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한반도평화 연구 (책소개)/3.통일문제

독일 통일의 문화변동 : 동독의 귀환, 신독일의 출범

동방박사님 2022. 8. 6. 11:57
728x90

책소개

통일 초기에 행해진 동독문화에 대한 대대적인 청산은 주로 제도적·인적 측면에서 이루어졌다. 그 과정에서 동독이 자랑하던 문화 인프라는 전면적으로 해체되었고, 동독의 문화엘리트들은 통일독일의 ‘문화장’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러나 통일 초기의 이러한 청산 분위기는 대략 1990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동독인들이 새로운 자의식에 눈을 뜨면서 변화하기 시작했다. ‘동독 고유의 것’에 대한 새로운 자각이 확산되면서 동독 고유의 ‘부분문화’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동독문화는 서독문화의 변화를 견인하면서 통일독일의 문화장 전체를 변화시켰다. 동독문화가 통일독일 문화장의 ‘아방가르드’로 떠오르기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동독문화는 ‘인프라 청산-부분문화 형성-아방가르드로의 부상’이라는 세 단계의 변화 과정을 거치면서 통일독일의 문화변동을 촉발하고 주도하게 되었다.

이 책은 통일 이후 독일에서 나타나고 있는 문화변동 양상을 일상(여성, 청소년), 예술(문학, 연극, 영화), 공론(언론, 학문, 지식인)의 세 영역에서 추적해 정치경제적 체제통합의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한반도의 통일 논의를 문화적 차원으로 확장한다. 독일통일은 예상치 못한 문화변동을 초래했다. 첫째, 동독적 가치관은 약화되기보다는 강화되었다. 둘째, 새로운 성격을 지닌 동독 정체성이 부활했다. 셋째, 서독인의 가치관이 동독인의 가치관에 수렴하고 있다. 이 책은 통일 이후 문화변동 및 가치관 변화와 관련해보면 ‘동독의 귀환’ 현상이 뚜렷하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와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 실증적으로 제시한다.

목차

제1부 통일독일 문화변동의 양상과 의미
제1장_통일독일의 문화변동_김누리
제2장_동독의 귀환: 통일 이후 독일의 가치관 변화_김누리

제2부 통일독일 문화장의 지각변동
제3장_독일 통일 이후 여성상의 변화: 동독 여성을 중심으로_도기숙
제4장_통일 이후 독일 청소년 문화변동에 대한 연구:
동독 지역 청소년의 여가 문화 변화를 중심으로_이영란
제5장_통일 이후 독일 문학계의 지형변화_류신
제6장_통일 이후 동독 극단의 위기와 대응_이노은
제7장_통일 이후 동독 영화계의 변화 양상_박희경
제8장_통일 이후 동독 지역 방송의 변화: 체제 변화와 프로그램 변화를 중심으로_배기정
제9장_철저한 식민화인가, 새로운 정체성의 확립인가:
독일 통일 이후 동독 학문 영역의 지형변화_김동훈
제10장_독일 통일과 지식인의 위기_안성찬

제3부 통일독일 문화변동의 국면들
제11장_통일 이후 동독 지역 여성문화의 변화_도기숙
제12장_통일 이후 독일 청소년 폭력 실태에 대한 연구: 스킨헤드의 극우적 성향을 중심으로_이영란
제13장_‘북해’로 가는 길: 잉고 슐체의 소설 『심플 스토리』에 나타난
통일 이후 동독인의 삶의 편력_류신
제14장_1990년대 독일 문학 담론에 나타난 기상 변화:
크라흐트의 소설 『파저란트』를 중심으로_윤미애
제15장_동독 연극의 흔적 찾기: 예나 극단의 사례를 중심으로_이노은
제16장_‘점령’으로서의 독일 통일과 통일 이후 독일 정치극: 호흐후트의 ??바이마르의 베씨??_이정린
제17장_일상의 발견: 안드레아스 드레젠의 영화 '층계참'에서 찾는 동서독의 ‘스밈’_박희경
제18장_동독 지역 제3공영방송 성공신화의 두 얼굴_배기정
제19장_통일 이후 독일 학문 패러다임의 변화: 통일독일의 학문적 논쟁을 중심으로_김동훈
 

저자 소개

저 : 김누리
 
통렬한 성찰로 우리 사회의 민낯을 직시하며 우리가 나아갈 길을 깊이 고민해 왔다. JTBC <차이나는 클라스>의 세 차례 강의와 ‘2020년 서점인이 뽑은 올해의 책’ 등에 선정된 『우리의 불행은 당연하지 않습니다』를 통해, 뿌리 깊은 ‘한국형 불행’의 근원을 제시하며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다. 중앙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 독일유럽학과 교수이다. 한국독어 독문학회 회장을 지냈다. 독일 브레멘 대학에서 ...
 

출판사 리뷰

독일통일은 정치경제적 체제통합의 측면에서 볼 때 매우 성공적인 사례로 평가되고 있다. 하지만 체제통합이라는 물리적 차원의 통일은 분단으로 인해 이질화된 두 주민이 서로 만나 화학적 융합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에 불과하다는 사실도 점차 분명해지고 있다. 다시 말해 독일인들은 진정한 의미의 통일이란 체제와 제도의 차원을 넘어서서 인간들 사이의 상호이해와 소통, 즉 ‘문화’의 차원에서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며, 문화적 융합은 일방적인 ‘흡수’가 아니라 상호 간의 ‘삼투’라는 길고 복잡한 과정을 요구한다는 사실을 배우게 된 것이다. 지난 20년간 독일에서는 이질적인 생활양식과 가치관이 서로 스며들어 새로운 문화를 빚어내면서, 문화의 모든 영역에서 대규모의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이 책은 중앙대학교 독일연구소 연구원 11인이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아 2005년부터 2007년까지 2년간 수행한 공동연구의 결과물로, 한반도 통일 이후 불어 닥칠 문화적 후폭풍을 예측해 대비할 수 있는 역사적 사례를 제공한다. 독일이 통일 20주년을 목전에 둔 시점에서 통일독일의 문화변동을 결산하고 있는 이 책은 기능적 차원과 정서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통일 논의의 ‘문화적 전환’을 모색하고, 분단이 남긴 ‘머릿속의 장벽’을 허물어 ‘냉전 문화’를 극복하며, 바람직한 남북한 문화통합 모델을 구상할 수 있게 한다는 점에서 의의를 갖는다.

통일이 단순히 제도나 체제의 문제이기에 앞서, 무엇보다도 ‘인간’과 정신의 문제임을 이 책은 보여준다. 한반도 통일이 한층 가까워지고, 남북 주민 간 교류도 활발해진 오늘날 진정한 통일은 남과 북의 ‘사람들’이 서로 심리적·정서적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이루어진다. 이 책은 통일을 경제적 손익의 관점에서, 통일비용이라는 재정부담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국내 통일논의의 문제점을 문화적 관점에서 비판하고, 통일논의의 문화적 전환을 제안한다.

통일 과정은 다양한 사회적 실험의 장이 되어야 한다. 독일의 경우 동독이 서독의 체제와 가치에 일방적으로 적응하는 방식으로 통일 과정이 진행됨으로써 동과 서 어디에서도 새로운 사회적 실험은 부재했다. 통일이 쌍방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하고 새로운 국가적 전망을 열어줄 수 있는 사회적 실험과 모색의 과정이 되지 못한 것이다. “출발사회의 제도적·인적 잠재력은 가능한 연결지점이 아니라 오직 시급히 극복되어야 할 유산으로 간주되었다. 통일 과정은 출발사회와 도착사회의 매개로서, 하나의 과도기사회를 구성하는 것으로서, 즉 모색과 실험의 과정으로서 이해되지 못하고, 동독이 서독에 단순히 동화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은 이미 서독에 다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흡수통일로 인해 ‘동독과 서독의 상황을 실질적으로 지양하고, 두 사회의 진보적인 요소들을 계속 발전시키며, 통일을 통해 사회적 발전과 해방의 새로운 질을 창출할 기회’를 상실한 것이다. 그 결과 “동독은 독일경제와 사회의 신자유주의적 변신의 실험장”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통일 후 15년이 지난 지금, 동독 문학은 ‘서독 문학과 동질적이면서도 동시에 독자적인 문학’으로 버젓이 살아남았고, 푸대접을 받던 동독 작가들의 위상은 오히려 높아가고만 있다. 이는 정치, 경제, 제도의 통합 과정에서는 서독에 의한 동독의 흡수 통합이라는 ‘독일 통일의 논리’가 먹혀들어갈 수 있었지만, 문화적 차원에서는 일방통행적인 통일의 논리가 온전히 관철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잘 반영한다. 이에 대해선 다음과 같은 독일의 작가, 지식인들의 발언에서도 잘 드러난다.

“변화의 동력은 동독이라는 부분사회의 새로운 단절, 갈등, 양가성에서 나오며, 이러한 변동의 압력이 통일독일 전체를 향하고 있다.” ―롤프 라이시히

“생활환경은 서독화되었지만, 생활감정은 동독화되고 있다.” ―페터 슈나이더

“동독인이 서독을 문화적으로 정복하고 있다.” ―클라우스 슈뢰더

“독일은 지난 16년 동안 대부분의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변했다. 그 결과는 정치, 일상생활, 가치관에서 나타난다. 통일독일은 서구화되었다기보다는 동구화되었고, 우경화되었다기보다는 좌경화되었으며, 자유주의적이고 보수적인 사회가 되었다기보다는 사회민주주의적인 사회가 되었고, 시장중심적인 사회가 되었다기보다는 국가중심적인 사회가 되었다. 동서독 주민들 사이에는 여전히 관념, 가치관, 정치의식에서 분명한 차이가 존재하지만, 변화 과정은 이미 오래전부터 오직 동쪽에서 서쪽으로 향하지 않고, 반대로 여러 면에서 서쪽에서 동쪽으로 향하고 있다.” ―클라우스 슈뢰더

“동독 유권자들이 정치적 스펙트럼 전체를 좌측으로 이동시켰다. 이것은 또한 개별 정당의 강령논쟁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이때 좌파라는 것은 무엇보다도 더 많은 국가개입과 더 많은 재분배를 옹호하고, 개인의 위험과 개인적 책임을 되도록 최소화함을 의미한다. 다수의 동독인이 가진 이러한 시각에 그 사이 많은 서독인도 동조하고 있다. 접근 과정이 서에서 동으로 진행되고 있다.” ―클라우스 슈뢰더

“단순한 합병은 결코 통일이 아니다. 강자가 자신의 이익을 관철하는 곳에서 약자가 사는 곳은 ‘문제 지역’이 되고 만다. 두 국가의 서로 다른 장점과 경험이 유익하게 사용되고 창조적으로 어우러지는 곳에서는 어느 한쪽도 굴욕감을 느끼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피워낼 것이다.” ―폴커 브라운

동서독이 여전히 존재하는 가치관의 차이를 넘어 진정한 문화통합을 이루려면 쌍방의 동시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독일 통일이 동서독 사회를 동시 변혁하는 방식으로 추진되지 않고, 동독이 서독 모델에 동화되는 방식으로 진행됨으로써, 통일독일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통일 이전보다 오히려 약화되었다. 오늘날 독일이 안고 있는 제반 갈등과 모순은 일차적으로 여기서 잉태된 것이다. 또한 동시 변혁은 ‘동서독의 문화적 융합’으로 이어져야 한다는 점도 유념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 개인적 능력과 사회적 정의, 대의민주주의와 직접민주주의의 의미 있는 결합”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다. 서독인이 중시하는 자유, 개인적 능력, 대의민주주의의 가치가 동독인이 강조하는 평등, 사회적 정의, 직접민주주의의 가치와 함께 어우러지는 사회야말로 통일독일이 추구해야 할 미래 사회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