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한국역사의 이해 (책소개)/2.한국사일반

기묘사화

동방박사님 2022. 2. 5.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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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의 조선 4대 사화는 현실 정치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극명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인간이 공의公義를 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현실을 사는 우리들은 잘 알 것이다.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자란 사람들이 믿는 각각의 진실들은 대의를 향한 합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현실에서 갖는 것이 많게 될수록 또 현실에서 원하는 것이 분명해질수록 인간들은 사심을 버린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인간 사회 속에서 폭발한 조선의 4대 사화는 각자의 권력을 확장하고 분명히 하기 위한 싸움의 결과라 보여진다. 그렇지만 또한 권력 싸움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정치 현상이라 하겠다.

기묘사화는 첫째, 1515년 왕비를 책립할 당시 조신간의 대립과 알력, 둘째, 조광조가 추구한 지치주의 정치를 위해 대량 등용된 신진 사류에 대한 불만, 셋째, 도의론을 앞세워 사장파를 도외시한 사림파의 배타적인 태도에 대한 훈구파의 증오가 밑바탕에 깔린 원인으로 잠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것이 반정공신 위훈 삭제 사건을 도화선으로 폭발한 것이다. 이 사화는 무오 사화와 같이 훈구파와 신진 사류 간의 반목과 배격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정치적 음모가 도사린 정쟁이었다는 점과 갑자사화아 같이 정치적 투쟁 목적이나 이념이 없었다는 점에서 특이하다.

 

목차

작가의 말

조선 시대 4대 사화
사람파의 정계 진출 기회를 연 기묘사화 ㆍ 급진적 이상주의의 폐단 ㆍ 개혁을 추진한 사림파의 몰락

기묘사화
일본의 침입으로 참혹한 변을 당하는 조선인들 ㆍ 장경 왕후 윤씨의 해산과 그녀의 근심 ㆍ 평화로운 시절, 그리고 원자를 기원하는 장경 왕후 ㆍ 숨죽이고 있던 선비들이 올린 탄핵 사건 ㆍ 왕가의 비운과 상소문 ㆍ 누가 원자를 맡으리 ㆍ 폐비 신씨의 복위를 상소하는 유림 ㆍ 중종의 기쁨과 기대 ㆍ 정권을 잡고 있는 박원종 일파의 반대 ㆍ 좌절되는 폐비 신씨의 꿈 ㆍ 민족 역사의 좀 김안로의 술책 ㆍ 김안로와 손을 잡는 윤임 ㆍ 장경 왕후의 딸 효혜 공주와 김안로 아들의 혼인 ㆍ 중전으로 천거되는 윤지임의 딸 ㆍ 인왕산 밑에서 점을 보는 윤지임 ㆍ 궁으로 드는 윤지임의 딸 ㆍ 왕의 가례와 사람들의 치하를 받는 문정 왕후 ㆍ 왕도 정치를 추진하는 조광조 ㆍ 조광조를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중종 ㆍ 형조판서 심정을 퇴출해 버리는 조광조 ㆍ 조광조를 몰아내기 위한 남곤과 심정의 모의 ㆍ 위훈으로 공신에 오른 자들의 삭직을 청하는 조광조 ㆍ 조趙씨가 왕이 된다 ㆍ 훈구 대신들에게 마음이 기우는 중종 ㆍ 조광조와 사림파를 살리려는 이장곤 ㆍ 전례 없던 성균관 유생들의 호곡 시위 ㆍ 모해 상소로 죽음을 맞이하는 조광조 ㆍ 남곤과 조광조, 갈등의 한 배경

현량과賢良科 급제자
현량과賢良科 급제자 명단
ㆍ급진적 이상주의자 기묘8현 김식 ㆍ 39세에 자결하기까지의 행적 ㆍ 김식 문인들의 몰락 ㆍ 스스로 백치가 되어 화를 면한 김식의 아들들 ㆍ 청풍 김씨 인맥 ㆍ기묘 현랑과 급제자로 겨우 현감에 오른 조우 ㆍ청백리 정승 심희수의 외조부 이연경 ㆍ간신 송사련의 모해로 31세의 청춘을 넘겨준 안처근 ㆍ후일 을사사화에 뛰어들어 악행을 일삼은 김명윤 ㆍ화초를 즐긴 죽창竹窓 안정 ㆍ소격서의 폐지를 주장한 안처겸 ㆍ안처겸과 함께 사형당한 권전 ㆍ기묘사화 뒤 서화에 몰두하던 신잠 ㆍ시비를 분명히 가려 시귀蓍龜로 불린 정완 ㆍ마지막까지 정도를 고집한 민회현 ㆍ형들과 달리 죽음을 면한 안처함 ㆍ13년간 귀양살이를 한 청렴한 관리 박훈 ㆍ조광조의 문인 김익 ㆍ사림파의 득세 뒤 복관된 신준미 ㆍ김안국과 학문을 강론한 강은 ㆍ효행이 지극해 천거된 방귀온 ㆍ기묘사화로 파직당한 유정 ㆍ박수량과 학문에 매진한 박공달 ㆍ병을 칭하고 사직한 이부 ㆍ현량과 파방 후 산속으로 들어간 김대유 ㆍ출세에 관심 없이 학문을 닦은 도형 ㆍ조광조를 구하려다 삭탈당한 송호지 ㆍ현량과에 3등으로 합격한 민세정 ㆍ세상과 인연을 끊고 농사를 지은 경세인 ㆍ스승 조광조를 죽이려 했던 이령

기묘명현己卯名賢
기묘명현己卯名賢 명단
ㆍ반상의 기준을 뛰어넘어 사람을 사귄 조광조 ㆍ 김굉필의 제자 조광조와 갖바치 ㆍ 갖바치가 조광조에게 벼슬에서 물러나라 말한 이유 여인의 유혹을 결국 물리치는 조광조 ㆍ 공자의 경문을 외며 마음을 다잡다 ㆍ 머리를 빗어주는 여각 안주인 ㆍ 대과에 급제하는 조광조 정암 조광조의 혈맥 ㆍ 북향으로 절을 하고 남향으로 곡을 한 조락 ㆍ 태종이 가장 아낀 신하 조영무 ㆍ 지치주의 급진적 혁명의 선구자 조광조 ㆍ 미친 척 하며 자신을 지킨 조광보 ㆍ 햇볕을 비껴간 한양 조씨 인맥 ㆍ귀양살이로 부모를 만나지 못한 김구 ㆍ위사공신 3등에 오른 신광한 ㆍ기묘사화에 사사당한 기준 ㆍ중국어에 능통했던 심달원 ㆍ중종의 사당에 모신 정광필 ㆍ억울한 이들을 구하려다 처형된 안당 ㆍ관직 삭탈로 궐에 들어가지 못한 이희민 ㆍ중종의 신임으로 귀양을 가지 않은 이장곤 ㆍ스승 김식의 자결을 애도한 신명인 ㆍ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처형당한 이약빙 ㆍ조광조와 유배 시절을 함께 보낸 양팽손 ㆍ 정치 활동 소외 뒤 서화에 몰두한 양팽손 ㆍ중종의 특명으로 귀양에서 풀려난 이계맹 ㆍ기묘사화에 낙향한 이윤검 ㆍ남곤에 의해 살해된 한충 ㆍ조광조를 옹호한 윤은필 ㆍ기묘사화 후 재야로 은거한 이자 ㆍ학문과 무예를 두루 닦은 윤자임 ㆍ젊어서부터 조광조와 교유한 박세희 ㆍ세종의 증손 이정숙 ㆍ유배지를 이탈하는 대범함을 보인 유용근 ㆍ이행을 탄핵해 면직시킨 정응 ㆍ북두칠성의 광채를 받고 태어난 최산두 ㆍ태종의 증손자 파릉군 이경 ㆍ신진 사류의 신원을 상소하다 죽은 안찬 ㆍ법의 집행이 공정했던 최숙생 ㆍ은거하며 후학을 기른 김세필 ㆍ유학 진흥에 공을 세운 김안국 ㆍ선조 대에 좌의정으로 추증된 권벌 ㆍ나라의 폐단을 없애기 위해 힘쓴 김정국 ㆍ외유내강으로 존경을 받은 구수복 ㆍ왕에게 거짓말을 해 유배된 윤구 ㆍ호남의 삼걸 유성춘 ㆍ어머니를 위해 높은 관직을 거절한 안처순 ㆍ향약 정착의 실패로 파직된 이구 ㆍ사림파의 처형 뒤 벼슬을 단념한 성수침 ㆍ벼슬을 버리고 청빈하게 산 성수종 ㆍ관작이 낮음에 불만을 품은 이과 ㆍ바르지 못한 아전들쳀 두려워 한 최운 ㆍ백비白碑를 하사받은 박수량 ㆍ기묘사화 뒤 명산을 유랑한 최수성 ㆍ폐비 윤씨의 복위를 반대한 이사균 ㆍ세상을 개탄하다 과음으로 죽은 유운 ㆍ기묘사화 뒤 요직에서 밀려난 신상 ㆍ사림파와 훈구파의 중재를 위해 노력한 문근 ㆍ모진 고문으로 죽은 이충건 ㆍ하늘이 내린 완인完人 박상 ㆍ 한 덩이 맑은 얼음 ㆍ산중에 은거하며 학자를 길러낸 조욱 ㆍ송사련의 무고로 혹독한 형장을 받은 조변 ㆍ신사무옥에 누명으로 처형당한 신변 ㆍ쇠 집게를 창안한 봉천상 ㆍ음운학에 조예가 깊던 노우명 ㆍ이기의 모함으로 유배를 떠난 성세창 ㆍ소윤 윤원형의 탄핵으로 사사된 유인숙 ㆍ사림파와 함께 처벌 받기를 원한 이성동 ㆍ기묘사화 연루자의 무죄를 주장한 공서린 ㆍ범 그림에 뛰어났던 고운 ㆍ조광조를 동정하다 파면당한 윤세호 ㆍ현량과 폐지를 반대하다 파직당한 이영부 ㆍ이단의 혁파를 적극 주장한 임권 ㆍ무서울 정도로 중립을 지켰던 홍언필 ㆍ사람됨의 상반된 평을 얻었던 정충량 ㆍ정치의 잘못을 개탄하던 서경덕 ㆍ을사사화의 공범 윤개 ㆍ엄격한 법의 집행을 실행한 김인손 ㆍ사관의 직분을 수행하다 파직당한 채세영 ㆍ직간으로 왕을 불쾌하게 만든 허자 ㆍ대윤의 몰락으로 사사당한 정원 ㆍ남곤을 두려워하지 않았던 충신 이홍간 ㆍ살벌한 정치에 정신 이상을 가장한 김필 ㆍ중종실록 편찬에 참여한 장옥 ㆍ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온 허백기 ㆍ부당한 공신 책록을 바로잡도록 주청한 조광좌 ㆍ기묘사화로 좌천당한 권색 ㆍ파직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난 박소 ㆍ김식에게 은신처를 제공한 이중 ㆍ조카 조광조에게 염려의 편지를 보낸 조원기 ㆍ의학에도 정통했던 박영 ㆍ군직으로 내의원을 겸한 박세거

그 외 기묘사화의 인물
ㆍ한 베개 세 친구와 간신 남곤 이야기 ㆍ 의령 남씨 문중에서 나왔다는 『유자광전』 ㆍ 연산군의 총신 남세주 ㆍ흰 눈의 흰빛과 같았던 백인걸의 일생 ㆍ 수원 백씨 혈맥 ㆍ 모략 역사의 아픈 치부를 겪은 백인걸 일가 ㆍ성리학의 실천자 김충갑 ㆍ신묘삼간辛卯三奸 심정 집의 쥐구멍 ㆍ 반골反骨 개성에서 최초의 선정비를 받은 심수경 ㆍ정막개가 고변한 박영문과 신윤무는 반역자가 아니었다 ㆍ시詩를 싫어한 정여창 ㆍ 하동 정씨 혈맥 ㆍ 정여창과 대비를 이루던 짓궂은 익살가 표연말 ㆍ 하동 정씨 무맥 ㆍ조광조의 정치적 성장을 도운 김정 ㆍ소쇄원을 지킨 조광조의 제자 양산보 ㆍ기묘사화 뒤 고향으로 내려온 임계중 ㆍ칭병하고 조정에 나가지 않은 정구 ㆍ권신 김안로를 따르지 않고 외직을 선택한 임추 ㆍ높은 학문으로 조광조 등 대신들을 가르친 윤탁 ㆍ연산군의 총희 장녹수를 탄핵한 이맥 ㆍ성질이 탐오했던 황희의 후손 황맹헌 ㆍ청백리의 대표 양권

* 기묘사화를 기록한 책들 ㆍ 『기묘록보유己卯錄補遺』 ㆍ 『기묘유적己卯遺蹟』 ㆍ 『기묘제현전己卯諸賢傳』 ㆍ 『기묘록별집己卯錄別集』 ㆍ 『기묘록속집己卯錄續集』
 

저자 소개

저자 : 한국인물사연구원
한국인물사연구원은 원장 이은식 박사를 중심으로 한국사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물들의 행적과 사건을 통해 진실된 역사를 반추하고, 잊혀지고 왜곡된 과거를 밝혀 그것을 기록으로 남기고자 문을 열었다. 현재 『이야기 고려왕조실록』상하권과 『읽기 쉬운 고려왕 이야기』, 『신라 천년사』를 출간하였으며 앞으로 우리의 고대사를 알려 주는 지침서가 될 다양한 역사서들을 지속적으로 출간할 예정이다. 원장 이은식 박사는 현재 한국...
 

책 속으로

이 같은 조광조의 개혁은 다방면에 걸쳐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상주의적인 왕도 정치王道政治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들 정도의 저돌적이고 급진적인 면으로 인해 정적들의 증오와 질시를 사게 되었다. 또 철인哲人 군주의 이상과 이론을 왕에게 역설한 것이 도리어 역효과를 내어 중종도 조광조의 극단적인 도학적 언행에 대해 점차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 급진적 이상주의의 폐단 中

이 돌연한 국상은 궁중과 조정의 유림儒林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 전체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으니 그것은 비단 국모를 잃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린 원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국모를 잃은 슬픔보다 실상 더 큰 걱정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원자의 운명은 실로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왕자에게 아버지 중종이 있다고 하더라도 왕의 후궁들은 모두 원자를 시샘하는 적이었기 때문이다. --- 왕가의 비운과 상소문 中

한편 그날 아침 윤임은 윤임대로 대비전에 입시해 대비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비 역시 윤임이나 윤지임과 같이 파평坡平 윤씨임을 이용한 것이다. 친족들이 튼튼해야 원자의 신변이 든든할 것이니 윤지임의 딸로써 왕비를 삼도록 대비께서 좀 주선해 달라며 대비를 회유한 것이었다.
대비 역시 윤임의 의견이 싫지 않았다. 윤임의 말마따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신의 친정인 파평 윤씨 속에서 왕비가 나오는 것이 든든하고 친정 집안 쪽 일이라 속사정도 알아보기 쉬울 거라 판단한 것이다. --- 중전으로 천거되는 윤지임의 딸 中

생각을 거듭하던 그들은 후궁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경빈 박씨에게는 그 아들 복성군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할 것이라 부추기고 희빈 홍씨에게는 그 아들 금원군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한다고 부추기기로 했다. 그들에게는 어떻게든 조광조와 왕 사이를 끊어 놓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때 남곤의 상노가 대궐에서 나온 조보朝報를 전하고 돌아갔다. 조보란 관보官報와 같은 것으로 조정 내에서 일어난 일을 적어 돌리는 회람이었다. 그 조보를 받아 든 남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조광조가 대사헌이 된 것이었다. --- 형조판서 심정을 퇴출해 버리는 조광조 中

도움을 요청하는 아버지에게 희빈 홍씨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초조하게 물었다.
“우리 공신들은 밖에서 역적 고변을 할 테니 자네는 안에서 일을 좀 해 줘야겠네. 가만히 무예청이나 심복들을 시켜 궁의 후원 나무들의 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네 글자를 쓰게 해 주시오. 이렇게 써 놓으면 벌레들이 단물을 빨아 먹으려고 글자를 좀먹듯 모두 파먹을 것 아닙니까. 이때 가서 자네는 전하께 후원의 동산을 좀 보십시오 하면 되는 것이네. ‘주走’와 ‘초肖’ 두 자를 합하면 나라 ‘조趙’가 되니 이는 조광조가 임금이 된다는 뜻이 된단 말이네.”
희빈 홍씨는 여전히 어리둥절하여 아버지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광조가 임금이 된다면 전하가 가만히 있겠나, 처치하고 말지. 알겠는가?” --- 조趙씨가 왕이 된다 中

조광조에게 사사 명령이 내린 것은 유생들의 시위 문제를 해결한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왕의 영을 받고 조광조 일파를 다시 논죄한 결과로 조광조에게는 사사의 영이 내리고 다른 사람들은 절도絶島로 안치시키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이리하여 능성으로 쫓겨 나 근신하고 있는 조광조에게 금부도사가 들이닥쳐 사약을 내렸다.
“임금이 신에게 죽음을 내리시니 반드시 죄명이 있을 것인즉 그것을 공손히 듣고 죽겠다.”
뜰아래 내려가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한 다음 꿇어 엎드려 전지傳旨를 받으려는 조광조에게 금주도사는 조그마한 종이쪽지를 내보였다.
그러나 그 종이에는 ‘사사한다’라고 적힌 글자만 보일 뿐, 죄명은 적혀 있지 않았다. 조광조는 자신이 죄 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 모해 상소로 죽음을 맞이하는 조광조 中
이 같은 조광조의 개혁은 다방면에 걸쳐 성과를 거두었으나, 이상주의적인 왕도 정치王道政治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들 정도의 저돌적이고 급진적인 면으로 인해 정적들의 증오와 질시를 사게 되었다. 또 철인哲人 군주의 이상과 이론을 왕에게 역설한 것이 도리어 역효과를 내어 중종도 조광조의 극단적인 도학적 언행에 대해 점차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급진적 이상주의의 폐단 中

이 돌연한 국상은 궁중과 조정의 유림儒林은 말할 것도 없고 온 나라 전체의 마음을 어둡게 하였으니 그것은 비단 국모를 잃은 슬픔 때문만은 아니었다. 어린 원자의 미래에 대한 걱정이 국모를 잃은 슬픔보다 실상 더 큰 걱정이었다. 어머니를 잃은 어린 원자의 운명은 실로 바람 앞의 등불과도 같은 존재가 되었다. 왕자에게 아버지 중종이 있다고 하더라도 왕의 후궁들은 모두 원자를 시샘하는 적이었기 때문이다.---왕가의 비운과 상소문 中

한편 그날 아침 윤임은 윤임대로 대비전에 입시해 대비를 설득하기 시작했다. 대비 역시 윤임이나 윤지임과 같이 파평坡平 윤씨임을 이용한 것이다. 친족들이 튼튼해야 원자의 신변이 든든할 것이니 윤지임의 딸로써 왕비를 삼도록 대비께서 좀 주선해 달라며 대비를 회유한 것이었다.
대비 역시 윤임의 의견이 싫지 않았다. 윤임의 말마따나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자신의 친정인 파평 윤씨 속에서 왕비가 나오는 것이 든든하고 친정 집안 쪽 일이라 속사정도 알아보기 쉬울 거라 판단한 것이다.---중전으로 천거되는 윤지임의 딸 中

생각을 거듭하던 그들은 후궁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그들은 경빈 박씨에게는 그 아들 복성군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할 것이라 부추기고 희빈 홍씨에게는 그 아들 금원군을 세자로 책봉하도록 한다고 부추기기로 했다. 그들에게는 어떻게든 조광조와 왕 사이를 끊어 놓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런데 이때 남곤의 상노가 대궐에서 나온 조보朝報를 전하고 돌아갔다. 조보란 관보官報와 같은 것으로 조정 내에서 일어난 일을 적어 돌리는 회람이었다. 그 조보를 받아 든 남곤의 표정이 순식간에 변했다. 조광조가 대사헌이 된 것이었다.--- 형조판서 심정을 퇴출해 버리는 조광조 中

도움을 요청하는 아버지에게 희빈 홍씨는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초조하게 물었다.
“우리 공신들은 밖에서 역적 고변을 할 테니 자네는 안에서 일을 좀 해 줘야겠네. 가만히 무예청이나 심복들을 시켜 궁의 후원 나무들의 잎에 꿀물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란 네 글자를 쓰게 해 주시오. 이렇게 써 놓으면 벌레들이 단물을 빨아 먹으려고 글자를 좀먹듯 모두 파먹을 것 아닙니까. 이때 가서 자네는 전하께 후원의 동산을 좀 보십시오 하면 되는 것이네. ‘주走’와 ‘초肖’ 두 자를 합하면 나라 ‘조趙’가 되니 이는 조광조가 임금이 된다는 뜻이 된단 말이네.”
희빈 홍씨는 여전히 어리둥절하여 아버지의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광조가 임금이 된다면 전하가 가만히 있겠나, 처치하고 말지. 알겠는가?”---조趙씨가 왕이 된다 中

조광조에게 사사 명령이 내린 것은 유생들의 시위 문제를 해결한 바로 그 이튿날이었다. 왕의 영을 받고 조광조 일파를 다시 논죄한 결과로 조광조에게는 사사의 영이 내리고 다른 사람들은 절도絶島로 안치시키기로 결정이 내려졌다.
이리하여 능성으로 쫓겨 나 근신하고 있는 조광조에게 금부도사가 들이닥쳐 사약을 내렸다.
“임금이 신에게 죽음을 내리시니 반드시 죄명이 있을 것인즉 그것을 공손히 듣고 죽겠다.”
뜰아래 내려가 북쪽을 향해 두 번 절한 다음 꿇어 엎드려 전지傳旨를 받으려는 조광조에게 금주도사는 조그마한 종이쪽지를 내보였다.
그러나 그 종이에는 ‘사사한다’라고 적힌 글자만 보일 뿐, 죄명은 적혀 있지 않았다. 조광조는 자신이 죄 없이 죽는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모해 상소로 죽음을 맞이하는 조광조 中
 

출판사 리뷰

급진적 개혁을 추구한 사림파의 몰락과 성리학의 발전

기묘사화는 무오사화와 같이 훈구파와 신진 사류 간의 반목과 배격에서 일어난 것이지만 정치적 음모가 도사린 정쟁이었다는 점과, 갑자사화와 같이 정치적 투쟁 목적이나 이념이 없었다는 점에 있어서 특이하다.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을 폐하고 왕위에 오른 중종은 연산군의 악정을 개혁함과 동시에 쫓겨난 신진 사류를 등용해 파괴된 유교적 정치 질서의 회복과 성리학의 장려에 힘썼다. 새로운 기운 속에서 점차 조정에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것이 조광조 등 신진 사류였다.

조광조는 중종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과거제의 폐단을 혁신하고 현량과를 설치하는 등 그의 개혁은 다방면에 걸쳐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이상주의적인 왕도 정치를 구현하는 과정에서 현실과 괴리감이 들 정도의 저돌적이고 급진적인 면으로 정적들의 반감을 사게 되었다. 또 철인 군주의 이상에 대한 강요와 조광조의 극단적인 도학적 언행에 중종도 대해 점차 혐오감을 갖게 되었다.

당시 중종반정에 참여한 중신으로서 조광조 등의 탄핵을 받지 않은 훈구 세력은 없었고, 그런 기성 훈구 세력의 불만은 결국 1519년(중종 14) ‘반정공신 위훈 삭제 사건’을 계기로 폭발하고 만다. 이때 사림파에게 지목된 남곤과 훈적에서 삭제당한 심정 등은 조광조의 탄핵을 받은 일이 있는 희빈 홍씨의 아버지 남양군 홍경주와 손을 잡고 조광조 일파를 몰아낼 계략을 꾸몄다.

궁중의 나뭇잎에 꿀로 ‘주초위왕走肖爲王’이라고 써서 벌레가 갉아먹게 한 뒤에 그 문자의 흔적을 중종에게 보여 주자 왕은 조광조가 실제로 자신을 반역할 마음이 있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였다. 결국 중종은 신진 사류들을 처결할 것을 명하였다. 이로써 1515년(중종 10) 왕비 책립 때 시작된 조신 간의 대립과 알력을 시작으로 1519년(중종 14) 11월 조광조, 김정, 김식 등 신진 사류가 화를 입고, 이 기묘사화로 조광조의 왕도 정치는 실패하였다.

조광조의 개혁 정치가 실패한 원인으로 이념의 진보성과 과격한 실현 방식에서 찾는 경우가 많으나 당시의 정치체제가 왕도 정치의 실현을 뒷받침해줄 만큼 성숙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타당한 이유일 것이다. 조광조가 열성적으로 추진한 왕도 정치의 이상이 무산된 뒤 성리학이 학문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 점을 입증한다.

무오사화, 갑자사화, 기묘사화, 을사사화의 조선 4대 사화는 현실 정치뿐 아니라 인간 사회의 극명한 현실을 보여주는 사건이다. 인간이 공의公義를 위한 길을 선택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현실을 사는 우리들은 잘 알 것이다. 각기 다른 환경 속에서 다른 경험을 하며 자란 사람들이 믿는 각각의 진실들은 대의를 향한 합의를 더욱 어렵게 만든다. 현실에서 갖는 것이 많게 될수록 또 현실에서 원하는 것이 분명해질수록 인간들은 사심을 버린 정의를 구현하는 것이 힘들어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인간 사회 속에서 폭발한 조선의 4대 사화는 각자의 권력을 확장하고 분명히 하기 위한 싸움의 결과라 보여진다. 그렇지만 또한 권력 싸움에만 그쳤던 것이 아니라 당시의 사회, 경제적인 변동과 깊은 관련을 가지는 정치 현상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조선의 4대 사화는 조선 시대의 현상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추며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게 만든다. 그것이 역사이다. 그렇지만 또한 역사의 원인과 결과를 잘 알면서도 그것을 반추하기보다 유사한 실수를 저지르기가 더 쉬운 것이 우리들 인간의 모습이다.
타오름의 조선 4대 사화 시리즈가 교훈을 전제로 한 과거의 역사가 우선이 아니라, 반세기가 지난 현재를 사는 우리들에게 삶에 대해 진지한 생각할 거리를 갖게 해 주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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