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서양사 이해 (책소개)/4.유럽역사문화

서양의 장원제 (2020) -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

동방박사님 2023. 5. 9. 07:05
728x90

책소개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 1886-1944)는 『서양의 장원제-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에서 ‘장원제의 역사’를 추적한다. 하지만 모든 유럽사회의 장원제를 탐구하지는 않는다. 그와는 정반대로, 여러 가지 점에서 서로 닮고 동일한 추세의 영향을 받았는데도 서로 몹시 다른 두 이웃 사회, 곧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 역사를 탐구한다. 이를 통해 당시 사람들이 장원제 속에서 어떤 생각을 하면서 살았고 어떤 사회를 구성하려 했는지를 살펴본다. 더 나아가 장원제가 두 국가의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밝힌다.

목차

서양의 장원제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비교사적 고찰

프랑스와 영국의 장원제에 대한 마르크 블로크의 비교사적 연구 | 이기영·15

서론
1. 현대 프랑스 농촌과 영국 농촌의 대조적 모습·37
2. 프랑스의 장원과 영국의 장원·44
3. 연구방법·50

제1부 초기의 고전장원제: 카롤링왕조 시대의 프랑스 장원과 노르만왕조 시대의 영국 장원

제1장 카롤링왕조 시대의 고전장원·5

1. 사료·55
2. 영주직영지·59
3. 농민보유지·76
4. 신분·84

제2장 11세기 영국의 장원·3

1. 영국 농촌사의 기본적 특성·93
2. 『둠즈데이북』과 ‘장원’이라는 말·106
3. 신분·113
4. 장원제의 강제적 실시·120

제2부 11-13세기의 장원제: 장원농민의 법적 신분과 장원 경제구조의 변동

제1장 법률의 변천과 장원농민의 신분변동: 프랑스를 중심으로·25

1. 9-12세기 프랑스의 법률변천·126
2. 장원농민의 신분변동과 농노 신분의 형성·130

제2장 재판권과 장원농민·41

1. 프랑스의 재판권 변화추이와 장원농민·143
2. 영국의 재판권 변화추이와 장원농민·152

제3장 장원 경제구조의 변동·57

1. 부역과 공납의 변화·158
2. 영주직영지의 축소·163

제3부 14세기 이후 경제상황의 변화와 장원제의 귀결

제1장 중세 말과 근대 초 경제상황의 변화와 장원제· 73

1. 14-15세기의 위기와 장원조직·173
2. 화폐가치의 변동과 영주의 소작료 수입·179
3. 가격혁명과 영주의 소작료 수입·188

제2장 영국 장원제의 귀결·93

1. 영주직영지의 상당한 잔존·193
2. 농민적 토지소유의 쇠퇴·205
3. 정치적·사회적 세력관계의 변화·209
4. 인클로저와 장원제의 해체·212
인클로저: 총론·212
인클로저의 역사와 장원제·217
인클로저의 결과와 장원제·227
5. 종합적 결론: 장원제가 영국의 역사에 미친 영향·237

제3장 프랑스 장원제의 귀결·39

1. 영주 계급의 변화·240
2. 영주 계급과 농민 계급에 대한 군주정의 태도·242
3. ‘영주적 반동’·245

옮긴이의 말·255
찾아보기·259
 

저자 소개

저 : 마르크 블로크 (Marc Bloch)
 
1886년 프랑스 리옹의 유대인 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다.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역사학과 지리학을 수학했으며, 1908년에 역사학 및 지리학 교수자격시험에 합격하고 1920년에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고등학교 교사를 거쳐 스트라스부르 대학과 소르본 대학 등에서 역사학 교수를 역임했다. 현실사회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가진 실천적 역사가이자 공화주의자였던 그는 제1차 세계대전과 제2차 세계대전...

역 : 이기영

 
동아대학교 사학과 명예교수. 서울대학교 역사교육학과를 졸업한 후 동 대학원 서양사학과에서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문학박사). 주요 연구 분야는 서양 중세 봉건사회의 구조와 형성 및 농촌경제이며, 전공에 관한 수십 편의 논문이 있다. 지금까지 단독 저서와 번역서는 다음과 같다. 『고전장원제와 봉건적 부역노동제도의 형성: 서유럽 대륙지역을 중심으로』(사회평론아카데미, 2015) 『고대에서 봉건사회로의 이...

책 속으로

“길게 따질 필요 없이 우리는 그와 같은 장원제가 조금만 보급되어도 사회구조 전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곧바로 알아차릴 수 있다. 장원제는 순수한 의미의 노예는 아니지만 주민 가운데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예속민 계급 위에 지배자 계급이 군림하는 것을 전제하고, 상당히 강한 지배권력과 경제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이 이들 지배자의 수중에서 결합되는 것을 전제한다.”
--- p.50

출판사 리뷰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의 뜨거운 상징

블로크는 양차 세계대전을 겪는 사회적 위기 국면을 방관하지 않고 현실에 맞서 싸우는 실천적 역사가로서의 삶을 살았다. 그는 역사를 ‘내일은 어떤 방향에서 어제와 다를 것인가를 예견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변화의 학문’으로 여겼다. 이런 신념을 바탕으로 제1차 세계대전 당시 보병대위로 참전했으며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했을 때는 무려 53세의 나이로 참전했다. 프랑스군이 붕괴된 뒤에는 레지스탕스로 활동하다 나치에 적발되어 1944년에 처형된다. 그의 죽음은 폭력과 야만의 시대에 저항한 지식인의 뜨거운 상징이 되었다. 이런 그의 행보는 단순히 그와 그의 가족이 유대인이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물론 그는 유대인으로서 성장기에 드레퓌스 사건(Dreyfus Affair)을 경험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가 중대한 위기에 직면한 프랑스 사회를 구하기 위해 죽음을 무릅쓰고 싸웠던 이유를 민족 감정만으로는 이해해선 안 된다.

그는 프랑스혁명 이후 프랑스 사회가 발전시켜 온 인간의 존엄성과 자유 그리고 평등 같은 인류의 보편가치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국민주권이 실현되는 공화국이 없이는 국민의 자유도 없다는 공화주의자로서의 신념 또한 지니고 있었다. 또한, 역사는 변화의 학문이라는 소신에서 개혁을 적극적으로 지지했던 진보적 세계관, 역사는 현재와 분리해 생각할 수 없는 현실적 학문이라는 인식에서 오는 현재에 대한 강한 문제의식과 책임감 등과 같은 세계관과 소신도 지니고 있었다.

이런 점은 그의 저서 『이상한 패배: 1940년의 증언』(L’trange defaite: temoignage ecrit en 1940, 김용자 옮김, 까치, 2002)과 레지스탕스 활동기간에 쓴 『역사를 위한 변명』(Apologie pour l’istoire ou metier d’istorien, 정남기 옮김, 한길사, 1979)에서 볼 수 있다. 특히 역사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요약하고 정리한 『역사를 위한 변명』에서는 역사는 정당하며 현재를 이해하고 미래를 예견하는 데 유용한 것이지만, 한편으로는 현재에 대한 관심과 지식 없이는 과거를 이해할 수 없다는 소신이 피력되어 있다.

· 한길사에서 번역해 출간한 마르크 블로크의 저작
『역사를 위한 변명』, 고봉만 옮김
『봉건사회』ⅠⅡ, 한정숙 옮김
『기적을 행하는 왕』, 박용진 옮김

비교사적 연구를 통한 영국과 프랑스의 비교

마르크 블로크는 20세기 초 영국과 프랑스의 농촌에서 볼 수 있는 풍경과 경제적 구조의 차이가 어떻게 생겨났을까 하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외관상 영불해협의 프랑스 쪽 땅은 울타리가 없이 탁 트인 개방경지제와 집촌(集村)을 특징으로 하는 풍경이 펼쳐지는 데 비해, 영국 쪽은 울타리로 둘러쳐진 경지제도와 외딴집(散村)으로 된 풍경이 전개된다.”(29쪽) 또한, “농촌사회의 구조에서도 영국은 프랑스에 비해 농업인구의 비중이 훨씬 낮고, 토지 가운데 곡물경작지가 훨씬 적은 대신 목초지의 비중이 높아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낮으며, 대토지 소유제가 지배적이다.

이에 반해 프랑스는 농업인구의 비중이 훨씬 높고, “곡물경작지의 비중과 곡물의 자급률이 매우 높으며, 대토지 소유가 존재하지만 중소 규모의 농민적 토지소유와 병존한다.”(29쪽) 블로크는 이렇게 차이가 생기는 이유가 ‘자연발생적’이지 않으며 두 국가의 ‘장원제’를 비교하면서 그 이유를 밝히겠다고 선언한다. 이처럼 이 책에서 단연 돋보이는 연구방법은 비교사적 방법이다. 현대 영국과 프랑스 농촌사회가 지니는 차이의 원인을 시종일관 양국의 장원제 역사를 비교해 고찰함으로써 규명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완전한 형태의 장원은 두 부분의 토지로 구성된다. 한 부분은 땅의 소유주이자 지배자인 영주가 여러 가지 노동력을 이용해 직접 경영하고 그 수확물을 차지하는 영주직영지다. 다른 한 부분은 소규모의 농장들로 구성되며 그 보유자는 영주에게 각종 부역노동과 공납을 이행할 의무를 지는 농민보유지다. 장원제는 본질적으로 경제적 차원의 제도다. 하지만 장원제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장원제가 중세에 사회구조를 구성하는 기본요소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는 것, 즉 가족, 봉신(封臣) 집단, 도시공동체처럼 사회생활을 하기 위한 기본단위 조직 가운데 하나였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도 안 된다. 장원제는 이런 경제적 차원의 이익 도모와 지배권과의 결합이며, 강한 지배권과 경제적으로 착취할 수 있는 권력이 영주의 수중에 집중되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