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기독교-개신교 (독서)/6.내한선교사열전

안병무 평전 (민중신학자)

동방박사님 2022. 12. 2.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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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안병무 타계 11주기를 맞아 그의 사상과 삶을 다시 한 번 그려낸 안병무 평전. 이 책은 정형화된 평전 속 인물보다 강단이 아닌 민중 속에서 삶과 예수를 고민했던 인간 안병무를 그리고 있다. 더불어 그의 사상의 궤적과 활동뿐만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느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그 문제에 천착하는, 치열했던 그의 인생 겹겹을 긴장감 있게 펼쳐 보인다.

안병무는 예수를 숭배 대상으로서의 인격이 아니라 억눌리고 수난 당하던 민중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구원'은 신에게 영혼을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의 해방이라고 말한다. 그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 뾰족탑이 없는 교회, 소박하고 작은 교회 등 대안적 기독교 활동의 뿌리를 정립하였으며, 민주화운동의 주축이 되었던 민중신학 역시 그의 영향 아래 정립되었다. 저자 김남일은 안병무의 생애를 통해 역사와 인간, 종교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를 제공한다.

목차

소년 시절: 어머니, 간도, 그리고 교회
한 여자 / 사건으로서의 어머니 / 모멸의 대지 / 간도, 독립운동으 일상과 전설 /
공산당 / 스트라이크를 주동하다 / 충격, 십자가! / 간도와 한국 기독교

청년 시절: 해방, 전쟁, 그리고 청년 구도자
전야 / 해방, 엑소더스 / 서울, 혼돈의 거리에서 / 진실의 힘 / 한국전쟁 /
절망, 교회를 버리다 / 거친 들판에서 외치다 / 평신도 공동체, 꿈과 좌절 / 겟세마니의 길

독일 유학 시절: 역사의 예수를 찾아서
역사의 예수를 찾아서 / 존재를 건 내전 / 불트만 신학의 세례 /
국가 밖에서 국가를 사유하다 / 배운 것과 못 배운 것

신학적 전환기: 이 땅에서 부활한 예수
조국의 올가미 / 아아, 어머니! / 수유리의 힘 / 『현존』을 창간하다 / 전태일 사건 /
얼굴이 더럽혀진 천사 / 성서, 자꾸 물어야 하는 고전 / 민중신학의 요람

민주화 투쟁기: 광야에서 - 해직과 투옥
한신인 / 수유리 칼바람소리 / 금관의 예수 / 오클로스 / 3.1민주구국선언 /
산헤드린의 포로 / 성문 밖

민중신학 정립기: 성문 밖에서 신학의 역사를 새로 쓰다
서울의 짧았던 봄 / 다시 거리로 / 갈릴래아의 예수 / 민중신학 / 유언과 비어 /
보라, 이 사람을! / 정의가 강물처럼

마지막 모색기: 공성이불거의 삶
죽임과 살림 / 사라지는 것에 대한 예의 / 우리 안의 파시즘 / 애완동물을 해방시켜라! /
통일공화국 헌법을 만들다 / 내가 버린 교회 / 우리가 세상에 뭐 할라고 왔나 /
마음의 동산, 디아코니아자매회 / 공성이불거 / 품에서 품으로

에필로그 - 하느님 앞에서 너는 가능성이다


참고자료
연보
저서 및 논문집

저자 후기 - 무지를 위한 변명
 

저자 소개

저 : 김남일
 
1957년 경기도 수원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에서 네덜란드어를 전공했고, 1983년 [우리 세대의 문학]에 단편 「배리」를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은 책으로 장편소설 『천재토끼 차상문』, 『청년일기』, 『국경』, 소설집 『일과 밥과 자유』 『천하무적』 『세상의 어떤 아침』 『산을 내려가는 법』, 청소년소설 『모래도시의 비밀』, 『골목이여, 안녕』, 인물평전 『안병무 평전』, 산문집 『책』 등이 있...
 

책 속으로

안병무는 교회란 아름다운 공동체, 그것도 인류가 만든 가장 위대한 공동체 중 하나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교회를 성전으로 부르며 추종하던 이들이 누구 하나 교회를 돌아보지 않고 달아나기에 급급했다. 설교자 안병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 그들은 평소 안병무의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금싸라기처럼 여기는 듯 보였지만, 전쟁이 터지자 누구 하나 그를 염려해 준 이가 없었다. 교회 공동체는 철저히 허상이었다. 오직 물색없는 한 청년의 가슴속에만 존재하던 허구의 이미지! ― 81~82쪽

안병무는 성서를 인류의 고전 중 하나로 대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고전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일이다. 고전은 그것을 가진 민족에게는 큰 보물이지만 자칫 큰 재앙이 될 수도 있다. 가령 유다교가 성서를 율법으로 고착시켜 버렸을 때, 성서는 곧 재앙이다. 그러나 기독교도들의 재해석으로 폐쇄성을 뚫고 세계로 나아갈 수 있었다. 따라서 고전으로서의 성서는 그것이 율법화되어 오히려 미래로 향하는 문을 차단해 버리는 망령이 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재해석되어야 한다. ― 168쪽

안병무는 전태일 사건 이후 불붙기 시작한 지식인들의 민중운동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보인다. 아울러 신학적으로도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그는 민족의 분단이 민중의 고통을 가중시키고 독재체제의 존속을 합리화하는 상황에서 분단극복의 과제를 신학적으로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연구할 필요성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 171쪽

안병무는 비로소 역사의 예수를 알 것 같았다. 그는 어디 멀리 있지 않았다. 말씀에 있지 않았고, 성경 속에 갇혀 있지 않았다. 교리에 있지 않았고, 금빛 성전에 있지 않았다. 그는 오직 가난하고, 불쌍하고, 핍박받으면서도 어진 사람들 곁에 있다. 편파적일망정 그게 진리였다. ― 207쪽

히브리서는 “주님이 성문 밖에서 고난을 당하셨으니 우리도 성문 밖에 계신 그분께 나아가서 그분이 겪으신 치욕을 함께 겪읍시다.”(13: 12-13)라고 전한다. 안병무는 이 구절을 좋아했다. 참으로 아름답고 심오한 뜻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다. 예수가 예루살렘의 성문 밖에서 처형당했는데, 그곳은 소외당한 사람들이 살던 곳이었다. ― 228쪽

---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기획의도

왜 지금 다시 안병무인가


사계절출판사가 안병무 타계 11주기를 맞아 그의 사상과 삶을 다시 한 번 그려냈다. 자본주의 사회 모순을 끌어안고 있는 교회들에게 원시 기독교의 본래 정신을 일깨우는 생생한 횃불과도 같은 그의 정신이 이 시점에 절실히 요구되기 때문이다. 부제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이 책은 정형화된 평전 속 인물보다 강단이 아닌 민중 속에서 삶과 예수를 고민했던 인간 안병무를 그리고 있다. 더불어 그의 사상의 궤적과 활동뿐만 아니라, 삶의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 위해 어느 것과도 타협하지 않고 깨지고 부서지더라도 끝까지 그 문제에 천착하는, 치열했던 그의 인생 겹겹을 긴장감 있게 펼쳐 보인다.
안병무는 8,90년대 청년들의 멘토였음은 물론이고, 요즘 젊은이들의 멘토로도 건재하다. 이 책은 그가 더 많은 젊은이들의 멘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만들어졌다. 스스로를 무신론자이자 기독교 맹탕이라는 소설가 김남일이지만, 그의 안병무에 대한 열정과 이 땅의 현실에 대한 고민이 함께했기에 ‘살아숨쉬는 인간, 안병무’도 가능했다.

‘반(反)기독교’로서의 신학

최근 아프가니스탄 인질 사태가 벌어지면서 성장주의와 공격적 선교, 현세기복성 등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이 부각되었다. 한국 교회는 그동안 이룬 성장과 영향력만큼이나 부작용과 비토 집단을 만들어냈으며, 다시금 종교란 무엇이며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을 받고 있다. 1996년 타계한 민중신학자 안병무는 일찍이 제도화되고 기성화되는 교회, 지배집단의 이익에 복무하는 기독교 교리를 비판하며 아래로부터의 기독교와 신학을 추구하였다. 그의 신학은 교리와 복음을 전파하기보다는 철저히 이 땅의 현실에 밀착하여 호흡하였고, ‘구원’이라는 기독교의 가장 근본적이며 최종적인 주제를 개인과 교회를 넘어선 역사적, 정치사회적 문제로 확장시켰다.

새로운 신학의 길을 열다

안병무는 어린 시절을 보낸 간도에서 기독교 세례를 받은 후 일생을 예수라는 화두에 전념했다. 안병무는 기성 교회 제도와 교리를 비판하며 새로운 평신도 교회 공동체운동을 펼쳤고, 예수와 성서를 독자적으로 파악하고 해석하면서 새로운 신학을 정초한다. 그는 예수를 숭배 대상으로서의 인격이 아니라 억눌리고 수난 당하던 민중의 사건으로 이해하고, 역사 속에서 예수 사건이 되풀이된다고 말한다. ‘구원’은 신에게 영혼을 의탁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하고 억압받고 소외된 사람들의 해방이라는 것이다. 안병무의 신학적 작업은 고답적인 성서 연구를 통한 것이 아니라, 한국 현대사 속에서 전태일 사건을 필두로 일어난 무수한 민중 사건들 속에서 이뤄진 것으로, 이 땅의 사회 현실에서 비롯되고 사회 현실로 귀결된다.

민중신학자 안병무를 전한다

평신도 중심의 교회, 뾰족탑이 없는 교회, 소박하고 작은 교회 등 대안적 기독교 활동은 그 뿌리를 안병무에게서 찾고 있고, 7,80년대 민주화운동의 주축이 되었던 민중신학 역시 안병무의 영향 아래 정립되었다. 저자 김남일은 격변의 현대사 속에서 안병무의 생애를 쫓아가며, 읽는 이로 하여금 역사와 인간, 종교에 대해 생각해볼 것을 권한다. 또 소설가 특유의 직관과 문장은 진리와 궁극을 추구한 종교적 영성과 사회 현실에 정면으로 맞섰던 치열함을 고스란히 살려내며 감동적인 인물 이야기를 전한다.

안병무 민중신학의 주요 내용

민중, 그리고 어머니 선천댁


필생 예수를 화두로 삼은 안병무는 고답적인 성서 연구가 아닌 거리의 전태일 사건을 통해 예수를 경험한다. 그는 비로소 예수를 인격이 아닌 사건으로 이해하게 되고, 민중을 통해 예수를 말한다. 그에게는 예수가 민중이고 민중이 예수였다. 그는 예수는 무엇이고 민중은 무엇이냐는 숱한 질문을 받았지만, 대답을 회피한다. 민중은 움직이며 살아가는 실체이기 때문에 개념화할 수 없다는 것이 그의 대답이었다. 대신 그는 그의 시작이자 끝인 어머니 선천댁을 통하여 민중을 말한다. 어린 시절 간도에서 선천댁이 겪은 수난과 모멸, 그럼에도 삶을 지켜가는 존엄함이 민중을 각인시킨 원체험이었고, 이 원체험은 안병무가 민중을 이해하는 바탕이 된다.

성문 밖 오클로스를 발견하다

안병무는 민중 체험, 예수 체험을 최초의 복음서인 마르코복음의 ‘오클로스’라는 개념으로 공식화한다. 오클로스는 마르코복음에서 예수를 둘러싼 군중을 가리키는 말로 서구 신학자 누구도 민중운동과 관련해서 이 말을 주목하지 않았다. 오클로스는 당시 유대 사회 체제에서 정죄되고 소외된 계층으로 죄인과 세리, 병자 등이 포함된다. 마르코복음에서 오클로스는 예수에게 다가서고 예수를 따른다. 예수도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질타하지 않는다. 예수는 억압당하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편임을 보여주었고, 오클로스에게는 예수가 바로 메시아였다. 안병무는 예수 사건은 바로 민중 사건이고, 역사 속에서 거대한 화산맥처럼 끊임없이 되풀이된다고 말했다. ‘역사의 예수’ ‘사건의 신학’이 이렇게 정초된다.

광주와 유언비어

80년대 광주에 대한 유언비어가 떠돌 때, 안병무는 예수 사건에 대한 새로운 착안을 한다. 당시 광주의 진실이 공식화되지 못하고 비공식적으로 떠돌자, 예수 사건도 공식화된 말씀, 즉 케리그마를 통해서 왜곡되었다는 것이다. 교회의 지도이념이자 교리인 케리그마는 예수 사건 이후에 형성된 이차적인 것이고, 결국 수난당하는 사람들의 진실은 유언비어를 통해 전승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마르코복음에 전승된 오클로스의 이야기에 지배층이 은폐한 역사적 진실이 들어 있고, 이것이 곧 민중 구원의 이야기라는 것이다. 바로 이 ‘사건의 신학’, ‘역사의 예수’의 관점에서 예수의 ‘부활’은 억압받는 민중의 봉기로 해석된다.

성문 밖에서 예수를 말하다

민중, 오클로스와 유언비어는 안병무 민중신학의 가장 핵심적인 지점들이고 ,안병무의 체험에서 비롯되어 다시 안병무의 삶으로 투영된다. 안병무는 신학적으로 민중을 규명하려고 했을 뿐만 아니라, 착취와 억압이 난무한 한국적 상황 속에서 민중을 경험하고 이해하고 설명하고 실천했다. 그의 신학적 작업과 기독교인으로서의 삶은 수난의 현장에서 시작되어 수난의 현장으로 나아갔다.

새로운 교회를 꿈꾸다

안병무 민중신학을 이루는 한 줄기는 바로 평신도 교회 공동체운동이다. 그는 젊은 시절 일찍이 제도화되고 교권 중심적인 기성 교회에 대한 불만과 비판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평신도 중심의 교회 공동체를 꿈꾸고, 새로운 교회 운동을 전개한다. 그가 만들어낸 향린교회, 갈릴리교회, 한백교회 등 많은 교회들과 한신대, 한국신학연구소 등에서 그가 길러낸 후학들은 기성 교회와는 다른 대안적 교회를 꾸려가고 있다.

안병무의 생애

1922년 평안남도 안주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간도에서 보냈다. 거기에서 십자가를 처음 본 이래 그의 삶은 예수와 한시도 떨어져 본 적이 없다. 처음 가정을 버린 아버지에 대한 반항의 한 통로였던 그 예수는 해방과 전쟁이라는 시대적 소용돌이 속에서 어느새 청년 안병무의 생 전체 의미를 결정짓는 실존적 화두가 된다. 그는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동료들과 더불어 진정한 예수 공동체를 꿈꾸지만, 꿈이 컸던 만큼 좌절 또한 클 수밖에 없었다.
독일로 유학을 떠난 그는 무수한 불면의 밤을 거쳐 말씀으로만 전해지는 예수가 아니라 ‘역사의 예수’를 찾아내는 데 전념한다. 하지만 신학박사 학위를 들고 10년 만에 귀국한 그는 아무것도 자신할 수 없었다. 모든 것을 조국의 참담한 현실 속에서 새롭게 시작해야 했다. 그때 전태일이 있었다. 그 ‘사건’을 통해 그는 비로소 2천 년 전 저 아득한 팔레스타인 땅에서 죽은 예수가 새롭게 부활하는 놀라운 경험을 한다. 그때부터 그의 관심은 오직 민중이었다. 가없는 고통 속에 비참한 생을 꾸려가는 이 땅의 민중이야말로 ‘예수 사건’의 화산맥을 이어받을 존재였다.
그는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서구 신학의 지배적 전통을 거부하고 “태초에 사건이 있었다”는, 이른바 ‘사건의 신학’을 정초한다. 나아가 7,80년대의 엄혹한 정치 현실을 관통하면서 마침내 ‘민중신학’을 일궈냄으로써 전대미문의 신학상 혁명을 완성하게 된다. 그것으로 그의 임무가 마감되는가. 천만에! 그는 자기 앞에 여전히 놓여 있는 과제들을 결코 외면하지 않았다. 투옥과 해직을 거듭하면서, 또한 매 순간 악화되는 건강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진정한 얼굴을 찾고자 했던 그의 노력은 1996년 10월 19일 세상을 뜨는 그날까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