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기독교 문화유산 (2016~) <답사지>/13.천주교성지

춘천 소양로 성당

동방박사님 2019. 9. 2. 1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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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 소양로 성당

등록문화재 제161호  1956년 건립

이 건물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제임스 버클리 신부가 한국전쟁 당시 인민군에게 희생된 앤서니 클리어 초대 주임신부를 기리기 위해 세운 성당이다. 이 성당은 당시의 건축물에서 보기드문 반원형 구조를 가지고 있는데, 성당의 내부를 보면  중앙제단을 중심으로 신자석을 부채꼴로 배열하고 *원주면 중앙2층에 성가대석을, 원주면의 좌우 끝 부분에 제의실과 고해실을 덧붙인 형태이다. **아치창과 ***버팀벽 등에서 전통적인 성당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지만 이외의 화려한 장식을 배제했으며, 단순한 형태의 밝고 기능적인 공간을 구성했다는 점에서 근대적인 건축 개념을 적용했다고 할 수 있다. 이 성당은 전통적인 중세풍 성당 건축양식에서 벗어나 근대적 건축양식을 도입한 국내 최초의 성당으로 평가받고 있다. 

* 원주면:"원기둥곡면"의 전용어, 반원형 구조에서 둥근 부분. ** 아지창 : 상부가 반원형(아치모양)으로 도닌 창의 형식.

*** 버팀벽:벽체의 안정성을 높이기 위해 덧대는 지지벽

 

 

소양로 성당은 1949년 1월 죽림동 본당으로부터 분리, 설립되었으며, 초대 주임으로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소속의 고 안토니오(1913~1950,6) 신부가 부임하였다. 그러자 이듬해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콜리어신부는 교구장 퀸란(몬시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가지 본당에 남아 신자들을 돌보고 부상자들을 치료하다가 보가 김경호(가브리엘)와 함께 생포되어 6월27일 인민군에 의해 사살되고 말았다.이로써 콜리어 신부는 성골롬반 외방선교회소속 선교사 가운데 한국전쟁의 첫 희생자가 되었다.

 

전쟁이 일어나던 6월 25일은 주일이었고, 고 신부는 본당에서 주일 미사를 봉헌하고 그 곳에 머믈렀다. 고 신부는 복사와 신자들을 안전하게 피신하도록 권고하고, 자신은 성당을 지키겠다고 말하였다. 전황이 나빠지자 6월 27일 오후 고신부는 복자였던 김경호와 함께 죽림동 성당으로 가던중 우체국 근처 로터리 부근에서 인민군의 검문을 받고 체포되었다.

 

두 사람은 즉시 밧줄에 묶여 소양강변 부근 (또는 공지천 방향)으로 끌려 갔는데, 도중에 인민군은 고 신부를 먼저 쏘고 다시 두발을 더 쏘았다. 총을 맞고 고 신부는 그 자리에 선종하였다. 김 가브리엘은 고 신부가가 총을 맞으면서 그를 끌어 안았기 때문에 목과 어깨에 총상만 입었다.

 

 

 

김 가브리엘과 밧줄에 묶여 끌려가던 콜리어 신부는 "가브리엘 자네는 처자식이 있으니 꼭 살아야 하네, 저들이 총을 쏘기 시작하면 재빨리 쓰러지게, 내가 쓰러지면서 자네를 덮치겠네"라고 말했다. 그 때 김 가브리엘은 목과 어깨에 총상을 입었지만 자신을 끌어 안고 쓰러진 콜리어 신부 덕분에 목숨을 건져 훗날 그 상황을 생생히 증언했다.

 

1950년 6월 27일에 순교한 고 신부의 시신은 6월 29일 교우들과 함께 동네 사람들이 총살당한 그자리에 묻었다. 현재 소양로 성당 건물은 3대 주임신부인 버클리 신부가 순교한 콜리어 신부를 기리고자 1956년 건립한 성당이다. 고 안토니오 신부의 순교에 대해서는 체포 및 총살당한 시간과 장소 등 몇가지 사실이 서로 다르게 증언되고 있다.

 

 

 

 

 

 

증언자 윤재봉 토마스(1933년생, 효자동 본당 소속)씨는 강원도 거진에 있던 마달초등학교(1963년 설립, 1944년 대진초등학교와 통합)에 교사로서 약 1년반을 근무 했는데,  그 때 마달초등학교 교장이 바로 김경호(가브리엘) 이었으며, 당시 김 교장으로 부터 학살당한 곳은 춘천초등학교 뒤편이었다는 진술를 확실하게 들었다고 증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