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6.대한민국명소 (2006~) (여행지)/1.서울시 관광

한양도성의 각자상석(동대문)

동방박사님 2020. 2. 9. 2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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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도성의 각자 상석

여기 있는 각자성석은 숙종 32년 (1706년) 4월 훈련도감의 관리인 한필 영이 공사를 총괄하고, 1구간은 성세각, 2구간은 전수선, 3구간은 유제한이 공사를 이끌었고, 석수의 우두머리는 오유선이며, 1 구산 석수는 양육오, 2구간은 황승선, 3구간은 김정립이 참여하여 고쳐쌓았다는 기록이다. 석재의 운반을 담당한 관리들의 명단은 유실되어 전하지 않는다. 축성과 관련된 기록이 새겨진 성돌은 각자성석이라고 한다.

한양도성에 남아 있는 각자성석은 천자문의 극자로 축성구간을 표시한 것 (14C)과 축성을 담당한 지방의 이름을 새긴 것 (15C) 축성 책임 관리와 석수의 이름을 새긴것 (18C이후)으로 나눌 수 있다. 한양도성에는 이처럼 다양한 시기의 유형의 각자 상석이 280개 이상 전해지고 있다.

 

 

 

 

 

 

 

서울 한양도성

지정번호 : 사적 제10호 ㅣ 시대 1396년(태조5)

한양도성은 조선왕조 도읍지인 한성부의 경계를 표시하고 왕조의 권위를 드러내며 외부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성이다.  1396년(태조5)에 백산(북악산). 막타(낙산).목멱(남산).인왕의 내사산(內四山) 능산을 따라 쌓은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 평균 높이 약 5~8m, 전체 길이 약 18.6km에 이르며, 현존하는 전 세계의 도성 중 가장 오래도록 (1396~1910,514년) 성의 역할을 다한 건축물이다. 한양도성의 성벽에는 낡거나 부서진 것을 손보아 고친 역사가 고스란히 남아 있으며, 성벽 돌에 새겨진 글자들과 시기별로 다른 돌의 모양을 통해 축성 시기와 축성 기술의 발달 과정을 알 수 있다. 한양 도성에는 사대문 (홍인지문. 돈의문. 숭례문.숙정문)과 사소문 (혜화문. 소의문, 광희문.창의문)을 두었는데, 이중 돈의문과 소의문은 없어졌다. 2014년까지 한양도성 전체 구간의 70%가 옛 모습에 가깝게 정비되고, 숙정문.광희문. 혜화문은 다시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