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문학의 이해 (책소개)/3.한국문학

타인의 방 (최인호 중단편 소설전집)

동방박사님 2022. 2. 12.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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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최인호의 중.단편작품집. 지난 문학 인생을 정리하는 결과물인 셈이다. 최근 작가는 <상도> 등 큼지막한 장편소설 쓰기에 몰두해왔다.

최인호는 작가의 말에서 "나는 마지막 주자로서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 헐떡이면서 달려오는 지친 내 모습을 나는 고개를 돌려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 (...) 결승점을 통과하여 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심장이 파열되어 찢어질 것 같은 치열함 속에서 달리는 것. 그 문학의 비등점을 향해 나는 다만 끓어오를 것이다"고 투지를 불태웠다.

1권 <타인의 방>, 2권 <황진이>, 3권 <즐거운 우리들의 천국>, 4권 <개미들의 탑>, 5권 <달콤한 인생>으로 구성되었다. 소설가 김연수, 서하진, 조경란, 천운영, 하성란이 중.단편작품집 발간을 축하하면서 최인호 문학이 자신들에게 미친 영향을 전했다.

목차

타인의 방(1967년∼1972년)
견습환자
2와 1/2
무너지지 않는 집
순례자
술꾼
모범동화
사행(斜行)
예행연습
타인의 방
뭘 잃으신 게 없으십니까
침묵의 소리
미개인
처세술개론
영가(靈歌)
 

저자 소개 

저 : 최인호 (崔仁浩)
 
1945년 서울에서 3남 3녀 중 차남으로 출생한 최인호는 서울중·고등학교를 거쳐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했다. 서울고등학교(16회) 2학년 재학 시절인 1963년 단편 「벽구멍으로」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가작 입선하여 문단에 데뷔하였고, 1967년 단편 「견습환자」가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된 이후 본격적인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가는 1970~80년대 한국문학의 축복과도 같은 존재였다. 농업과 공업,...
책 속으로
종합병원은 하나의 살아 있는 동물이었다. 병동에 밤이 오면 많은 환자들이 그러하듯, 느릿느릿한 걸음걸이로 옥상 휴게실에서 제라늄 화분들에 둘러싸여 네온이 반짝이는 야경을 바라보노라면 나는 불균형적인 우울한 희열에 빠져버리는 것이었다. 어떤 환자는 손수레에 앉아서, 어떤 환자들은 무장한 군인처럼 가슴에 온통 깁스를 대고, 어떤 환자는 가족에게 부축되어 한결같이 어두운 모습으로 조용히 시내 쪽을 내려다보고 있었으며 묵묵히 로터리를 향해 달려가는 자동차와 전차의 경적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면서 그들은 옆 병동에 입원했던 사내가 오늘 아침에 죽었다는 얘기를 나지막한 소리로 중얼거렸으며, 몇몇 여자 환자들은 소리 죽여 울어주었다. 그것은 마치 정숙한 제전 같았다. 저들은 자기들이 깁수를 풀 떄까지 붕대를 끄를 때까지, 목발을 던져버릴 때까지 언제든 밤이 오면 이런 제전을 벌일 것이다.

그러다가 반대편에 서서 어둠에 웅크리고 있는 병동을 바라보면 참으로 기괴한 감격에 싸여버리는 것이었다. 병동은 파도가 밀려오는 철 지난 해변에 서 있는 방갈로처럼 우울하게 해감 냄새를 피우고 있었다. 모든 병실엔 형광등 불빛이 차갑게 빛나고 있었으며 그 유리창 너머로 환자들의 움직이는 모습이 내다뵈는 것이었다.
---pp.15~16

추천평

첫번째 방에서 만난 소년이 애처로운 목소리로 묻는다. 울 아버지 못 보셨어요? 두번째 방의 청년은 왜 우리가 이곳에 있을까? 우린 왜 이곳에 있지? 그건 참 이상한 일이야, 하고 뜬금없이 중얼거린다. 더 깊숙이 들어가면 치매 노인의 몸을 깨끗이 씻기고 노인의 흰 머리카락을 가지런히 빗겨내리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을 만날 수 있다. 욕실을 뽀얗게 채운 수증기. 백 살이나 먹은 노인은 관목처럼 마른 몸을 여인에게 맡기고서 고즈넉한 표정으로 여인의 노랫소리를 듣는다. 어쩌면 우리는 잠시 그 노랫소리에 취해 나른함에 빠질 수조차 있으리라.
최인호의 소설은 수많은 미로를 가진, 수많은 타인들의 방이다. 그의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번차례로 찾아오는 희열과 전율에 몸을 떤다. 마치 귀신을 만나러 간 소년처럼.
--- 서하진(소설가)
작고 평범한 일들이 산산조각나고 재구성되며 마침내 그것이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을 때, 그것들이 별안간 이야기의 빛나는 뼈대로 모아질 때 느끼는 희열과 감동은 쉽게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대단히 현대적이며 젊은 감각의, 조용하면서도 슬프고 정열적인 소설을 읽다가 나는 이 책이 어느 누구의 야심만만한 첫 소설집이구나! 싶어 작가의 이름을 기억해두고자 책 맨 앞장을 펼쳐봤다. 그것은 최인호 선생이 이미 25년 전에 쓴 소설들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옛 소설을 읽자마자 어릴 적 지붕 위로 던져버렸던 이빨이 생각났고 마치 지금은 있는 힘껏 두레박을 올려야 할 때이듯, 그것을 찾으러 지붕 위로 올라가야 하지 않겠는가, 자못 망설이지 않을 수 없다. 최인호, 그는 문장을 대패처럼 쓸 줄 아는 작가다.
--- 조경란(소설가)
이번 중단편 소설전집의 발간은 소위 최인호 문학의 정리가 아니라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신호탄이라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나는 마지막 주자로서 스타트 라인에 서 있다. 헐떡이면서 달려오는 지친 내 모습을 나는 고개를 돌려 지켜보며 기다리고 있다. 그는 내게 조금이라도 빨리 배턴을 넘겨주려고 필사적으로 달려오고 있다. 나는 이 순간 손을 뻗어 그 배턴을 마악 받으려고 하고 있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은 오직 결승점일 뿐, 0.01초를 단축하려는 기록도, 1등이라는 등수도 이젠 내게 상관이 없다. 결승점을 통과하여 테이프를 끊을 때까지 심장이 파열되어 찢어질 것 같은 치열함 속에서 달리는 것. 그 문학의 비등점을 향해 나는 다만 끓어오를 것이다. 타오를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날아오를 것이다.
--- '작가의 말'중에서
『깊고 푸른 밤』이후 이십여 년의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선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다채로운 소설들이 긴 시간을 아우르며 섞여 있는 작품집 {달콤한 인생}을 읽다보면 저절로 그런 생각이 든다. 대숲을 통과해 부는 바람 소리를 들었고 소리없이 밀려오는 검은 비구름을 보았다. 이윽고 후둑후둑 나무 잎사귀로 떨어지는 빗소리가 요란스럽더니 지금은 온통 비 비린내와 흙 냄새뿐이다. 우산 하나를 받쳐들고 물안개 피어오르는 산자락 어딘가에 발을 담그고 싶어졌는데 문득 시 구절이 떠올랐다.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이여. 나는 최인호 선생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을 하였다. 내가 좀 앞질러 태어나거나 선생이 좀 참았다 태어나서 같은 레이스를 뛸 수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한 젊은 작가가 어디 나 혼자뿐이겠는가. 하지만 선생은 여전히 같은 레이스를 달리고 있었다. 아주 저 멀리 선생의 등에서 팔락이는 번호표가 보이는 듯하다.
--- 하성란(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