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조선시대사 이해 (책소개)/5.조선역사문화

조선 선비 당쟁사

동방박사님 2022. 7. 18. 16:21
728x90

책소개

조선의 궁궐은 왜 선비들의 피로 물들었는가?
조선의 정당정치 ‘붕당’은 왜 극한으로 치달았는가?

붕당이 낳은 핏빛 비극에서 배우는
조선 정치사의 교훈!


21년 전인 1997년, 한 권의 책이 세상에 나왔다. 조선의 붕당(당쟁)을 키워드로 조선사를 다시 읽는 책의 내용은 강렬했다. 일제 강점기에 우리들 머릿속에 강제 주입된 ‘조선은 당쟁으로 망했다’라는 고정관념을 산산이 부숴버리는 책이었다. 1차 사료를 근거로, 조선의 붕당(당쟁)은 ‘정당정치’였다는 관점으로 대담하게 해석한, 도발적인 책이었다. 명쾌한 근거, 명료한 관점, 한 편의 대하드라마처럼 거침없는 전개는 수많은 독자들을 매료시켰고, 그렇게 베스트셀러 작가 ‘이덕일 신화’가 탄생했다. 『조선 선비 당쟁사』는 ‘이덕일 신화’의 신호탄을 쏘아올린 ‘전설의 명작’이 21년 만에 새롭게 단장한 책이다. 20여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지은이의 내공은 오롯이 깊어졌고, 그것은 『조선 선비 당쟁사』에 한층 정연한 구성으로 담겼다.

‘조선판 수구 VS 진보’의 진검승부,
선비들은 정치권력을 두고 어떻게 싸웠는가


싸움은 과연 나쁜 것인가? 어려서부터, 학교에서, 그리고 사회에 나와서도 우리는 ‘싸우지 말라’고 배운다. 그러나 정치의 세계에서 ‘싸움’은 관점과 지향점의 차이에서 비롯되는 ‘정쟁’이다. 조선시대의 ‘붕당(당쟁)’이다. 조선시대의 정치가였던 선비들도 이런 ‘싸움’을 많이 했다. 소매를 걷어붙이고 먹을 갈아 일필휘지하는 ‘붓의 전쟁’이기는 했지만, 과정과 결과는 어떤 전쟁 못지않게 치열하고 처절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듯이 조선의 건국 세력인 신진사대부는 계유정난(수양대군의 쿠데타) 등을 거치면서 훈구파로 변질된다. 이런 훈구파를 비판하면서 조정에 등장한 새로운 세력이 사림이다. 성종 이후부터 과거시험을 통해 정계에 등장한 사림은 훈구파의 공격인 사화(士禍)로 여러 번 치명적인 타격을 입었으나 세력을 복구하여 재도전했으며, 명종~선조 무렵에 드디어 정권을 장악했다. 권력의 핵심부에 등장한 사림은 일치단결하여 이상적인 조선 사회를 만들었을까? 그들 앞에 기다리고 있는 것은 ‘사색당쟁’이라 불리는 ‘분열’이었다. 처음에는 동인과 서인으로, 이어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서인은 노론과 소론으로 갈라진 것이다. 그리고 ‘사색당쟁’의 끝은 노론의 일당 독재와 세도정치, 그리고 망국이었다. 영화나 사극에서는 이런 ‘정쟁’이 개인적인 미움이나 감정에서만 비롯되는 것처럼 그려지곤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럴까? 모든 사물과 사건의 현상 뒤에 본질이 있듯이, ‘사색당쟁’이라는 역사적 사건에도 본질은 따로 있다. 피 터지는 당파싸움의 밑바닥에는 과전법 시행을 둘러싼 100년의 논쟁으로 대표되는 경제적 이권을 둘러싼 투쟁, 그리고 숭명사대주의로 나타나는 교조주의적인 성리학이라는 이데올로기가 자리 잡고 있었다. 말하자면 경제, 사상적 이데올로기의 차이에서 비롯된 싸움, 즉 ‘조선판 진보 VS 보수’의 대결이었던 것이다.

조선의 피투성이 붕당,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었나


『조선 선비 당쟁사』는 ‘사림의 등장에서 세도정치까지’ 조선의 선비들이 정치권력을 두고 어떻게 싸웠는가, 그 과정에서 조선의 역사가 어떻게 흘러갔는가를 1차 사료를 근거로 명쾌하게 정리하고 해석한다. 당쟁의 시작,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의 민낯, 소현세자의 갑작스런 죽음, 효종의 북벌을 둘러싼 서인과의 갈등, 현종 때의 1, 2차 예송 논쟁을 통한 국왕의 정통성 시비, 숙종 연간의 여인천하와 드라마틱한 환국 정치, 사도세자 살해와 정조와 노론의 대결 등 숨 가쁘게 전개되는 조선의 정치사를 마치 대하소설처럼 흥미진진하게 훑어간다. 『조선 선비 당쟁사』의 가장 큰 장점은 ‘중립’으로 포장하지 않은 지은이의 선명한 관점이다. ‘중립’ 또는 ‘객관’, ‘양비’ 등의 단어는 기득권을 옹호하는 쪽에서 즐겨 사용하는 용어인데, 그것은 역사에서도 마찬가지다. 지은이는 조선의 기득권 세력으로 전락한 ‘노론’의 정반대에 서서 조선을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해석한다. 그런 관점을 뒷받침하는 것은 『조선왕조실록』, 『당의통략』, 『정교봉포(正敎奉褒)』, 『비변사등록(備邊司謄錄)』 등 1차 사료에서 찾아낸 생생한 당대의 목소리다. 이를 통해 ‘붕당’이라는 어쩌면 대단히 선진적일 수 있었던 ‘조선판 다당제’가 어떻게 변질되었고, 그로 인해 조선은 어떤 운명을 맞이했는지, 21세기 대한민국이 역사의 교훈을 얻는 데 필요한 자료와 관점을 제공한다. 조선은 당쟁으로 무엇을 얻고 무엇을 잃었을까. 복잡한 조선 정치사의 맥락과 핵심을 예리하게 짚어가며 설명하고 있어 재미있게 술술 읽히지만 다 읽고나면 묵직한 여운이 남는 역사서다.

 

목차


1. 사림의 집권과 동서 분당
훈구파의 사림 탄압, 사화 | 집권 사림, 서인과 동인으로 나뉘다 | 이준경의 붕당 예언 | 이이의 합당 노력과 ‘양시론’ | 이이를 탄핵하다 귀양 가는 동인들 | 동인과 서인의 노선 차이

2. 무너져가는 공존의 틀
서인 실각과 정여립 사건 | 세자 건저 문제와 서인의 실각 | 집권 동인의 분열과 다가오는 임진왜란 | 조선군은 왜 속수무책으로 당했나? | 정철 석방과 북인 집권 | 어렵게 왕위에 오른 광해군 | 광해군시대, 준비된 왕의 준비된 혁신 | 잇따르는 왕실 사건들 | 잇따르는 쿠데타 ― 인조반정과 이괄의 난 | 숭명사대주의가 자초한 병자호란 | 비운의 선각자, 소현세자

3. 대동법과 군역 논쟁
조선의 세법과 공납 | 중과세에 저항하는 농민들 | 대동법의 경세가들 | 대동법이 아니었다면 경신대기근을 어찌 이겼으랴 | 군역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까

4. 공존에서 배척으로
문묘종사운동, 공자를 등에 업고 | ‘인심도심 논쟁’, 사대부의 정치이론 | 기나긴 문묘종사의 길 | 인조반정의 목전에서 | 효종시대, 북벌을 둘러싼 동상이몽 | 3년복인가, 1년복인가 - 현종시대의 1차 예송논쟁 | 1년복인가, 9개월복인가 - 현종시대의 2차 예송논쟁 | 숙종시대, 삼번의 난과 윤휴의 출사 | 정청에 울려 퍼진 김 대비의 곡성 | 기름천막 유용 사건, 남인 정권을 무너뜨리다

5. 정치공작의 악순환
도륙당하는 남인들 | 서인, 노론과 소론으로 분당되다 | 장 희빈 모친 모욕 사건 | 사약 받는 송시열 | 문묘에서 쫓겨난 이이·성혼, 궁궐에서 쫓겨난 왕비 민씨 | 고변과 역고변 | 서인의 보복과 왕비 장씨의 몰락 | 우리 당이 미는 왕자가 세자가 되어야 | 경종시대, 젊은 왕이 동생을 후계자로 삼다 | 소론, 정권을 장악하다

6. 과거사 정쟁
경종 독살설 속에 영조시대 열리다 | 이인좌, 봉기하다 | 과거사에 묻힌 탕평책 | 소론 강경파의 반발, 나주 벽서 사건 | 사도세자 살해 사건의 진실 | 노론 일당 체제와 세손의 위기

7. 새로운 미래를 향해서
정조시대의 개막,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 정조 암살 기도 사건 | 다당제와 사상의 다원화 | 정조, 독살설 속에 세상을 떠나다

8. 정당정치의 붕괴와 세도정치
널리 퍼진 정조 독살설 | 세도정치의 문을 연 외척 세력 | 충격 속에 등장한 대원군의 개혁정치 | 고종의 친정과 노론의 매국 | 일제의 귀족령과 소론·남인들의 새로운 길

부록1 시대별 정당 분포도
부록2 당인 계보도

 

 

저자 소개 

저 : 이덕일 (李德一)
 
1차 사료를 바탕으로 조선 후기 노론사관과 일제 식민사관이 변형시킨 한국사의 원형을 현재에 되살리기 위해서 노력하는 우리 시대의 ‘문제적’ 역사학자. 방대한 문헌 사료를 치밀하게 분석해서 고대사부터 근현대사에 이르기까지 ‘해방되지 못한’ 한국사의 여러 문제를 지적하고 남의 눈이 아니라 나의 눈으로 역사와 사회를 보자는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당쟁으로 보는 조선역사』(1997)를 필두로 『송시열과 그들의 ...
 

책 속으로

조선시대에 송시열을 ‘송자’라고 높여 불렀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송자라고 그를 높였던 것은 집권층에 속하는 특정 정당뿐이었다. 일반 백성들은 그를 송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물론 그가 속한 정당 이외의 정파들도 그를 송자라고 부르지 않았다. 그를 송자라고 떠받든 것은 노론(老論)이라는 한 당파뿐이었다. 지역적으로는 노론의 본거지인 기호(畿湖) 지방에서만 그를 송자라고 떠받들었다. 그의 반대 당파인 남인(南人)들 사이에서 그는 송자는커녕 ‘개 이름’에 지나지 않았다. 이는 과장이 아니라 실제로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남인들의 본거지였던 영남(嶺南) 지방에서는 자기 집에서 기르는 개의 이름을 ‘시열이’라고 불렀다. 지금 이 순간에도 영남 지방의 어느 마을, 어느 집에서는, 그 이유도 모른 채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기 집 개를 ‘시열이’라고 부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는 우리나라의 유일한 성현인 송자가 적어도 영남 지방에서는 송자는커녕 사람 취급도 받지 못했음을 뜻한다. ‘송자’와 ‘시열이’! 이 얼마나 전율할 만한 가치의 전도이자 인식의 괴리인가? 오늘날로 말하자면 ‘민족의 태양이자 위대한 수령이신 김일성’과 ‘살인마 김일성’ 정도의 괴리에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을 놓고 ‘송자’와 ‘시열이’라는 완전히 상반된 평가가 300여 년 전부터 이 땅에 엄연히 존재했던 것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