.

<분노의 포도>에 대해서 간단히 이야기 하자면 소설 속 사람들은 썩어가는 과일과 땅에 묻히는 돼지, 버려지는 감자를 보면서 분노한다. 사람들의 눈에는 분노가 맺혀 있다. 알알이 맺히는 그것을 포도로 형상화 하였고 그를 <분노의 포도>라 명명한 것이라 생각된다.

그렇다면 도대체 이러한 상황이 왜 일어난 것일까? 한쪽에서는 먹을 것이 넘쳐나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먹을 수도 없다. 이런 부조리가 왜 일어난 것일까

책에서는 그 시작을 트랙터로 알리고 있었다. TV에서나 아니면 가까운 주말농장이 있다면 자주 볼 수 있는 트랙터는 누구나 알 듯 생산 수단이다. 그러나 이 생산 수단은 어디까지나 은행과 회사의 소유이지 농민들의 소유가 아니다. 그래서 땅에서 직접 밭을 일구던 조드 가 식구들도 그 변화에 밀려 떠날 수 밖에 없던 것이었다. 결국 삶의 터전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가재도구를 팔고 얼마 안되는 돈으로 고물 덩어리 차량을 비싼 값에 사 새로운 터전으로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떠나는 것이다.

이렇게 각자 저마다의 생존만을 위해 살아가는 상황이 나타난다. 소설 속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하여 누구보다도 치열하게 살아간다. 트랙터 운전자는 가족을 위해서 다른 사람의 농장을 부순다. 농민들은 삶의 터전을 지키기 위해서 총을 겨누며, 은행에서는 파산하기 않으려, 지주는 농장에서 최대한의 이익을 가지고 트랙터를 도입한다. 기존 캘리포니아 사람들은 자신의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 오키를 멸시한다. 이들은 모두 스스로들의 생존을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물고 있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자신만의 생존이라는 울타리에 갇힐 수 밖에 없던 것이 아닐까. 도구의 진화로 인하여 사회가 점점 발달하자 만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저자는 도구의 진화, 자본주의의 도입을 비판하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농산물의 발전을 위한 연구나 좀더 나은 세상을 위한 시도들을 환영하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하여 발생된 나만 잘되면 된다는 생각이, 무조건 효율성만 따지는 생각들이 이런 상황을 만든 것에 대해 분노하고 있던 것 같다.) 자본주의라는 도구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자본화 하여 자본과 관계 맺기를 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못하는 것은 분명히 남아 있다. 우리는 자본이 하지 못하는 것을 발견할 수 있는 존재이고 자본이 만들어내지 못하는 가치를 삶에서 실천할 수 있는 주체가 되어야한다고 말하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또한 주인공인 톰의 어머니의 모습이 기억이 난다. 그녀는 삶의 길에서 좌절하지 않는다. 삶이 어렵다고 하더라도 인간의 가치를 저버리려고 하지 않는다. 먹을 것이 없어도 집을 방문한 사람에게 먹을 것을 내주며 소신을 가지고 일을 처리한다. 어머니는 길 가는 사람을 태워주고 음식, 잠자리를 제공해주는 것은 인간이면 누구나 해야할 일이라고 생각한다. 가족이 조금 손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인간을 인간으로서 대한다. 이는 짐 케이시가 말하는 이론적인 사랑을 실제 행동하는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뿐만 아니라 소설 속 이주민들도 서로가 서로를 돕는다.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서로 돕는다. 공동체의 이익을 위하면 자신의 이익이 줄어들더라도 그들은 변함없이 그렇게 살아간다. 사람이 사람을 위할 때 생기는 힘과 그 가치의 중요성을 그들은 이야기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그들을 바라보면서 가족을 위해서 헌신하시는 우리 부모님의 모습과 겹쳐 보였다. 생계를 위해 돈 버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가족과 함께 살아가는 그것이 얼마나 힘든 일이었을까? 이제 사회인이 되어 일과 사회 그 안에서 힘들다고 종종 투정을 부린 지난 날이 떠올라 살짝 부끄러울 지경이다.

 

책을 통해서 알지 않더라도 우리라는 관계가 없는 나 혼자의 삶은 매우 힘든 것을 알고 있다. 남아 도는 것을 남에게 주지 않고 자신만의 이익 창출을 위해 움직인다면 그 끝에는 어디로 갈까. 느낌이지만 아마 좋은 엔딩은 아닐 것 같다. 나와 너의 관계에서 우리를 느끼기는 쉽지 않지만 내가 우리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조금씩 생각하고 또 실천해간다면 아마 우리는 이미 좋은 엔딩으로 가고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