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2.일본문화

작가의 계절 : 일본 유명작가들의 계절감상기

동방박사님 2021. 12. 10. 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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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이토록 눈앞에 생생히 그려지는 계절이라니!
일본 유명 작가 39명의 계절감상기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에 살면 계절 변화에 민감하다. 감수성이 풍부한 작가라면 오죽할까. 이 책에 등장하는 일본 작가들은 하나같이 글 잘 쓰기로 너무나도 유명한 대문호들이다. 그래서일까. 그들이 느끼는 계절은 생생하게 살아 움직여 문학으로 탄생한다. 가을은 교활한 악마라고 하는 다자이 오사무, 누군가 버린 피아노에 밤 한 톨 떨어지는 소리에 가을을 느끼는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등 39명의 작가가 써 내려간 계절 감상으로 꾸몄다. 일본 근대문학에서 ‘마감’이라는 주제로 글을 골라 엮은 『작가의 마감』에 이은 ‘작가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이다.

목차

1장 가을
가을 눈동자 _ 다케히사 유메지
아, 가을 _ 다자이 오사무
피아노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모밀잣밤나무 열매 _ 하시모토 다카코
가을 기백 _ 도요시마 요시오
가을 달무리 _ 오다 사쿠노스케
가을비 추억 _ 오카모토 가노코
가을과 만보 _ 하기와라 사쿠타로
감 _ 하야시 후미코
가을 노래 _ 데라다 도라히코
가을 소리 _ 와카야마 보쿠스이
가을밤 _ 요사노 아키코
빨래하는 날 _ 기무라 요시코

2장 겨울
눈 오는 밤 _ 무라야마 가즈코
세밑 소리 _ 야마모토 슈고로
화로 _ 나쓰메 소세키
겨울날 _ 미야모토 유리코
동짓날 _ 구보타 우쓰보
사프란 _ 모리 오가이
홍매 _ 요사노 아키코
눈 내리는 날 _ 나가이 가후
겨울 정서 _ 하기와라 사쿠타로
눈 속 장지문 _ 시마자키 도손
등화절 _ 가타야마 히로코
눈 _ 미요시 다쓰지

3장 봄
제자리걸음 _ 가네코 미스즈
봄날 밤은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깨나른한 봄 낮 _ 다자이 오사무
나의 5월 _ 미야모토 유리코
마음 _ 나쓰메 소세키
어린잎에 내리는 비 _ 스스키다 규킨
보리걷이 _ 하시모토 다카코
봄바람이 분다 _ 오가와 미메이
봄 _ 하세가와 시구레
산의 봄 _ 다카무라 고타로
목련꽃 _ 호리 다쓰오
아침의 꽃 _ 오카모토 가노코
봄과 아수라 _ 미야자와 겐지

4장 여름
고양이 _ 기타하라 하쿠슈
시원한 은신처 _ 하야시 후미코
비 오는 날 향을 피우다 _ 스스키다 규킨
건살구 _ 가타야마 히로코
여름밤 소리 _ 마사오카 시키
짧은 여름밤 _ 시마자키 도손
해차 향기 _ 다야마 가타이
박 키우기 _ 하시모토 다카코
매실 나는 계절 _ 요시카와 에이지
솔바람 소리 _ 와쓰지 데쓰로
얼음 가게 깃발 _ 이시카와 다쿠보쿠
교토의 여름 풍경 _ 우에무라 쇼엔
여름 _ 나카하라 쥬야
 

 

 

저자 소개 

1884~1934. 그림 그리는 사람. 때로는 글도 쓰는 사람. 20세기 초 일본 다이쇼 시대의 낭만적인 예술적 흐름을 일컫는 ‘다이쇼 로망’을 대표하는 예술가. 그림 외에도 책 장정, 일러스트, 표지 디자인, 옷감 및 종이 패턴, 광 고, 르포, 시, 동시, 산문 등 전방위에서 자기 손으로 할 수 있는 모든 예술 활동을 자유로운 정신과 스타일로 펼쳐 보였다. 화가로서는 특유의 몽환적이고 쓸쓸한 여체 묘사가 사랑받아 ‘유메지식 미인도’가 시대를 풍미했다. 작가로서는 자연과 동물과 세상을 글과 그림으로 스케치한 사계절 시화집 시리즈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 「달맞이꽃」과 같은 시는 유행가로도 만들어졌다. 그러나 전쟁의 서막을 알리며 경직되는 시대 분위기 속에 차츰 세상에서 밀려나 만년에는 산골 요양소에서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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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다자이 오사무 (Dazai Osamu,だざい おさむ,太宰 治,츠시마 슈지津島修治)
 
1909년 6월 19일, 일본 아오모리 현 쓰가루 군 카나기무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修治]이다. 그는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환경에서 성장했으나 가진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꼈고, 부모님의 사랑을 제대로 받지 못해서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게 성장한다.

1930년, 프랑스 문학에 관심이 있었던 그는 도쿄제국대학 불문과에 입학하지만, 중퇴하고 소설가가 되기로 결심한다. 이후 소설가 이부세 마스지[井伏_二]의 문하생으로 들어간 그는 본명 대신 다자이 오사무[太宰治]라는 필명을 쓰기 시작한다. 그는 1935년 소설 「역행(逆行)」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으로 작가의 길을 걷게 되었다. 1935년 제1회 아쿠타가와 상 후보에 단편 「역행」이 올랐지만 차석에 그쳤고, 1936년에는 첫 단편집 『만년(晩年)』을 발표한다. 복막염 치료에 사용된 진통제 주사로 인해 약물 중독에 빠지는 등 어려운 시기를 겪지만, 소설 집필에 전념한다. 1939년에 스승 이부세 마스지의 중매로 이시하라 미치코와 결혼한 후 안정된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썼다.

1947년에는 전쟁에서 패한 일본 사회의 혼란한 현실을 반영한 작품인 「사양(斜陽)」을 발표한다. 전후 「사양」이 베스트셀러가 되면서 인기 작가가 된다. 그의 작가적 위상은 1948년에 발표된, 작가 개인의 체험을 반영한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을 통해 더욱 견고해진다. 수차례 자살 기도를 거듭했던 대표작은 『만년(晩年)』, 『사양(斜陽)』, 「달려라 메로스」, 『쓰기루(津?)』, 「여학생」, 「비용의 아내」, 등. 그는 1948년 6월 13일, 폐 질환이 악화되자 자전적 소설 『인간 실격(人間失格)』을 남기고 카페 여급과 함께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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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Ryuunosuke Akutagawa,あくたがわ りゅうのすけ,芥川 龍之介)
 
일본 근대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1892년 도쿄의 서민 지역인 시타마치에서 태어났다. 외가에 양자로 들어가 두 이모가 그를 양육하는 환경에서 자랐다. 도쿄제일고등학교를 거쳐 도쿄제국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해 차석으로 졸업했다. 기쿠치 칸, 구메 마사오 등과 재학생 시절 동인지 『신사조』를 발간해 『라쇼몬』 『코』 등의 단편을 발표했는데 나츠메 소세키로부터 단편 『코』가 절찬을 받으며 일약 다이쇼 시대 문단의 총아로 ...

 안에 가을이 몰래 숨어 이미 찾아왔는데도 사람은 불볕더위에 속아 알아채지 못한다. 귀 기울여 들어보면 여름이 오자마자 벌레가 울고, 정원을 유심히 둘러보면 도라지꽃이 피어 있다. 잠자리도 원래는 여름벌레이고 감도 여름 동안에 착실히 열매를 맺는다.

가을은 교활한 악마다. 여름 사이 모든 단장을 마치고 코웃음을 치며 웅크리고 있다. 나만치 날카로운 눈을 가진 시인이라면 그 기색을 눈치챈다.
--- 「아, 가을(다자이 오사무)」 중에서

가을은 쓸쓸하다, 라는 말은 진실이다. 가을에는 모든 것이 겉껍질을, 필요 없든 필요 있든 온갖 껍질을 스스로 흔들어 떨어뜨린다. 만물이 벌거벗은 채 우뚝 선다. 가을을 쓸쓸하지 않다고 말하는 이는 옷을 벗고 알몸으로 우두커니 서 있을 때의 묘한 초라함과 의지할 데 없는 외로움에 둔감하거나 뻔뻔해 부끄러움을 모르거나 아니면 몸이 감각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 「가을 기백(도요시마 요시오)」 중에서

겨울날 고요는 왠지 모르게 남다른 느낌을 인간에게 선사한다. 노란 햇살이 쓸쓸히 주위를 떠돌고 뼈대만 남은 나무 그림자가 먹으로 그은 검은 줄처럼 판자벽에 비친다.
바람 한 점 없다. 나뭇잎이 바스락바스락 소리조차 내지 않는 가운데 신발 밑으로 무너져가는 서릿발 소리만이 차디차게 울려 퍼진다. 잔뜩 찌푸린 하늘에 걸린 새하얀 낮달 너머로 잿빛 구름을 한 겹 들추면 새하얀 가루눈이 가지런히 쌓여 있을까, 상상할 만한 정경이다.
--- 「겨울날(미야모토 유리코)」 중에서

중국 시인이 말한 ‘차가운 향기寒香’처럼 훌륭한 숙어가 일본어에 없는 게 안타깝기 그지없다. 소동파가 홍매를 보고 읊은 “차디찬 마음은 아직 봄 자태를 따르려 하지 않건만 옥처럼 고운 살갗에 까닭 없이 술기운이 올랐네寒心未肯隨春態 酒暈無端上玉肌” 같은 뛰어난 시구는 일본 전통시에서도 현대시에서도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 「홍매(요사노 아키코)」 중에서

어느 3월 밤, 펜을 내려놓고 잠시 쉬다가 문득 니켈 회중시계가 빨라졌음을 알아챘다. 옆방 벽에 걸린 괘종시계는 10시를 가리키는데, 회중시계는 10시 30분을 가리킨다. 회중시계를 탁자 위에 올려놓고 조심스레 바늘을 10시로 돌렸다. 다시 펜을 들었다. 시간이란 이럴 때는 의외로 늦게 흐르는 법. 괘종시계가 이윽고 11시를 알렸다. 펜을 쥔 채 회중시계를 쳐다봤다. 이번에는 신기하게도 12시를 가리켰다. 회중시계는 따뜻해지면 바늘이 빨리 돌아가는 걸까?
--- 「봄날 밤은(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에서

어젯밤 하늘을 지나간 발 빠른 바람은 지금 어디서 불고 있을까. 그 바람이 남아 있던 겨울을 휘몰아 가져간 덕에 봄이 찾아온 오늘 아침은 너나없이 활기차고 명랑하다.
수다쟁이는 비단 작은 새만이 아니다. 부엌 수돗물도 콸콸 소리를 내고 고양이도 한껏 멋을 낸다. 거리에는 담배 연기가 코를 스치고 커피 향이 향기로우며 전차선로가 은처럼 반짝인다. 사무실 유리창은 햇빛을 받아 빛나고 공장 기계는 덜커덩덜커덩 울리며 규칙적으로 돌아간다.
--- 「봄(하세가와 시구레)」 중에서

나는 시골 마을 작은 집에서 내리는 비를 바라보며 건살구를 먹는다. 세 알의 단맛을 맛보는 사이 머나먼 나라 궁전 꿈을 꾸었다. 잠에서 깨어나 주위를 보니 어딘가 허전하다. 정원을 내다보고 방 안을 둘러본다. 아무 꽃이라도 한 송이 있었으면 좋겠다. 방 안에는 거의 색깔이 없다. 오직 선반에 늘어선 얼마 안 되는 책등 색깔이 있을 뿐이다. 자홍색 하나랑 노란색이랑 청록색이랑.
--- 「건살구(가타야마 히로코)」 중에서

문득 아름다운 벌레 소리가 들려왔다. 잿날 축제 때 파는 벌레장에 담겨 얼음 가게에서 울고 있었다. 옛날에 자신이 만든 노래를 우연히 여행지에서 듣는 기분이었다. 솔직히 말해 반가웠다. 소꿉친구와의 낭만 가득한 추억. 아름다운 벌레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그것도 잠시 여름도 이제 반이 지났다고 생각하니 땀에 젖은 피부가 왠지 오싹하다. 도대체 나는 뭘 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다시 죽은 듯한 얼음 가게 깃발을 바라본다.
--- 「얼음 가게 깃발(이시카와 다쿠보쿠)」 중에서
 

출판사 리뷰

인간이라는 각성, 여성이라는 자각!
한국에 첫선을 보이는 일본 근대 여성작가 작품 18편
근대는 인간에게 자유란 무엇인지, 개인이란 무엇인지, 인류는 어디로 향해 가야 하는지 고민하고 깨닫게 해준 시기다. 특히 여성에게는 ‘여성’이라는 자각을 일깨운 시기이기도 하다.
여성의 슬픔과 자아를 표현한 하시모토 다카코, 불교 사상가로도 활동한 오카모토 가노코, 베스트셀러 인세를 여비로 유럽여행을 떠난 하야시 후미코, 남녀평등 교육에 앞장선 요사노 아키코, 일본공산당에서 활동한 기무라 요시코, 동화작가이자 번역가로 활약한 무라야마 가즈코, 프롤레타리아 작가로서 사회를 바라본 미야모토 유리코 등 한국 독자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일본근대 여성작가의 시와 글 18편을 찾아 실었다.

모기장, 부채, 차, 발, 달…… 작가의 계절은 모든 사물에 있다
당신이 읽은 것이 당신의 문장이 된다는 말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아름다운 문장을 찾는지도 모른다. 바로 그 아름다운 문장을 창작하는 작가에게 계절이란 무엇일까. 인간이 살면서 가장 가까이 정서적인 소재의 원천이다. 벌레를 쫓는 부채질에서, 베개 가까이 머리카락에 닿는 모기장 감촉에서, 단호박조림에 파묻힌 새알심에서 작가들만의 고유한 문장이 뿜어 나온다. 계절이란 게 몇월 며칠부터 바뀐다고 정해진 건 아니지만, 계절이 바뀔 때마다 꽃향기, 바람 내음, 낙엽, 눈 등 자연 변화를 남달리 빨리 느끼며 마음속 어딘가에 차곡차곡 간직했다 글로 풀어낸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가을은 교활한 악마
다자이 오사무는 평소 단어별 공책을 기록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의 가을편 노트를 보자. 가을은 여름이 타고 남은 것, 여름은 샹들리에 가을은 등롱, 숨 막히는 가을의 코스모스, 버려진 바다, 여름 사이 모든 단장을 마치고 코웃음을 치며 웅크리고 있는 가을! 너는 교활한 악마다. 간토대지진이 있던 때도 가을이었다. 온통 불타버린 들판에 얼이 나간 채 쭈그려 앉아 있는 비참한 여인에게 다자이 오사무는 정욕마저 무시무시하게 일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에게 비참과 정욕은 서로 등을 맞대고 존재한다. 『인간 실격』을 완성한 뒤 투신자살한 소설가다운 이 느낌은 뭘까.

모리 오가이에게 겨울은 저항의 상징
1월이 되자 초록색 실 같은 어린잎이 무리 지어 돋아났다. 물도 안 주고 팽개쳐뒀건만 활기 넘치는 싱싱한 이파리가 무성했다. 식물이 움트는 힘은 깜짝 놀랄 만큼 강하다. 온갖 저항을 이겨내고 싹이 터서 자라난다. 꽃집 노인이 말한 것처럼 틀림없이 알뿌리도 점점 늘어나리라. 유리창 밖에는 서리와 눈을 헤치고 복수초가 노란 꽃을 피웠다. 히아신스와 패모도 화단 흙을 가르고 이파리가 나기 시작했다. 서재 안에는 사프란 화분이 변함없이 푸르디푸르다.

미야모토 유리코에게 봄은 상쾌한 남자아이
5월은 상쾌한 남자아이. 팔팔한 어린 몸이 벌거벗은 채 머리카락을 깃발처럼 바람에 휘날리고 초록빛 잔가지를 휘두르며 달려간다. 생기가 충만하고 맑은 감각이 빛난다. 5월은 가까운 골목길에도 있다. 집 담장을 따라 오른쪽으로 한 번, 또 한 번 돌면 수줍은 5월 보물이 사람 눈을 피해 가로놓여 있다. 오른쪽도 산울타리, 왼쪽도 산울타리, 고작 폭이 90센티미터쯤 되는 샛길이 이어지는데 5월이면 그 작은 길은 초록 왕국이 된다. 높은 곳에는 떡갈나무며 홍가시나무의 어린잎, 벚나무며 단풍나무가 우거지고 땅바닥에는 황매화나 들장미가 무리 지어 자라며 초록색 변주곡을 연주한다. 거기에 덥수룩한 줄기를 하늘에서 비스듬히 기울인 후기인상파 그림 같은 버드나무가 풍성한 잎사귀를 늘어뜨린다.

하야시 후미코에게 여름은 시원한 은신처
‘시원한 은신처’라는 멋진 말이 좋아서 수없이 읊조렸다. 마음이 차분해지면서 이처럼 아름답고 의미가 넓은 말은 일찍이 어떤 시인의 작품에서도 발견하지 못했다. 아주 얄미울 정도로 근사한 문장이다.
나는 대개 이슥한 밤에 일을 하는데, 가족이 모두 잠들어 고요한 집 한구석에서 펜 소리만이 들려오면 어쩐지 쓸쓸해진다. 너무 노인 같다는 생각도 든다. 손에 잉크 얼룩이 지면 이상하리만치 조바심이 나서 더는 글이 써지지 않을 때도 있다. 한여름을 썩 좋아하지 않지만 한여름 밤에 켜진 등불은 매우 서정적이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