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천주교성지 (2016~) (여행) 56

포천 순교자 헌양비

복자 홍교만(洪敎萬 프란치스코 하미 에르) 홍인(洪鏔 레오) 순교 헌양비 경기도 포천시 군내면 호국로 1564 한국 천주교회가 창립(1784년) 되었을 당시 경기도 포천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순교하신 홍교만(1738~1801)과 그의 아들인 홍인(1758~1802) 父子의 순교를 기리는 헌 양비이다. 홍인 레오의 집안은 본래 한양의 이름 있는 집안이었다. 그의 부친이 경기도 포천으로 이주하였기 때문에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1801년 서소문에서 순교한 홍교만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바로 그의 부친이다. 홍인 부자가 천주교 신앙을 접하게 된 것은 1781년 그의 부친이 양근에 살도 있던 고종사촌 권일신으로부터 교리를 배우면서부터이다. 홍인은 부친에게서 교리를 배웠는데, 오히려 부친보다 먼저 천주교 신앙을 진리..

양주 신암리 성당

신암리 성당 경기도 양주시 남면 감악산로 489번 길 27-32 이곳은 오래된 교우촌으로, 하느님의 종 이춘근 라우렌시오 신부(베네딕도회)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 이춘근 신부는 서울교구 사제로 서품을 받은 뒤에 수도회에 입회하였고, 1950년 10월 5일 평양에서 순교하였다고 전해진다. 신암리는(新岩理)는 조선말기 박해를 피해 형성된 교우촌으로, 1907년 송도(개성) 성당 관할 공소로 설립되다. 그 뒤 1925년 본당으로 승격되었다가, 1931년 다시 행주성당 관할 공소가 되었다가, 1946년 덕정리 성당이 의정부동으로 옮기며 의정부 성당 소속이 되었다. 한국 전쟁때 폭격으로 초토화되었으나 1953년부터 1955년까지 신자들의 노력과 영국 군인들의 도움으로 공소를 재건하였다. 이렇게 신앙을 간직해 온..

양주 순교성지 (천주교)

양주 순교성지 경기도 양주시 부흥로 1399번 길 62 양주 순교 성지는 [치명 일기]의 기록을 통해, 병인박해 때 다섯 명이 순교한 치명 지를 2004년 의정부 교구 설립 뒤에 새롭게 찾아내 성역화를 진행하고 있는 성지이다. 1866년에는 김윤호 요한과 권 마르타 부부, 김마리아(중국으로 가서 죽은 최 프란치스코 아내), 박 서방(아들 박사행 부부가 홍주에서 순교), 1868년에는 홍성원 아우구스티노가 순교하였다. 홍성원의 아버지(홍몽노 베드로)는 포천 고 약리에서 공소 회장을 하다가 한양에서, 형 홍성국 요한은 경기도 광주에서, 동생 홍성선은 공주에서 치명하였다. 증언을 통해 오래전에 순교지라는 표지석이 있었던 자리를 확인하고 토지 매입을 진행하여, 2016년 5월 28일 의정부 교구장 이기헌 주교의..

춘천 소양로 성당

춘천 소양로 성당 등록문화재 제161호 1956년 건립 이 건물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제임스 버클리 신부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희생된 앤서니 클리어 초대 주임신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이 성당은 당시의 건축물에서 보기드문 반원형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성당의 내부를 보면 중앙제단을 중심으로 신자석을 부채꼴로 배열하고 *원주면 중앙2층에 성가대석을, 원주면의 좌우 끝 부분에 제의실과 고해실을 덧붙인 형태이다. **아치창과 ***버팀벽 등에서 전통적인 성당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지만 이외의 화려한 장식을 배제했으며, 단순한 형태의 밝고 기능적인 공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건축 개념을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성당은 전통적인 중세풍 성당 건축양식에서 벗어나 근대적 건축양식을 ..

춘천죽림동 주교좌성당

춘천죽림동 주교좌성당 등록문화재 제 54호 1953년 건립 이 건물은 춘천교구를 사목하였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관할의 성당 건축물을 대표한다. 정면 중앙에 종탑이 있는 석조건물로 건물의 높이와 폭에 비해 종축의 길이가 길며, 내부는 열주없이 하나의 강당처럼 형성되어 있다. 주 출입구 아치의 중앙에는 십자가 문양을 돌을 새김한 이맛돌(KEY STONE)을 두어 웅장함을 더하는 등 건축적 완성도가 높으며, 우리나라 1950년대 석조 성당 건축의 모습을 잘 보여 준다. 춘천 죽림동 주교좌성당 현재의 죽림동 주교좌성당은 김유룡신부와 엄회장이 이끈 곰실 교우들이 애써 마련한 아랫터에 보태어 퀸란 토마스신부가 매입한 언덕 위에 건립한 성당이다. 이곳은 춘천지방을 신앙의 요람지로 만드는데 도움을 준 외국인 성직자들..

춘천교구 성직자묘역

춘천교구 성직자 묘역 (6.25 순교자묘역) 이곳은 천주교 춘천교구에서 사목하다가 선종한 사제들과 신앙을 증거하여 목자로서의 소명을 다하고 희생된 순교자들이 잠들어 있는 성스러운 묘역이다. 한국전쟁(1950.6.25~1953.7.27)의 상처는 한국현대사 뿐만 아니라 1939년에 설립되었지만 38선에 의해 관할구역이 분리되는 아픔을 겪고 있던 춘천교구에게도 커다란 아픔으로 남게 되었다. 전쟁시작 직후인 6월 27일, 춘천 소양로 본당의 고 안토니오신부가 피살되고 7월 4일에는 삼척본당의 진 야고보신부, 8월 29일에는 묵호본당의 라 바드리시오신부가 인민군에 의해 살해되었다.10월 9일에는 양양본당의 이광재 티모테오신부가 원산으로 끌려가 순교했으며, 12월 6일에는 손 프란치스코신부가 압록강변 중강진 부근..

오륜대 순교자박물관

오륜대 순교자박물관 1982년 개관한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은 소장품으로 볼 때 가히 한국 최고의 순교자기념관이라 할만 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편에 예수상이 순례자를 반기며 서 있고 그 너머로 기념관과 성당 그리고 그 뒤로 야트막한 산비탈에 우거진 수풀이 시원하다. 하얀색의 낮은 건물에는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이라는 명패와 함께 " 순교자의 후손은 살아 있다." 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에 이어진 성당 앞에는 작은배 하나가 눈에 띄는데 " 라파엘호"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배는 김대건 신부가 가제품을 받고 페레올 고 신부, 다블뤼 안 신부를 대동하고 상해에서 제주도로 표류 끝에 강경 황산포에 상륙한 재를 본따 만든 모형이다. 그 옆에는 맷돌같이 구멍이 뚤려 있는 돌 형구가 있는데 병인박..

오륜대 한국순교자 박물관 / 전시관 박해일지

오륜대 순교자박물관 1982년 개관한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은 소장품으로 볼 때 가히 한국 최고의 순교자기념관이라 할만 하다. 입구를 들어서면 왼편에 예수상이 순례자를 반기며 서 있고 그 너머로 기념관과 성당 그리고 그 뒤로 야트막한 산비탈에 우거진 수풀이 시원하다. 하얀색의 낮은 건물에는 '오륜대 한국 순교자 기념관"이라는 명패와 함께 " 순교자의 후손은 살아 있다." 라는 글이 눈에 들어온다. 기념관에 이어진 성당 앞에는 작은배 하나가 눈에 띄는데 " 라파엘호"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 배는 김대건 신부가 가제품을 받고 페레올 고 신부, 다블뤼 안 신부를 대동하고 상해에서 제주도로 표류 끝에 강경 황산포에 상륙한 재를 본따 만든 모형이다. 그 옆에는 맷돌같이 구멍이 뚤려 있는 돌 형구가 있는데 병인박..

천주교 새남터 순교성지

새남터 순교성지 한양성 밖 남쪽 한강변에 있는 새남터는 조선 초기부터 군사들의 연무장이자 국사범을 비롯한 중죄인의 처형장이었다. 1801년 신유박해 때 중국인 주문보 신부를 시작으로 천주교 신자들의 처형이 시작되었고 그 이후 박해가 있을 때마다 주교와 신부, 평신도 지도자들이 순교하였다.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의 순교지가 바로 이곳 새남터이다. 기해박해 때에는 앵베르(범)주교롸 모방(나) 신부, 샤스탕(정) 신부등 세 성직자가 순교하였다. 병오박해 때는 김대건 신부 외에 현석문 회장이, 병인박해 때는 베르뇌 주교와 브르트니에르 신부, 볼리외 신부, 도리 신부, 푸르티에 신부, 프티니콜라 신부 등 다섯 명의 신부와 평신도인 정의배 마르코, 우세영 알렉시오 등 두 사람의 평신도가 순교하였다..

용산구 신계동 당고개 성지

당고개 순교 성지 당고개 (堂峴 : 당현) 성지는 기해박해가 일어난 1839년 (현종 5년) 12월 27일과 28일 (음력) 이틀간 남녀 천주교 신자 10명이 순교한 곳이다. 당시 일반 신자는 서소문 밖, 사제는 새남터에서 처형되었는데, 설을 앞둔 상인들이 대목장에 방해되지 않도록 처형지를 서소문 밖에서 다른 곳으로 이전해 달라고 하여 한강 가로 조금 나아간 이곳 당고개에서 사형 집행되었다. 27일에는 박종원, 홍병주, 권진이, 이경이, 손소벽, 이인덕,그리고 최양업 신부의 어머니 이성 레 등 7명이, 다음날은 홍영주, 최영이, 이문우 3명이 순교하였다. 병오박해가 일어난 1846년 (헌종 12년) 9월 16일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사제인 성 김대건 신부가 새남터로 향하던 참수 길에 잠시 쉬어갔다. 이곳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