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정치의 이해 (책소개)/1.국가권력

왜 국가인가

동방박사님 2022. 2. 25. 0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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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게 나라냐’가 촉발한 국가의 존재 이유와 역할
근대 국가의 한계를 분석하고 민주주의의 미래를 내다본다


인간은 고대부터 다양한 정치적 질서를 만들고 변화시켜왔다. 그중에서 민주주의는 근·현대 세계를 특징짓는 정치제도로, 고대 아테네에서 기원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그들은 이런 정치 질서를 어떻게 ‘발명’했을까? 오늘날 우리가 ‘국가’라고 부르는 정치공동체는 왜 존재하고 그 역할은 무엇이며 국가가 지켜야 할 중요한 원칙은 무엇일까? 중세 말 이후 유럽에서 등장한 근대 국가는 공공의 질서를 보장하고 생명과 자유를 포함한 개인의 소유권과 시민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위임받았다. 하지만 그러한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면서 갈등과 분열로 대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 이 책은 근대를 대표하는 정치사상가의 저작과 이론을 속속들이 살펴보면서 근대 국가의 형성 과정과 시민혁명의 주요 쟁점, 그리고 최근의 국내외적인 상황에서 빚어지는 정치적 상황을 아우르고 한계에 부딪힌 서양 중심주의에서 벗어나 새로운 정치공동체로 나아가는 방안은 무엇인지 함께 고민해본다.

목차

·추천의 말|서구는 어떻게 세계를 지배하게 되었는가
·들어가는 말|이게 나라냐

제1부 근대 국가의 발명

01 정치, 함께 더불어 사는 기술
02 전쟁이 만들어낸 질서
03 왕의 권력은 신이 준 것이다
04 우리는 왜 권력에 복종하는가
05 권력에 대한 공포에서 무질서에 대한 공포로
06 정당한 권력은 인민의 동의에서 나온다
07 일반의지에 대한 복종은 나 자신에 대한 복종
08 도덕에서 견제와 균형으로
09 재산권에 대한 집착과 식민주의
10 민주주의인가, 전체주의인가

제2부 혁명의 시대

11 재산권을 둘러싼 투쟁
12 흑인 노예들이 일으킨 혁명
13 여성이 단두대에 오를 수 있다면
14 공화정에서 민주공화정으로
15 양이 사람을 잡아먹는다
16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17 생산수단의 사회적 공유

제3부 근대 정치의 딜레마

18 사회진화론과 ‘문명화 사명’
19 혁명을 거스르는 혁명
20 자본주의 시장과 관료제 국가
21 모든 권력을 사회로
22 사회 같은 건 없다
23 극우 포퓰리즘의 등장
24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

·주
 

상세 이미지

저자 소개 

저 : 이기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경희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4 소르본 대학교에서 「자발적 복종과 정치권력의 메커니즘」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공존의 기술 : 방리유, 프랑스 공화주의의 이면』, 『한국 민주주의와 언론자유 그리고 그 위기』, 『1968년 : 저항과 체제 비판의 역동성』, 『학교 민주시민교육의 세계적 동향과 과제』등을 함께 썼으며 『지구적 근대...
 

책 속으로

근대 국가가 등장하게 된 가장 중요한 배경은 이렇게 분열된 정치집단 간의 치열한 경쟁과 그것의 극단적 형태인 전쟁이었다. 정치집단의 경쟁이 격화되고 전쟁이 빈발해지면서 내부적으로 힘의 결집을 도모할 필요성이 커졌던 것이다. 중세 말기인 14세기의 유럽에는 대략 1,000개의 정치 단위가 난립하고 있었다. 16세기에도 어느 정도 자주권을 가진 정치집단의 수가 500여 개나 되었다. 이렇듯 중세 말부터 근대 이전까지의 유럽은 수백 개의 정치 단위가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경쟁은 빈번한 전쟁으로 나타났다. 1550년부터 1650년까지 규모가 큰 열두어 개의 나라는 평균 3분의 2 이상의 기간 동안 전쟁을 벌였다. 1500년부터 1799년까지 유럽 국가가 외국의 적과 전투를 벌인 기간은 스페인이 81퍼센트, 영국이 53퍼센트, 프랑스가 52퍼센트에 달했다. 빈번한 전쟁은 군사력 증강의 필요성을 불러왔고, 이는 권력의 집중화와 전쟁 비용을 충당하기 위한 경제력의 추구로 이어졌다.
---「02 전쟁이 만들어낸 질서」중에서

아이티 혁명은 이후 아프리카에서 쿠바에 이르기까지 제3세계에서 전개된 해방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노예였던 흑인들이 유럽 최강의 스페인군, 영국군, 프랑스군을 물리치고 독립을 이루었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을 놀라게 했고, 노예제도에 균열을 내기에 충분했다. 생도맹그 노예 반란의 불꽃은 프랑스의 지배하에 있던 서인도제도의 다른 섬들은 물론이고 영국령 섬들에까지 번져나갔다. 영국 정부는 아이티가 독립한 지 3년 후에 노예무역을 중지시켰고, 30여 년 후에는 모든 노예에게 자유를 주었다. 이것은 아이티 혁명으로 인한 직접적 결과는 아니었지만, 이 혁명이 커다란 영향을 주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12 흑인 노예들이 일으킨 혁명」중에서

68운동은 단지 국가권력을 교체하고자 하는 투쟁이 아니라 국가와 시장이 독점한 권력을 사회로 되찾아오기 위한 투쟁이었다. 근대 이후 진행되어온 시장과 국가 영역의 확장과 권력 집중을 비판하고 사회 영역의 자치적이고 자율적인 질서를 복원하고자 한 것이다. 68운동 참여자들은 단순히 중앙 정치의 정책 결정 과정에 시민의 참여를 확대하라고 요구한 것만이 아니라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자율?자치?직접 행동을 스스로 실천하고자 했다. 68운동이 지향한 길은 정치적?제도적 민주주의를 넘어 일상적 삶의 민주화, 사회의 민주화였다.
---「21 모든 권력을 사회로」중에서

대통령 탄핵 과정에서 보여준 한국인들의 독특한 시민성은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위기에서 다시 한 번 확인되었다. 사태 초기에 한국은 발원지인 중국과 인접해 있어 중국에 이어 가장 많은 환자가 발생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봉쇄 조치도 없이 가장 잘 대처한 모범국으로 평가받는 상황이 되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세계 최고 수준을 보여준 의료진의 헌신과 실력, 묵묵히 마스크를 쓰고 자발적으로 진단검사를 받은 시민들의 선진적인 시민의식, 방역 당국의 적절한 대처가 함께 어우러진 결과이다. 특히 그 핵심에 한국인들이 보여준 특유의 시민성이 있다.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정부의 방역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했으며, 자가 격리를 하고 백신을 접종했다. 대규모 시위나 공권력과의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팬데믹이라는 공동체적 위기 상황에서 한국인들이 보여준 태도는 개인주의와 분명히 상반되지만 전체주의와도 역시 거리가 있는, 공동체주의에 가까운 시민성이었다.
---「24 새로운 민주주의의 가능성?」중에서
 

출판사 리뷰

‘우리가 사는 세계’를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것인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소소의책이 함께 기획한 교양 인문서 시리즈


지금 우리는 어떠한 세계에 살고 있을까? 인류는 오래전 지구상에 나타났지만 오늘날 우리가 경험하는 문명은 약 500년 전 유럽에서 시작되었다. 그것은 ‘근대 문명’이라 통칭하는, 현대 세계를 만든 획기적인 변화였다. 따라서 근대 문명을 어떻게 이해하고 수용할 것인가는 곧 ‘우리가 사는 세계’를 아는 것과 맞닿아 있다.

근대 문명은 이전 시대의 문제와 모순을 어떻게 해결하려 했을까? 근대 문명이 이룬 독특한 성취는 무엇이고, 그것들은 현대까지 어떠한 영향을 미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인간과 세계를 탐구하는 교양 인문학의 토대로서 이 시리즈를 출간하는 동기이기도 하다.

근대 문명의 전개 과정과 맥락을 꼼꼼히 짚어내는 ‘우리가 사는 세계’ 시리즈는 지난 10여 년간 실용 학문에 치중하는 대학 교육에서 교양교육으로의 이행을 위해 설립된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와 소소의책이 함께 기획한 교양 인문서다. 인간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서 획기적인 변혁을 일으킨 과학혁명, 근대 계몽사상의 등장, 프랑스 혁명과 같은 정치적 격변, 산업혁명을 거치며 탄생한 자본주의, 급격한 사회 변동과 개인주의의 등장 등으로 영역을 나누어 누구나 쉽게 근대 문명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구체화했다. 물론 근대 문명의 탄생 과정은 주로 16세기 이후의 서구 문명을 다루지만 19세기의 제국주의 시대에 동아시아에 미친 영향도 함께 살핀다. 또한 그러한 논의를 바탕으로 21세기 미래에 대한 전망도 세워본다. 이 시리즈는 다음과 같이 다섯 권으로 구성된다.

·과학혁명 _근대에서 제4차 산업혁명까지(근간)
·계몽의 시대 _사상의 전통과 가치
·왜 국가인가 _근대 국가와 정치혁명
·자본의 역습 _경제학적 상상과 비판
·개인의 탄생 _대도시와 시공간의 재편(근간)

근대 국가는 어떻게 시작되어 발전했을까?
정치권력의 정당화 원칙을 확립한 근대 정치사상가의 핵심 기제를 읽는다


인간에게 정치란 다양한 방식으로 공동체를 이루어 함께 살아가는 공존의 기술이다.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형태의 정치제도는 일반적으로 고대 아테네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끊임없는 변화의 과정을 거쳐 근대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의 탄생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런데 중세 말 이후 유럽에서 근대 국가라는 독특한 통치 조직이 등장하게 된 배경은 분열된 정치집단 간의 치열한 경쟁과 그것의 극단적 형태인 전쟁이었다. 권력의 집중화와 함께 도입된 상비군, 조세 제도, 관료제 등은 모두 이러한 목적을 달성하는 과정에서 발전시킨 근대 국가의 특징적인 제도였다. 이후 시장경제와 서로 도움을 주고받으며 성장한 근대 국가는 국가권력의 정당화 논리로 ‘정해진 영토 내에서 국가가 보유하는 최상의 권위’라고 정의되는 주권 개념을 확립하게 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로는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많은 국가가 서구 열강의 식민 지배로부터 독립함으로써 주권 개념에 기초한 국제 질서가 전 세계로 확대되었지만 근대적 국제 질서의 원칙은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 여전히 규범보다는 현실주의적인 ‘힘의 논리’가 강력하게 작동하여 자국민 보호나 평화 유지, 인권 등과 같은 명분으로 내정을 간섭하거나 주권을 침탈하는 일이 잦았다. 그렇다면 근대 국가가 정치권력의 정당화 논리로 내세운 민주주의는 어떤 원리를 기반으로 삼았을까?

근대 국가의 기본 원칙과 정치권력의 정당화 논리는 근대의 정치사상가인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등이 내세운 이론과 저작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들은 자연적이거나 신의 섭리에서 정치적 위계와 질서를 찾으려 한 중세 시대의 사유에서 벗어나 인간의 이성과 합리성에 기초하여 정치권력을 정당화하는 새로운 원칙을 세우고자 했다. 그 결과 홉스의 치안 논리, 로크의 공동 이익과 자발적 동의의 논리, 루소의 민주적 참여의 논리 등과 같은 근대적 원칙이 세워졌으며 미국의 독립 혁명(로크)과 프랑스 혁명(루소) 등 역사적인 사건에 사상적 기틀을 제공했다. 그에 덧붙여 근대 정치학의 아버지로 평가받는 마키아벨리, 삼권분립론의 선구자 몽테스키외 등이 주장한 논리도 근대 국가의 발전에 적지 않는 영향을 끼쳤다.

그들은 무엇 때문에 거리로 뛰쳐나왔을까?
혁명의 시대를 이끈 정치적 격변과 새로운 국가 모델의 출현


국왕과 의회 세력이 대립하면서 중세의 봉건적 질서가 붕괴되는 과정에서 17~18세기에 일어난 시민혁명은 새로운 시대를 열어젖히는 데 중대한 역할을 했다. 유럽에서 일어난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프랑스 대혁명은 계몽사상에서 사회계약론으로 이어지는 정치적 아이디어를 현실에서 구현해낸 정치적 격변이었다. 그것은 신흥 부르주아 계급이 주도한 재산권 투쟁, 그중에서도 특히 과세 문제에서 비롯되었지만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와 보편적 인권 실현을 위한 용기 있는 발걸음이었다. 또한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도 미국 독립 혁명과 같은 대규모의 혁명과 크고 작은 봉기, 폭동, 정권 교체를 요구하는 기치를 내걸었다. 그중에서 특히 아이티 혁명은 세계 역사상 처음으로 스스로 노예제와 식민 지배라는 이중의 굴레에서 해방을 성취했고, 이후 중남미 지역의 노예해방에 큰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런데 근대의 시민혁명이 이어지는 중에도 여성의 인권과 참정권은 왜 공론화되지 못했을까? 물론 콩도르세, 드 구주, 울스턴크래프트 같은 이들이 앞장섰지만 여성의 정치 참여가 광범위하게 인정되기 시작한 것은 한 세기가 지나서였다. 한편 인클로저 운동과 산업혁명으로 근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많은 사람들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으면서 노동자의 권리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시장 영역의 확대와 산업자본주의가 야기한 심각한 폐해를 개선하려는 사회운동과 공동체 사회주의, 국가사회주의, 민주적 사회주의 등과 같은 정치체제 모델도 속속 등장했다.

우리가 원하는 국가에서 살고 싶다면…
자본주의의 모순과 국가의 배신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는 흔히 ‘제국주의 시대’로 불린다. 서구 열강의 발전된 문명은 사회진화론적 관점을 내세워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지를 침략해 정치적?경제적으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유럽의 언어와 종교, 제도, 학문 등이 전 세계로 확산되었다. 우리나라 또한 윤치호, 유길준, 서재필, 이광수 등 당대의 개화파 지식인들이 사회진화론을 받아들였고 ‘식민지 근대화론’이 위세를 발휘했다. 이렇듯 서구 열강의 제국주의적 야망이 커져가는 한편으로 대중적 욕망을 부추기는 정치적 선동을 통해 나치즘과 파시즘이라는 전체주의적 정치체제가 등장했다. 이는 배타적인 민족주의를 통해 강력한 국가를 건설하고 뒤늦은 산업화를 극복하려는 시도이기도 했지만, 이로써 세계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1968년을 전후로는 ‘68혁명’이라 부르는 변혁 운동이 일어나 국가와 시장이 독점한 권력을 사회로 되찾아오려 했다. 근대 이후 진행된 시장과 국가 영역의 확장과 권력 집중을 비판하고 사회 영역의 자치적이고 자율적인 질서를 복원함으로써 일상적 삶과 사회의 민주화를 지향했던 것이다.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의 국가체제에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와의 조화로운 동행이 무엇보다 중요해졌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함으로써(케인스주의) 선진 자본주의 국가가 엄청난 호황을 누렸지만 1970년대 중반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은 뒤에는 신자유주의가 세계 경제의 흐름을 주도하게 되었다. 하지만 신자유주의는 노동시장의 불안정과 빈부 격차 등과 같은 문제를 더욱 심화시켰다. 무엇이든 돈이라는 획일적인 기준으로 가치를 평가하고 자본주의가 만들어놓은 시장적 가치, 즉 무한 경쟁과 승자독식이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된 것이다. 최근 들어 부상한 극우 포퓰리즘 또한 보편적 인권, 다원주의, 개방 등 서구 민주주의가 지금까지 이뤄온 성과를 되돌리려는 흐름이다.

이렇게 세계의 정치 지형도와 각국의 이해가 끊임없이 요동치는 상황에서, 그리고 모두의 안전이 위협받는 코로나19 팬데믹 시대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근대 국가를 둘러싼 고전적인 질문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된다. 국가는 공공의 안전을 지키기 위해 개인의 자유를 어디까지 제한할 수 있는가? 국가는 왜 존재하고, 우리는 어떤 국가를 원하는가? 그리고 왜 국가인가?
 

추천평

한국이 지난 150년 사이에 겪은 사회적 변화는 경험의 고유성만이 아니라 정도의 면에서도 비교할 만한 다른 사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근대를 받아들이자는 결심 아래 국왕이 전근대의 상징 같았던 상투를 지목하고 자르라고 명령했을 때 도끼를 들고 나타나 목을 잘랐으면 잘랐지 상투는 못 자른다고 하던 것이 1895년 조선의 선비들이었다. 그런데 그로부터 100년 후에 한국인들은 성형 천국으로 세계에 이름이 나 있다. 그사이에 무슨 일이 벌어졌던가? 한국은 스스로의 힘으로 근대적 국민국가를 만들지 못하여 식민지가 되었고 식민지에서 벗어나자마자 사회 구성에 대한 이념적 갈등으로 동족 간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나 전후에는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의 압축적 근대화를 이룩해서 선진국 대열의 꽁무니에 이르렀다. 지난 100년 동안 한국인들이 사회를 바꾸고 새로운 문화를 만든 과정을 이렇게 간단히 요약하는 것은 역사 망각의 지름길이다. 한국 사회가 새로운 문명을 받아들여 오늘에 이른 것은 초기의 충격 수용으로부터 시작해서 한국인들이 가진 삶의 총체적 능력을 전면적으로, 최대한 발휘해서 얻어낸 것이며 동시에 엄청난 고통과 희생을 동반했다.

현재까지도 한국은 근대가 몰고 온 사회적 변화의 열병을 앓고 있다. 이 열병은 동시에 한국 사회의 생명력의 표현이다. 동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유교 사회를 만들어 500년을 지속한 것이 조선이다. 한국의 사회?문화적 전통은 상상 이상으로 완강해서 100년 전 조선의 지식인들이 감당했던 위기감과, 그에 따른 해결책 모색은 지금도 생생히 살아 있는 문제의식을 보여주고 있다. 차이가 있다면 그때는 바꿔야 할 것이 많았고 지금은 바꾸지 말아야 할 것도 생각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다.

인류는 35만 년 동안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발견과 발명을 거듭하면서 의식주를 해결하고 삶의 조건을 개선시키며 인류 문명을 만들어왔다. 우리가 사는 근대 세계의 관점에서 볼 때, 불의 발견이나 도구의 발명에 비견할 만한 인류사의 대사건은 근대 문명이다. 그 핵심에는 과학혁명이 있다. 현재 지구상의 인류 문명을 특징짓는 획기적 변화가 시작된 것이 과학혁명부터라는 말이다. 과학혁명과 함께 세계는 그 이전의 세계이기를 중지하고 시대는 근대로 이행했다. 세계는 달라지고 인간의 사고방식에도 대전환이 일어난다. 새로운 세계, 새로운 문명이 탄생한다. 역사는 이 새로운 세계와 문명을 근대 세계라 부르고 근대 문명이라 부른다.

근대 문명은 서구 문명이 이룩한 독특한 ‘돌파(breakthrough)’의 하나다. 진리 생산을 향한 과학의 정신과 방법, 비판적 사유, 탐구의 자유에는 재갈이 물리고 무지와 오류를 시정할 길은 막혀 있었다. 이 난국을 돌파하려 한 최초의 대표적 시도가 과학혁명이고 근대 문명이다. 그 혁명 이후의 인류는 이 돌파의 수혜자들이며 한국인들도 그중의 하나다.

이 책을 읽는 독자 여러분은 한국 사회에서 과거의 것이 바뀐 것과 바뀌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될 것이다. 거기서 21세기를 사는 여러분의 자리가 드러날 것이다. 21세기의 한국인은 유럽인이자 세계인으로 살아간다. 지금까지 문명을 결정했던 장소는 더 이상 우리를 얽어맬 수 없다. 태어난 곳이 한반도라고 해서 삶이 한반도로 제약될 수 없는 시대가 이미 펼쳐지고 있다.

이 책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에서 10년간 가르쳐온 ?우리가 사는 세계?를 각 분야별로 재구성한 것으로서 그 내용은 서구가 창안하고 발전시킨 근대 문명의 핵심적 성과를 한국의 지식인들이 나름의 방식으로 이해하고 요약한 것이다. 지난 몇백 년간 서구는 놀라운 물적?정신적 발전을 보여왔고 그에 기반한 무력으로 세계를 지배해왔다면 우리는 그들이 이룬 문명 전환과 돌파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해 우리 나름의 전환적 인식과 돌파를 준비해야 한다. 이 책은 그런 측면에서 한국 인문학의 꽃이다. 식민지 경험과 분단, 전쟁을 겪고 극도의 궁핍을 넘어서 K-문화의 개화를 맞은 지금, 인간과 세계를 한국 인문학은 어떻게 이해하고 요약하고 있는지를 이 책은 잘 보여주고 있다. 과거를 성찰하고 인간의 미래를 상상하는 독자들에게 이 책은 최상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 이영준(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학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