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1.서양고전문학

67.에밀 (장자크 루소)

동방박사님 2022. 1. 12. 07: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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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정확한 번역과 상세한 해설로 만나는
교육학 대표 고전 『에밀』


교육학 고전이자 장자크 루소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저작”으로 꼽은 『에밀』을 책세상 ‘고전의 세계’ 시리즈로 출간한다. “모든 것은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서 속수무책 나빠진다”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작품은 지금도 전 세계에서 교육학 연구자와 예비 교사는 물론, 올바른 자녀 교육을 고민하는 부모에게 널리 읽히는 교육론의 핵심 저작이다.

『에밀』의 원전은 총 5권 900여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책이어서, 학생과 일반 독자가 전체를 읽기 쉽지 않다. 책세상 ‘고전의 세계’ 시리즈로 출간한 이 번역본은 문고본 196페이지다. 『에밀』의 핵심 사상을 담은 머리말과 1장을 번역해 엮고, 2~5장의 내용은 ‘해제’에 요약해두어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기획했다.

한편 이 책은 ‘얇지만 정확하게’라는 ‘고전의 세계’ 시리즈의 기조를 따른다. 정본으로 여겨지는 플레야드 판(版)을 저본으로 삼고, 프랑스 교육이론을 활발하게 소개해온 황성원 교수와 루소, 몽테뉴 등 프랑스 고전을 국내에 알려온 고봉만 교수가 공동으로 번역했다. 상세한 해제, 옮긴이 주가 ‘고전 읽는 재미’를 준다.

목차

들어가는 말 | 황성원·고봉만

에밀
- 머리말
- 제1권

해제
-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 바라보아야 한다 | 황성원·고봉만


더 읽어야 할 자료들
옮긴이에 대하여

 

 

저자 소개 

저 : 장 자크 루소 (Jean-Jacques Rousseau)
 
18세기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소설가. 1712년 '유럽의 가장 작은 공화국’ 제네바의 시계 수리공 집안에서 태어난 루소는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 손에서 자랐다. 10살이 되던 해 아버지가 칼부림 사건으로 도피한 후부터는 외숙부 밑에서 자랐다. 그는 외사촌과 함께 한 목사의 집에서 라틴어를 비롯한 여러 교육을 받았으나 엄격하고 인위적인 교육 방법은 그에게 맞지 않았다. 그 후 법원 서기의...

역 : 황성원

 
이화여자대학교 사범대학 불어교육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루앙 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건양대학교 아동교육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루소의 교육철학에 영향을 받은 셀레스탱 프레네와 로제 쿠지네의 교육이론과 교육실천에 깊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프랑스의 육아와 교육에 관한 최신 이론을 활발하게 소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표현, 소통, 협력의 교육, 프레네 교육학』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
 
역 : 고봉만
 
성균관대학교 불어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마르크 블로크 대학(스트라스부르 2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로 재직하며 색채와 상징, 중세 고딕 성당 등에 대한 최신 연구를 번역·소개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공저서로 『문장과 함께하는 유럽사 산책』(2019)이 있고, 역서로 『멋쟁이 남자들의 이야기, 댄디즘』, 『마르탱 게르의 귀향』(2018), 『파랑의 역사』(2017)...
 

책 속으로

루소는 자신의 모든 저서에 들어 있는 근본 원리가 『에밀』에 가장 잘 드러난다고 생각했다. 그 원리란 바로 “인간은 본원적으로 선하다”라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책이 신이 처음 만든 아담처럼 마음이 순수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 p.8

후대의 많은 인물이 『에밀』의 사상에 흠뻑 빠져들었다. 평생 시계처럼 날마다 같은 시각에 같은 장소를 산책하던 칸트가 딱 한 번 산책을 거른 적이 있었는데, 그날이 바로 『에밀』을 읽던 날이었다고 한다. 괴테는 “호주머니에는 언제나 호메로스를, 그리고 머리에는 언제나 『에밀』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 나폴레옹 또한 자신의 진중문고에 『에밀』을 꼭 챙겨 다녔다고 한다.
--- p.9

우리는 무르고 약하게 태어나기 때문에 힘이 필요하고,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기 때문에 도움이 필요하며, 어리석은 채로 태어나기 때문에 판단력이 필요하다. 우리는 태어날 때 갖지 못했지만 어른이 되었을 때 필요한 모든 것을 교육에서 얻는다.
--- p.35

자연의 질서 속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기 때문에 모든 인간의 마땅한 본분은 바로 인간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으로서 훌륭한 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인간과 관련된 어떤 일이든 제대로 이행하지 못할 리 없다. 내 제자가 군인이 되든 성직자나 법률가가 되든 그런 것은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다. 자연은 그가 부모의 직업을 따르기에 앞서 먼저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 것을 요구한다.
--- p.44

인간은 살아가는 내내 고통을 겪을 운명이다.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려는 노력 그 자체가 고통과 결부되어 있다. 유년기에 육체적인 고통만 겪는 사람은 행복하다. 육체적 고통은 다른 고통에 비하면 훨씬 덜 가혹하고 훨씬 덜 괴로우며, 그 때문에 목숨을 포기하는 경우도 훨씬 드물다. 통풍의 고통 때문에 자살하는 사람은 없다. 인간을 절망하게 만드는 것은 영혼의 고통뿐이다. 우리는 아이들의 처지를 동정하는데, 정작 동정해야 할 것은 우리 어른들의 처지다. 우리의 가장 큰 고통은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한다.
--- p.61

우리는 배울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태어난다. 그러나 갓 태어났을 때는 아무것도 모르고 아무것도 인식하지 못한다. 정신은 불완전하고 미완성인 신체 기관에 매여 있어 자기 존재에 대한 의식조차 없다. 갓 태어난 아이의 움직임이나 울음소리는 순전히 기계적인 것으로, 인식과 의지가 담겨 있지 않다.
--- p.94

그러나 내가 보기에 이런 문제점은 앞서 말한 것들에 비해 훨씬 덜 해롭다. 대화의 제1 원칙은 자신의 말을 상대가 알아듣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말하는 사람이 범하는 가장 큰 잘못은 상대에게 들리지 않게 말하는 것이다. 억양이 전혀 없다고 자랑하는 것은 문장에서 격조와 힘을 제거했다고 자랑하는 것과 다름없다. 억양은 대화의 혼이다. 억양은 대화에 감정과 진실성을 부여한다. 억양은 말보다 거짓이나 숨김이 없다. 교육을 잘 받은 사람들이 억양을 그토록 두려워하는 것은 아마도 그 때문일 것이다.
--- p.124

루소는 『에밀』에서 “아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학문은 오직 인간의 의무에 대한 것이다”(E, 266)라고 말한다. 이는 무엇보다 인간이 인간다울 수 있게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루소는 기존의 교육이 변호사, 의사 혹은 기술자 등 미래의 직업인 양성에만 목적을 둔 채 직업에 대한 지식과 기술의 전달에만 가치를 둘 뿐 인간다운 인간의 형성에는 실패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또한 “인간은 교육을 통해 만들어”지며, 인간을 인간답게 기르는 것이 교육의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 도대체 루소가 교육을 통해 기르려고 한 인간은 구체적으로 어떤 인간을 말하는 것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자연인l’homme naturel’이다.
--- p.133
 

출판사 리뷰

“조물주의 손에서 나온 모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온전한 반면,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서 속수무책 나빠진다”


루소는 자연주의 교육론을 주창한 인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루소는 아이의 교사에게 이렇게 주문한다. “젊은 선생이여, 나는 그대에게 한 가지 어려운 기술을 간곡히 권한다. 그것은 훈계하지 않고 지도하는 일이며, 아무것도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다 하는 일이다.” 이는 다음과 같은 뜻이다. “그를 자유롭게 혼자 내버려두어라.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그가 무엇을 하는지 그저 바라보라. 그리고 그가 무슨 일을 하고 어떻게 처신하는지를 관찰하라.”

한편 루소의 교육관은 단순히 아이를 자연의 본성에 따르게 하는 것만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다. 루소는 우리가 아이를 “인류에 대해서는 인간으로, 사회에 대해서는 사회인으로, 국가에 대해서는 시민으로 만들어야 할 의무가 있다”고 말한다. 『에밀』에는 ‘국가’, ‘조국’ 등의 단어가 여러 차례 등장하고, 아이가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말’을 어떻게 익혀야 하는지를 다룬다. 루소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우리가 가르쳐야 할 것은 “자신과 같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방법”이다.

어린아이는 어린아이로 바라보아야 한다

『에밀』은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촉구하는 저작이면서, 동시에 사회에 기여하는 시민을 양성하는 방법을 다룬 교육론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점에서 출산율이 급감하고 아이 한 명만 낳아도 “애국한다”는 소리를 듣는 시대에 가장 적확한 고전으로 읽힐 것이다.

루소는 『에밀』의 머리말 앞에 로마 사상가 세네카의 다음 문장을 옮겨두었다. “우리가 앓고 있는 병은 치유할 수 있다. 만약 병이 낫기를 원한다면, 자연은 바르게 행동하도록 태어난 우리에게 도움의 손길을 뻗을 것이다.” 루소 자신은 『에밀』에서 이렇게 썼다. “인간을 사회적인 존재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나약함이다. 우리의 마음을 인간애로 이끄는 것은 우리들 공통의 비참함이다. (…) 그처럼 우리 자신의 나약함에서 비로소 우리의 덧없는 행복이 생겨난다.”
 

에밀의 구상
루소는 독학과 자습으로 교양을 쌓았을 뿐 전혀 교육을 받은 적이 없었다. 그런 그가 『에밀』을 썼다는 것은 특이하고 역설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의 아버지는 기껏해야 어린 루소에게 공상적인 연애소설을 읽어주는 것으로 그의 역할을 다 할 뿐이었다. 그의 청년 시절에는 바랑 부인을 비롯한 몇 사람의 좋은 지도자나 조언자가 있긴 했으나, 그들은 그의 인격도야에 작은 도움을 주었을 따름이다. 이런 루소가 가정교사를 함으로써 느꼈던 참담한 경험과 현장 교육의 실천자로서의 비참함이 교육에 대한 절실한 소망을 품게 한 것이다.

또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은, 그 유명한 기아(棄兒) 사건이다. 루소는 당시 잠정적인 반려자였던 떼레즈 르 봐쇠르와의 사이에 다섯 아이를 낳았으나 차례차례로 고아원으로 보냈다. 그것은, 무지하고 탐욕스러운 테레즈의 가족에게 더 이상 신세를 지기가 괴로웠던 탓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저작가로서의 불타는 그의 야망 때문이었다. 이를 두고 어느 연구가는 ‘천재의 포악한 에고이즘’ 이라고도 하였다. 이에 루소는 『에밀』(제 l편)에서 이런 말로 자신의 심정을 피력하였다.

‘아버지의 의무를 다할 수 없는 자는 아버지가 될 권리가 없다. 빈곤도, 일도, 세상에 대한 생각도, 자기 아이들을 자기 손으로 키워야 할 의무에서 모면할 수 있는 이유가 될 수 없다...누구이건 아이를 두고 이처럼 신성한 의무를 게을리 하는 자에게 예고해 둔다. 그 사람은 언제까지나 자기 과실에 대한 후회의 눈물을 흘릴망정 절대로 위로받을 수는 없을 것이다.’

이 회한과 속죄의 의도가 무시당해서는 안된다. 『에밀』 속에 나타나는 독자들의 가슴에 감동적으로 울리는 아이들에 대한 찬가, 아이들의 행복에 대한 기원에는 작자의 이런 생각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적 너무나 인간적 자연교육
자연 교육을 함에 있어서는 아이들의 본성을 알아야 한다고 루소는 강조한다. 즉 아이들의 독자적 존재를 인정하고 아이를 아이로 취급하는 방법을 주장하였다. 『에밀』속에서는 이에 대한 잠언들이 수없이 발견된다. ‘어른 속에서 어른을, 아이들 속에서 아이들을 바라보아야 한다... 자연은 아이들이 어른이 되기 전에 아이들이기를 원한다. 만일 우리가 이 순서를 뒤바꾸려고 한다면 성숙미가 느껴지지 않는, 곧 썩어버리는 조숙된 과일을 배출할 뿐이다.’

이 말의 뜻은 당시의 귀족들이 가정교사나 댄스교사, 또는 음악가 등을 고용하여 아이들을 사교계의 경박한 잔재주꾼이나, 난 체하는 멋쟁이 귀부인들의 되바라진 미세화상(微細畵像)으로 만들어 내는 데 열중했던 일을 의미하는 것이다.

전인교육 맞춤교육, 그리고 정념교육 실천하라!
유년기에는 신체의 성장을 위해 신체의 자유를 구속하지 않는 양육을 해야 한다. 그리고 5세부터 12세까지는 감관이 발달하는 시기이므로 신체와 함께 감관을 훈련시킨다. 15세까지는 이성과 감수성이 생기는 시기이므로 지능과 기술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20살까지는 도덕적인 감정을 이해해야 하는 시기이므로 도덕과 종교교육을 한다. 그 다음시기에는 결혼을 하고 완전한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시기이다. 이때부터는 인간으로서의 책임과 의무에 대한 교육을 해야 한다. 이처럼 시기별로 교육 목표가 다르므로 교육방법도 달라져야 한다고 그는 말하고 있다.

또 전인교육으로서의 의미에서『에밀』은 교양 소설풍의 교육론을 함유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르네상스의 몽테뉴나 라블레에서 17세기까지의 로크, 페늘롱, 거기에 동시대의 콩디야크 등의 근대 인간관의 계보에 연결되었으며, 특히 몽테뉴와 로크에게 깊은 혈연관계를 맺어 주고 있다. 그것은 루소가 지육(智育) 편중을 피하고 전체적인 인간 교육, 체육, 품성 도야를 포함하는 폭넓은 교육을 지향하는 교육관을 말하는 것이다.

또 루소 교육론에서는 정념교육이 중요시되고 있다. 그것은 자기애와 이기심, 자존심을 엄격히 구별하여 유아에 나타나는 건전한 자기감정인 자기애가 욕구의 증대에 따라, 또한 그것을 만족시키는 능력에 따라 차차로 타락한 사회적 감정인 이기심으로 변질해 감을 방지하도록 권하는 것이다. 이것은 그의 독자적인 도덕 교육론이다.

뿐만 아니라 『에밀』에는 그 시대에 만연하고 있던 공공교육과 귀족교육을 비판하고 새로운 교육을 실시하자는 혁명적인 내용이 들어 있다. 이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교육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