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한일관계사 연구 (책소개)/4.한일관계역사

천황가의 가문은 백제 왕가의 혈통인가

동방박사님 2021. 12. 7.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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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의 침략사 때문에 한일관계는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는 숙제처럼 호오를 반복하고 있다. 그런 와중에 아키히토 천황은 천황의 모계 중에 백제 혈통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어 파문을 일으켰다. 예로부터 천왕이 백제 후손이라는 설이 전해지긴 했지만 천황이 직접적으로 그러한 사실을 밝힘으로써 하나의 역사적 사실로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일본 천황 가문은 백제 왕가의 혈통인가』는 천황 백제 기원설에 대해 한·중·일 역사서를 바탕으로 사실을 고증하고 있다. 한중일 세 나라의 역사책을 비교 분석하여 믿을만한 역사적 사실을 유추해내어 흥미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특히나 신의 경지로 받아들이는 천황의 조상이 기마민족이라는 사실을 드러내어 일본의 역사 교육이 얼마나 왜곡되어 있는지를 방증해준다. 일본에 미친 백제의 지대한 영향력뿐만 아니라 천황 가문의 역사, 일본어의 기원에 대한 기록들도 확인할 수 있다.

목차

머리말 3

제1부
나는 백제의 피를 받았다 13
천황의 당숙 아사카노미야 씨 일행의 무령왕릉 참배 16
무령대왕이 된 왜왕 부(武, 무) 28
50대 간무 천황(桓武, 환무 737~806) 32

제2부
규슈 가고시마 천손강림축제(天孫降臨祝祭) 37
가야의 일곱 왕자들 41
고대 일본의 개국신(開國神) 49

제3부
송서(宋書) 왜국전 57
왜왕 사이(濟, 제)는 백제로 돌아가 개로대왕(蓋鹵大王)이 되었다 62
곤지는 왜왕 고오(興, 흥)이자 유라쿠(雄略, 웅략) 천황이었다 66
비유(毗有) 임금은 인교(允恭) 천황으로 둔갑하였다 69
게이타이(繼體) 천황과 왜왕 부(武) 73
백제와 왜 왕실은 한집안으로 발전했다 78
왜 나라의 백제 담로(=제후국)들 81

제4부
진구우(神功, 신공) 황후는 누구인가 89
『일본서기』 진구우(神功) 황후기의 진실은 무엇인가 93
야마다이국(邪馬臺國)의 히미꼬(卑彌呼) 97
임나일본부설 102
고구려 광개토 대왕비의 바른 해석 120

제5부
킨메이 천황(欽明王, 흠명왕)은 백제의 성왕이었다 129
30대 비다쓰(敏達, 민달) 천황(571~585) 136
31대 요우메이(用明, 용명) 천황(재위 585~587) 138
32대 스슌(崇峻, 숭준) 천황(587~592) 140
33대 스이코(推古, 추고) 천황(재위 593~628) 142
쇼토쿠(聖德, 성덕) 태자 144
34대 조메이(舒明, 서명) 천황(재위 629~641) 147
35대 고교쿠(皇極, 황극) 천황(재위 642~645) 149
36대 코우토쿠(孝德, 효덕) 천황(재위 645~654) 151
100년간 왜 나라 조정을 지배한 소가씨(蘇我氏) 가문 154
37대 사이메이(齊明, 제명) 천황(재위 655~661) 158

제6부
백제(百濟)의 멸망 161
왜 조정의 결단 165
백촌강(白村江) 전투 169
38대 덴지(天智, 천지) 천황(재위 668~671)과 일본(日本)의 탄생 174
진신의 난(壬申の?)과 40대 덴무(天武, 천무) 천황의 즉위 179
41대 지토(持統, 지통) 천황(재위 690~697) 183

제7부
고사기(古事記), 일본서기(日本書紀) 등 일본의 역사서 187
백제 근초고왕과 왜 나라 192
칠지도(七支刀) 201

제8부
일본 역사 속 천황들 이야기 211
천황가는 어떻게 오래도록 지속되었나 221
일본인들의 조상은 어디서 왔는가 228
일본인의 언어, 일본어 237

참고 문헌 250
 

저자 소개 

저 : 배종덕
 
釜山에서 1949년 3월 태어나서 慶南高等學校 西江大學校 英文科를 졸업하고大成製綱工業株式會社, 現代綜合商社株式會社를 거쳐 現代自動車株式會社에서 理事로 재직했다. 현대차에서는 인도 시장을 성공적으로 개척하고, Quota가 없어 오래도록 갈 수 없었던 멕시코 시장을 Daimler Chrysler deMexico와 대규모 공급 계약으로 문을 열었다. 우리나라 자동차 수출 역사상 가장 큰 금액의 신용장을 Lybia로부터 받기도 했다.저서로는 『現代車와 함께 25年』,『일본 천황 가문은 백제 왕가의 혈통인가』 등이 있다.
 
 
 

책 속으로

2001년 12월, 125대 아키히토(明仁, 명인) 일본 천황이 68세 생일 기자회견에서 “내 개인으로서는 간무(桓武, 환무) 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武寧王)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記)에 쓰여 있는 것에 한국과의 연(緣)을 느끼고 있습니다. 무령왕은 일본과의 관계가 깊고, 그 시기에 일본에 오경박사(五經博士)가 대대로 초청됐습니다. 또 무령왕의 아들 성명왕(聖明王, 성왕)은 일본에 불교를 전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오랫동안 일본 사회에서는 천황의 혈통에 대해 의문을 갖거나 언급하는 것을 금기시해왔다. 일본 천황은 하늘로부터 일본 열도에 내려와서 지금까지 오랜 기간 단절 없이 대대손손 내려왔다고 주장해 왔다. 특히 군국주의(軍國主義) 시대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선조가 하늘에서 직접 내려왔다고 주장했다. “아니다! 일본인 선조는 한반도에서 건너왔다.”고 했다가는 당장 감옥에 집어넣었다. 하물며 ‘일본 천황이 한반도 출신’이라고 했다가는 불경죄로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그런데 최초로 일왕 자신이 일왕가의 뿌리가 한국인과 관련이 있다고 공개 석상에서 밝힌 것이다. 만세일계의 황통 사상에 대한 금기 중의 금기를 천황이 앞장서서 깨뜨렸는데도 불구하고 일본에서는 다소 진보적이라 할 수 있는 ‘아사히신문(朝日新聞)’만이 이 사실을 보도하고 여타 신문들은 한국 신문들이 보도한 것을 마지못해 인용하는 등 대단히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다.
--- p.11
 

출판사 리뷰

일제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는 1945년 9월 항복문서에 조인 후 아주 요사스런 망발을 뱉고 떠났다. “일본은 한국민에 총과 대포보다 더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 놓았다. 한국민은 서로 이간질하여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할 것이기에 일본은 다시 돌아올 것이다.” 이들이 식민교육에 무엇을 심어 놓았는지 우리 한국인은 반드시 찾아내서 하나하나 바르게 고쳐 나가야 한다. 광개토대왕 비문 중 신묘년기사의 올바른 해석은 나로서는 그 출발점이었다. 일본 천황, 일본인 그리고 일본어의 기원을 밝힌 것은 부산물이었고 그 결과로 이 책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식민교육에 또 무엇을 심어 놓았는지 계속해서 찾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