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3.일본근대사

쇼와사 1 (1926~1945) 전전편

동방박사님 2021. 12. 8.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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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은 세계정복을 꿈꿨는가?

태평양 전쟁은 현재의 시점에서 보면 일본의 완전한 판단 착오였다. 대국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확대한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역사는 일본이 미국과 전쟁에 임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고 결국 일본은 패했다. 『쇼와사』는 일본이 어떻게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고 패전에도 불구하고 강대국으로 성장하기까지의, 일본근현대사를 총체적으로 다룬다.

총 2권으로 구성되었으며 1권은 1926년에서부터 1945년까지를 다룬다. 한때 아시아의 변방에 불과했던 일본이 어떻게 세계강국으로 발돋움했는가. 이 책은 일본 근현대사를 관통하며 이에 대한 해답을 알려 준다. 특히, 일본인의 시선으로 살펴 본 일본 근현대사라는 점에서 오리엔탈리즘으로 채색된 기존의 일본 근현대사 책과 다르다고 할 수 있다.

목차

서장
쇼와사의 뿌리에는 '붉은 석양의 만주'가 있다 - 러일 전쟁의 승리가 가지는 의미

1장
쇼와는 '음모'와 '마법의 지팡이'로 막을 열었다 - 장작림폭살사건과 통수권 간범
2장
쇼와를 엉망으로 만든 출발점은 만주사변 - 관동군의 야망인 만주국의 건국
3장
만주국은 일본을 '영광스러운 고립'으로 이끌었다 - 5·15사건에서부터 국제연맹 탈퇴까지
4장
군국주의를 향한 길은 이렇게 정비되어갔다 - 육군의 파벌싸움, 천황기관설
5장
2·26 사건의 주안점은 궁성점거계획이었다 - 전쟁체제로 성큼 내딛다
6장
중일전쟁, 깃발행렬과 제등행렬의 파도는 계속되는데… - 노구교사건, 남경사건
7장
정부와 군부는 모두 강경노선만을 고집, 그리고 노몬한 - 군축 탈퇴, 국가총동원법
8장
2차세계대전의 발발은 모든 문제들을 날려버렸다 - 영미와는 대립, 독일에는 접근
9장
왜 해군은 삼국동맹을 받아들였을까? - 군사국가의 길로 치닫다
10장
독소의 정략에 휘둘리는 와중에 남진론을 제창 - 독일의 소련 침공
11장
네 번의 어전회의, 이렇게 전쟁은 결단되었다 - 태평양전쟁 개전의 전야
12장
영광에서 비참으로, 그 역전은 너무나도 빨랐다 - 한순간의 전승
13장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 과달카날, 임팔, 사이판의 비극에서 특공대 출격으로
14장
일본 항복을 앞에 두고 권모술수가 극에 달한 미국과 소련 - 얄타회담, 도쿄대공습, 오키나와 본섬 결전, 그리고 독일 항복
15장
견디기 힘든 감내, 참기 힘든 인내 - 포츠담 선언 수락, 그리고 종전
종장
310만 명의 사자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말은? 쇼와사 20년의 교훈

못 다한 이야기 / 노몬한 사건으로부터 배운 것

맺음말
참고문헌
주요 인명, 지명, 사건
 

저자 소개

저 : 한도 가즈토시 (Kazutoshi Handou,はんどう かずとし,半藤 一利)
 
작가이자 수필가, 역사소설가로 활동하고 있다. 『쇼와사』출간 후 일본에서 크게 유명세를 탔으며, 일본 근현대사의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다. 일본에서는 양식 있는 지성, 영향력 있는 논객으로 유명하다. 그는 태평양전쟁 당시의 일본 군부와 야스쿠니 신사의 A급 전범 합사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으며, 일본의 평화헌법을 지키고자 하는 호헌파이다.
1930년 도쿄에서 출생해 도쿄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하고 「문예춘추」에 입사한 후 「주간문춘」, 「문예춘추」의 편집장, 이사를 거쳤다. 1965년 오야 소이치의 이름으로 《일본의 가장 긴 하루-운명의 8월 15일》을 발표한 후 본격적인 작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저서로는《어쩌면, 소세키 선생》,《노몬한의 여름》,《막부 말기사》,《스미다 강의 건너편, 나의 쇼와사》 등 다수가 있다. 1993년 《어쩌면 소세키 선생》으로 닛타지로 문학상, 1998년 《노몬한의 여름》으로 야마모토 시치헤이 상, 2006년 《쇼와사》로 마이니치 출판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쇼와사》는 그가 강의를 하던 도중 한 대학생에게 “태평양 전쟁에서 누가 이겼나요?”라는 질문을 받고 놀란 것을 계기로 탄생하게 되었다. 젊은이들에게 그동안 배우지 못한 일본 근현대사를 알려주고자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묶은 것이다. ‘전전편’은 태평양전쟁의 과정과 일본제국에 대해 방대한 사료를 바탕으로 기술했다. ‘전후편’은 1945년 패전 당시 15세였던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전후 일본이 만들어져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역 : 박현미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고려대학교 교양 일본어 강사와 한국해양연구소, 세종연구소 등에서 번역 연구원으로 활동했습니다. 옮긴 책으로는 『수명 도감』 『대단한 고대 생물 도감』 『의외로 서로 다른 인간도감』 『주기율표로 세상을 읽다』 『서바이벌! 우주에서 살아 보기』 등 다수가 있습니다.
 
 

책 속으로

입헌군주제에서는 국무(정치)와 통수(군)의 최상위자가 완전히 의견의 일치를 보아서 천황에게 알린 일은 설령 군주 자신이 내심으로는 찬성하지 않아도 재가를 해주어야 하는데, (중략) 쇼와사의 출발점에 벌어진 이 사건(장작림폭살사건과 내각총사직)의 의미는 사건 그 자체의 크기보다는 바로 이 점에 있습니다. 쇼와천황은 이후에는 내각이나 군부가 일치해서 정한 일에 ‘노’라고 말하지 않으며 쓸데없는 발언을 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관철합니다. 즉 군림은 하되 통치하지 않는다, 이것이 입헌군주국에서 군주의 존재방식이라고 깨달은 것 같습니다. 쇼와사는 항상 이 점에서 출발하고 이후 일본이 엉뚱한 방향으로 움직이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됩니다. --- pp.41~42

이타가키가 “이렇게 된 바에야 운을 하늘에 맡기고 나무젓가락을 세워서 정해보는 건 어떨까?”라고 제안했습니다. 오른쪽으로 구르면 중지, 왼쪽으로 구르면 결행이라고 정한 뒤 젓가락을 굴려보았더니 오른쪽으로 굴렀던 것 같습니다. 그럼 중지를 해야 될 것입니다. (중략) 그러나 미나미가 그의 평소 성격대로 우물쭈물하고 있는 사이에 이미 조선군은 국경을 넘어서 만주로 들어갔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이 부분이 쇼와사의 병폐, 또는 한심한 점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사실이 밝혀지자 와카쓰키 수상이 “뭐라고? 이미 만주로 들어갔단 말이지. 그렇담 어쩔 수 없군.”이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육군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중략) 23일 조간 신문은 ‘조선군의 만주 출동’이라고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리고 쇼와 7년 3월에는 만주국이 건설되었고, (중략) 본래 대원수의 명령 없이 전쟁을 시작한 중죄인으로 육군 형법에 따르면 사형을 당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나 그러기는커녕 오히려 출세의 길을 걷게 됩니다. 쇼와가 엉망이 된 것은 바로 이 순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pp.64~72

남경에서 일본군에 의해 대량학살과 각종의 비행사건이 일어난 것은 너무나도 명백한 사실이라 저는 일본인의 한 사람으로서 중국 국민에게 마음속 깊이 사죄하고 싶습니다. 하지만 중국이 도쿄재판에서 말했던 것처럼 30만 명을 죽였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당시 남경 시민을 소개疏開한 상태라 시민이 30만 명이나 남아 있지 않았고, 군대도 그렇게 많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중략) 일본군은 칭찬을 받을 만한 군대가 아닙니다. 쇼와 14년 2월에 일본 육군성이 몰래 만든 「비밀문서 제404호」라는 것이 남아 있습니다. (중략)
“어느 중대장은 (중략) 강간을 한 뒤의 처리방식까지 가르쳐주었다. 전쟁에 참가한 군인을 하나하나 조사했더니 모두 강도 살인, 강도 강간의 범죄자들뿐이다.” --- pp.169~170

정식으로는 2월 24일, 국제연맹은 총회에서 일본군의 만주철수권고안을 42 대 1로 통과시켰습니다. 이때 일본만이 반대표를 던졌습니다. (중략) 확실히 연맹 탈퇴는 일본 외교의 실패라고 썼어야 하는데 놀랍게도 신문은 42 대 1이 멋지다는 칭찬 일색이었고 마쓰오카에 대해서도 기특하다는 듯 ‘오늘날 일본에 이런 영웅은 없다’며 치켜세웠습니다. (중략) 일본 국민은 국제연맹에서 탈퇴하는 것이 이후 일본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에 대해 아무런 상상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영광스러운 고립’을 택했다는 말을 마구 써대니 일본 국민은 점점 고립감과 세계에 대한 배척감이 강해져 전 세계를 적대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그 후 고립화된 일본은 점점 군부가 지배하는 국가가 되었고, 배외주의적인 양이사상에 압도된 국민적 열광에 힘입어 전쟁의 길로 돌진하게 됩니다. --- pp.99~101

바로 그때입니다. 8월 1일 미국은 석유의 대일본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고 통고합니다. 이 이후 일본은 미국에서 석유 한 방울도 받지 못하게 되는 긴급사태에 직면하게 됩니다. 해군 중 몇 명은“뭐라고? 설마 그렇게까지 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다고 하는데, 정부나 군부는 미국을 너무 우습게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략) 나가노 총장은 7월 29일 천황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물자가 없어지고 점차 곤궁해질 텐데 어차피 상황이 좋지 않으니 (전쟁을) 빨리 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중략) 천황은 놀라서 물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러일전쟁 때의 해전과 같은 대승을 거두긴 힘들겠지?”
“그때와 같은 대승리는커녕 이길지 어떨지도 모르겠습니다.” --- pp.297~298

“일본도 이제 끝장이다. 나와 같은 우수한 파일럿을 죽이려 하다니…. 그러나 명령이 있으면 어쩔 수 없는 일.” (중략)
세키 대위는 10월 25일 기지를 날아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10월 28일, 해군은 가미카제특별공격대를‘명령이 아니라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습니다. (중략) 가미카제특?대나 나중에 나온 가이텐특공대도 모두 병사들의 의지에 의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에서는 해군 리더들의 자신감이나 책임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덕성은 그림자조차 없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pp.366~367

일본은 그런 경위를 알지 못합니다. 초강력 폭탄이 떨어졌다고 하니 이것이 원자폭탄인지를 조사하기 위해 현지에 조사단을 보냈습니다. 8월 7일, 신문과 라디오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이 흘러나왔습니다.
一. 지난 8월 6일 히로시마 시는 적B29 여러 기의 공격에 의해 상당한 피해를 입었다.
一. 적은 이번 공격에 신형폭탄을 사용한 것 같은데 상세한 것은 현재 조사 중이다.
그러니 우리들은 이때까지 원자폭탄이라는 말을 몰랐습니다. 신형폭탄이라고 말했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남아 있습니다. --- p.401

결론은 일본을 이끌어 온 사람들이 아무런 근거 없는 자기 과신에 빠져 있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중략) 그리고 끝을 알 수 없는 무책임함입니다. 오늘날의 일본인에도 이와 같은 면들이 많이 보입니다. 역사는 제대로 보려고 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역사를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 역사는 가르쳐주지 않습니다.
--- p.424
 

출판사 리뷰

외면했던 일본의 근현대사를 이제 일본인의 시각에서 본다!
일본 대중에게 사랑을 받으며 쇼와사(‘쇼와’는 일본 히로히토 천황 시대의 연호이다)에 대한 붐을 불러일으킨 이 책은, 1926년부터 1989년까지의 일본의 역사를 알기 쉽게 강의한 내용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 복잡한 세계정세와 일본의 극단적인 육군의 행보, 천황과 정치 권력의 흐름, 그리고 크고 작은 사건들이 맞물리며 성난 기차처럼 전쟁을 향해 질주해가는 일본, 그리고 쓰라린 패배를 경험하고, 연합국(미군)의 점령하에서 고도 경제성장을 통해 다시 일어서는 과정까지를 자세히 들여다본다.
「쇼와사」를 읽는다는 것은 비슷한 문화와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철저히 다른 나라, 경제적?정치적 위치에서 영원한 동반자이자 라이벌인 일본의 근현대사를 일본인의 일반적인 시각에서 본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우리가 지금까지 불쾌하고 불편하다는 이유로 외면해 온 일본의 근현대사와 정면으로 맞선다. 일본이라는 한 나라의 역사를 넘어 세계사의 흐름은 물론, 이데올로기보다 실용주의에 무게를 둔 국가 정책이 국가와 국민에게 어떠한 영향을 끼쳤는가도 읽을 수 있다.

바로 지금, 일본은 전쟁을 해야만 한다!
독일이 소련을 진공하며 태평양의 정세는 일촉즉발의 위기로 몰린다. 1941년 8월 1일, 일본에게 독이일 삼국동맹에서 빠질 것을 강하게 요구하던 미국은 일본에 대한 석유 수출을 전면 금지한다. “2년도 버티지 못한다. 시간을 끌수록 일본의 물자과 병력은 떨어지고 적은 강력해진다. 더 늦기 전에 지금 전쟁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일본 내 전쟁 강경파와 반대파들이 대격론을 벌이는 동안, 신문은 날마다 ‘대동아공영권의 최단거리’, 즉 전쟁을 선동한다. 결국 주전론자인 도조 히데키 내각이 발동하고 미국이 교섭에서 강경하게 나오면서 태평양 전쟁의 서막이 열린다.
「쇼와사」에서 일본이 전쟁으로 치닫는 과정은 자세하고도 긴박감이 넘친다. 그동안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았던 일본의 전쟁을 일으킨 속사정, 최악의 선택으로 일본을 몰고 간 장본인들의 대책 없는 모습과 그 속에 숨겨진 비화들을 만날 수 있다.

영광에서 비참으로, 패전국 일본
몰래 공격했다는 영원한 오명 속에 진주만 공격은 대승을 거두고, 그 후 계속되는 승리에 취해 일본은 대동아신진서 건설, 제국 영토 확장을 꿈꾼다. 그러나 하와이 공격을 위한 사전작업으로 적의 항공모함을 공격하려 했던 미드웨이 해전에서 패배하면서 대일본제국에 더 이상의 승리는 없었다. 암호가 해독되어 적에게 작전을 읽히고, 과달카날, 인도의 임팔가도, 사이판에서 연이어 완패하고, 역사에서 지울 수 없는 전투기에 폭탄을 싣고 돌진하는 특별공격까지 실행하고 만다. 당시 해군은 가미카제특공대는 명령이 아닌 스스로의 의지라고 대대적으로 선전한다. 1945년, 극도로 염세적이고 불안한 분위기의 일본에 도쿄대공습이 가해지고 오키나와에서 전함 야마토가 바다 밑으로 가라앉았으며, 마침내 히로시마 원폭이 투하되는 최악의 궁지에 몰린다. 그리고 8월 15일, 소위 천황의 ‘성단’에 의해 포츠담 선언을 수락하고 항복을 하게 된다. 이후 패전국 일본의 운명은 맥아더를 대원수로 하는 연합국(GHQ)의 점령이라는 새로운 출발점에 놓이게 된다.

일본은 스스로 미국을 위한 ‘위안부’를 만들었다?
저자는 전후 일본이 전쟁의 충격으로 인해 너무나 쉽게 연합군 앞에서 순종적인 아이처럼 ‘변신’했던 역사에 대해 자성적인 비판을 던진다. 한 예로 종전 3일 후, 지도층은 연합군을 맞이할 준비의 일환으로 ‘특수위안시설협회’를 설치하고 1억 엔의 예산을 마련해 위안부 1300여명을 모집한다. 그리고서는 ‘평범한 일본 여성의 순결의 값으로 1억의 비용이면 싸다’고 말했다는 기록을 통해, 강자 앞에서 한순간에 비굴해지는 일본인에 대해 지적한다.
그렇게 시작된 전후 일본은 연합군이 지시하는 대로 토지개혁과 산업기술, 경제정책을 받아들이며 새로운 국가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 천황제라는 국체를 지키는 데 성공하나, 연합국의 뜻에 따라 ‘천황은 상징이다’라는 방향을 공표하고 미국이 쥐어준 초안대로 신헌법(현재의 평화헌법 제9조를 포함)이 세워져 현재까지도 시끄러운 문제를 남기게 된다. 이후 냉전이라는 세계사의 큰 흐름 속에서 일본은 정치적 변화를 겪으며 경제발전을 최우선하는 국가로 실용주의 노선을 택해 지금의 일본의 형태로 향해 간다.

한국전쟁 특수는 경제대국으로 향하는 ‘신풍’이었다!
「쇼와사」는 일본이 고도경제성장을 이룰 수 있었던 배경에 한국전쟁으로 인한 특별수요가 있었음을 밝히고 있다. 전후 일본은 극도의 가난을 겪으며 ‘1천만 아사자’에 들어가지 않기 위해 발버둥을 쳐야 했다. 연합국의 점령정책에 의해 대기업이 해체되고 산업의 제재를 받으며 디플레이션을 겪고 있던 당시 일본의 상황은 한국전쟁의 발발로 완전히 달라진다. 유엔군의 전진보급기지가 되어 단번에 모든 물자의 수요가 급증한 것이다. 이때 일본인은 미국의 엄격한 기준에 맞추기 위해 열심히 일했고, 동시에 대량생산방식과 품질관리를 습득했다. 그 결과 3년의 한국전쟁 기간 동안 일본의 경제가 완전히 회복되고 규모도 크게 확대되어, 그 흐름을 타고 발전을 거듭하여 경제대국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도요타, 혼다, 소니 등 일본 대표기업의 토대도 이때 이루어졌다. 연간 300대의 트럭을 생산하던 도요타가 월 1500대까지 늘려도 수요를 쫒아가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당시 「문예춘추」의 기자였던 저자는 혼다 사장을 인터뷰한 후 감사의 표시로 주식을 받을 뻔 했는데, 나중에 다시 만난 자리에서 주식이 몇 백배나 뛰었다는 사실을 듣게 된 이야기도 재미있다. 저자는 부지런히 일하고 열심히 배워 과거를 딛고 일어난 일본을 인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스스로의 과오에 대한 반성과 일본을 어떤 나라로 만들겠다는 고민을 잊은 채 물질주의에만 빠져들었던 역사에 대해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지금까지 없었던 일본근현대사
지금까지 쇼와 시대의 역사와 일본 근현대사를 다룬 책들은 여럿 있었으나, 한도 가즈토시의 「쇼와사」는 기존의 어떤 책보다도 일본 근현대사를 종합적으로 완결한 책으로 부를 만하다. 1960년대부터 조금씩 개정되며 영미권에서 일본근현대사의 기본 텍스트로 읽혀온 「일본 근현대사」(w.비즐리,2004개정)와 달리 동양의 역사를 보는 오리엔탈리즘에서 벗어나 일본의 지성의 눈으로 본 책이며, 「일본제국 흥망사」(이창위,2005)보다 방대한 자료 전개와 에피소드를 다루고 있다.
그 외 일본인의 저서로 「히로히토와 맥아더」(도요시타 나라히코,2009), 「천황과 도쿄대」(다치바나 다카시,2008), 「쇼와천황과 일본 패전」(고케츠아츠시,2010)가 출간된 바 있으나 이들은 일본 근현대사를 특정 사상이나 사건, 인물에 초점을 맞춰 바라보려는 시도로 쓰여진 데 의의가 있었다. 정치에 국한되거나 폭넓지 못한 한계를 가지고 있는데 반해 「쇼와사」는 일본이 전쟁을 시작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전쟁이 전개되는 양상, 패전 후 일본의 정치, 경제, 사회문화적 변화, 나아가 일상생활의 변화까지 유기적으로 연결시킨, 폭넓은 일본근현대사 통사라는 점에서 기존에 출간된 도서들과 단연 차별화되는 책이다.

눈앞에서 살아 숨쉬는 ‘인간의 쇼와사’
이 책을 읽으면 마치 지금 눈앞에서 사건이 이루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한 문체에다 다양한 사료와 직간접적 경험을 적재적소에 곁들여서 잘 버무려냈기 때문이다. 어전회의에서 갑론을박하는 모습을 대화체로 재연하거나, 유행어나 유행가를 들어 설명하거나, 특정 사건에 대한 신문, 라디오, 일기 등의 기록을 비교해 놓은 것도 이 책의 묘미이다. 또한 현대사로 가면서 우리에게도 결코 낯설지 않은 풍경을 통해 일본과 우리의 사회상을 비교해 볼 수 있는데, 올림픽과 만국박람회로 떠들썩한 일본, ‘단카이세대’로 불리는 베이비붐 세대와 기성세대와의 갈등 등이 등장한다.
또한 주요 인물들이 손에 잡힐 듯 생생히 묘사되어 있어 ‘역사의 기본은 인간학’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철학이 그대로 드러난다. ‘마쓰오카는 쵸슈 출신으로 천황 이야기가 나오면 눈물을 뚝뚝 흘릴 정도’, ‘기골이 단단한 메이지의 남자들로, 점령군 따위는 난 모른다는 경지에 다다른 사람들’ 하는 식으로 표현한 것도 재미있다. 과거의 인물들이 등장하지만, 일본민주당 하토야마 유키오 전 총리의 조부인 하토야마 이치로 등 현재로 정치 계보를 이어가고 있는 인물들에 대해서도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때로는 유머러스하게, 때로는 스스로의 역사를 냉철하게 판단하는 저자의 역사 서술 능력은 일본내 ‘탁월한 역사 선생’이라는 평가를 실감하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