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한반도평화 연구 (책소개)/5.한국전쟁 6.25

백선엽의 6.25 전쟁 징비록 3 : 두려움에 맞서는 법

동방박사님 2022. 1. 7. 0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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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6.25가 낳은 우리 전쟁 철학 시리즈의 완결판!
“두려움 앞에서 우리는 너무 자주 무너졌다”]

우리 곁에 현존하는 6.25전쟁 최고의 영웅, 백선엽 장군이 ‘6.25전쟁 징비록’ 시리즈를 마침내 매듭짓는다. 대미를 장식하는 이번 3권에서는 우리 국군의 뼈아픈 패전(敗戰)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중공군의 공격 앞에 맥없이 무너지고, 등을 보이며 도망치기를 반복해야 했던 국군의 부족한 면모들을 소상히 밝혀, 과거의 실수를 반복하지 말자는 뚜렷한 메시지를 담았다. 명장의 시선에 비친 지나간 전쟁의 면면들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어떤 울림을 전해주는지 주목해볼 만하다.

6.25전쟁 67주년을 앞둔 2017년 현재, 우리에게 전쟁이라는 두 글자는 어떤 의미로 새겨져 있을까. 한국 최초의 4성 장군이자, 영원히 6.25 최고의 야전 영웅으로 기억될 백선엽 장군은 잊혀져가는 전쟁을 다시 현실로 불러왔다. 맥아더와 리지웨이, 펑더화이, 김일성 등 전쟁을 주도한 주요 지휘관들의 리더십에 초점을 맞추었던 ‘제1권 군은 어떤 존재인가’부터, 6.25전쟁의 기록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밴 플리트 장군과 그를 둘러싼 전황을 집중적으로 회고한 ‘제2권 나아갈 때 물러설 때’까지. 우리는 노장의 회고를 통해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의 무게를 다시금 새길 수 있었다.

시리즈의 마지막 권인『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제3권 두려움에 맞서는 법』은 유성룡 선생의 저서에서 그 의미를 착안한 ‘징비록(懲毖錄)’이라는 제목에 다시 초점을 맞췄다. 전쟁 후반에 펼쳐진 횡성 전투, 사창리 전투와 현리 전투가 왜 뼈아픈 패배로 남을 수밖에 없었는지, 그 설욕을 씻어낸 용문산 전투의 과정은 어땠는지 등을 생생하게 회고한다. 세 권의 책으로 완성한 이 회고록을 마무리하며 백선엽 장군은 “어쩌면 삶의 모든 과정이 싸움”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이제 전쟁의 진짜 모습을 온전히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그래야만 삶에서도 이어지는 유무형의 전쟁들을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것이다.

목차

제12장 청천강을 건너며
불안감 속에 넘은 강 014
먼 남쪽에서 이동한 중공군 포로 020
중공군 피에 젖은 전차 026
압록강 물 뜨려다 포위당한 국군 032

제13장 낯선 군대 중공군
후퇴를 결심하다 040
미군 엄호 부대의 불길한 행군 047
무전기로 흘러나오는 미군의 비명 053
아군을 구하지 못하고 물러선 미군 060
후퇴 뒤의 위문공연 066

제14장 가장 추웠던 겨울
내 옆으로 날아온 총탄 074
참담한 겨울의 협곡 080
후방에 침투한 중공군 086
죽음의 계곡, ‘인디언 태형’ 092
장진호의 혹독한 겨울 098
강추위와 눈보라 속 격전 104
항공로 후퇴를 거부했던 미 해병사단장 110
중공군 좌절시킨 미군의 보급 116
5만 중공군 전투력 상실 123
미 UDT가 일으킨 흥남부두 큰 불기둥 129

제15장 2군단의 해체
묘향산서 도망친 국군 138
파상공세의 중공군 144
국군 2군단 와해, 유엔군 긴급 철수명령 150
싸울 의지가 부족했다 156

제16장 횡성의 대패
전선 분위기 바꾼 리지웨이 164
실체 드러내는 중공군 170
용감한 터키군의 백병전 176
중공군 11만 명 홍천으로 급거 이동 182
8시간 만에 포위당한 국군 8사단 188
8사단 사망과 실종자 7,100여 명 195
미군의 지평리 대첩 201

제17장 사창리 패전
서울 탈환에 앞장선 화교 부대 210
은퇴를 예고한 전쟁 영웅 216
문산 일대에 공수작전 222
맥아더 사임으로 침울했던 이승만 228
45개 사단 나선 중공군 5차 공세 234
영국 글로스터 대대의 혈전 240
패배의 두려움 안고 행군한 국군 6사단 246
중공군에 다시 등을 보이다 252
“당신 군인 맞나?” 258
호주와 캐나다 군대의 분전 264
“서울은 다시 못 내준다”, 밴 플리트의 결기 270

제18장 현리 전투
동부전선으로 은밀하게 이동한 중공군 278
가장 치욕스런 패배의 시작 284
소양강엔 중공군 대부대 출현 290
소양강 넘어 새카맣게 몰려든 중공군 296
아군 후방으로 곧장 내달은 중공군 303
중공군의 폭풍 같았던 질주 309
한국군과 미군의 치명적인 실수 315
“병사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321
후퇴로가 막혀 닥친 혼란 327
중공군에 역공을 펼칠 생각이 없었다 333
뒤로 마구 내뺀 국군 3군단 본부 339
계급장과 무기 버리고 도주 345
중공군을 사냥하다 351
밤새 이동한 미 3사단에 중공군 혼쭐 357
한국군 작전지휘권 박탈 363
준비가 없었던 국군 수준의 반영 369
한국군 교육을 위한 밴 플리트의 결심 375

제19장 용문산의 설욕
국군 6사단의 호된 복수 384
철모에 붉은 페인트로 쓴 ‘결사(決死)’ 390
저녁에 강을 건넌 중공군 396
“이대로 물러서면 다 죽는다” 402
중공군 드디어 무릎 꿇다 408
오랑캐 몰살시킨 호수, ‘파로호’ 414

 

 

저자 소개

저자 : 백선엽
평안남도 강서군 덕흥리에서 1920년 11월 23일 태어났다. 대한민국이 1950년 북한 김일성 군대의 기습적인 남침을 맞아 벌인 6.25전쟁의 최고 명장으로 기록할 수 있는 인물이다. 김일성 군대의 최정예 3개 사단에 맞서 대구와 부산을 지켜냄으로써 대한민국을 ‘바람 앞 등불’의 위기에서 건진 다부동 전투는 너무도 유명하다. 국군 최초의 평양 진격, 1.4후퇴 뒤 서울 탈환, 지리산 빨치산 토벌, 휴전 직전 ...
 

책 속으로

“미군 전차 사병은 알 수 없는 소리를 질러대고 있었다. 그는 전차에서 뛰어내려 이상한 고함소리를 내지르면서 지휘소 앞마당을 마구 뛰어다녔다. 이어 전차를 지휘했던 소대장이 그 뒤를 따랐다. 사병의 뒤를 따르던 소대장은 급기야 미식축구에서나 볼 수 있는 태클을 걸어 병사를 쓰러뜨렸다. 김점곤 대령은 어안이 벙벙했다. 핏빛으로 돌아온 전차, 실성해서 뛰어다니는 사병, 그를 태클로 넘어뜨린 소대장…. 김점곤 대령은 그 안에 담긴 곡절을 전차 소대장으로부터 자세히 들었던 모양이다. 결론은 간단했다. 우리 앞에는 아주 심각하다고 해도 좋을 정도로 많은 수의 중공군이 버티고 있었던 것이다.“ --- p.30

“중공군은 군우리에서 순천으로 향하는 가장 직접적인 협곡에 이미 매복을 마친 상태였다. 전면의 강력한 중공군 공격에 당황한 미군은 달리 상황을 따질 겨를도 없이 그 협곡에 거칠게 들어서 후퇴를 서두르고 있었다. 아군은 넓게 쳐놓은 그물에 어쩔 수 없이 걸려든 새, 깊고 미끄러운 독으로 빠져든 쥐와 같았다. 협곡은 좁고 긴 골짜기다. 넓게 트인 개활지(開豁地)와는 다르다. 후퇴의 국면에서 협곡에 들어설 때, 그나마 적이 발을 들이지 않는 경우라면 다행이다. 신속하게 대열을 이뤄 순서를 정해 빠져나가면 그만이다. 그러나 적이 이미 높은 곳에서 아군을 겨냥할 수 있는 감제(瞰制)의 고지에 매복을 하고 있는 경우라면 상황은 아주 달라진다.“ --- p.94-95

“전쟁에서의 패배는 아주 깊은 후유증으로 부대의 장병들에게 남는다. 격렬한 공방(攻防)을 벌이다가 지는 전투는 나름대로 괜찮다. 전비(戰備)의 상황이야 각기 다르겠지만 적에게 일방적으로 밀리지 않았다면 제 자신의 실력을 우선 알고, 상대의 상황도 대강 알기 때문이다. 단지 싸움에서의 패배로 받아들이면서 다음의 기회를 노릴 수 있어서 그렇다. 참혹하게 무너지는 경우가 문제다. 깊게 파인 상처는 좀체 아물지 않는다. 심리적인 공황은 더 심각하다. 적의 실체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 그냥 처참하게 얻어맞아 무너졌을 때는 두려움이 매우 커진다. 따라서 부대 전체는 적에게 다시 밀리는 상황에 도달하면 공포감이 급증해 제풀에 꺾인 채 등을 보이면서 마구 무너진다.“ --- p.150

“나는 부관이 건네준 종이쪽지를 들고 어둑해진 부산 거리에 나섰다. 전쟁 발발 10개월 만에 가족을 찾아가기 위해서였다. 젊은 아내와 네 살 난 딸은 1950년 6월 25일 아침 7시 신당동 집을 떠난 이후로는 본 적이 없었다.…딸은 거의 1년 만에 돌아온 아버지를 처음에는 낯설어하다가 곧 알아봤다. 그리고 금세 달려와 품에 안겼다. 그러나 아내로부터는 많은 원망을 들어야 했다. 울면서 이어지는 아내의 원망에 나는 한 마디도 대꾸를 할 수 없었다. 적이 점령했던 서울에서 딸과 살아남기 위해 얼마나 모진 고생을 했을지 상상할 수 있어서였다.“ --- p.229-230

“사단의 전술지휘소가 있던 후방 용포에 9사단 예하 부대가 도착한 시점은 17일 오전 10시 무렵이었다. 길 중간에서 예하 부대들은 중공군에게 자주 공격을 당했다. 중공군 공격이 잠잠해지면 다시 집결해 움직였으나 대부분은 아예 본대로 돌아오지 않았다고 육군본부의 전사는 적고 있다. 그런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던 듯하다. 적 앞에서 아예 싸울 의지를 간직하지도 못하는 상황 말이다. 이를 후퇴라고 해야 옳을까, 아니면 철저한 와해라고 해야 맞을까. 후퇴는 엄연한 작전이다. 나름대로 체계를 지니면서 목표를 세워둔 채 질서 있게 움직이는 일이 후퇴다. 당시의 9사단은 그런 점에서 후퇴라고 하기는 어렵다. 그때 9사단은 이미 마음으로, 행동으로 무너지고 있었던 듯하다.“ --- p.326

“정훈병은 대대장이 자신의 뚜렷한 목적을 지닌 채 선발한 사람이다. 그러나 그 정훈병이 이상한 기적을 만들어내고 말았다.…그는 퇴각하다가 정신을 차렸다고 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자각(自覺)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무거운 발걸음을 돌려 다시 물러났던 고지로 다가가 발을 들였다. 그의 눈앞에는 후퇴해 고지를 내려간 중대장의 모습이 사라지자 우왕좌왕하고 있던 부대원들이 우선 보였다. 그의 뇌리에는 절망감이 찾아들었을 장면이었다. 그러나 그 때 ‘기적’이 벌어졌다고 한다. 대대장의 지시로 뽑은 정훈병이 다시 나타난 중대장을 보고서는 대원들을 향해 소리를 쳤다고 한다. “중대장이 다시 나타났다. 다시 싸우자. 이대로 물러나면 우리는 모두 죽는다”는 내용이었다. 그와 함께 중대 나팔수가 나팔을 들어 힘껏 불었다고 한다. 기적은 그 다음에 벌어졌다. 우왕좌왕하며 중공군 공격에 마지막을 내줬을지도 모를 중대원들이 다시 정신을 차리고 총을 들어 중공군에 맞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거의 무너질 것처럼 보였던 상대가 다시 눈을 반짝이며 총을 들 때 공격을 벌였던 쪽은 크게 당황하게 마련이다.” --- p.406-407

“나는 60여 년 전의 전쟁을 몸소 겪으면서 우리가 싸움에 능하지 못한 민족이라고 생각한 적은 거의 없다. 단지, 그 때의 싸움에서 우리가 일정한 패턴을 드러내는 면은 있었다.…기개도 좋고 활력이 넘친다. 따라서 일정한 공세(攻勢)가 만들어지면 그 위에 올라타고 나아감이 빠르고 거세다.…위기에는 강했지만 그 요소가 풀어질 때면 늘 정신의 자세도 함께 풀어지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평온한 상태가 오면 전비(戰備)를 충실히 채우는 일이 적었다.…그를 이룰 만한 시간적, 물리적 여유가 우리에게는 없었던 점이 클 것이다. 해방의 격변기에 겨우 몸을 추스르고 일어선 대한민국과 그 군대였기 때문이다. 그런 맥락에서 볼 때 용문산 전투는 특기할 만하다. 후방의 미군 포병화력과 미 공군의 공습능력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용문산 전투는 한국군 1개 사단이 전쟁의 중요한 흐름 속에서 거의 단독으로 중공군을 맞아 승리를 거둔 싸움이다.“
--- p.414-415
 

출판사 리뷰

중공군 앞에서 도망치기 바빴던 국군…,
지금 다시 패전의 기록을 꺼내는 이유

그간 6.25전쟁을 회고한 책은 수없이 많았다. 그러나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시리즈는 이를 철학적 사색으로 키워냈다는 점에서 놀라운 차별성을 지닌다. 백선엽 장군은 치열한 야전의 싸움터에서 군 지휘관으로서 대부분 경력을 쌓은 군인이다. 아울러 침착함과 면밀함, 정직과 용기, 인내와 노력으로 찬란한 전적을 쌓은 유일무이한 6.25전쟁 지휘관이다. 그런 그가 세 권의 책으로 완성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진정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단언컨대 이번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 제3권 두려움에 맞서는 법》에서 그 모든 철학적 시야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3권에서는 우리 군에게 늘 두렵고 위협적인 존재로 다가왔던 중공군과, 그에 맞선 국군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담아냈다. 저자는 자신이 겪은 전쟁에서 우리 군이 ‘위기에 강하고 공격에 활력이 넘치는’ 특색을 보였다고 평했다. 일정한 공세(攻勢)가 형성되면 흐름을 잘 타며 공격을 펼쳤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문제도 컸다. 두려움을 잘 극복하지 못했고, 밀릴 때 쉽게 무너졌다는 점이다. 흥이 빨리 돋지만, 침착함과 인내가 부족해 제 자리를 지켜내지 못하고 대열에서 쉽게 벗어나는 특성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우리로서는 건국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맞이한 전쟁이었다. 때문에 미비한 점도, 부족한 점도 많았던 것이 사실이다. 밀려오는 중공군 앞에서 쉽게 대열을 무너뜨리고 자주 도망치곤 했던 우리 군의 뼈아픈 기억들을 저자는 냉정하고 자세하게 소개했다. 이유는 간단하다. 다시는 그러지 말자는 것이다. 실패했던 경험을 잘 기록하고 새겨야만 또 다른 전쟁에서 맞닥뜨릴 두려움에 대비할 수 있다. 패전의 요인이 무엇인지 정확히 아는 것은 그래서 중요하다.

결국 전쟁은 무엇을 남겼을까. 부족한 점이 많았던 당시의 우리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던지는 가치는 《백선엽의 6.25전쟁 징비록》을 통해 비로소 분명해졌다. 정직함에서 우러나오는 진지한 노력이자 훈련이다. 역사가 구체적으로 기록하지 않았던 전쟁의 진짜 모습을 이제 만나보자. 현실의 싸움에 맞서는 현명한 자세와, 삶을 대하는 지혜까지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