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국제평화 연구 (책소개)/1.국제관계

E.H.카 평전 :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역사가

동방박사님 2022. 3. 2.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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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사회적 통념을 거부한 역사가, 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의 지은이를 넘어 외교관, 언론인, 정치학자, 역사가로 역동적인 20세기를 살다 간 E. H. 카의 인생 역정을 파헤친 본격적인 지식인 평전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으로 이어진 국제정치 무대의 실상은 물론 카와 직접 관계를 맺었던 아놀드 토인비, 루이스 네이미어, 아이작 도이처, 이사야 벌린 등 당대 지성들 사이에서 전개된 지적 논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냉전이라는 시대적 제약에도 불구하고 불후의 역작 『소비에트 러시아사』 14권을 완성해 가는 열정을 따라가면서, 우리는 시대의 통념과 싸운 참다운 지식인의 모습뿐 아니라 학자로서의 집념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책의 지은이 조너선 해슬럼 교수는 E. H. 카의 저작과 논문뿐 아니라 언론에 발표된 엄청난 논설과 평론, 그리고 1925년부터 1960년까지 쓴 비망록과 육필 기록을 바탕으로 평전을 완성했다. 이런 기초 자료뿐 아니라 생전의 사적인 편지, 동료들의 회고, 사생활에 대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인물의 삶을 온전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직접 또는 서면으로 들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사실은 배제함으로써 역사가로서의 엄밀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목차

머리말

1. 소심하지만 뛰어난 학생
빅토리아 시대의 중산층 가정
머천트테일러스스쿨
고전에 두각을 드러낸 고등학생
트리니티칼리지
하우스먼의 고전 강의

2. 격변기 영국의 외교관
외무부의 임시 직원
러시아혁명
파리강화회의 영국 대표단
라트비아 영국 공사관
런던으로 복귀하여 《도스토옙스키》 집필
국제질서의 전환과 서유럽의 패배주의
게르첸, 바쿠닌, 러시아 혁명가들

3. 현실주의 국제정치학
외교관에서 국제정치학 교수로
《바쿠닌 평전》
아놀드 토인비와 루이스 네이미어
리얼리스트의 눈
히틀러와 스탈린
제2차 세계대전의 서막

4. 《타임스》 시절
비타협적 저널리스트
서유럽의 위기와 혁명적 전망
열강의 대립과 약소국의 운명
평화의 조건
소련의 팽창과 폴란드
타임스와의 갈등
민족주의와 국제관계

5. 추방된 예언자
러시아에 대한 천박한 인식
소비에트 러시아사 집필
지적인 동반자 아이작 도이처
미국 초청 방문
좌우파로부터의 비판
동서 냉전의 분위기에서

6. 냉전의 한가운데에서
이사야 벌린과 레너드 샤피로
옥스퍼드대학에 부임하여
아이작 도이처의 비판
케임브리지대학으로

7. 케임브리지대학에 복귀하여
역사와 인물
공동 연구자 로버트 데이비스
건강 이상과 연구의 어려움
역사 서술과 자료에 대한 열정

8. 역사란 무엇인가
트레빌리언 강좌
역사의 진보
이사야 벌린의 공격
비판과 논쟁의 중심에서
《역사란 무엇인가》의 현재적 의미

9. 화려한 명성, 불행한 개인사
앤과 조이스
아내 조이스와의 불화
개인적 고립과 역사 연구
불행한 결혼생활
새로운 사랑

10. 소비에트 러시아사
혁명과 러시아 농촌사회
아이작 도이처의 죽음
소비에트 계획경제와 공업화
국제정세의 변화와 소련
스탈린의 딜레마
진보, 균형, 전망
타마라 도이처
소비에트 연구의 금자탑

11. 역사와 진보에 대한 신념
신좌파 논쟁
마르크스주의에 관하여
역사와 미래에 대한 신념
병상에서
지적 유산

저작 목록
옮긴이 후기
주석
찾아보기
 

저자 소개 

저 : 조너선 해슬럼 (Jonathan Haslam)

 
케임브리지대학 역사학부 교수. 영국 학술원 회원.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에서 E. H. 카의 지도를 받고 버밍엄대학에서 소비에트의 외교정책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예일대학, 하버드대학, 스탠퍼드대학, 프린스턴대학 고등연구원 등의 초청으로 다년간 미국에서 연구하고 강의했다. 현재 냉전 시대의 국제관계와 유럽 현대사를 가르치고 있다. 지은 책으로 Russia’s Cold War, 1917~1989(2011)...
 
역 : 박원용
 
부경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에서 수학했고 미국 인디애나대학에서 ‘혁명 이후 러시아의 고등교육 체제 개편’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통해 학생들과 역사적 사고의 필요성 및 그 의미를 소통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소비에트 러시아의 신체문화와 스포츠》, 《스포츠가 역사를 말하다: 정치, 계급, 젠더》(공저), 《소련형 대학의 형성과 해체》(공저)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
 

출판사 리뷰

20세기를 대표하는 역사가
한국사회에서 1980년대 이래 가장 사랑받는 교양도서 가운데 하나인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 E. H. 카는 “역사책을 읽을 때 그 책에 실린 사실보다 그 책을 쓴 역사가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했지만, 정작 《역사란 무엇인가》의 저자에 관해서는 알려진 게 많지 않다. 1961년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진행된 트레벨리언 강좌를 묶은 이 베스트셀러는, 그 무렵 진보에 대한 신념을 잃어버린 영국 사회에 희망을 주기 위한 것이었다. 특히 지식인 사회에 퍼져 있던 비관주의나 냉전적 분위기를 비판하고 냉철한 이성에 바탕을 둔 역사와 진보를 옹호하는 사자후였다. 이 강좌를 앞두고 카는 아이작 도이처에게, 강연의 목적이 “역사나 혁명에 관하여 칼 포퍼나 이사야 벌린 같은 이들이 말하는 어리석은 생각에 답하는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357쪽).
카는 《소비에트 러시아》 같은 학술 저작도 썼지만, 《낭만의 망명객들》, 《도스토옙스키》, 《톨스토이 평전》, 《카를 마르크스》, 《미하일 바쿠닌》,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 같은 문학적이고 대중적인 책도 많이 썼다. 젊은 날 영국 외무부에 임시직으로 라트비아 공사관에 근무하면서, 카는 러시아 문학에 심취한 일을 계기로 러시아어를 익히며 러시아 문화와 역사에 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가운데 1919년에 일어난 러시아혁명에 큰 충격을 받고 본격적인 소비에트 연구에 여생을 바치게 된다. 그는 뒷날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살아오면서 결코 상실한 적이 없는 역사의식을 제공했고, 결국 먼 훗날 역사가로 변모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이 바로 러시아혁명이다.”

고립을 선택한 비타협적인 지식인
놀랍게도 E. H. 카는 한 번도 대학의 역사학과에서 정식 교수로 근무한 적이 없다. 한때 강사로 옥스퍼드대학에 임용되었지만 냉전 상황과 보수적인 풍토 속에서 냉대를 받고 나왔다. 예순을 훌쩍 넘긴 나이에 모교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의 명예로운 연구교수가 되었지만, 전통에 안주하고 있던 역사학과 거물 교수들을 공격하며 교육과정 개혁을 촉구하며 마찰을 빚었다. 《타임스》에서 사설을 쓸 때는 비판의 예봉이 수상 윈스턴 처칠을 향했고 사사건건 비판함으로써 《타임스》 내부의 갈등을 일으키고 사퇴하기도 했다.
뒷날 카는 이렇게 회고했다. “당시 나는 동서 냉전을 배경으로 형성된 서구의 정치 이데올로기에 정면으로 반하는 연구를 하고 있었다. …… 하지만 비판하는 이들에게 내 작업이 소비에트의 정책을 옹호하는 것으로 보인 것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대학에서 정규직 일자리를 얻는 것을 어렵게 했다.
카는 한창 활발한 연구 활동을 진행하던 시기에 국제관계론 전문가로 이름이 높았다. 오늘날 국제정치학의 교과서로 평가되는 《20년간의 위기》(1939)는 이상과 현실, 이론과 실천, 지식인과 관료의 차이에 대한 독창적인 진단을 담고 있다. 카에게 국제정치학의 목적은 “학문을 판가름하는 기준이 되는 현실에 대한 엄격한 분석”이었다. 따라서 국제관계에서 나타나는 이상주의와 자유주의의 허약한 인식을 현실주의의 이름으로 공격했다. 소비에트가 강력한 산업국가로 발전을 거듭하던 시기까지도 영국에서는 특히 동유럽과 러시아에 대한 인식이 일천했고 대학에 학과도 갖추지 않았으며 연구소도 유명무실한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E. H. 카는 아널드 토인비의 영향 아래 있던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채텀하우스’의 소비에트동유럽 연구분과를 이끌며 우수한 연구 성과를 내고 있었다. 이미 소비에트 전문가이자 저명한 국제정치학자로 독보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중요한 자리를 맡는 데 번번이 실패했다. 《타임스》를 비롯한 언론에 쓴 카의 평론들은 독자들에게 인기가 있었음에도, 영국의 외교정책을 비판하고 유화정책을 주장하며 친소비에트 이미지가 강했기 때문이었다.

리얼리스트의 냉철한 이성
빅토리아시대 영국의 전형적인 중류 가정에서 태어나 자유주의 풍토에서 자라났지만 카는 자유주의를 비판하며 계획경제를 주장했고, 외교관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강대국들이 주도하던 국제연맹을 비판하며 소수민족과 신생국을 옹호했다. 당시 영국 정부의 준기관지였던 《타임스》에 몸담고 있었지만 영국을 포함한 서유럽의 반소비에트 정책을 비판했으며, 우드로윌슨 기금교수였고 록펠러재단의 기금을 받아 연구하고 있었지만 미국 자본주의의 천박함을 조롱했다. 그는 또 마흔이 넘을 때까지 《자본론》 1권을 읽었지만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고 고백했다.
당대 최고의 지성인 아널드 토인비, 루이스 네이미어, 휴 트레버-로퍼, 제프리 엘턴 같은 역사가뿐 아니라, 미국의 국제정치학을 좌지우지하던 조지 케난, 멀 페인소드, 리처드 파이프스, 맥스 벨로프 같은 석학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비타협?인 지성 카는 논설이나 저작을 발표할 때마다 좌우를 가리지 않고 비판을 받았다. 대표적인 라이벌은 역시 이사야 벌린으로, 역사와 인물, 진보의 문제를 두고 오랜 기간 두 사람이 치른 ‘사상 전투’는 지성사에 길이 남을 만했다. 벌린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 결정론, 상대주의, 승리사관이라고 비난했고 카는 벌린이 역사를 선악이나 개인의 행동의 우연한 집적으로 환원하려고 한다고 맞섰다.
이런 카의 비타협적이고 독립적인 저술활동을 이 책의 지은이 조너선 해슬럼은 책머리에 다음과 같이 논평하고 있다. “대다수 사람들에게 카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자 접근하기 어려운 인물, 인간이라기보다는 반신(또는 악마)과 같은 존재였다. 이러한 이유들 때문에 그에게 찬사뿐 아니라 비난도 쏟아졌다. 이런 인물을 두고 어느 누구도 무관심하게 있을 수만은 없었던 상황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카가 그랬듯이, 당대의 가장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그러한 용기와 단호함으로 발언한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아군뿐 아니라 수많은 적군을 만들기가 쉬웠다.”(8쪽)

E. H. 카가 남긴 유산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이라는 상황에서 카는 공산주의자로 스탈린주의자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진실과 현실에 바탕을 둔 카는 서구 사회의 통념에 단호히 맞섰다. 그런가 하면 1960년대 이후 영국 신좌파의 진원지인 《뉴레프트 리뷰》의 젊은 이론가들이나 포스트모던주의자들 전망에 실망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그럼에도 카의 대담은 그 이론지에 실려 신좌파를 자극했고,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닌 사람으로서는 유일하게 아이작 도이처 상 심사위원을 맡았다. 심지어 이 책 《E. H. 카 평전》도 영국의 대표적인 신좌파 출판사인 버소(Verso)에서 출간될 정도로 이념이나 권위보다는 지성과 학문으로 젊은 학자들의 존경을 받아 왔다.
카의 논쟁적인 탁월한 지적 유산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 있다. 그는 언제나 저항 정신을 잃지 않았고 자기 세대에서 가장 첨예한 정신을 가진 인물 가운데 하나였다. 그는 중도와 좌파는 물론 우파에 이르기까지 몇몇 훌륭한 학자로 성장해 간 지식인들의 젊은 날에 감동과 자극을 선사하였다. 그는 전후 영국의 방향에 관한 논쟁의 틀을 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을 뿐 아니라, 냉전이라는 힘든 시기에 서유럽 한복판에서 소비에트 연구의 금자탑을 쌓았다. 고전학자 모제스 핀리는 그를 “내가 지금까지 만난 사람들 가운데 가장 절제된 지성의 소유자”라고 평가했다.

치밀한 인간 탐구《E. H. 카 평전》
이 책의 지은이 조너선 해슬럼 교수는 E. H. 카의 저작과 논문뿐 아니라 언론에 발표된 엄청난 논설과 평론 그리고, 1925년부터 1960년까지 쓴 비망록과 여기 저기 흩어져 있는 육필 기록을 바탕으로 평전을 완성했다. 이런 기초 자료뿐 아니라 생전의 사적인 편지, 동료들의 회고, 사생활에 대한 가족들의 이야기를 통해 한 인물의 삶을 온전하게 재구성했다. 이 책을 완성하는 데 10년이 넘는 시간이 필요했던 까닭이기도 하다. 직접 또는 서면으로 들은 이야기라 할지라도 자료로 확인되지 않는 사실은 배제함으로써 역사가로서의 엄밀함을 포기하지 않았다.
이런 풍부한 자료 덕분에 독자들은 이 책을 읽어 가면서 E. H. 카의 일생은 물론이고 그가 한복판에서 활약하던 20세기, 특히 베르사유조약, 러시아혁명, 제2차 세계대전, 냉전과 데탕트에 이르는 국제정치의 큰 흐름을 그릴 수 있게 된다. 그런가 하면 시대를 살아가는 한 인간으로서 변화하는 세계를 어떻게 인식하고, 암울한 미래 앞에서도 어떤 방식으로 역사와 진보에 대한 전망을 포기하지 않는지 E. H. 카를 통해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특징은 개인사를 섬세하게 그려냄으로써 인물의 ‘공식적’ 전기가 아닌 용감하고 고결하지만 고지식하고 한편으로는 불쌍하고도 얄미운 ‘인간’ E. H. 카의 전모를 훌륭하게 드러냈다. 평생의 정신적 동반자인 도이처 부부(아이작과 타마라)와 나눈 교류와 우정은 너무 상세해서 따로 읽지 않더라도 또 다른 지식인 소전을 읽는 것과 같을 정도이다.
어린 시절 이모 ‘아멜리아’의 병적인 집착으로 받은 상처는 어른이 되어서도 카의 삶을 왜곡시켰다. 또 세 번이나 결혼을 했지만 불행한 생활을 극복하지 못한 카는 천성적으로 사회성이 부족했으며, 가정생활에서 이기적이었고 결벽주의에 가까울 정도로 인간미가 없었다. 마지막에는 아들과 며느리 곁에서 세상을 떠나게 되지만 오랫동안 가족들과 마음을 터놓지도 못했다. 결과적으로 위대한 학자로 남게 되었지만, 한평생 시대와 불화하고 가족과 행복을 누리지 못한 한 지식인의 삶을 어떻게 평가할지는 독자들의 몫이다. 다만, 이 책을 읽고 다시 《역사란 무엇인가》를 펼치면 유익하리라 생각된다.

E. H. 카(1892~1982)
1892년 런던에서 태어나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를 졸업한 뒤 1916년부터 1936년까지 외교관으로 파리평화회담 영국대표단으로 참가했고, 프랑스와 라트비아 영국대사관에서 근무했다. 그 뒤 외무부에 사표를 내고 웨일스대학 우드로윌슨기금 국제정치학 교수가 되었다. 1941년부터 1946년까지 타임스 부편집인을 맡아 국제관계 전문가로서 논쟁적인 글을 발표했다.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옥스퍼드대학 베일리얼칼리지 강사로 정치학을 가르쳤고, 1955년에는 케임브리지대학 트리니티칼리지의 선임연구교수가 되었다.
저널리스트로서 포트나이틀리 리뷰, 스펙테이터,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리먼트 같은 매체에 평론과 서평을 썼고 BBC 라디오 방송프로그램을 진행하기도 했다. 국제문제 전문가로서 왕립국제문제연구소인 채텀하우스의 소비에트동유럽 연구분과를 이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냉전 상황에서 역사철학과 국제관계, 소비에트 문제 등을 둘러싸고 아널드 토인비, 루이스 네이미어, 이사야 벌린, 아이작 도이처 등 당대의 석학들과 치열한 논쟁을 벌였다. 카는 1950년부터 아흔 살이 다 되어가던 1978년까지 거의 30년 동안 매달려 완성한 필생의 역작 《소비에트 러시아사》(전 14권)은 소비에트 연구의 독보적인 고전으로 평가되고 있다. 또한 1961년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한 G. M. 트리벨리언 기념강좌를 바탕으로 엮은 《역사란 무엇인가》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그를 세계적인 역사학자로 발돋움하게 했다. 그 밖에도 《톨스토이 평전》(1931), 《카를 마르크스》(1934), 《미하일 바쿠닌》(1937), 《20년간의 위기, 1919~1939》(1939), 《평화의 조건》(1942), 《민족주의와 그 이후》(1945), 《새로운 사회》(1951), 《나폴레옹에서 스탈린까지》(1980),《코민테른의 여명》(1982) 등 빼어난 저작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