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기독교 근대유산 (2016~) (여행지)/2.강화.인천

한국기독교 100주년기념탑

동방박사님 2016. 6. 6.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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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기독교에서 가장 큰 절기라 하면 성탄절과 부활절을 꼽을 수 있다.  특히 한국 기독교에서 부활절은 여러 면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것은 한국 최초의 선교사가 부활절에 제물포항을 통해 이땅에 발을 들여놓았기 때문이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인천은 한국근대사에서 한국의 관문이요, 수도 서울의 해상로로서 개항과 더불어 내외국인의  출입처가 되었던 곳이며, 한국기독교사에서도 중요한 의미가 있는 지역이다.  문호개방과 선교윤허가 떨어진 후 인천을 통해 한국선교의 개척자들이 속속 내한하였다.  1884년 6월 미감리회의 메클레이 목사가 인천을 통해 입국, 그리고 무엇보다도 1885년 4월 부활절, 한국 최초의 복음선교사 언더우드의 아펜젤러가 제물포를 통해 입국했다.

  당시 일본에 가 있던 이수정의 요청으로 미국교회는 아펜젤러 목사와  언더우드 목사를 초대선교사로 파송하였다.  그들은 일본에 들렀다가 이수정이 번역한 한글성경을 가슴속에 품고 1885년 4월 5일 부활절에 이 부두에 상륙하였다.  독신이었던 언더우드, 부인과 함께 온 아펜젤러, 과연 누가 먼저 제물포땅에  발을 디뎠는지는 확실치 않다. 혹자는 두사람이 함께 손을 잡고 동시에 뛰어 내렸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다. 상륙하자마자 아펜젤러는 무릎을 꿇고 기도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우리는 부활주일에 여기에 왔습니다" 이 날에 죽음의 철장을 부수신 주님께서 이 백성을 얽매고 있는 줄을 끊으시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녀들이 얻는 빛과 자유를 누리게 하소서" 라고.

  이를 시작으로 인천과 서울에는 여러 개의 교회가 서기 시작하였고 이것이 한국기독교의 중요한 초석이 되었다.  한국교회는 1984년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을 전개하면서 인천교회를 비롯한 성도들의 헌금과 기동에 힘입어 이곳에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탑을 세웠으며  탑문은 전택부 장로님이 짓고 홍덕신 장로님이 쓰셨다.

  인천 앞바다 해안도로 바로 옆인 중구 항동5-2에 위치한 이 탑은 1986년 3월 30일 부활절에 제막식을 거행하였다.  주변은 약200평의 대지가 기념공원으로 조성되었고 50평의 탑 면적 위에 17m의 높이로 축조되었다. 한국교회 전통적인 종형태를 본뜬 세 개의 탑신이 하늘을 향한 형상이며 탑신 각면에는 당시 우리 한국민중들의 조각이 조각되어 있다.  탑 중앙에는 아펜젤러 부부와 언더우드를 상징하는 3인의 청동조각상이 세워져 있으며 기단에서는 세선교사가 드린 기도문이 한글과 영문으로 새겨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