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3.대한민국 현대사 (책소개)/2.정부수립이후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

동방박사님 2022. 8. 5. 17: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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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박정희 체제를 어떻게 볼 것인가’는 한국사회에서 여전히 복잡한 문제이다. 한국사회의 한 켠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실망과 경제적 불황이 끊임없이 ‘개발독재의 향수’를 자극하고 있는가 하면, 다른 한 켠에서는 민주주의를 억압하고, 민중을 수탈한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비난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이다.이 책은 ‘2006 춘계 대중독재 학술토론회’의 성과물들을 모은 결과물이다. 독재체제에 대한 일상사적·미시사적 접근을 고민해온 비교역사문화연구소(소장 임지현)는 이 책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에서 박정희 체제에 대한 본격적인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또한 근대적 거대 담론 속에 갇힌 개인에 주목하여 그 다양한 결들을 드러냄으로써 박정희 체제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하고 있다.

 

목차

머리말 _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 _ 장문석

1부 서양의 근대와 대중독재
서론│서구 근대의 테오레마에 대한 역사(철학)적 성찰 _ 장문석
독재와 민주주의의 ‘근대적’ 기원 _ 임지현
근대와 전근대, 혹은 정상과 일탈│역사주의와 유럽중심주의│식민주의와 오리엔탈리즘│폭력의 근대성에 대한 성찰
근대 주권론의 역사적 함의: 왕권신수설에서 국민주권론까지 _ 임승휘
보댕의 주권론과 왕권신수설│인민의 주권에서 국민의 주권으로│시에예스와 의회민주주의│칼 슈미트와 주권독재│에필로그
계급에서 국민으로: 파시즘의 전체주의 기획과 토리노 노동자들 _ 장문석
들어가며│생산과 국민: 전체주의로 이끌리는 담론들│폭력과 강제: 20년대 노동의 봉쇄│조직과 신화: 30년대 동의의 생산│나오며
나치 독재와 대중 _ 김학이
개념│나치 국가와 노동자의 일상│나치의 유대인 정책과 독일인의 일상│나치즘과 재즈│총괄:권력의 틈과 ‘잉여적’ 주체
토론문│대중의 모호성과 잠재성 _ 고병권
토론문│‘대중독재’에 관한 몇 가지 질문들 _ 고원
토론문│주권, 파시즘, 독재, 민주주의 _ 최갑수

2부 한국의 근대와 대중독재
서론│‘대중독재론’, 박정희 체제 분석의 유용한 칼날 혹은 거추장스러운 갑옷 _ 이상록
‘대중독재’론과 한국의 민주주의 _ 윤해동
문제제기: 독재와 민주주의│대중독재론, 어떻게 볼 것인가?│대중독재와 ‘유신체제’: 민주주의를 중심으로│맺음말
박정희 시대의 노동: 울산 현대조선 노동자를 중심으로 _ 김준
박정희 시대에 대한 향수│박정희 시대와 노동자 삶의 ‘향상’│박정희 시대와 현대조선│묵종과 저항의 모순적 변증법│박정희 시대와 노동자: 결론을 대신하여
박정희 시기 도시하층민: 부마항쟁을 중심으로 _ 김원
들어가며│1979년 4월, 경제안정화 정책: 신자유주의적 기원│부마항쟁의 전개과정과 성격│도시하층민의 타자화│나오며: 대중독재론과 도시하층민의 ‘정치’
박정희 체제의 ‘사회정화’ 담론과 청년문화 _ 이상록
‘사회정화’에의 강박증│청년문화:분열된 주체와 규범 넘나들기│학생운동:지배 속의 저항, 저항 속의 지배│맺음말
토론문│대중독재론의 균열과 역설 그리고 딜레마: 특히 박정희 정권기 연구와 관련하여 _ 김보현
토론문│대중독재론과 현실의 역사적 분석 _ 이기훈
토론문│한국사회의 지식 생산 방법과 대중독재론 _ 정희진
토론문│대중독재론의 확장과정에서의 긴장지점 _ 조희연

참관문│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 _ 김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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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소개 

저 : 임승휘 (林承徽)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서양사학과 졸업(학사)
프랑스 파리 4대학 소르본 졸업(석사)
프랑스 파리 4대학 소르본 졸업(박사)
현 선문대학교 역사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저서 : 『절대왕정의 탄생』, 『유럽의 절대 군주는 어떻게 살았을까?』 등
역서 : 『국가론』, 『유럽 문명의 역사』 등
 
 

출판사 리뷰

‘대중독재론’의 논의를 확장하고, 이를 ‘박정희 체제’에 대한 구체분석에 적용하려는 시도인 이 책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는 지난 4월 14일에 개최되었던 ‘2006 춘계 대중독재 학술토론회’의 성과물들을 모은 책으로, 철저한 기획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간 대중독재론을 주창하고 여러 실험을 해온 비교역사문화연구소와 도서출판 그린비는 기존의 ‘반독재론’으로는 ‘박정희 체제’를 총체적으로 분석할 수 없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토론회의 조직과 개최, 책의 출간까지를 함께 기획하고 진행했다. 지식생산에 출판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책의 출간까지 이뤄냈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한국의 지식사회에 하나의 방향을 제시한 사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토론회와 책에서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대중독재론’이 기존의 비판들을 수용하거나 전유하여 새로운 방향성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2004년 ‘대중독재’라는 개념이 한국사회에 선을 보인 이래로 ‘대중독재론’에 많은 생산적인 비판과 제안들이 있어 왔다. 이 중에서 ‘대중독재론이 근대적인 이분법의 설정을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 스스로가 근대적 이분법의 용어와 설정에 갇혀 있다’는 비판은 대중독재의 변화를 촉발했다. 특히 ‘대중독재론’이 ‘대중’을 단일하고, 일면적인 것으로 대상화하고 있다는 비판은 대중독재론으로서는 뼈아픈 비판이었다.
이런 비판에 대한 대답으로, 이번 토론회에서는 ‘대중독재론 그룹’에 본격적으로 속하지 않지만 박정희 체제의 각 분야에 전문성을 가진 필자들에게 주제 발표를 부탁했다. 윤해동, 김준, 김원이 그들로 이들에게 주제 발표를 맡기게 된 이유를 이 책의 엮은이인 이상록은 「2부 서문」에서 이렇게 밝히고 있다.
“세 명의 필자들은 스스로 대중독재론자임을 주장하거나 대중독재론에 기대어 연구를 진행해온 연구자들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편집자가 윤해동, 김준, 김원 이 세 명의 연구자에게 집필을 의뢰했던 것은 이들이 대중독재론의 문제의식과 소통가능하면서 의미 있는 경험적 연구를 해줄 적임자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편집진에서는 원고를 의뢰할 때에도 ‘대중독재론의 관점에 입각하여’ 연구해주기를 요구하지 않았고, 연구자 자신의 소신껏 ‘대중독재론에 대해 말을 거는’ 연구를 진행해달라고 부탁하였다.”―이상록, 221쪽
박정희 체제에 대해 미시적이고 일상사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이 책의 2부에는 이 세 필자들의 논문과 이상록의 논문까지 총 네 편의 논문이 수록되어 있다. 이 네 편의 논문들은 기획 단계에서 논의된 것은 아니지만, 공교롭게도 모두 유신시기를 다루고 있다. 그밖에도 ‘대중독재론 논쟁’이 지나치게 동의냐 저항이냐의 이분법적 구조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점을 비판하거나, 대중이 묵종하고 있었다고 해서 체제에 동의했다는 식으로 단정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것에서도 이 논문들의 공통점은 드러난다. 그러면 이제부터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박정희 체제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1) 박정희의 미발간 도서 『한국민주주의』와 박정희 독재의 특징―윤해동의 경우
첫번째로 실린 윤해동의 논문은 정권 차원에서의 독재 메커니즘을 살펴보려는 노력이다. 이를 위해 윤해동은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박정희의 미출간 저작인 『한국민주주의』(237~238 참조)를 발굴해 소개하면서, 이 책에서 드러나는 박정희 독재의 ‘주권독재적’ 성격을 분석하고 있다.
“‘민주주의 이념은 지켜야 된다’. 그러나 이 이념이 냉혹한 현실에 부딪쳐 흔들릴 때에는 우리의 민주주의 이념을 민족주체의식으로 더욱 확고히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허공에 뜬 이론이 아니라 민족의 자주·자립·자조·자위·자결·자강으로 뒷받침되는 민주주의만이 민족에 뿌리박은 정치이념일 수 있으며 생동하는 이념일 수 있는 것이다. (중략) 민주주의가 민족주의와 결합할 때에는 놀라우리만큼 강인한 힘을 보여주는 것”(『한국민주주의』 중에서)―이 책 본문 245~246쪽에서 재인용
윤해동이 이 논문에서 주장하고 있는 핵심은 ‘국민’의 이름으로 정권이 주권을 위임받아 행사한다는 ‘주권독재’가 유신체제의 동의 형성에도 깊이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유신헌법’이 1972년과 1975년 두 번의 국민투표로 합리화되었다는 것에서 잘 드러난다는 것이다. 또한 윤해동은 주권독재를 배경으로 제창된 ‘한국적 민주주의’의 사례를 통해 박정희가 ‘민주주의’의 언설까지도 동의의 기제로서 사용했다는 점을 살필 수 있다고 본다.
윤해동의 이런 분석은 참신하다. 기존의 유신체제 분석들이 대체로 유신체제를 ‘민주주의의 파괴’, ‘노골적 독재’ 등으로 분석하면서 민주주의를 독재의 반대급부로 인식했다면, 윤해동은 주권독재 개념을 통해 독재와 민주주의의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독재체제에서나 민주주의 체제에서나 주권독재는 성립될 수 있다는 이런 논의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이분법을 지양하고자 하는 대중독재론의 최근 문제의식과도 부합한다.

2) 일상사적 접근을 통해 본 박정희 시대 노동자와 도시하층민―김준·김원의 경우
김준과 김원은 각각 박정희 시대의 노동자와 도시하층민의 문제에 일상사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우선 김준은 현대조선에 근무했던 노동자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아래로부터의 역사쓰기’를 시도하는데, 이를 통해 박정희에 대한 ‘향수’의 근원을 탐색한다. 김준은 이 같은 노동자들의 향수가 현대조선이 구축한 회사 신화화의 산물이라고 보았다. 또한 전체적으로 나아지고 있었던 생활조건, 다른 직장에 비해 높은 임금수준, 거대한 생산물을 만들고 있다는 자부심 등이 함께 작용하여 회사의 헤게모니적 지배를 강화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김준은 이런 노동자들의 묵종을 곧바로 ‘동의’로 환원시켜서는 안 된다고 주장한다. 1974년 있었던 현대조선 노동자 폭동에서처럼 노동자들은 잠재되어 있던 억압에의 불만을 일순간 방전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묵종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일탈이나 소소한 저항을 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사회의 마이너리티에 대한 타자화, 존재방식, 저항 등에 관심을 가져 왔던 김원은 부마항쟁의 주도세력으로 나선 도시하층민들을 조명한다. 부마항쟁의 추이를 기록한 다수의 문서를 통해 학생들 주도로 시작된 시위가 공권력의 투입이 가시화되면서 도시하층민 주도의 시위로 변해갔다는 점을 부각시킨다. 이 도시하층민들이 부유층과 국가기관, 언론사 등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면서, ‘사회적 양극화와 경제위기의 부담을 도시하층민에게 전가하는 과정에서의 조세저항 등이 결합된 도시봉기’라는 부마항쟁의 성격을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김원은 대중을 단일한 대상으로 보는 ‘반독재론’과 ‘대중독재론’ 모두를 비판한다. 도시하층민이 주도한 부마항쟁을 민주화운동으로 통합하려는 반독재론의 시도나, 도시하층민을 ‘대중’으로 균질화하려는 대중독재의 시도 모두가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것이다.

3) 박정희 체제의 ‘사회정화 담론’과 청년문화―이상록의 경우
이상록은 대중독재가 ‘저항과 동의의 이분법’을 넘어서지 못했다는 사실을 성찰하면서, 대중이 체제와 맺는 문화적 복합성을 드러내고자 했다.
특히 박정희 정권이 ‘사회정화 담론’을 통해 대중을 근대화의 수행주체로 구성하고, 근대화에 반하는 자들을 타자화하려 했다는 것에 주목한다. 청바지·생맥주·통기타로 상징되는 1970년대의 한국 청년문화가 퇴폐적인 것으로 표상되고, 장발과 미니스커트에 대한 단속이 강화되는 등 청년문화에 대한 체제의 정화 강박증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이상록의 주장이다. 체제는 타락한 청년문화를 없앤 자리에 ‘명랑사회 만들기’를 주입시키려 했으며, 청년들은 이를 무시하거나, 어쩔 수 없이 수용했다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이상록은 1970년대 학생운동을 분석한다. 이 시기 학생운동이 ‘민주회복’을 위한 정치적 투쟁, ‘교련반대투쟁’ 등 군사주의 문화에 대한 반발과 더불어 새로운 문화의 창출을 시도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당시 운동진영의 대학생들이 권위주의·군사주의·가부장주의를 내면화하고 있었다는 사실 또한 지적하고 있다.


<근대 권력의 두 형태, 독재와 민주주의의 연속성에 주목한다>

“독재와 민주주의가 뿌리를 잇대고 있는 근대 권력의 장은,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소가 검게 보이는 밤’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렇듯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를 ‘검게’ 칠해버리는 것은 확실히 정치적 순진함의 극한이고, 정치에서 순진함은 아마도 최악의 오류가 될 터이다. 그럼에도 근대 권력 일반의 속성에 특별히 주목하는 이유는 독재와 민주주의의 차이를 백지화함으로써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함이 아니라 근대의 ‘밤’을 넘어서는 어떤 새로운 새벽(그것이 탈근대든, 아니면 또다른 근대든)을 상상하기 위함이다.”―장문석, 8쪽
이 책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박정희 체제에 대한 일상사적 분석은 대중독재론의 기존 논의가 확장되는 것과 그 궤를 같이 한다. 임지현은 이 책에 실린 자신의 논문에서 “자유민주주의는 가장 세련된 형태의 전체주의”라는 사이먼 토미(Simon Tormey)의 언급을 인용한다. “근대 권력의 두 가지 형태인 독재와 민주주의의 연속성”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인데, 이런 임지현의 논의는 ‘근대성 비판’을 통해 ‘독재’에서 ‘민주주의’로 논의 지평을 확장하겠다는 표명이다.
2005년 4월, 임지현은 2005년까지 대중독재의 ‘패러다임을 가다듬는 이론적·실사구시의 실증적 작업’을 마친 후, 2단계 연구로 ‘젠더, 모더니티, 기억’의 문제를 3년여에 걸쳐 다루겠다는 계획을 이미 밝힌 바 있다. 『대중독재: 강제와 동의 사이에서』, 『대중독재와 영웅 만들기』, 『대중독재2: 정치 종교와 헤게모니』에 이르는 일련의 작업이 대중독재론의 1단계 연구였다면, 2단계 연구는 2006년 4월의 토론회와 그 성과물인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에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토론회는 대중독재론 그룹 외부의 연구자들(예컨대, 서울대 서양사학과 최갑수, 연구공간 ‘수유+너머’ 고병권, 여성학자 정희진, 성공회대 조희연 등)이 대거 참여한 속에서 비판적으로 진행되었고, 『근대의 경계에서 독재를 읽다』의 경우도 토론자들의 토론문을 함께 실어 대중독재론의 성과와 그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보여줄 수 있는 방법으로 편집되어 출간되었다. 이렇게 탈근대적이고 미시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는 대중독재론의 노력은 이분법적 사고가 만연해 있는 한국 현대사 분석에 더 다양하고 넓은 지평을 열어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