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서양사 이해 (책소개)/2.서양고중세사

중세 길거리 문화사

동방박사님 2021. 12. 28.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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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광장과 뒷골목을 누비며 먹을거리와 잡화를 팔고,
이동 변소를 들고 다니거나 굴뚝청소를 해주고,
부고와 사건사고를 전달하며 거리의 매스컴 역할까지 해낸
수만 명의 길거리 인생들!
그들과 서민이 함께 만들어낸 중세의 뒷골목 이야기!

서민들의 생활사, 길거리의 장사꾼 이야기

『중세의 뒷골목 풍경』 『중세의 뒷골목 사랑』 『중세의 잔혹사 마녀사냥』등을 펴내며 중세의 비주류 인생, 흥미로운 뒷골목 문화를 꾸준히 한국에 소개해온 비교문화학자 양태자가 이번에는 길거리의 장사꾼, ‘아우스루퍼(거리에서 외치며 물건을 파는 장사꾼)’를 통해 중세의 뒷골목 풍속, 길거리 문화를 조망하는 책을 펴냈다.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기록에 등장하지만 본격적으로 자취를 남기기 시작한 것은 12세기부터라고 전해지는 이들 길거리 장사꾼은 파리, 런던, 베를린 등 대도시의 광장과 뒷골목을 누비며 귀족보다는 서민들의 대상으로 소리치며 물건을 팔았다. 큰 도시의 광장과 뒷골목에는 물, 생선, 향신료, 굴, 과일과 채소, 과자, 화주, 우유, 향신료 등의 먹을거리를 비롯해 빗자루, 우산, 다용도 끈, 바늘, 나무통, 유리그릇, 솔, 헌옷, 헌 모자, 땔감 등의 잡화를 파는 상인이 수백~수천 명, 나중에는 수만 명에 이르렀고 이들이 물건을 팔며 내지르는 소리 때문에 거리는 소음으로 가득했다. 길거리의 장사꾼은 단순히 먹을거리와 잡화만 파는 게 아니라 서민들이 필요한 것을 대행해 주는 일종의 서비스업으로까지 발전했다. 똥통을 들고 다니다 용변을 받아내는 이동변소 업자와 의자를 등에 지고 다니다가 빌려주는 사람이 등장했고, 부고를 전달하거나 사건사고를 대신 알려주는 길거리 매스컴 역할을 하기도 했다.
저자는 이번 책에서 길거리의 장사꾼이 언제부터 역사 속에 그 모습을 드러냈으며, 수만 명의 길거리 장사꾼들과 수백 개의 직업군이 탄생하고 소멸하는 과정에서 당시 사회와 문화로부터 받은 영향력은 무엇인지, 먹을거리에서 잡화, 심부름에서 공문 전달까지, 그들이 팔던 다양한 상품 이 서민들의 생활과는 어떤 관련이 있는지 밝히고 있다. 책 에는 140여 점의 그림이 수록돼 있어 당시 상황을 이해하는 도움을 주고 있다. 각 나라마다 한 시대의 풍물이 존재하고, 이런 것들이 쌓여 서 각 나라의 문화가 되고 역사가 된다. 길거리의 사소한 풍 물에서 당대 문화의 한 풍경을 찾아내고 중세 서민들의 생활사로 그 주제를 확장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를 지닌다.

목차

저자의 말 - 서민들이 살아간 풍경, 뒷골목의 문화사
프롤로그 - 중세를 이해하는 첫걸음, 길거리의 장사꾼 이야기

◆1. 길거리의 장사꾼, 아우스루퍼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기록에 존재|직업군만 4000개 이상|유럽 문화사의 일부를 차지

◆2. 이동 변소가 왔어요
길거리에서 볼일을 보다|서양 변소의 역사|
오물과 악취로 뒤덮인 거리|귀족의 변소| 손님을 찾아가는 이동 변소

◆3. 특정 시간에만 물건을 파는 장사꾼
밤거리의 과자 장수|새벽의 우유 장수|화주를 파는 남녀들|커피 팝니다|굴 사시오|
목욕사의 종들이 거리에|환등 장수와 초 장수가 거리에 나타나다

◆4. 길거리에서 음식 파는 사람들
과일과 채소 사세요|와인 한 잔에 1수|우리들의 청어 팝니다|
물이 왔습니다, 물|향신료로 많은 돈 벌어|살찐 오리 팔아요

◆5. 잡화를 팝니다
잡동사니 파는 행상인|헌 옷 왔어요, 헌 신발 왔어요|유행의 최전선, 가발|화덕과 땔감, 성냥팔이|
솔 왔어요, 솔|털 장수|우산 팝니다|먼지 터는 빗자루 팔아요|고무줄 사시오|
예뻐지고 싶은 여인들은 장미물을 사세요|목청 큰 유리그릇 장수|바구니와 양탄자 장수

◆6. 소금과 후추 전쟁
소금의 역사|소금길|소금 무역으로 유럽의 패권을 차지하다|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소금 전쟁|청어 절임|부자의 상징 후추

◆7. 넝마주이와 고물상
거리의 쓰레기통은 넝마주이의 보물창고|고물상|잡동사니와 고철 수집가

◆8. 거리의 매스컴, 공문을 전달하는 사람들
밤거리를 지키는 야경꾼 |부고를 거리에서 알리는 사람 |거리의 책장수

◆9. 기타 장사꾼들
소음의 도시 파리 |일일 노동자와 거지 |땜장이 |구두닦이 |굴뚝청소부 |
새 모이 파는 사람 |암표상 |의자 빌려주는 사람 |기타 잡화상

◆10. 동물과 관련된 장사꾼
페스트의 주범 쥐|곰 |코끼리|진기한 동물들|동물과 인간을 거세해 주는 사람

◆11. 런던의 길거리 장사꾼
문학과 그림에 남아 있는 런던의 장사꾼|해산물을 좋아한 런던 시민들

◆12. 독어권 및 다른 유럽의 길거리 풍경
마르크트슈라이어|그림 파는 사람|치즈 파는 사람| 칼 가는 사람|바구니에 물건을 담아 파는 행상인|
재단사|우체부|생선 파는 여인|가난을 관찰하는 사람|조각품을 팔러 다니는 사람|신발 닦는 사람|
헌책 장수|채소 파는 여인|유모|식초에 절인 오이 파는 남자|심부름 해주는 사람|담배 파는 사람|
베를린의 요리사|빨래하는 여인|오물 버리는 여인|안경과 우유, 엉겅퀴를 파는 사람|
취리히의 잡동사니를 파는 사람|배와 석탄을 파는 장사꾼|소시지 파는 사람|고물 줍는 여인|
이쑤시개 파는 여인|월계수 잎과 나무 시계 파는 사람|이야기 나누는 여인들|
그림과 노래 파는 사람|코펜하겐의 생선 장수|버터 통 장수|사랑의 편지를 팝니다|
양파 장수|잡화를 파는 사람|노래하는 새 사세요|유리 트럼펫 파는 사람|다용도 끈 사세요 |
살찐 오리 팔아요|죽음을 알리는 여인|성냥팔이 소년|거리에서 연주하는 사람|땜장이|
복권 파는 사람|개털 깎는 사람|빗자루 장수|과일과 꿀 파는 여인|레몬주스 팔아요|
물장수|함부르크의 생선 장수|함부르크의 뱀장어 장수|빈의 신발 장수|빈의 우유 장수

◆에필로그 - 과거는 미래를 보는 창
◆참고문헌
 

저자 소개

저 : 양태자
 
대구 가톨릭대학교 독어독문과를 졸업한 뒤 독일로 건너가 1527년에 세워진 헤센 주의 마르부르크대학교Marburg Philipps Universitaet에서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으로 석사학위를 취득하고, 1588년에 세워진 튀링엔 주의 예나대학교Jena Friedrich Schiller Universitaet 에서 비교종교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여 년간 독일에서 거주하며 비교종교학과 비교문화학을 공...
 

책 속으로

특별한 대중매체가 없던 당시를 떠올려 보면 경찰을 대신해 부고를 전하고 공지를 전달하는 사람들이 라디오나 TV 역할을 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문화사가들은 당시 거리에서 공지를 전달하러 다니는 이들을 오늘날로 치면 ‘거리의 선전가’라고 평하고 있다. 당시는 교육 수준이 낮아서 글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고 대중매체도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리의 선전가’들은 제 역할을 톡톡히 하였을 것으로 보인다. --- pp.23-25

‘이동 변소’는 오늘날로 치면 간이 변소와 비슷하다. 오늘날의 간이 변소가 돈 내고 들어가 스스로 용변을 해결하고 나오는 곳이라면, 중세의 그곳은 사람이 직접 대소변 통을 들고 다녔다는 차이가 있다. ‘이동 변소’ 장사꾼들은 커다란 통을 끌고 다니며 갑자기 용변을 볼 손님을 찾아다녔다. 마스크를 낀 이 여인들은 뚜껑이 달린 통 두 개를 어깨에 걸치고 그 위에 커다란 망토를 걸치고 다녔는데, 손님이 오면 이 망토로 용변을 보는 손님을 가려주었다. --- p.36

물장수들은 너무나 ‘가련하고 슬픈 목소리’로 물을 팔았다고 한다. 좀 더 부연하면 이들의 목소리는 처절한 고통과 깊은 고뇌에서 뿜어져 나오는 목소리였다. 이런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음에도 물장수의 목소리가 시민들에게 충분하게 전달이 되지 않자, 이들은 새로운 시도로 물통에 종을 매달았다. 움직일 때마다 종을 흔들어서 그 소리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겠다는 계산이다. 놀라운 사실은 1700년대 파리에는 물장수들이 2000명도 아니고 2만 명가량 되었다는 사실이다. 파리의 환경이 지나치게 더러워 물이 많이 오염되었기 때문이다.--- pp.68-69

헌 옷 장수들은 왕족이나 귀족이 입다 버린 화려한 옷들을 사서 다시 수선해 팔았다. 헌 옷 장수들은 깨끗한 옷보다는 얼룩이 묻었거나 찢어진 부분, 혹은 땟자국이나 불에 탄 자국이 있는 옷들을 더 선호했다. 일부러 이런 옷을 구입한 뒤 멋지게 수선하여 새로운 옷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재주와 감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헌 옷을 사고파는 일에서 파리의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이들이 헌 옷을 감쪽같이 새 옷과 비슷하게, 때로는 더 뛰어나게 수선해 판다고 소문이 나자 일부러 헌 옷을 찾는 사람들도 등장했다. --- pp.80-81

헌 옷 장수들은 왕족이나 귀족이 입다 버린 화려한 옷들을 사서 다시 수선해 팔았다. 헌 옷 장수들은 깨끗한 옷보다는 얼룩이 묻었거나 찢어진 부분, 혹은 땟자국이나 불에 탄 자국이 있는 옷들을 더 선호했다. 이들은 일부러 이런 옷을 구입한 뒤 멋지게 수선하여 새로운 옷을 내놓을 수 있을 만큼 뛰어난 재주와 감각을 갖고 있었다. 이런 헌 옷을 사고파는 일에서 파리의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말하는 학자들도 있다. --- pp.80-81

중세에는 부고를 알리는 직업군이 따로 있었다. 이들은 업무가 주어지면 어둠의 땅거미가 내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구교에서 예식을 할 때 입는 눈물이 그려진 특이한 옷을 입고 종을 흔들면서 거리를 지나갔다. 그리고 가급적 매우 구슬픈 목척으로 부고를 알렸다. 먼저 고인의 이름과 직위를 알리고, 고인의 장례식이 언제 있을 것이라는 내용이었다. 손에는 주소 목록을 들고 다녔다. 집을 찾아갈 경우는 일단 문패에 적힌 이름을 확인한 후에 가지고 다니던 지팡이로 대문을 두드리거나 창문을 두드려 부고를 알리고 장례식 날짜를 일러 주었다. 하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집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 pp.124-125

1841년의 통계의 의하면 런던의 길거리 장사꾼들은 4만 명가량이었지만, 학자들은 거리의 악사, 헌 옷 장수들, 굴뚝청소부, 잡동사니 모으는 자들, 의자 고치는 이들, 구두닦이 등을 합쳐 약 5만 명가량으로 어림잡고 있다. 학자들은 이들이 대개 읽고 쓰고 셈을 못했기 때문에 당시의 통계에 동참하지 못하고 누락된 경우가 더 많았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전제 아래 더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길거리에서 장사를 하며 돈을 벌었다는 추측이 가능하다.
--- p.174
 

출판사 리뷰

당대 화가들이 그린 140여 점의 생생한 그림과 함께 보는 뒷골목 생활사
저자는 이 책에서 길거리 장사꾼의 기원과 유래를 설명하고, 그들이 팔던 품목을 먹을거리, 잡화, 향신료, 동물 관련, 공문 및 부고, 우체국 업무, 기타 잡화로 분류하였으며, 이를 다시 파리와 런던, 독어권 도시들로 구분해 설명하고 있다. 이들 장사꾼들이 팔던 물건과 그로 인해 빚어진 여러 가지 뒷이야기는 당대의 한 풍경인 동시에 중세 이래 서양 서민들의 생활사와 시대 문화를 읽는 잣대가 된다.
전병과 비슷한 과자 오블라텐을 팔던 과자 장수와 환등, 초 장수들이 밤거리를 무대로 물건을 팔고 고철과 넝마주이들이 고물을 주워 팔기 위해 밤거리의 시궁창을 헤집고 다녔다면, 새벽 거리에는 신선한 우유와 채소, 생선과 굴을 파는 장수가 등장했고, 화끈한 술 한 잔에 일한 기운을 얻으려는 고객을 상대로 화주와 와인을 파는 장수들이 나타났다.
어둑해진 밤거리, 골목과 광장을 누비고 다니다가 고객의 집에 불려 들어가 과자를 팔던 오블라텐 장수들이 도둑으로 몰리거나 각종 사건사고에 휘말렸던 이야기와 우유에 불순물을 섞는 사람들 때문에 ‘우유 품질 보증서’를 써준 우유 장수 이야기, 원산지 표시를 하고 자국산임을 강조하기 위해 “우리들의 청어”를 판다고 외치고 다닌 생선장수 이야기, 산업화와 도시화에 따른 수천~수만 명의 물장수들의 출현과 그에 반대되는 영세 수공업자들의 몰락과 빈민화, 새로운 물건을 개발해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귀족들에게 그 돈을 내어놓고 자식들의 결혼을 통해 신분상승을 꿈꾸었던 향신료 장수들의 이야기는 시대와 주인공만 다를 뿐 오늘날의 세태와 놀라울 정도로 닮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저자는 또한 이들 장사꾼에게서 시대의 유행과 문화의 변천사를 찾는다. 귀족들이 버린 헌옷을 사서 재가공해 내다판 헌옷 장수와 헌 모자 장수들로부터 오늘날의 파리 유행이 시작되었다고 보고 있으며, 길거리 광장에서 사람들에게 부고와 새 생명의 탄생을 알리고, 사랑의 편지와 협박편지를 대행해주며 사건사고를 전달하던 사람들로부터 각종 전단지가 파생했고 이것이 길거리 매스컴의 토대가 되었다는 주장이다.

대도시의 오물과 악취, 소음은 서민들이 살아간 당대의 풍경이다
당시 대도시에는 공중변소가 없었을 뿐 아니라 길거리에서 대소변을 보아도 크게 상관하지 않았다. 인간의 배설물뿐 아니라 동물의 오물도 함께 뒹굴었기 때문에 대도시의 악취는 상상을 뛰어 넘었다. 온통 오물로 가득 찬 길거리에 등장한 장사꾼이 이동 변소 장사꾼이다. 이들은 마스크를 끼고 뚜껑이 달린 통 두 개를 어깨에 걸치고 그 위에 망토를 입고 다녔다. “거리에서 급하게 용변을 볼 손님은 이쪽으로 오세요” 하며 호객행위를 하다가 손님이 오면 이 커다란 망토로 용변을 보는 손님을 가려주었다.
당시 파리에서는 신분이 높은 사람이 탄 마차가 지나갈 때는 길바닥에 짚을 깔았다. 덜커덕거리는 잡소리를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서였다. 그들이 지나가고 난 뒤 내버려진 짚더미와 각 가정에서 버린 쓰레기들은 오물로 변하기 일쑤였다. 당시는 거리에서 소를 잡아 손질해서 팔았기 때문에 자갈돌 사이에 짐승 피가 고였고, 오물 냄새가 뒤섞여 악취를 풍길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수천~수만 명의 장사꾼들이 자신의 물건을 팔기 위해 내지르는 소리 또한 대도시의 한 풍경이었다. 고무줄 장수들은 “내가 다시 왔소! 이런 고무줄은 다른 어느느느느느느느느느느느곳에서도 살 수 없소”라고 외치며 고무줄을 팔았고, 가련하고 구슬픈 목소리로 물을 팔다가 나중에는 방울을 달아 차별화 전략을 구사했던 물장수들이 있었으며, 피리, 북, 트럼펫 등을 사용해 이목을 집중시키려 한 장사꾼들의 목소리가 어우러져 마치 ‘불협화음이 난무하는 콘서트 장’과도 같았다. 그래서 붙여진 당시 파리의 별칭은 ‘지옥 같은 곳’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파리 시민들은 집에 앉아서 자신이 사고자 하는 물건을 팔러 온 장사꾼들의 목소리를 쉽게 구분하였다.
비단 파리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대도시에는 번듯한 가게가 없었고 이런 장사꾼 수천 혹은 수만 명이 골목과 광장을 누비고 다녔기 때문에 오물과 악취, 소음은 대도시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풍경이었다. 하지만 장사꾼과 시민은 서로를 당연하게 여기고 오물과 악취, 소음을 그대로 수용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어우러져 당대의 풍경을 만들고 오늘의 서양사를 일군 토대가 되었다. 이런 귀퉁이 문화에서 당대의 풍경을 찾아내고 이를 서민들의 생활사와 연결 지은 저자의 시각이 새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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