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사회학 연구 (책소개)/5.노동문제

수없이 많은 바닥을 딱으며 : 어느여성 청소노동자의 읽기

동방박사님 2022. 8. 28. 1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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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살기 위해 펜을 들었으나
백지 앞에서 가장 행복했고 진솔했던
스웨덴 여성 청소노동자의 희망 이야기

평범하지만 결코 평범하지 않은
여성 청소노동자의 순수한 인간적 기록


“나는 계속 일기를 쓴다.
내 삶이 다른 누군가의 관심을 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면 삶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이바르 루유한손 상 수상(1987)
‘스웨덴 1000대 고전’ 선정(2009)

마이아 에켈레브가 남긴 유일한 작품으로 다섯 아이를 홀로 키우며 살아가는 청소노동자로서의 삶을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전한다. 복지사회 스웨덴 저소득층의 고단한 일상은 물론 다섯 남매의 한부모로서 자신의 문제들과 기쁜 일들을 그려낸다. 이러한 가장 개인적인 글은 정치적인 문학이 되어 일반적 관점과는 또다른 계급 관점을 보여주며 자신을 응시하고, 사회를 비추며, 세계를 성찰한다. 질박한 글 속에는 저자의 날카로운 논평과 저임금 여성 청소노동자의 생각이 담겨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960년대 스웨덴 노동계급의 일상을 가장 명확하게 묘사하고 있다.

이 책은 1970년 스웨덴의 출판사 라벤 오크 셰그렌이 주관한 소설 공모전에서 1위를 차지했고, 출간과 함께 선풍적 인기를 끌며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이후 덴마크어, 노르웨이어, 핀란드어 등 다양한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저자 타계 2년 전인 1987년 스웨덴 노동문학상인 이바르 루유한손 상을 수상했으며 2009년에는 ‘스웨덴 1000대 고전’에 선정되었다.
 

 

저자 소개 

1918년 스웨덴 중서부 칼스쿠가에서 태어났다. 6년 초등과정을 마치고 야간학교 강의를 통해 더 많은 교육을 받았다. 1940년에 굴착기 작업자 토슈텐 에켈뢰브와 결혼하여 5남매를 두었으나 1957년에 이혼했다. 1970년 52세에 일기소설로 데뷔했다.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랫동안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스웨덴의 유명 출판사 라벤 오크 셰그렌의 ‘정치소설 공모전’에 그동안 썼던 일기로 응모하여 최우수상을 받았고 ...
 
역 : 이유진
 
한국외국어대학교 대학원 영어영문학과와 스웨덴 스톡홀름대학교 문화미학과에서 문학석사 학위를 받았다. 노르웨이, 덴마크, 스웨덴의 문학작품을 우리말로 옮기고 있다. 옮긴 책으로 『여름의 잠수』, 『내가 아닌 누군가를 생각해』, 『내 안의 새는 원하는 곳으로 날아간다』, 『할아버지의 마지막 모험』과 토베 얀손의 ‘무민 연작소설’, ‘무민 클래식 시리즈’, ‘무민 골짜기 이야기 시리즈’ 등이 있다.
 
 

책 속으로

가장 높은 계급부터 가장 낮은 계급까지 모든 인간은 경제적 투쟁에 사로잡혀 있다. 자신의 권리인 것을 얻거나 자신의 권리가 아닌 것을 유지하려는 투쟁이다. 현실 또는 우리의 바람에서는 물질적 소유물이 우리의 인생관을 지배하며 대개 모든 너그럽고 창조적인 충동은 제외한다.
---「1966년 2월 8일」중에서

나는 계속 일기를 쓴다. 내 삶이 다른 누군가의 관심을 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가끔 속내를 털어놓을 수 있다면 삶은 한결 수월해질 것이다.
---「1966년 가을 학기」중에서

세상에서 제일 힘든 역할이자 가장 어려운 직업은 엄마로 사는 일 같다. 일종의 책임이 생기고 날마다 무능력을 실감한다. 모성의 행복을 느낄 겨를이 없다. 적어도 몇 분 정도는 그럴 것이다.
---「1966년 12월 15일」중에서

이제 다시 살아가려고 노력, 노력,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단지 먹고, 자고, 청소하고, 먹고, 자고, 청소하고,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다면 인간은 아마도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자신과 자기가 가진 것 외에는 무엇도 신경쓰지 않는다. 그런 것이고, 그렇게 되는 것이며, 교회 설교단과 국회에서 얼마나 좋은 말이 많이 쏟아지던가? 인간은 가장 사악한 존재다.
---「1968년 성금요일」중에서

확실히 가난한 사람들은 스웨덴에서 잘 살고 있지만 그래도 여전히 고임금소득자와 저임금소득자 사이의 차이는 너무 크다. 스웨덴에서 사회보호대상자가 되려면 양심 없이 태어나야 한다. 사회복지과에 가는 일을 짜증나고 창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인권’ 조항도 외워야 한다. 그러고 나면 아마 더 쉬울 것이다.
---「1968년 5월 2일」중에서

하리 마틴손은 『탈출구』에서 가난한 사람이 비통해하고 이따금 공격적이 되는 이유에 대해 썼다. 그는 이를 ‘결핍의 불안’이라고 한다. 인생의 약속과 이상이 늘 공허하게 무無로 사라지는 것에 대한 수천 년의 실망으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확실히 가난한 사람은 부자보다 시기심이 더 많은데, 가난한 사람은 가장 간단한 일 앞에서도 결핍의 불안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주 이런 결핍 때문에 가난한 사람은 자기에게 없는 모든 것을 과대평가하고 무한히 많은 것을 과소평가한다. 이는 가난의 가장 깊은 비극이다. 결핍의 불안은 결핍 자체보다 더 나빠진다. 사람을 과도하게 긴장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1968년 5월 15일」중에서

우리의 거리에는 새로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 22년 전 이곳으로 이사했을 때와 다를 것이 하나도 없다. 아무도 자기 말고 다른 것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 거리의 모든 사람은 어떤 면에서는 뒤처지고 있다. 우리는 늘 그래왔듯이 삶을 살고 있으며, 또한 늘 그래왔던 것에서 달라질 수 있다고 아무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 모든 것은 지속적이다.
---「잉리드의 날」중에서

책 제목을 어떻게 지어야 할까? 『보통 스웨덴 아주머니의 일상』? 『어느 청소부의 일기』? 아니면 『나의 의사소통 방식』? 생각해볼 가치가 있다. ‘책’ 생각을 할 때마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해진다?왜 머릿속에서 그런 정신나간 생각이 떠오른 것이었을까. 도서관 한 곳을 청소하며 출판시장이 어떻게 홍수에 잠겼는지 생각한다. 책을 내는 일이 지금과 같은 속도로 계속된다면 지구는 책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
---「월요일 저녁」중에서

살면서 여러 번 나를 불쌍하게 여기는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은 나를 딱하게 여겼다. 대신 내가 딱하게 여기고 싶었던 이들은 그들이었다. 그들보다 없이 살아도 내 삶은 그들보다 훨씬, 훨씬 더 넉넉하다고 생각한다. 그들은 자기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을 딱하게 여긴다. 그들은 나와는 다르게 삶의 가치를 평가한다.
---「부활절 후」중에서

책……. 책을 곁에 둔다면 외롭지 않다. 독방에 갇혀 있어도 고독하지 않다. 책을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책과 함께하지 않아도 내면에는 책이 있는 셈이다. 책의 세계에 한번 발을 들여놓으면 원하는 곳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부활절 후」중에서

그때 인간은 처음으로 모든 동물로부터의 이례적인 제 지위를 드러내며 동물적 존재에서 진정한 인간적인 삶의 형태로 이행한다……. 그때 처음으로 인간은 자기 역사를 더욱더 의식적으로 쓸 것이다. 그 순간부터 인간이 움직이기 시작하는 사회적 과정은 인간이 의도했던 결과를 얻을 것이다.
---「(평화를 이룩함으로써) 사람들의 마음 얻기」중에서
 

출판사 리뷰

청소노동자의 삶과 생각을
일상으로 그려내다


작가는 1957년 이혼하고 다섯 아이의 엄마로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오랫동안 청소노동자로 일했다. 비록 청소노동자라는 낮은 사회적 계급에 속했으나 교육 열망이 높았으며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얀 뮈달, 알베르 카뮈, 이바르 루유한손, 하리 마틴손 등의 작품을 읽으며 문학적 지평을 넓혔고 문학을 통해 자긍심을 키웠다.

“만일 사람마다 삶을 살아갈 힘이 있어야 한다면 자기를 위해 길을 밝혀줄 불빛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 내 빛은 오랫동안 작가 하리 마틴손이었다. 마틴손은 굴욕을 견뎌낼 수 있었다. 그렇다면 나 역시 굴욕을 이겨낼 것이다……. 마틴손은 저 밖에 서서 부자들의 웃음소리를 들었다. 그러므로 나 역시 밖에서 그 일을 해낼 것이다. 마틴손은 무기력해지지 않고 가장 비천한 일들을 해냈다. 따라서 나 역시 청소용 양동이에 익사하지 않고 내가 맡은 청소부 일을 해낼 것이다.”

그와 동시에 “내가 아는 가장 재미있는 일은 글을 쓰는 것이다. 할말이 없어도 잠시 쉬는 시간이 생기면 나는 얼른 종이와 펜을 잡는다.”라고 할 만큼 청소노동자로서의 고단한 삶을 글쓰기를 통해 위안을 받았다. 이는 일상의 우울함에도 불구하고 희망적일 수 있는 원동력이기도 했다.

“나는 일기를 계속 쓴다. 내가 글을 쓸 수 있다고 믿어서가 아니라 이런 식으로 이야기를 할 수 있다면 내 삶은 좀더 편안해질 것이다.”

개인적인 글에 투영된
1960년대의 시대상


이 책의 시대 배경은 1967년부터 1969년으로 한국전쟁이 끝난 후의 한반도 위기, 푸에블로호 사건, 베트남전쟁, 6일전쟁, 1968년 5월 혁명을 비롯한 당시 세계정세를 언급한다. “개인적인 것이 국제적인 것이다”와 같이 저자는 시대의 흐름을 따라가며 교육을 받지 못한 사람들의 억압된 잠재력에 대한 노동운동, 좌파운동, 여성운동의 관점을 반영한다. 저자의 개인적인 기록은 정치적이기도 하여 사회 일원으로서 시간과 대륙을 초월하는 사회적 참여에 동참한다.

“지난 토요일 시위는 잘 진행되었다. 우리는 14명이었다. 전단지 배포 등의 일을 모두 마친 후 나는 인구가 4만 명에 육박하는 도시에 더 많은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것이 조금 이상하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베트남에서 나가라’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이것은 지금 유일하게 중요한 일이다.”

이 책은 일반적 관점과는 또다른 계급 관점에서 노동자 삶의 경험을 그리며 문학평론가이자 작가였던 칼 벤베리의 말처럼 ‘1960년대 스웨덴 저임금 노동계급의 일상에 대해 가장 명확하며 반박의 여지가 없는 재현에 성공했다’는 평을 받았다.
 

추천평

신을 믿지 않는 내가 신 대신 믿는 것이 있다. 간절하게 쓰는 마음. 그 마음을 지닌 책이 출간 반세기 뒤에야 우리에게 닿았다. 가난하고 정규 교육과 거리가 멀고 홀로 다섯 아이를 키워야 했던 여성 청소노동자가 성공과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다만 살아내기 위해 쓴 글. 매일의 양식처럼 하루치의 글을 읽고 쓰며 하루씩을 살아낸 사람의 기록. 쓸고 닦는 일의 고단함을 이야기하는 데서 출발한 마이아 에켈뢰브의 일기는 하루하루 쌓일수록 자신을 응시하고, 사회를 비추며, 세계를 성찰한다. 그렇게 가장 개인적인 글은 가장 정치적인 문학이 된다. 글쓰기가 세상을 구원하지는 못하지만,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어 간절히 쓰는 사람만큼은 구원할 수 있다는 사실을, 그 한 명 한 명의 구원이 더해질 때 세상도 조금씩 움직인다는 사실을, 이 책은 믿으라는 말도 없이 믿게 만든다.
- 이문영 (기자·작가)

이런 일기는 처음이다. 일기를 쓴다면, 더구나 출간한다면 이 책은 최고의 모델이다. 1970년에 세상에 나온 스웨덴 작가의 이 책은 세계사를 총람한다. 그는 1980년대 이후 국제정치학계의 새로운 도전이었던 “개인적인 것이 국제적이다(the personal is the international)”의 사상을 이미 체득하고 있다. 청소노동자였으며 이혼 후 5남매를 혼자 양육한 여성인, 작가의 사유의 깊이와 문장은 일상을 유지하는 ‘집안일’로부터 면제된 ‘남성’ 작가와는 질적으로 다른 차원의 수월성을 보여준다. 나는 이 책을 읽고 내 안의 뿌리 깊은 초월적 인간상에 대한 선망을 직면할 수 있는 용기를 얻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팔꿈치사회’에서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세상의 가장 낮은 존재를 해치지 않는” 선함과 지혜를 얻으리라. 욕망의 시대를 차분하게 껴안은 이 책에 몸을 맡겨보기를 권한다. 읽기 편하고 정확한 한국어 번역은 덤이다.
- 정희진 (여성학 박사,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저자)

청소, 노동, 여성. 세상이 연민하고, 대상화하고, 무시하기 쉬운 단어의 조합. 이 세 단어를 지니고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이 글을 쓴다. “이제 청소하러 갈 테고 청소를 마친 다음에는 야간학교에 갈 것이다.” 노동과 삶이 딱 붙은 글이다. 그 사이를 파고드는 것은 에켈뢰브의 세계를 향한 통찰과 인생을 대하는 관대함이다. 감히 누가 그의 글을 연민으로 읽을 수 있을까. 글에서 마이아 에켈뢰브는 묻는다. “어떻게 ‘여자들’은 항상 더러워진 것을 바꿀 힘이 있을까. 끊임없이.” 나는 읽으며 생각한다. ‘어떻게 그는 항상 따스하면서도 날카롭게 세계를 염려할 힘이 있을까. 끊임없이.’
- 희정 (기록노동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