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동양철학의 이해 (책소개)/1.동양철학사상

구소수간 : 중국의 대문호 구양수와 소동파의 편지글

동방박사님 2021. 12. 20. 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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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구소수간』은 중국 북송의 대문호로 알려진 구양수와 소동파가 쓴 편지를 엮은 책으로 세종대왕이 수 십 번이나 탐독한 책으로 유명하다. 『구소수간』은 구양수의 편지글 ‘여릉 상하’와 소동파의 편지글 ‘동파 상하’로 되어 있다.

목차

제1장 『구소수간』 여릉 상

1. 매성유에게 보내는 편지[與梅聖兪]
2. 대제 등자경에게 보내는 편지[與?待制子京]
3. 연서 직방에게 답하는 편지[答連庶職方]
4. 연상 낭중에게 답하는 편지[答連庠郞中]
5. 장직방에게 보내는 편지[與張職方]
6. 왕낭중에게 보내는 편지[與王?中]
7. 곽형부에게 답하는 편지[答郭刑部]
8. 주직방에게 보내는 편지[與朱職方]
9. 채성부에게 보내는 편지[與蔡省副]
10. 급사 오중부에게 보내는 편지[與吳給事中復]
11. 이유후에게 보내는 편지[與李留後]
12. 왕형공에게 보내는 편지[與王荊公]
13. 두기공에게 보내는 편지[與杜祁公]
14. 정문간공에게 보내는 편지[與程文簡公]
15. 증선정공에게 보내는 편지[與曾宣靖公]
16. 위민공 손원규에게 보내는 편지[與孫威敏公元規]
17. 여안도에게 보내는 편지[與余安道]
18. 풍장정공에게 보내는 편지[與馮章靖公]
19. 유원보에게 보내는 편지[與劉原父]
20. 채군모에게 보내는 편지[與蔡君謨]
21. 증자고에게 보내는 편지[與曾子固]
22. 범경인에게 보내는 편지[與范景仁]
23. 왕자야에게 보내는 편지[與王子野]
24. 왕심보에게 보내는 편지[與王深甫]
25. 장백진에게 보내는 편지[與章伯?]
26. 왕보지께 드리는 편지[與王補之]
27. 용도 송차도에게 보내는 편지[與宋龍圖次道]
28. 용도 왕승지에게 보내는 편지[與王龍圖勝之]
29. 심대제에게 보내는 편지[與沈待制]
30. 학사 유자정께 드리는 편지[與劉學士子正]
31. 사경초에게 보내는 편지[與謝景初]

제2장 『구소수간』 여릉 하

1. 설소경 공기에게 보내는 편지[與薛少卿公期]
2. 왕학사에게 보내는 편지[與王學士]
3. 증학사에게 보내는 편지[與曾學士]
4. 장학사에게 보내는 편지[與張學士]
5. 육학사에게 보내는 편지[與陸學士]
6. 안직강에게 보내는 편지[與?直講]
7. 양직강에게 보내는 편지[與梁直講]
8. 초전승에게 보내는 편지[與焦殿丞]
9. 소전승에게 보내는 편지[與蘇殿丞]
10. 소편례에게 보내는 편지[與蘇編禮]
11. 서무당에게 보내는 편지[與徐無黨]
12. 두대부에게 보내는 편지[與杜大夫]
13. 왕선휘 태위에게 보내는 편지[與王宣徽大尉]
14. 심내한에게 보내는 편지[與沈內翰]
15. 왕단명에게 보내는 편지[與王端明]
16. 왕의민공에게 보내는 편지[與王懿敏公]
17. 소자용에게 보내는 편지[與蘇子容]
18. 한위공에게 보내는 편지[與韓魏公]
19. 부정공에게 보내는 편지[與富鄭公]
20. 오정헌공에게 보내는 편지[與吳正獻公]
21. 오문숙공에게 보내는 편지[與吳文肅公]
22. 조강정공에게 보내는 편지[與趙康靖公]
23. 여신공에게 보내는 편지[與呂申公]
24. 정원진에게 보내는 편지[與丁元珍]
25. 상대제에게 보내는 편지[與常待制]
26. 육신에게 답하는 편지[答陸伸]
27. 이학사에게 보내는 편지[與李學士]

제3장 『구소수간』 동파 상

1. 사마온공에게 보내는 편지[與司馬溫公]
2. 이방숙에게 보내는 편지[與李方叔]
3. 정공밀에게 보내는 편지[與程公密]
4. 서중거에게 보내는 편지 [與徐仲車]
5. 모택민 추관에게 보내는 편지[與毛澤民推官]
6. 진보지에게 보내는 편지[與陳輔之]
7. 황노직에게 보내는 편지[與黃魯直]
8. 진전도에게 보내는 편지[與陳傳道]
9. 한소문께 올리는 편지[上韓昭文]
10. 조미숙에게 보내는 편지[與晁美叔]
11. 손숙정에게 보내는 편지[與孫叔靜]
12. 손자 원노에게 보내는 편지[與孫元老]
13. 왕주언에게 보내는 편지[與王周彦]
14. 자유에게 보내는 편지[與子由]
15. 정전보 추관에게 보내는 편지[與程全父推官]
16. 정수재에게 보내는 편지[與程秀才]
17. 주문지에게 보내는 편지[與周文之]
18. 구양지회에게 보내는 편지[與歐陽知晦]
19. 전제명에게 보내는 편지[與錢濟明]
20. 왕성미에게 보내는 편지[與王聖美]
21. 이정평에게 보내는 편지[與李廷評]
22. 여용도에게 보내는 편지[與呂龍圖]
23. 소조봉에게 보내는 편지[與蕭朝奉]
24. 왕중지에게 보내는 편지[與王仲志]
25. 상관장에게 보내는 편지[與上官長]
26. 소제거에게 보내는 편지[與蕭提?]
27. 왕유안에게 답하는 편지[答王幼安]
28. 도원 비교에게 보내는 편지[與道源秘校]
29. 모국진에게 보내는 별지[與毛國鎭別紙]
30. 이소기에게 보내는 편지[與李昭玘]
31. 강돈례에게 보내는 편지[與江惇禮]
32. 봉주 태수 주진에게 보내는 편지[與封守朱振]
33. 손지동에게 보내는 편지[與孫志同]
34. 공의대부에게 보내는 편지[與公儀大夫]
35. 진계상에게 보내는 편지[與陳季常]
36. 범촉공에게 답하는 편지[答范蜀公]
37. 유원충에게 보내는 편지[與劉元忠]
38. 왕정국에게 보내는 편지[與王定國]
39. 조창회지에게 보내는 편지[與趙昶晦之]
40. 등달도에게 보내는 편지[與?達道]
41. 이무회에게 보내는 편지[與李無悔]
42. 맹형지에게 보내는 편지[與孟亨之]
43. 오수재에게 보내는 편지[與吳秀才]
44. 황부언에게 보내는 편지[與黃敷言]
45. 언정판관에게 보내는 편지[與?正判官]

제4장 『구소수간』 동파 하

1. 정회립에게 보내는 편지[與程懷立]
2. 유공보에게 답하는 편지[答劉貢父]
3. 증자선에게 답하는 편지[答曾子宣]
4. 강당좌 수재에게 보내는 편지[與姜唐佐秀才]
5. 나암 비교에게 보내는 편지[與羅巖秘校]
6. 임천화에게 보내는 편지[與林天和]
7. 장조청에게 보내는 편지 [與張朝請]
8. 통판선의에게 보내는 편지[與通判宣義]
9. 이대부에게 보내는 편지[與李大夫]
10. 모유첨에게 보내는 편지[與毛維瞻]
11. 오장 수재에게 보내는 편지[與吳將秀才]
12. 원진주에게 보내는 편지[與袁?州]
13. 요명략에게 답하는 편지[答廖明略]
14. 가운로에게 답하는 편지[答賈耘老]
15. 서득지에게 보내는 편지[與徐得之]
16. 황안중에게 보내는 편지[與黃安中]
17. 서사봉에게 보내는 편지[與徐司封]
18. 진승무에게 보내는 편지[與陳承務]
19. 호주 진장에게 답하는 편지[答濠州陳章]
20. 임덕옹에게 보내는 편지[與任德翁]
21. 건서진에게 보내는 편지[與蹇序辰]
22. 미원장에게 보내는 편지[與米元章]
23. 범순부에게 보내는 편지[與范純夫]
28. 호심부에게 보내는 편지[與胡深夫]
29. 이지의에게 보내는 편지[與李之儀]
30. 조사훈에게 보내는 편지[與曹司勳]
31. 회부에게 보내는 편지[與晦夫]
32. 범몽득에게 보내는 편지[與范夢得]
33. 왕민중에게 보내는 편지[與王敏仲]
34. 정정로에게 보내는 편지[與鄭靖老]
35. 사민사에게 보내는 편지[與謝民師]
36. 범원장 형제를 위로하는 편지[慰范元長昆仲]
37. 범경인을 위로하는 편지[慰范景仁]
38. 전제명을 위로하는 편지[慰錢濟明]
39. 호인수를 위로하는 편지[慰胡仁脩]
40. 풍조인에게 답하는 편지[答馮祖仁]

제5장 해제

1. 머리말
2. 구양수·소동파의 생애와 학문
3. 『구소수간』의 간행과 전파
4. 『구소수간』의 주요 내용과 특징
5. 맺음말
 

저자 소개

저 : 구양수 (歐陽修)
 
구양수(歐陽修)는 1007년에 출생해 1072년까지 66년을 살았다. 1007년부터 1030년까지는 관직 생활을 하기 위한 준비를 하며 보냈다. 그는 4세 때 부친을 잃고 모친과 함께 백부 구양엽(歐陽曄)이 추관(推官)으로 있는 수주(隨州)로 가서 생활하며 빈궁한 어린 시절을 보낸다. 어려서부터 구양수는 한유(韓愈)의 깊고 예리한 문장에 매력을 느꼈고 그를 추앙했다. 1023년 17세 때 처음으로 수주의 지방 고시에 참가하지만 그의 용운(用韻)이 관운(官韻)에 부합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실패한다. 그 뒤 1028년 명사인 서언(胥偃)을 찾아가 자신의 문장을 보여주었다. 서언은 구양수의 웅대한 문장에 감탄해 그를 자신의 문하에 받아들이게 된다. 그해 겨울 서언과 함께 경사로 가서 춘계국자감고시(春季國子監考試)에 응시한 구양수는 수석의 영광을 얻었고, 가을에는 국학(國學)에 응시해 또 수석을 차지하게 된다. 1034년에는 아내와 자식이 죽는 아픔을 겪었으나 1043년 인종(仁宗)은 언로(言路)를 확장하기 위해 간관(諫官)을 늘리면서 구양수 등을 지간원(知諫院)으로 삼고 여정(余靖)을 우정언(右正言)으로 임명하자 같은 해 4월에 구양수는 경사로 돌아온다. 1054년 수년 만에 구양수를 만난 인종은 그의 노쇠한 외모와 상황을 측은히 여겨 극진히 대우하며 이부(吏部)의 유내전(流內銓)에 임명한다. 당시 구양수의 정적들은 그의 기용에 두려움을 느끼고 각종 모함과 구설수를 만들었지만, 구양수는 지속적으로 경사에 머무르며 『당서(唐書)』 편찬에 참여하게 되고 한림학사 겸 사관수찬(翰林學士兼史館修撰)으로 승진하게 된다. 구양수는 66세의 나이로 천명을 다했고, 2년 후에 조정에서 ‘문충(文忠)’이라는 시호(諡號)를 내렸다. ‘문충’은 그가 일생 동안 이루어낸 문학적 위업의 저력을 알 수 있는 상징이다.

저 : 소동파 (蘇東坡)

 
자는 자첨(子瞻),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 이름은 식(軾)이며, 1036년 중국 사천성에서 태어났다. 부친 소순(蘇洵), 아우 소철(蘇轍)과 더불어 ‘삼소(三蘇)’라 불린다. 송나라 제1의 시인이며, 시, 사(詞), 산문, 부(賦), 서예, 그림 등 여러 장르에 모두 뛰어나 각기 시대의 최고봉으로, 문장에 있어서도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꼽힌다.

22세에 진사에 급제하고, 구양수(歐陽修)에게 인정을 받아 문단에 등장하였고, 왕안석(王安石)의 ‘신법(新法)’이 실시되자 ‘구법당(舊法黨)’에 속했던 그는 지방관으로 전출되었다. 그의 나이 44세에 “독서가 만 권에 달하여도 율(律)은 읽지 않는다”는 말이 빌미가 된 필화사건으로 감옥에 갇혔고, 호북성 황주(黃州)로 유배되었다가, 50세 되던 해 구법당이 득세하자 그는 승진을 계속하여 57세에 병부상서(兵部尙書), 예부상서(禮部尙書) 등의 고관(高官)을 역임하였다. 황태후(皇太后)의 죽음을 계기로 신법당이 다시 세력을 잡자 광동성 혜주(惠州)와 중국 최남단인 해남도(海南島)로 유배되었다가 귀양살이를 마치고 돌아오던 중 강소성 상주(常州)에서 1101년에 사망하였다.

역 : 유미정

 
전남대학교 한문고전번역 협동과정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위당 김재희 선생의 지도를 받으면서 경서를 읽었고 『후창집』과『장헌유고』를 번역하면서 틈틈이 논문을 썼다.

「『구소수간』의 소동파 황주시기 수간 연구」
「『구소수간』의 소동파 혜주,담주 시기 수간 연구」 「소동파의 붕우관계 연구」
 
.책 속으로
성유께서 낙양에 머물 때 항상 말하길, “어버이가 남방에서 늙어 가시니 한번 돌아가 모실 것을 생각한다.”고 했지요. 이제 응당 평소의 염원을 이룰 것이니, 부공도 함께 기뻐할 일입니다. 그러나 강절(江浙)의 수령이 되고 산수의 아름다움이 더 해지면, 강락(康樂)의 시를 짓는데 도움이 될 것이므로, 누가 대적하겠는지요? 저는 공과 헤어진 뒤 아직껏 시를 짓지 못했지요. 또한 문주(文酒)의 모임조차 없어서 소위 “사흘을 『도덕경』을 말하지 못하면 혀가 뻣뻣해지는 것을 느낀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 「매성유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정신이 온전하고 기운이 용맹하여 마음대로 유유자적 하기를 공만큼 즐기는 사람은 백에 한두 명도 없습니다. 저 같은 사람은 눈을 멀리까지 볼 수 없고, 발걸음 역시 높이 오르는 것을 감당하지 못합니다. 참으로 탄식 할 노릇입니다. 만날 날을 기약할 수 없군요. 날씨가 점점 따뜻해오니 몸을 아끼십시오.
--- 「곽형부에게 답하는 편지」 중에서

저는 아룁니다. 더위가 심하더니 공의 말씀처럼 과연 다시 구름이 일어날 것 같습니다. 좋은 계절에 마침내 비가 내릴까요? 건녕(建寧))의 공론은 더욱 시끄럽습니다. 그러니 제서(制書)를 맡은 사람이 반드시 체포되어 심문을 받을 것입니다. 후일의 유람은 다시 가고 싶지 않았으나 저 의 뜻이라도 전달되어 다행입니다.
--- 「유원보에게 보내는 편지」 중에서
 

출판사 리뷰

세종은 잠저(潛邸)에 있을 때부터 『구소수간』을 애독하였다. 왕이 되기 전 사가에 머물던 잠저의 시기, 청년 세종이 병석에 서도 『구소수간』만은 옆에 두고 읽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청년 세종은 왜 『구소수간』을 수십 번이나 탐독하였을까? 『구소수간』은 고려시대 부터 유학자들에겐 필수 교양서나 다름없었다. 당시의 문인 학자라면 대 부분 그랬듯이 세종은 먼저 중국의 대문호 구양수와 소동파의 뛰어난 문장에 심취했을 것이다. 더구나 구양수와 소동파의 청신하고 활달한 문장은 당시에는 너무나 유명한 것이었다. 구양수와 소동파는 물 흐르는 듯 시원스럽게 글을 썼으며 짧게 쓴 문장이더라도 뜻과 이치를 담았다. 때로는 늙어 병드는 것을 탄식하였고, 때로는 유배지의 외로움을 토로하고, 때로는 늙어 병드는 것을 탄식하였으나, 언제나 그들의 글은 진솔하고 간명하였다. - 서문중에서

추천평

유미정 박사의 『구소수간』이라는, 천 년 전 멋진 두 인물이 벗들과 나눈 편지글이 이처럼 우리말로 되살아났다. 중국에서도 옛 문장은 현대 문장으로 번역되어야 일반인들도 쉽게 읽을 수 있다. 하물며 우리나라 사람들 이 구양수 소동파의 글을 우리말로 수월하게 읽어가며 이들과 천년의 호흡을 함께 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유미정 박사의 기나긴 노고 덕분이다. 독자를 대신해서 감사의 인사를 올리며 국내에서 완역되어 출판되는 이 옛글의 향연에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
- 안희진 (단국대학교 중국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