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역사문화기행 (2006~) (여행지)/3.조선왕실궁궐

정조대왕과 수원화성

동방박사님 2016. 11. 21. 0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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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대왕의 탄생과즉위

  1752년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탄생한 정조대왕은 8세대 왕세손으로 책봉되고 11세때 김시묵의 딸(효의왕후)과 가례를 올리는 등 왕위계승자로 준비를 탄탄히 하였다. 그러나 사도세자의 서거에 따른 영조의 대처분에 의해 효장세자(진종)의 후사가 되는 정치적 위기를 겪었다.  다행히 이를 모두 잘 극복하고 영조를 대신해 대리청정을 맡아 국정을 운영하였다.  그리고 마침네 1776년 영조의 뒤를 이어 조선의 제22대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탄생에서부터 성장 그리고 왕위에 오르는 과정을 통하여 조선후기의 성군으로 추앙받는 정조대왕의 생애를 살펴보고자 한다.

 

현륭원 조성과 조선유수부 설치

  정조대왕은 1776년 즉위와 동시에 사도세자의 아들임을 만천하에 표방하여 사도세자의 명예 희복을 위해 각종 추승사업을 진행 하였다.  사사롭게는 사도세자의 아들로서 아버지의 명예를 희복하고 공적으로는 왕실의 위엄을 희복하여 왕권 강화를 꾀한 것이었다.  1776년 사도세자에게 '장헌'이라는 시호 추상 궁원(宮園)의 정비 등 사도세자에 대한 왕세자로서의 지위희복 사업은 재위기간  내내 지속 되었다.  사도세자의 무덤을 수원으로 옮기고 현륭원을 조성함과 동시에 원찰인 용주사도 창건하였다.  이와 더불어 수원부 읍치를 지금의 팔달산 아래로 이전하며 새로운 신도시 건설을 추진하였다.  또한 수원을 유수부로 승격시켜 그 위상을 높인후 왕의 친위부대인 장용영을 주둔시켰다.  이모두가 사도세자 추승사업과 관련된 것이었고, 그 중심지는 신도시 수원과 세계유산 수원화성이었다.

 

정조대와의 대업, 수원화성 

  정조대왕은 수원를 유수부로 승격시킨후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외호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1794년 1월부터 수원화성을 축성을 시작하여 1796년 9월에 완공 하였다.  당초 10년계획이었으나 조직을 쳬계적으로 구성하고 효율적으로 운영해 2년 9개월만에 완공하였다.  이를 통해 정조시대의 뛰어난 문화적 역량을 살펴 볼 수 있다.

  정조대왕은 우의정 채제공을 축성 총책임자인 총리대신으로 삼고, 당시 수원유수인 조심태를 현장 총감독에 임명하였다.  또한 수원 출신의 대표적 무관인 이유경과 김후등을 현장 감독관으로 임명해 수원화성 축성에 수원사람들도 적극적으로 참여시켰다.  수원화성 축성의 전 과정과 동원된 인력 및 물력의 내용은  세계기록유산 "화성성역의 궤"로 간행되어 정조대왕을 비롯한 중앙과 지방의 관리 그리고 돌을 나르던 일반 백성에 이르기까지 모두 합심하여 수원화성를 축성 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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