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2.일본문화

일본 유명 작가들의 마감 분투기 : 작가의 마감

동방박사님 2021. 12. 10.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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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쓸 수 없다, 그래도 써야 한다
30명의 일본 유명 작가 마감분투기


『작가의 마감』에 등장하는 일본 작가들은 하나같이 글 잘 쓰기로 너무나도 유명한 대문호들이다. 그들은 펜만 들면 글이 술술 풀려나갈 것 같은가? 천만의 말씀! 마감을 앞두고 쓰지 못하는 괴로움이 한 편 한 편 절절하다. 첫 장을 여는 다자이 오사무는 아니야, 아니야 외치며 원고를 찢고 또 찢는다. 창작을 위해 책 읽을 시간이 모자란다는 나쓰메 소세키도 있다. 아쿠타가와상으로 유명한 아쿠타가와 류노스케는 글쓰기라는 천벌을 받은 것 같다고 토로한다. 또 어떤 것을 쓸지 고민하다가 밤을 지새우는 모리 오가이도 있다. 글 잘 쓰기로 유명한 이 작가들의 마감분투기도 또 하나의 명문이 탄생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대문호답게 절절매는 자신을 그린 문장도 모두 명문이다.

목차

1장 쓸 수 없다
작가의 초상 _ 다자이 오사무
슬럼프 _ 유메노 규사쿠
독감기 _ 우메자키 하루오
쓰지 못한 원고 _ 호조 다미오
서재와 별 _ 기타하라 하쿠슈
쓸 수 없는 원고 _ 요코미쓰 리이치
나의 생활에서 _ 마키노 신이치
첨단인은 말한다 _ 호리 다쓰오
잡언 _ 다네다 산토카
위가 아프다 _ 사카구치 안고
시에 관해 말하지 않고 _ 다카무라 고타로
어쨌든 쓸 수 없다네 _ 나쓰메 소세키
의욕이 사그라들었다 _ 요시카와 에이지

2장 그래도 써야 한다
의무 _ 다자이 오사무
책상 _ 다야마 가타이
나는 이미 나았다 _ 사카구치 안고
나와 창작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홀리다 _ 무로 사이세이
한밤중에 생각한 일 _ 모리 오가이
때늦은 국화 _ 나가이 가후
나의 가난 이야기 _ 다니자키 준이치로
신문소설의 어려움 _ 기쿠치 간
독서와 창작 _ 나쓰메 소세키
메모 _ 호리 다쓰오
세 편의 연재소설 _ 에도가와 란포
어느 하루 _ 하야시 후미코

3장 이렇게 글 쓰며 산다
문인의 생활 _ 나쓰메 소세키
나의 이력 _ 나오키 산주고
생활 _ 하야시 후미코
버릇 _ 요시카와 에이지
책상과 이불과 여자 _ 사카구치 안고
원고료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문방구 만담 _ 다니자키 준이치로
쓴다는 것 _ 이즈미 교카
푸른 배 일기 _ 야마모토 슈고로
번민 일기 _ 다자이 오사무
일곱 번째 편지 _ 미야모토 유리코
달콤한 배의 시 _ 오구마 히데오

4장 편집자는 괴로워
매문 문답 _ 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아쿠타가와의 원고 _ 무로 사이세이
편집 중기 _ 요코미쓰 리이치
편집실에서 _ 이토 노에
편집 여담 _ 마키노 신이치
펜을 쥐고 _ 다네다 산토카
소식 _ 이시카와 다쿠보쿠
편집자 시절 _ 우메자키 하루오
편집 당번 _ 기시다 구니오
새하얀 지면 _ 『반장난』 편집부
작가 명단에서 빼버릴 테야 _ 호리 다쓰오
출간 연기에 대해 _ 다니자키 준이치로

추천의 글 _ 장정일
 

책 속으로

쓸 수 없는 날에는 아무리 해도 글이 써지지 않는다. 나는 집 이곳저곳을 돌아다닌다. 문득 정신을 차려보니 화장실 안이다. 아니, 볼일도 없는데 여긴 뭐 하러 들어왔지. 밖으로 나오다 이번에는 격자문에 머리를 내리친다. “으음, 으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이따위 글을 써봤자 뭐가 된단 말인가. 그저 노동의 기록에 지나지 않는 것을.
--- p.43, 「쓸 수 없는 원고(요코미쓰 리이치)」 중에서

편집자 한 명이 직접 만나 담판을 짓겠다며 집으로 찾아왔다. 조금 질려 더욱 고사했지만, 결국 쓸 수 없는 이유라도 쓰라고 해서 할 수 없이 펜을 든다.
막상 쓸 수 없는 이유를 쓰려고 하니 이게 또 좀처럼 써지지 않는다. 왜 쓸 수 없는지를 명확히 안다면 당연히 그 이유를 쓸 텐데, 사실 이유를 모르니 그저 ‘쓰지 못하겠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 시는 쓰면서도 시 그 자체에 관해 도저히 이야기할 수 없다니, 어째서 그럴까. 전에 단편이나마 시론 비슷한 글을 쓴 적이 있다. 그러다 점차 여러 가지 문제가 마음속에 쌓이고 복잡해지더니 이제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요즘 들어 점점 더 암중모색하는 형편이다.
--- p.61, 「쓰지 못하는 이유(다카무라 고타로)」 중에서

다카하마 교시에게
시간이 모자라 어쩔 수 없이 오늘 학교를 쉬고 『제국문학』 원고를 썼습니다. 분량은 원고지 예순네 매가량. 실은 더 써야 했지만 시간이 빠듯해 뒤를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머리가 큰 괴짜가 탄생했습니다. 내년에 비평해주시길 바랍니다. 내일부터 힘내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쓸 작정이지만, 쓰려고 하면 괴로워집니다. 누군가에게 대신 써달라고 부탁하고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도 17일 아니면 18일까지는 보내겠습니다. 자네와 인쇄소가 입을 헤 벌린 채 기다리면 미안하니까.
1905년 12월 11일 월요일
--- p.67, 「편집자에게 보내는 편지(나쓰메 소세키)」 중에서

“또 못 썼어요?”
아내가 묻는다.
“안 돼, 안 돼.”
“속 썩이네요.”
“오늘 밤, 할 거야. 오늘 밤이야말로…….”
이렇게 말하고는 양지바른 툇마루를 걷거나 정원의 나무 사이를 거닌다. 팔짱을 끼고 끊임없이 흥이 샘솟기를 기다리면서.
T 잡지의 편집자가 오는 것이 무섭다. 틀림없이 찾아온다. 그리고 기어코 원고를 손에 넣지 않는 한 가만두지 않겠다는 기색을 한껏 내보일 텐데……. 당신은 빨리 쓰니까요, 이런 말에도 여러 가지 복잡한 기분이 교차한다. 쓴다, 하찮은 글을 쓴다. 그것이 세상에 나온다. 비평된다. 이 생각만 하면 몸도 마음도 구석의 구석의 구석으로 내몰리는 기분이다.
이번에는 더는 어찌해도 쓰지 못할 것처럼 느껴진다. 조바심이 난다. 이제껏 글을 쓸 수 있던 게 이상할 정도다. 재료고 뭐고 엉망진창이다. 예전에 재미있다고 생각한 것도 시시하기 그지없다. 어째서 저런 소재로 글 쓸 마음을 먹은 걸까.
“안 써져, 안 써져.”
“도저히 안 되겠어요?”
아내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있다.
--- p.79~80, 「또 못 썼어요?(다야마 가타이)」 중에서

나의 더딘 글쓰기는 그런 기특한 이유보다는 주로 체력 문제에서 비롯된다. 나는 꼼짝 않고 한 가지 생각을 하다 보면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나 금세 지친다. 끈기 있게 버텨봤자 20분이다. 젊은 시절부터 당뇨병을 앓은 탓이지 싶다. 여하튼 이런 사정으로 원고지를 앞에 두고 담배를 피우는 둥 뜨거운 차를 마시는 둥 소변보러 가는 둥 10분 20분 간격으로 여러 가지 가락을 넣는다. 잠깐 쉬어 호흡을 바꾸지 않으면 집중해서 사고하지 못한다.
가끔 어떤 대목이 잘 풀리지 않으면, 그 자리에서 섰다가 앉았다가 마셨다가 피웠다가를 점점 더 자주 되풀이한다. 담배를 한 대 피우고 나서 5분이나 10분 가만히 원고를 노려보고, 그래도 안 되면 이번에는 차를 마시고 또 노려본다. 그래도 안 풀리면 소변보러 나갔다가 내친김에 정원까지 걸어 다닌 뒤 돌아와 또다시 원고에 매달린다. 꽤 심하게 막힐 때는 원고가 나를 뒤엎어버리는 느낌이라, 후유 한숨을 내쉬며 바닥에 드러누워 천장을 응시한 채 반 시간에서 한 시간을 허비한다.
--- p.117~118, 「10분에 한 번씩 원고지를 노려보는 신세(다니자키 준이치로)」 중에서

올해는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 지금 세계지도를 펼쳐놓고 인도에 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 가을쯤에는 유럽에 갔을 때처럼 가볍게 출항하고 싶은 마음뿐이다. 몇 번이나 첫 여행을 떠나는 기분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돈 많이 모았지요”라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모아둔 것은 여관 계산서 정도다. 완벽한 하루살이 인생인 셈이다. 말하자면 내가 암염소의 젖을 짜면 그 밑에서 다른 사람이 체에 밭는, 그런 덧없는 생활이다. 그렇기에 몸 상태가 나쁘면 이것저것 생각이 많아진다. 뭐, 쌀밥과 해님은 나를 따라다니시겠지. “달 어두운 밤 기러기는 높이 난다”고 비참한 날이 와도 원래 몸뚱어리 하나뿐이니 어떻게든 되리라.
--- p.169~170, 「아무것도 쓰고 싶지 않다(하야시 후미코)」 중에서

편집자: 난감하네요, 어떤 것이든 좋습니다만…… 원고지 두 장이든 세 장이든 상관없습니다. 당신 이름만 있으면 됩니다.
작가: 그런 글을 싣는다니, 어리석은 일이지 않습니까? 독자가 딱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잡지에도 손해가 될 텐데요. 양 머리를 내걸고 개고기를 판다고요, 욕을 들을 게 뻔합니다.
편집자: 아니, 손해는 아닙니다. 무명 작가의 작품을 실을 땐 좋으면 좋은 대로 나쁘면 나쁜 대로 잡지에 책임이 있습니다만, 유명 작가의 작품이면 좋든 나쁘든 항상 작가가 모든 책임을 지기 때문입니다.
작가: 그렇다면 더욱 일을 맡을 수 없지 않습니까?
편집자: 하지만 당신 정도의 대작가라면 한두 편 나쁜 작품을 낸들 명성이 떨어질 걱정은 없지 않습니까?
작가: 그 말은 5엔이나 10엔쯤 도난당해도 생활이 곤란하지 않을 사람에게는 훔쳐도 괜찮다는 논리입니다. 도둑맞은 사람은 꼴이 뭐가 됩니까?
편집자: 도둑맞는다고 생각하면 불쾌하지만, 기부한다고 생각하면 참을 수 있지 않습니까?
--- p.227~228, 「작가와 편집자의 대화(아쿠타가와 류노스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작가님, 원고 안 쓰세요?
작가는 괴롭지만 독자는 즐거워!

아, 그렇게까지…… 변명도 다양하다

거짓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작가, 애초에 지킬 마음이 없는 작가, 자기혐오에 빠지고 마는 작가, 마감 스트레스를 호소하는 작가, 미룰 대로 미루다가 겨우 내놓는 작가, 도무지 써지지 않아 홧술을 들이켜는 작가 등등. 유명 작가들의 사생활과 인품이 고스란히 드러나 읽는 내내 웃음을 짓게 만든다. 아, 작가도 나와 똑같은 인간이야! 물론 마감을 잘 지키는 작가의 원고를 받은 편집자의 에피소드도 들어 있다. 노벨문학상 수상자,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그렇다. 특히 그는 문예지의 편집자로 일한 경험이 있어서 누구보다 원고를 기다리는 편집자의 심정을 잘 이해한다. 때문에 그는 절대 마감 시간을 어기지 않는다.

편집자도 괴로워
작가들만 마감의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작가의 원고를 기다리는 편집자의 속도 애타기는 마찬가지다. 번번이 빈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어느 편집자는 지금 당장 쓰라고 무언의 압박을 보내며 작가의 곁에 머무른다. 주위를 살피며 이 작가가 무엇을 하느라 글을 쓰지 않고 있는지 문젯거리를 찾아 채근도 한다. 하지만 편집자가 조르면 조를수록 작가는 또 다른 변명거리를 찾느라 바쁘다. 또 아쿠타가와의 원고를 기다리는 어느 편집자는 이미 당신은 유명하니 쓰기만 하면 재밌을 테니 어떤 글이라도 내놓으라고 조르기도 한다. 또 편집자에게도 편집 후기라는 마감이 있다. 작가가 마감을 지키지 못해 아무것도 인쇄되지 않은 빈 페이지를 싣기도 한다. 4장에서는 편집자의 괴로움을 엿볼 수 있다.

마감이라는 것
단숨에 글을 써 내려간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명문은 고된 작업 속에서 탄생한다. 대문호라고 평가받는 작가들이 마감을 앞두고 벌이는 기발하고 엉뚱한 모습을 보면서 독자들은 평범한 우리와 똑같은 행동에 웃음을 짓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마감을 겪으면서 살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든 주부든 프리랜서든 아르바이트든 우리에게는 모두 마감이 있다. 때문에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의 에피소드 하나하나가 전부 나의 이야기나 다름없다. 아이들조차 방학 숙제를 마감 안에 끝내지 못하는 괴로움이 있지 않은가.
 

추천평

일회적인 청탁이든 연재든, 작가가 쓰는 모든 글에는 완수해야 하는 임무(청탁 내용)가 있고, 마감일이 있다. 이것은 상호계약이기 때문에 지켜지지 않으면 안 되지만, 후자의 경우는 약간의 융통성이 주어진다. 물론 이 융통성은 편집자가 아닌 필자의 일방적인 파기로 이루어지는데, 그렇게 얻어낸 시간에 필자들은 무엇을 할까? 엘리자베스 퀴블러 로스는 불치병을 선고받은 환자가 거친다는 다섯 단계를 정식화한 바 있는데, 혹시 마감을 뭉갠 작가들이 그와 똑같은 과정을 밟고 있지 않을까? ①부정: 아무리 생각해봐도 이번 임무는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아니야. ②분노: 왜 이 청탁을 수락한 거야, 바보같이! ③타협: 그래도 먹고 살려면 해야 하는 일이야. 약속을 어길 수는 없어. ④우울: 대체 나는 왜 이런 일을 매번 해야 하는 걸까? 더 이상은 하고 싶지 않아. ⑤수용: 이게 내 팔자니 할 수 없지.
이 책에 실린 글 가운데 특히 유메노 규사쿠의 것은 청탁 임무를 끝내 달성하지 못하고 우울 단계에 걸려 넘어진 작가의 심경이 처절하다. “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어떻게 하면 이 곤경에서 벗어날 수 있단 말인가. 창작의 세계에서 되살아나는 일은 영영 불가능한 걸까? 그림이나 와카, 하이쿠를 짓는 것 말고 다른 살길은 없단 말인가.”
- 장정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