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1.서울지역

정동제일교회

동방박사님 2016. 4. 16.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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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제일교회

1887년 10월9일 미국의 감리교선교인 "아펜젤러"가 지금의 위치에 설립했다. 그는 예배만 몰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지금 자리에 있던 한옥집을 구입하여 개조하고 " 벧엘 예배당" 이라고 불렀다.

교회 근처에는 이화학당과 배재학당이 있었고  교회는 이 학당들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개화운동의 중심역할을 했다. 한편 갑신정변으로 미국에 망명했다가 귀국한 서재필은 배재학당에서 강의 하면서  청년들의 사회참여의식을 고츼시키기 위해 협성회(協成會)를 조직했다. 협성회의 주요인물들이 정동교회 청년회에 들어옴에 따라 당시 어느단체보다 의식있는 집단으로 반일 민족독립운동을 병행하면서 복음을 전파했다. 교인수가 급성장 하게되자 5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예배당을 짓기로 하고 1895년 9월9일 착공, 1897년 12월26일 에배당 봉헌식을 가졌는데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최초의 본격적인 서양식 교회로 평면구조는 성단(聖壇)부분의 익부(翼部)가 달린 십자형이었다. 건물양식은 고딕풍 양식으로 내부의 천장은  평천장이며, 기둥은 아무런 장식없이 소박하고 간결하다. 1918년에는 한국 최초로 파이프 오르간을 설치하기도 하였다.


3.1운동 때는  민족대표33인 가운데 당시 6대 담임목사였던  이필주목사와 박동완 장로가 참여했으며 , 3.1운동이후부터 야간학교를 설치하는등 선교사업에 중점을 두었다. 1922년에는 최초로 여름 성경학교를 개설 하기도했고 , 1930년에는  남북한 감리교회를 하나로 통합한  조선감리교회를 설립하는데 큰 역활을 담당했다.

8.15해방 후 한때 분열의 위기를 맞기도 했으나, 1949년 재건파와 부흥파의 합동총회를 개최하는 데 결정적 역활을  담당해교단통합을 신속히 이루었다. 6.25당시에는  예배당 일부와 파이프,오르간이 파괴되는 시련을 겪기도 했다. 1976년 문화공보부는 19세기 건축물인  붉은벽돌 예배당을  사적제256호로 지정했다. 1979년4월15일 붉은 벽돌 예배당 옆에 새로 완공된 한국선교 100주년기념예배당은 한국건축가협회로 부터 최우수작품상을 받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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