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3.한국문학

홀림 (1999: 성석제)

동방박사님 2022. 2. 13. 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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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특유의 해학과 풍자, 능청스런 과장과 익살로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 성석제는 이 소설집에서도 예전의 그 날렵한 입담과 재능을 한껏 과시하고 있다. 인생의 축소판이라 할 춤판 노름판 술판 등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사의 희극과 비극, 다양한 인간의 속성들을 거침없는 문체와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로 경쾌하게 풀어놓았다.

목차

1. 꽃 피우는시간
2. 해방
3. 소설 쓰는 인간
4. 홀림
5. 협죽도 그늘 아래
6. 붐빔과 텅 빔
7. 방
8. 이무기
9. 해설. 소피스트의 세계 - 놀이와 해방의 산문. 김만수
10. 작가의 말
 

저자 소개

저 : 성석제 (成碩濟)
 
1960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났으며, 연세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했다. 1986년에 [문학사상]에 시 「유리닦는 사람」을, 1995년 [문학동네] 여름호에 단편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를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소설가로서의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평론가 우찬제는 그를 거짓과 참, 상상과 실제, 농담과 진담, 과거와 현재 사이의 경계선을 미묘하게 넘나드는 개성적인 이야기꾼이며, 현실의 온갖 고통과 참을 수 없는 ...
 

YES24 리뷰

불혹을 앞둔 발랄한 영혼의 모색
99/12/05 조창완(chogaci@hitel.net)
난 성석제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우선 그는 대단히 재미있는 방면 대단히 냉소적인 느낌을 갖고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난 냉소적인 사람보다는 차라리 과격한 왈패가 상대하기 편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전에 어떤 계기로 인터뷰를 요청하려 통화했을 때, 그가 전화를 받는 모습은 내 선입견을 더 강하게 했다. 물론 그런 느낌을 그가 만들어놓은 텍스트에서도 받는다.(뒤에 부연 설명) 하지만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난 선입견에 대해서 항상 자유스러워지려 노력한다.

하지만 난 어찌보면 그를 대단히 귀히 여긴다. 어떤 계기가 있어 내 인생에서 인상 깊은 책을 쓸데 성석제의 '궁전의 새'를 올려두었다. 그의 이번 책을 다 읽고 후기를 읽고 난후 그가 지금 죽산에 산다는 말을 듣고, 금세 마음이 환해졌다. 죽산은 춤꾼 홍신자씨가 사는 안성의 한 지역이다. 그도 많이 자유스러워지려 한가도 싶고, 그도 냉소의 무게를 덜어내고, 겸애를 배우는 중이 아닌가하는 작은 안도였다.

이번 소설집 '홀림'은 앞에서 말한 그의 이야기꾼 재질이 그대로 들어있는 소설집이다. 글이라는 것이 생각이나 지향을 내포하고 있는 만큼 이번 책에서도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다. 이번 소설집에서 두드러진 것은 '대역'해보기가 아닌가 싶다. '연기자'들에게 연기자가 좋은 점이 무엇이냐고 물어보면 자시는 왕에서 거지까지 갖가지 삶을 살아볼 수 있다는 말을 한다. 작가도 자기 의지만 있다면 그 삶들을 살아보고, 그걸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다.

성석제가 이번에 선택한 '인생극장'은 도박꾼, 알콜 중독자, 제비다. 평자 김만수가 읽어내듯이 인생이란 왕이든, 내시든, 무수리든, 제비 든 나름대로의 길이 있고, 그 길에는 하나의 '도'가 있다. 흔히들 장인정신을 말할 때 사용하는 '도'라는 것을 좀더 저급한(단순히 사회적 가치기준으로만) 단계까지 끌어내려도 이치는 통한다. 왕으로 살든, 제비로 살든 나중에 아 아직도 더 갖고 싶은 것이 많은데 하면 탐욕적인 삶으로 살았고, 아! 아직도 베풀 것이 많은데 하면 여유로운 삶을 산 것이다.

따라서 작가가 적지 않은 취재를 통해 살아본 듯한 이 세가지 인생에서 독자들은 작가가 던지는 메시지들을 읽어낼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노름꾼은 남이 놀 때 같이 놀고 남이 칼을 갈면 같이 갈아준다. 세상에 리듬을 맞춘다. 이게 노는 것이고 아름답게 사는 것이다. 노름에도 도가 있고 아름다움이 있고 드라마가 있다.'(23p) 이 말은 잘 읽으면 노자의 '도가도이 비상도, 명가명이 비상명'도 되고, '금강경'도 되고, '율려'도 될 수 있다.
하지만 인생에서 모두가 석가가 되기 어렵듯이 세상을 뒹굴며 살아간다. 그 이치는 알고 보면 간단하다. 어찌보면 노름을 끊기 위해 손을 자른 후 목숨을 구하게 되는 다박사의 아버지(34P)처럼, '새옹지마'다. 이런 면에서 평자 김만수가 이것은 뭐를 의미하는 거다. 저것은 뭐를 의미하는 거다식으로 평론을 쓴 것은 독자들의 느낌을 형편없이 추락시킬 수 있는 여지가 있다.
'인생극장' 소설 세편(꽃피는 시간, 해방, 소설 쓰는 인간)은 성석제가 편한 화법으로 대리인생을 살아가며 그 결정이 무엇인가를 궁구하게 탐구해본 소설같다.

반면에 자전적 느낌으로 자신이 작가로의 길에 들게했던 매혹의 과정을 담은 '홀림'은 앞 모아놓은 소설들의 해설판 같다. 아니 그가 생산한 적지 않은 글들에게 대한 어미로서의 고별사인 것 같다.

수록 소설들 중에 앞에 위치한 소설들은 비교적 최근작이며, 이야기나 기법이 명료함에 반해, 뒤의 소설들은 그가 이전에 해오던 소설방식을 유지한 한 글이 많다. 앞에서 내가 성석제의 인상을 쓸 때, 말한 냉소적인 느낌은 이런 글들을 읽으면 더욱 강해진 느낌이다. 그것은 '궁전의 새'에서 이미 어릴적부터 세상의 이치를 일찌감치 깨달은 것처럼 보이던 아이의 시각과 유사하다. 군속으로 참전했다가 실종된 남편을 기다리는 여인을 그린 '협죽도 그늘아래'에서의 서늘함이나, 세상의 모든 것을 먼저 살다가 죽은 형을 기록한 '붐빔과 텅 빔', 반푼인 곽영출의 삶을 통해 생활을 그리고 있는 '이무기' 등은 그가 이전부터 상당히 많이 그려내던 알레고리 기법을 쓴 글들이다.

이 알레고리 소설들은 읽기에 따라 많은 의미부여도 할 수 있지만 나를 포함한 평범한 독자들에게는 편하지 않다. 물론 이런 글이 성석제의 가장 고유한(독특한) 느낌을 만드는 것이 사실이다. 다름 아니라 가벼운 터치를 통해 세상의 무거움을 조롱하고, 풍자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그의 기법은 깊은 내면을 전제한 진중한 작가들의 글쓰기와 남미작가 마르께스, 보루헤스 등을 중심으로 인정받고 있는 환상적 리얼리즘 작품들의 사이에서 이도저도 안되는 어중간한 입장이 될 수 있다.

어찌보면 앞의 작품 셋과 뒤의 작품들, 그리고 그가 책의 말미에 쓴 '작가의 말'을 읽고, 그가 새로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성석제는 타고 난 이야기 꾼이다. 또한 그는 적지 않은 신화적 상상력을 가지고 있다. 그런 능력들이 어우러저 그의 '불혹'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자못 궁금하다.
 

책 속으로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춤이 생계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 되자 내게는 이상한 감정이 찾아 들었다. 진정 춤은 무엇이고 위대한 제비는 뭔가. 진정한 내 인생의 목표는 무엇인가. 어느때부터는 혼자서 그런 질문을 뇌까리며 술잔을 기울이는 일이 잦아졌다. 모든 것이 시들해지고 일에도 의욕이 없어졌다.
--- p.113
'물론 나는 품격있는 중독자지. 잠에서 깨면 내가 중독자라는 걸 들키는 게 싫었어. 어, 물론 잠에서 깨면 곧 마셔야지. 그게 중독자의 본분 아니냐구. 일단 세수를 하고 면도를 깨끗이 하지. 슈퍼 주인들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들이냐, 그 사람들, 동네에 알코올 중독자가 누군지 다 알고 있어. 그래서 슈퍼에 가면 엉뚱한 걸 잔뜩 사지. 화장지. 라면. 식용유. 과일. 야채.이쑤시개. 건전지까지. 그리고 맨 아래에 살짝 사 홉들이 소주 두병을 끼워주는 거야. 그러면 슈퍼 주인이 내가 중독자인 걸 모르는 척 해주지.
--- p.75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건 춤판에서의 이야기다.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춤판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려고 한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해도 나는 아직 나이 오십도 먹지 않은 앞날이 창창한 사나이다. 은퇴하고 나서도 음악만 흘러나오면 발이 움직이는 걸 참느라 무진애를 쓴다.

내 딴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잊기 위해, 조용히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한동안 소설만 수백 권을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폼만 잡는 한심한 소설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
--- p.115
결혼 날짜 받아 놓은 순진한 내 동생 몸 망치고 단물 빨아먹고, 이제 어쩔겨!

내가 아무리 왕제비라 한들 왕제비 면허가 있는 것도 아니요, 면허가 있다 한들 사교 댄스의 황제가 변두리 여관에서 새파란 애와 재미를 보려다가 새카만 애들한테 잡혔다는 게 알려지면 그 순간부터 내 인생은 끝장이었다.

나는 애들이 시키는 대로 할 수 밖에 없었다. 말하기도 창피하다. 나는 알몸으로 엎드려 뻗쳐 같은, 군대 시절에도 받아보지 못한 온갖 기합을 다 받았고 통장을 압수당했으며 각서를 쓴 다음 수천만 원을 또 뜯겼다.

몽둥이찜질 안 당한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 덕분에 저당 잡혔던 집을 아예 넘기게 되었다. 거기서 비싼 세상 공부를 하고 깨닫게 된 진리가 있다. 마음먹고 계획적으로 덤벼들면, 아무리 날고 기는 왕제비라도 초짜 꽃뱀에게 당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천하에 없는 열녀라도 제비가 마음먹고 달려들면 무너지게 되어 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이건 춤판에서의 이야기다. 또 다행인지 불행인지 춤판은 인생의 축소판이다.

나는 지금 소설을 쓰려고 한다. 일선에서 물러났다고는 해도 나는 아직 나이 오십도 먹지 않은 앞날이 창창한 사나이다. 은퇴하고 나서도 음악만 흘러나오면 발이 움직이는 걸 참느라 무진애를 쓴다.

내 딴에는 이런저런 생각을 잊기 위해, 조용히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한동안 소설만 수백 권을 읽었다. 그런데 읽다 보니 아무것도 모르면서 세상을 다 산 것처럼 폼만 잡는 한심한 소설이 너무 많더라. 그래서 내가 직접 소설을 써야겠다고 마음 먹게 됐다.
--- p.115
...그러나 가시리에서 여자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누가 감히 여자의 집에서 도둑질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도둑질한다고 해서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을 가져가서 무엇에 쓰겠는가. 협죽도도 안다. 협죽도에게 물어보라. 수국에게 물으라. 남의 삶을 도둑질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걸 어디다 쓰겠는가고. 여자는 자신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 p.176
...그러나 가시리에서 여자와 함께 살아온 사람들은 누가 감히 여자의 집에서 도둑질을 할 수 있겠느냐고 말한다. 도둑질한다고 해서 도둑질할 수도 없는 것을 가져가서 무엇에 쓰겠는가. 협죽도도 안다. 협죽도에게 물어보라. 수국에게 물으라. 남의 삶을 도둑질할 수 있는가. 있다면 그걸 어디다 쓰겠는가고. 여자는 자신의 일생을 위해 일생을 바쳤다.
--- p.176
 

출판사 리뷰

특유의 해학과 풍자, 능청스런 과장과 익살로 상당한 독자층을 확보하며 주목받고 있는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도 예의 그 날렵한 입담과 재담을 과시하고 있다. 인생의 축소판에서 벌어지는 온갖 인간사의 희비극과 다양한 인간의 속성을 거침없는 문체와 결코 가볍지 않은 유머로 이야기하며 갈수록 깊이를 더해간다.

첫 작품 「꽃 피우는 시간-노름하는 인간」의 주인공은 직업상 세계에서 가장 재미있는 도시 K를 방문한다. K시는 새로운 유행이 쉽게 들어오고 사라지는 항구 도시로 주인공은 과묵한 표정, 무뚝뚝한 말투, 단정적인 사고 등으로 서로 닮아가는 K 사람인 친구 K를 우연히 만난다. . 도박사의 허황한 강연을 거금을 들여 경청하면서도 전적으로 무시하는 K시의 풍경을 통해 진짜보다 거짓이 팽배해 있는 사회, 거짓말 없이는 살 수 없는 사회, 거짓에 거짓 열광하는 우리의 현실들을 풍자하고 있다.

「해방-술 마시는 인간」에서 기자였고 모범 교사이기도 했던 주인공은 몇 명의 사내들과 찻집 주인 그리고 화가라는 여자와 자리를 함께한다. 술로 인해 반은 살고 반은 죽는 술 마시는 인간을 통해 반복되는 똑같은 일상에서 해방의 도취 없이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의 해방의 욕구를 그리고 있다.

「소설 쓰는 인간」의 주인공은 통신 판매 대리점 총무라는 평범한 직업에서 별종 친구를 통해 별종의 세계, 춤, 춤방, 남자, 여자로 이루어진 춤세계에 발을 디딘다. 짐작도 하지 못한 새로운 춤인생을 시작해 소위 제비족, 그것도 잘나가는 왕제비가 되지만 꽃뱀에게 크게 당해 비싼 세상 공부를 하고 춤인생을 끝낸다. 춤으로 인생의 황금기를 보낸 그는 잘못 알려져 있는 춤판 세계를 제대로 전하기 위해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 왕제비의 인생-내 인생을 바꾼 호두알 두 쪽이라는 제목의 소설로 쓰고자 한다.

표제작 「홀림」의 첫 부분은 한 아이가 다른 한 아이를 홀린 듯이 바라보는 장면이다. 동일인으로 여겨지지만 다른 사람처럼 거리를 두고 바라보는데 그 아이는 바로 작가의 분신으로서 이 작품은 자전소설로 볼 수 있다. 서른까지 계속 아이로 남고 싶어하는 이 아이가 어렸을 때부터 학창 시절, 직장 생활을 한 삼십대까지 스스로를 자기 분열, 복제된 다수로 만들어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에 맞춰가며 홀린 듯이 살아온 인생을 그리고 있다.

「붐빔과 텅 빔」은 출세를 향해 정신없이 정진하며 붐빈 삶을 살았지만 허무하게 암으로 생을 마감한 형과 늘 앞서간 형의 뒤를 쫓아가지만 별볼일 없는 텅 빈 인생을 살았던 아우의 삶을 대비시키고 있다. 바쁘고 풍요롭고 충만해질수록 공허해지는 요즘 세태의 역설적인 삶을 잘 보여준다.

「방」은 책으로 가득한 방에 관한 정경 묘사에서 시작해 그곳에서 만나기를 바라는 첫사랑, 죽어서도 책을 좋아하는 벗의 얘기 등 방을 중심으로 상상의 나래를 펼쳐놓고는 끝에 가서그런 방은 원래 없었다 아니, 사실 있었다는 토를 달아 불확정투성이의 세상에 대해 풍자한다.

동인문학상 후보에도 오른 『협죽도 그늘 아래』는 동일하거나 비슷한 문장(한 여자가 앉아 있다. 가시리로 가는 길목, 협죽도 그늘 아래)을 단락 시작 부분에 계속 반복하는 특이한 구도로 한 많은 여자의 칠십 평생을 아주 따뜻하게 그려 읽은 이의 가슴에 진한 감동을 남기고 이문구의 걸쭉한 입담을 연상케 하는 마지막 수록 작품 『이무기』는 바보 취급받는 주인공 곽영출의 시선에서 자신의 마을 오룡리의 다양한 인생들을 그리고 있다. 읽고 또 읽어도 재미있는 작품으로 인간의 이중성을 풍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