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기독교-개신교 (독서)/6.내한선교사열전

이용도 목사 평전 - 기독교의 재출발 1931

동방박사님 2022. 12. 2.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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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

[이용도 목사 평전]은 1931년 한국 기독교의 재출발을 외쳤던 이용도 목사를 소개한 평전이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예수보다 사람이, 말씀보다 물질이 앞서고 있음을 비판하고 2014년 한국 기독교가 어떻게 재출발 할 수 있을지 이용도 목사를 통해 살펴보고 있다.

목차

기도의 젖을 먹고 자란 아이 (1901~1918)
출생과 소년기
기독교 민족학교에 입학

민족의 수난 개인의 수난 (1919~1923)
몸 바쳐 독립운동
독립운동 참여의 의의

교회개혁자에의 준비 (1924~1927)
신학교로 잡혀가다
강동 사건
주님이 들어오시는 문
문제의식 1: 교회의 성결
문제의식 2: 목회자의 정체성
증인 1: 피도수 선교사
폐병환자의 노래

인본주의 신앙에서 신본주의 신앙으로 (1928)
박재봉과의 일화
마귀격퇴
조선교회사에 기록될 주요한 사건

원산지방 부흥의 확산 (1929)
성령의 불이 다시 한반도에 임하시다
내려가지 않으면 넘어진다
회의냐 부흥회냐 순종함이 문제로다
아이마음 학생마음
피도수의 성령체험

원산을 너머 서부 북부 중부로 (1930)
회개의 소리 사랑의 사도
비판자들의 지문
문제의식 3: 예수님의 죽음
최초 평양 입성
평양기도단 1: 태동
개혁자의 자세
문제의식 4: 무애신앙
추방운동
서울로 좌천

전국을 뒤흔들다 (1931)
어린 양을 만나다
기독교의 현재의 위치
중생1: 새로지음을 받으라
중생2: 나 죽고 너 살자
사랑사이
아우성 속의 엎드림
기독교의 재출발
증인 2: 변종호
용도를 사모하는 사람들
진리의 심판
기도동무 어깨동무
간도 위에 임하소서: 용정과 연길 집회
의인의 피와 살
증인 3: 이호빈
덫?
그들이 찾던 목사
대한의 심장 서울에 떨어진 불
올 것이 오다
첫 공적 공격의 의미
복음 전하는 자의 상급
평양기도단 2: 〈신앙생활〉지
평양을 흔들다

영광과 고난과, 그리고 몰락 (1932)
한국복음운동의 큰 동지
인천의 호산나
봄 다음 겨울
예루살렘성 안으로
안주에서 떨어진 것 평양에서 떨어진 것
폭우 전 명랑한 햇살
몰락의 변곡점
꺼지지 않는 사랑과 다하지 않는 무기
김인서와 이별
너와 너의 동포를 위하여

예루살렘 성밖으로 (1933)
쫓겨나는 무리들
쏟아지는 채찍
감리교 경성연회와 장로교 안주노회
쫓겨난 무리들에게도 교회는 있는가
최후의 일격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 곁으로
이용도의 개혁은 실패인가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1934~)
작은 투쟁의 시작
예수교회의 발전과 확산
이후부터 오늘까지
 

책 속으로

무언(無言): 이 세상은 말이 많은 세상입니다. 하지 않아도 될 말, 또 남을 헤치는 말이 얼마나 많습니까. 자기의 아름다운 뜻을 남에게 전하라고 하나님께서 주신 그 말을 가지고 얼마나 남을 해하고 세상을 망칩니까. 이 세상 사회의 모든 악, 싸움, 그리고 모든 분쟁은 다 이 말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말이 없기를 바라며 또 벙어리가 되기를 위하여 염원하는 바입니다.

겸비(謙卑): 세상은 또 얼마나 교만한 세상인지요. 못 되고도 된 척하고 또 좀 되면 되었노라고 남을 멸시하고 천대 구박하는 바람에 싸움이 생기고 야단이 나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는 가장 낮을 자, 가장 미욱하고 천하고 불쌍한 자가 되어서 더 배우고, 더 얻고, 더 받아들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기도(祈禱): 나는 모든 부족과 고통과 설움을 주님께 내어 맡기는 길이 바로 기도에 있고 아버지에게서 그 큰 사랑과 위안과 힘과 빛을 얻어 오는 길이 또한 기도를 함에 있으니, 신앙생활에는 오직 기도가 있을 뿐이며 또한 기도 하나로 족한 것입니다.
- “기독교의 재출발” p. 188~189.

선천역에 내린 용도는 조금은 너절한 회색 두루마기에 굵은 베바지를 입고,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때는 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8월인데 겨울 모자를 그대로 쓰고 있었다. 그는 플랫폼에 서서 마중 온 이들을 기다렸다. 벌써 저녁이 다 되어서 함께 교회로 이동해야 했다. 분주히 누군가를 찾는 이들이 보였다. 용도는 그들을 한눈에 알아보았다. 그런데 그들은 용도를 알아보지 못했다.
“가만 내가 저 앞에 가는 그럴듯한 이를 보았는데…….”
한 사람이 같이 온 이에게 말하고 달려갔다. 그는 깔끔한 회색 양복에 구두를 신고 도시적인 가방을 들고 있는 사람에게로 가서,
“혹시, 이용도 목사님 되십니까”
“아닙니다.”
“아, 나는 서울서 오시는 손님을 맞으러 나왔는데 실례했습니다.”
그는 조금 쑥스런 얼굴로 일행이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용도 목사는 바로 곁에서 이 광경을 보고 있다.
‘지금까지 나는 저들의 옆에 서 있었으나 나의 남루한 꼴이 저들의 눈에 목사 같지 않았던 까닭으로 알아보지 못하였도다.’
서울에서 오는 유명한 부흥사라니 분명 “말쑥한 양복에 하이칼라 가방을” 들고 있으리라 기대했던 것이다. 이들을 바라보며 용도는 만감이 교차하는 중 여러 가지 진실에 접하게 되었다.

'저들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도다. 하나님은 속을 보시는 하나님인 줄 아직 깨닫지 못하였도다. 그 말을 입으로 외우고 머리로 기억하고 있으되 그 진의는 몰랐도다. 세상의 사람은 겉모양을 단장하고 하늘의 사람은 속마음을 장식하건만 저희는 세상의 사람과 같이 겉모양을 단장한 자 중에서 목사를 찾았으니 어찌 하늘에 속한 자를 찾을 수가 있었으리요. 세상이 환영하는 목사가 되자면 나의 마음을 단장하는 시간과 모든 노력을 다 가져다 몸을 단장하는 일과 사교술을 닦는 일에 써야 할지라. 그리고 겉모양으로 보여가지고 꾸미는 생활을 할지라. ‘있는 것 같되 없는 생활.’ 아, 이는 바울이 말한 바 ‘없는 것 같되 있는 사람’과는 전연 딴 종류의 사람이로다.'
- "그들이 찾던 목사“ p. 240~241.

이날 용도의 뇌리를 차지한 단어는 “고생”이었다. 목사는 믿음과 사랑이 첫째 조건이지만, 이 터전 위에서 각종 고생과 희생을 당연한 것으로 포옹해야 한다. 용도에게 목회자란, 고생자이다. 성도들로부터 가장 대접 받는 자가 아니라, 믿음을 조건 그리고 사랑을 수단으로 하여 섬김으로써 가장 고생하기로 다짐한 사람이 바로 목회자다(비교, 마가복음10:43~45). 용도식 ‘서번트후드’(servant-hood)다.
- "문제의식 2: 목회자의 정체성“ p. 68.

오, 자매여, 자매의 편지를 접할 때 내 마음 슬퍼서 217장 찬송가를 거듭거듭 부르며 눈물지었습니다. 의로우신 주님께서 받으신 모든 이름을 생각하고 우리 받는 이름을 비교하면 아직도 우리의 것이 영광스러운 것인가 합니다. 내가 욕을 먹어도 주를 위해서요, 아편쟁이, 광인의 천대를 받아도 이는 주의 이름을 인함이오니 축복이올시다. 그러나 주는 의로우사 그러하셨고 나는 너무 부족해서 그런 것이었습니다. 골고다의 길! 이 길이 나의 길이었으나 나는 아직 초학입덕지문(初學入德之門)에 있는 자입니다. 어서 의에 돌진하여 욕과 죽음을 받아야 하겠습니다.
친애하는 자매여, 세상에 버림을 당할 때에 영접할 이 있으니, 기뻐하고 즐거워하소서. 세상이 다 몰라 주어도 알아줄 이 또한 없지 않으니 위로 얻고 힘을 얻으소서. 의가 오고 새 빛이 나타날 때는 멀지 않았습니다. 살아계신 주님에게만 몸과 마음, 모든 재주, 소유, 다 바칩시다.
---본문 중에서
 

출판사 리뷰

“1931년, 한국 기독교의 재출발을 외쳤던 이용도 목사”

기도와 사랑으로 삶을 불태워 교회가 교회될 것을 외치다 서른셋에 하늘로 간 신앙의 사표를 만나보자!

오늘날 한국교회의 슬픔은 예수보다 사람이, 말씀보다 물질이 앞선다는 점이다. 자랑하던 신앙의 순수성은 어느덧 옛말이 되었고, 교회가 간직해야 할 소금의 맛은 밍밍해졌다. 목회자는 넘쳐나지만 자기를 내어맡길 정도로 존경하고 따를 지도자를 보기 어렵다는 얘기도 여기저기서 나온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교회를 걱정한다는 말이 나온 지 벌써 오래다.

이런 일들은 갑자기 생긴 걸까? 1920년대도 비슷한 현상들이 있었다. 책의 주인공인 이용도는 1927년, “세속이 우리 교회의 문을 두드린 지 오래”라고 했다. 목회자가 좋은 옷을 입어야 쓰임을 받고, 사교술이 뛰어나야 교회 일을 잘 본다는 평을 받는다고 지적했다. 교회를 “울긋불긋”하게 꾸미는 것에 관심이 있지,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나중이라고 꼬집었다. 이용도는 당시 한국 교회에 큰 부흥이 있지 않으면 교회의 전도가 위태롭게 될 것이라 했다. 그러면서, “주님의 일꾼들이 직업화되는 것을 여지 없이 공격하고 예수와 십자가를 재인식할 것을 주장하면서 조선기독교의 재출발”을 역설했다.

그렇다면 2014년 한국 기독교는 어떻게 재출발할 수 있을까? 사랑의 사도, 기도의 용장, 성령의 설교자, 교회개혁자, 신앙혁명가였던 이용도 목사를 만나보자. 이렇게 주님을 사랑하고 이렇게 성도를 사랑하고 이렇게 동포를 사랑하여, 죽기까지 자기 십자가를 진 위인이 이 땅에서 살았었다는 것은 민족과 교회가 누릴 특권이자 행운이다. 이용도 목사를 만남으로써 오늘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돌아가고 십자가를 지는 산뜻한 기독교의 재출발이 시작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