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사회학 연구 (책소개)/6.아나키즘

우리 시대의 아나키즘

동방박사님 2022. 12. 13.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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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아나키즘은 그리스어 '아나르코스(지도자 없음)’를 어원으로 하는 말이며, 또한 위계적 권위 즉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해치고 국민들에게 복종을, 생명을 바칠 것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고 요구하는 중앙집중적 형태의 권위에 대한 거부를 그 본령으로 한다. 그러나 19세기 말 아나키즘과 관련된 일련의 암살행위들이, 그 사상을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로 부르게 했고 비현실적이며 파괴적인 이미지를 갖게 만들었다.

이 책은 '탈 자본주의'와 '반세계화' 그리고 '인간성 옹호'를 표방한 현대 아나키즘의 비폭력 운동에 바탕을 둔, 이 시대의 새로운 아나키즘에 관한 것이다. 그들은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대, 지역화를 통한 공동체적 삶의 회복, 자유롭고 자율적인 삶과 정신을 추구한다. 일례로 세계적 반세계화 투쟁 역시 현 상황에 맞게 변형된 아나키즘으로 불릴 수 있을 것이다. 아나키즘에 대한 체계적 정리와 적절한 예시 등으로 변화무쌍하고 복잡한 아나키즘이란 사상에 대한 이해를 돕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목차

서문|현대 아나키즘으로의 여행

1장 다시 일어서는 아나키즘
새로운 아나키즘
폭력의 옷을 벗고, 축제로!

2장 아나르코스, 지배받지도 지배하지도 않는
국가권력에 반대한다
장단 맞춰 춤추는 혁명
아나키즘의 스펙트럼
누가 변소를 치우나
실제적인 것을 상상하기

3장 마르크스, 니체 그리고 아나키즘
마르크스 구하기
사회적 존재론
단지 근사할 뿐
니체적 아나키즘

4장 국가에 대한 공격
직접행동
키스는 받을 만해야
분노한 사람들
사회적 관계를 폭파할 순 없지만

5장 위계의 전복
머릿속 수레바퀴
욕망의 정치학
아나키즘의 미학
멋진 전복들

6장 아나키즘적 긴장
현실과 타협하지 않는 비판의 눈
신념과 원칙 그 이상의 것

옮긴이 후기|더 나은 세계를 향한 창조적 전복
 

저자 소개

저자 숀 쉬한 (Sean Sheehan)
아일랜드의 저술가로 현재 아일랜드 남서부의 시골마을과 영국 런던을 오가며 저술 활동에 몰두하고 있다. 영어 교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여행을 위해 직장을 그만 두고 8년간 동남아시아 지역을 누비고 다녔다. 주로 홍콩과 싱가포르를 중심으로 생활하면서 아시아인들에게 영어를 가르쳤다. 이 시기의 경험을 바탕으로 여행가이드 책 ‘론리 플래닛’을 여러 권 집필하기도 했다. 그의 글은 역사, 철학, 사회학, 문학 그...
 
역자 조준상
'한겨레' 기자로 민주노동당 기관지 '진보정치'의 편집위원을 겸하고 있다. 1994년 한겨레신문사에 입사해 국제부, 여론매체부, 경제부 등을 거쳤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1992년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전국화학노조연맹에서 2년 동안 일하면서 한국사회연구소 연구원으로도 활동했다.
 
 

책 속으로

“아나키즘적 사고에 깔린 근본적인 신념은 무엇일까? 아나키즘은 자유지상주의적 사회주의 이념에 바탕을 둔 새로운 사회질서를 열망한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아나키즘은 강요되거나 집중화하거나 위계적인 권위에 대해서는 그 어떤 형태를 막론하고 비판과 반대의 입장을 취한다. 그런 형태의 권위가 구현된 제도와 조직, 사상과 예술은 사람들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능력을 통제하거나 억압하기 때문이다. 아나키즘은 아담과 이브가 타락하기 이전과 같은 비현실적인 상상의 시대를 불러오자는 게 아니라, 일상의 삶에 책임을 지는 가운데 복잡한 현대 사회에 맞는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를 만들어가는 과제를 짊어지자는 것이다.” (30쪽)

“아나키스트들은 권력은 부패하며, 절대 권력은 절대 부패한다는 격언을 가슴에 새겨두고 있다. 물론 이유는 충분하다. 강제노동수용소를 둔 스탈린주의적 국가든, 기업의 통제를 받는 미국이든 죄다 똑같다. 사회의 한 부분에 속하는 사람들을 체계적으로 황폐하게 한다는 점에서 미국에도 스탈린주의적 강제노동수용소가 있다.”(50~51쪽)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대부분의 노동이 보여주는 극도의 비루함, 그리고 그런 노동이 요구하는 것에 일상의 삶이 종속되는 방식이 보여주는 비루함을 강조하고 싶어한다. 이른바 여가 시간은 노동을 할 준비에 점점 더 많이 빼앗긴다. 일을 위해 뭔가를 구매하는 데, 일을 위해 옷을 입는 데, 출근하는 데, 그리고 무엇보다 내일과 다음 주에도 일을 할 수 있기 위해 일이 준 피로에서 회복하는 데 점점 더 많은 여가 시간이 바쳐진다. 이런 보완적 활동들이 아무리 매력적으로 보이게끔 꾸며진다 해도 소외는 그대로 실재한다. 이 때문에 많은 아나키스트들은 착취를 절멸시키기 위해서는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을 변화시켜야 함을 깨닫는다.” (110쪽)

“새 천년의 시작은 지구화한 자본주의의 힘을 재확인했다. 실로 그것은 국민국가를 약화시키고 국민적 경계를 넘어서는 새로운 빈부간 전쟁터를 열었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그 자유지상주의적 정신과 직접행동에 대한 헌신에서, 그 탈중앙집중화한 조직에서, 그 유기체적 속성에서, 그리고 이윤 동기나 교조주의적 좌익 집단의 명령에 지배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전망에서 새로운 빈부간 전쟁의 일부인 동시에 아나키즘을 위한 전쟁이다.” (226쪽)

“아나키즘은 하나의 긴장이다. 사물이 지금 있는 방식과 있을 수 있는 방식 사이에, 존재와 되어감 사이에, 절망과 희망 사이에, 고독과 연대 사이에, 공산주의와 개인주의 사이에, 마르크스와 니체 사이에, 권력과 합리주의의 한계 사이에, 폭력을 거부하는 것과 평화주의의 한계를 인정하는 것 사이에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아나키즘은 지도부, 조직 형태 및 정부 구조에 대한 태도들 사이에, 현재의 행복을 창조하는 것과 자본주의에 대한 저항을 준비하는 것 사이에, 예술의 내용과 그 미학적 형식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이다. 새로운 아나키즘은 이런 긴장들을 필요하면서도 강력한 동력으로 수용하며, 아나키스트들은 그런 긴장과 더불어 살아간다.” (239쪽)

“1999년 시애틀과 2001년 제노바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역사의 새로운 계기였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올 수도 있다. 자본주의의 몰락을 예언하는 게 아니다. 신문은 유명 인물이 숨을 거두기 전에 그의 부음 기사를 미리 준비할지 모르지만, 어떤 것들은 사망 통고가 미리 이뤄진다고 빨리 죽지 않는다. 반자본주의 운동은 스스로를 재창조하며 제 갈 길을 가야할 것이다. 국가권력은 시애틀에서는 손을 놓고 있었으나 제노바에서는 그렇지 않았다. 반자본주의 운동을 시험해보거나 억제하기 위한 경찰의 감시와 침투는 강화될 것이다. 그러나 반자본주의 운동은 아나키즘의 본질을 갖고 있기에 그 힘이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 (24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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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아나키즘이 다시금 일어서고 있다. 그러나 그 모습은 근대 격동기의 시대적 상황 위로 오버랩 되는 과격한 폭력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다. ‘탈자본주의’ ‘반세계화’ ‘인간성 옹호’를 표방한 현대의 아나키즘 운동은 비폭력을 그 바탕에 깔고, 특유의 항의 방식과 상징적인 몸짓을 통해 새로운 시도에 나선다. 그것은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반대, 지역화를 통한 공동체적 삶의 회복, 자유롭고 자율적인 삶과 정신을 추구한다.
그리스어 ‘아나르코스(지도자 없음)’를 어원으로 하는 아나키즘은 위계적 권위를 거부한다. 그러나 여기서의 거부는 일체의 권위나 조직에 대한 무조건적인 거부가 아니다. 개인의 자유와 존엄을 해치고 국민들에게 복종을, 생명을 바칠 것을 당연한 권리인 것처럼 주장하고 요구하는 중앙집중적 형태의 권위에 대한 거부다. 또 단지 거부에만 그치지 않고 개개인이 일상의 삶에 책임을 지는 가운데 현실에 맞는 참여적이고 민주적인 형태의 정부를 만들어가겠다는 실현 가능한 대안의 이상을 아나키즘은 가지고 있다. 이런 아나키즘이 흔히 무정부주의나 허무주의로 불리고, 비현실적이고 파괴적인 이미지로 사람들의 머릿속에 자리하게 된 것은 19세기 말 아나키즘에 고무된 일련의 암살행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 시절 아나키스트들은 권위적이고 불평등한 사회를 바꾸기 위한 수단으로 기존 정부를 폭력으로 전복하는 데 기대를 걸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시대가 바뀌었고, 아나키즘은 새로운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변화했다.
냉전종식 이후 미국을 중심으로 경제적 동맹을 결성한 선진 자본주의 국가들이 내세운 신자유주의 정책은 새로운 경제식민주의의 야망을 노골화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세력은 그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나라들을 협박하기 위해 경제적 폭력은 물론, 대규모 물리적 폭력도 서슴지 않는다. WTO, IMF, NATO 등이 이를 실행하는 대표적인 기구이며, 미국이 벌이는 ‘테러와의 전쟁’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런 폭력에 똑같이 폭력으로 맞섬은 원칙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아무런 의미가 없다. 새로운 아나키즘은 이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우리 시대의 아나키스트들은 풀뿌리 조직을 구성하고, 국제회의가 열리는 도시에서 우스꽝스런 옷을 입고 거리에 나서는 것으로 국제적 항의시위를 벌인다. 폭력적 전복이 떠들썩한 축제적 전복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되는 아나키스트 명단에는 자타가 공인한 아나키스트인 프루동, 슈티르너, 크로포트킨, 톨스토이, 엠마 골드먼, 간디, 촘스키 외에 와일드, 마르크스와 그의 제자들, 니체, 푸코도 포함돼 있다. 한편 17세기 영국의 디거스로부터 프랑스 혁명, 스페인 시민전쟁, 간디의 비폭력 저항운동, 1968년의 학생운동, 사파티스타와 현대 반자본주의 운동에 이르기까지 무수한 자유지상주의적 운동에 대한 묘사, 그리고 영화와 문학, 팝, 예술사조 등 다양한 현대문화 속에서 아나키즘의 코드를 들춰내는 저자의 논리 전개에는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아나키즘은 그 변화무쌍한 성격 때문에 복잡하고 이해하기가 어렵기로 악명이 높다. 그러나 이 책은 분명한 체계와 주제를 갖고 오늘날의 현실 속에서 아나키즘을 조리있게 재해석하고 있어 아나키즘을 제대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동시에 이 책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역사와 현실을 보는 진지한 눈, 자연이나 타인과 함께 더불어 사는 삶,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사고, 양심에 따른 용기있는 행동이 무엇인가를 고민하게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