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서양사 이해 (책소개)/1.로마제국사

로마제국 쇠망사 (에드워드기번)

동방박사님 2022. 10. 15. 11: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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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그리스와 더불어 서구 문명의 원형으로 칭송받고, 1400년이라는 긴 시간동안 서서히 멸망해간 대제국의 역사를 쓰고자 마음 먹는 것은 그 자체로 용기를 요구한다. 더구나 그 용기가 다른 이들에게 객기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려면 용기 이상의 실력이 요구된다. 그리고 마침내 로마는 용기와 실력을 모두 갖춘 당대의 역사가를 만났으니, 고전의 반열에 오른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제국 쇠망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기번은 로마 제국이 쇠퇴해 가는 과정을 아주 실증적이면서도 유장한 문체로 다루고 있다. 1776년에서 1788년까지 12년에 걸쳐 전 여섯 권으로 간행된 『로마 제국 쇠망사』는 수없이 많은 로마사 책들 중에서 대표적 작품이며, 영문학사상의 명저로도 꼽힌다. 그리스도교의 확립, 게르만 민족의 이동, 이슬람의 침략, 몽골족의 서정(西征), 십자군 원정 등 광범위한 지역에 걸친 사건을 다루어 고대와 근세를 잇는 교량의 역할을 하는 저서로서, 시공간적으로 방대한 스케일을 지니고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서양 세계의 기원인 로마 역사에 대한 기본 중의 기본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이처럼 긴 시간과 공간을 아우르면서도 어디 하나 소홀함을 지적할 부분을 찾기 힘든 것은, 어디까지나 저자의 공이다. 오늘날의 기준에서 보자면 사료에 대한 객관적이고 비판적인 분석이 종종 결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기번은 입수 가능한 자료에 대한 철저한 탐구, 상세한 고증,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집필 과정을 성실하게 이루어나가 당대에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서술을 이루어 내었다.

더구나 흥미로운 점은 역사가의 주요 역할이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거나 흥망성쇠의 필연적인 주기를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것은 "역사는 발전한다", "역사에는 보편적인 법칙과 방향, 단계가 있다"라는 근대의 단선적인 역사관이 더 이상 지지받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더욱 주목되는 것이다. 그저 인간과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과거와 과거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건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던 기번의 노력은 역사학과 그 역할의 변천과 무관하게 그 지위를 도도하게 누리고 있는 것이다.

목차

해제
에드워드 기번의 서문
일러두기

1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범위와 군사력,서기 98 ~ 180년

2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통일과 내부적 번영·예술·사람들

3 안토니누스 가 황제들 시대의 로마 제국의 정치 체제

4 콤모두스의 잔인성,우행,살육·페르티낙스의 즉위·그의 개혁 시도·근위대에 의한 암살·분노

5 근위대, 제위를 공매에 부쳐 디디우스 율리아누스에게 팔다·브리타니아의 클로디우스 알비누스,시리아의 페스켄니우스 니게르,판노니아의 셉티미우스 세베루스가 페르티낙스 황제의 복수를 선언하다·내전과 세베루스의 승리·군기의 해이·새로운 원칙들
6 세베루스 황제의 사망·카라칼라 황제의 학정·마크리누스 황제의 찬탈·엘라가발루스 황제의 우행·알렉산데르 세베루스 황제의 미덕·군대의 방종·로마 재정의 전반적인 상태

7 막시미누스 황제의 즉위와 폭정·아프리카와 이탈리아에서의 반란과 원로원의 권위·내전과 폭동·막시미누스 황제 부자,막시무스 황제와 발비누스 황제,고르디아누스 3대 황제의 횡사·필리푸스 황제의 찬탈과 100년제

8 아르타크세르크세스에 의한 군주정 복고 후의 페르시아 정세·그의 성격과 원칙

9 야만족의 침입이 시작될 때까지의 게르마니아 정세,데키우스 황제시대·서기 248년

10 데키우스 황제,갈루스 황제,아이밀리아누스 황제,발레리아누스 황제 및 갈리에누스 황제·야만족의 대규모 침입·30인의 참주들·19인의 실존 참주들

11 클라우디우스 황제의 치세·고트족의 패배·아우렐리아누스의 승리,개선,사망·제노비아의 성격

12 아우렐리아누스 황제 사후 군대와 원로원의 동향·타키투스 황제,프로부스 황제 및 카루스 황제 부자의 치세

13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세 명의 동료 황제 막시미아누스,갈레리우스,콘스탄티우스의 통치·질서와 평온의 전면적인 회복·페르시아 전쟁과 승리 및 개선·새로운 통치 방식·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퇴위

14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 퇴위 후의 혼란·콘스탄티우스 황제의 사망·콘스탄티누스 황제와 막센티우스 황제의 즉위·여섯 황제의 동시재위·막시미아누스 황제와 갈레리우스 황제의 사망·막센티우스와 리키니우스에 대한 콘스탄티누스의 승리·콘스탄티누스 치하의 제국 통일·법률·전면적인 평화

15 그리스도교의 발전과 초기 그리스도교인들의 사상,풍습,신도 수도 및 상황·각종 의식,학예,축전

16 네로 황제부터 콘스탄티누스 황제까지의 로마 정부의 그리스도교 정책·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유대교와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

후기
 

저자 소개

저 : 에드워드 기번 (Edward Gibbon)
 
18세기 영국의 역사가. 1737년에 영국 서리 주 퍼트니에서 태어났다. 병약한 탓에 웨스트민스터 공립학교를 중퇴했고, 열다섯 살이던 1752년에 옥스퍼드 대학의 모들린 칼리지에 입학했으나 14개월 만에 그만두었다. 이후 스위스 로잔에 머물며 프랑스어와 라틴어를 마스터했고, 이 시기에 볼테르의 클럽에 드나들며 계몽사상을 흡수했다. 1757년, 스무 살의 기번은 로잔에서 쉬잔 퀴르쇼를 만나 결혼을 꿈꾸었으나 뜻을 ...

역 : 송은주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 인문과학원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 『엄청나게 시끄럽고 믿을 수 없게 가까운』 『위키드』 『모든 것이 밝혀졌다』 『광대 샬리마르』 『클라우드 아틀라스』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 『종이로 만든 사람들』 『선셋 파크』 『블랙스완그린』 『겨울 일기』 『술라』 『시대의 소음』 『내가 여기 있나이다』 등이 있다. 『선셋...
 

역자 : 윤수인

이화여대 영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생존수업』, 『마지막 카니발』이 있다.
 

출판사 리뷰

역사서로서 문학 작품으로서 독자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보여 주는 영원한 고전

기번은 제일급 역사가이자 큰 문장가로 불린다. 그 자신 일급 역사가였던 토인비는 “기번의 정신은 모든 저명한 서구 역사가들 중에서 일찍이 유례가 없을 만큼 강력하고 눈부시다.”라고 말한다. 버지니아 울프는 “기번은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들을 균형감각을 잘 갖추어 가며 볼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서는 압축하고 저기서는 확장한다. 그는 가장 많은 자원을 가진 엔터테이너이다.”라고 쓴다. 이 모두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를 읽고 붙인 평들이다. 다음은 ‘영원한 제국’의 작가 이인화의 말이다. “에드워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인간의 불완전성에 대한 무한한 애정으로 서술된 독특한 역사서다.1400년에 걸쳐 서서히 멸망해 가는 대제국의 역사를 치밀한 묘사와 탁월한 해석으로 하나하나 짚어 간 이 웅편거작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인간의 악덕들이 장강의 물결처럼 펼쳐진다. 기번은 불완전한 인간이 자신의 불완전성을 무릅쓰고 쌓아올린 인류사 최대의 영광으로 로마사를 조망하고 있다. 때문에 이 책은 역사서이면서도 단순한 역사 서술을 뛰어넘는 문학 작품으로서 독자적인 인간관과 세계관을 보여 주는 불후의 고전이다.”

그리스·로마는 서양 문명의 원형이다. 흔히 말하듯 서구 중심의 역사 서술에서 벗어나려면, 오히려 현대 서양 문명의 원형인 그리스·로마에 대해 좀 더 알아보아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점에서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는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광활한 제국을 이루었던 로마 역사의 덩치에 비해 전혀 작지 않은 그리스 이야기는 또 다른 기회에.) 기번은 이 책을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였고, 또 이미 많은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영국인이면서 키케로를 프랑스어로 번역하여 한동안 두었다가 이를 다시 라틴어로 번역하여 그 결과를 원문과 대조해 가며 학습하는 등의 언어 능력은 로마의 역사를 다루기 위해 이미 준비되어 있는 자질이었다. 그는 이 언어로 말하고 저 언어로 글을 썼던 것이다. (그리스어, 스페인어, 히브리어에도 일가견이 있었다고 한다.)
이런 능력을 바탕으로 다른 사람의 연구 성과가 아닌 원사료를 읽어 낼 수 있었던 그는 역사가로서 가졌던 신념에 따라 많은 준비를 하였다. 역사가로서의 그의 신념은 성실성이었다. 기번은 역사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닌 다양한 작품들을 능숙하게 이용했는데, 자신의 역사를 풍부하고 정확하게 기술하기 위해 우선 1차 사료와 2차 사료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그 외의 각종 자료들을 섭렵하여 책의 곳곳에서 풀어내 놓는다. 기번을 읽는 재미가 아마 여기에서도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연구 성과가 많이 축적된 오늘날의 관점으로 보자면 사료에 대한 객관적, 비판적 분석이 종종 결여되어 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기번은 엄청난 양의 자료를 되도록 정확하게 사용하여 독자들에게 다양한 지식과 견해, 정보를 주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이는 본문에 육박하는 수많은 각주가 잘 보여 주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기번은 입수 가능한 자료에 대한 철저한 탐구, 상세한 고증, 오랜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는 집필 과정을 성실하게 이루어나갔으며, 그 결실인 『로마 제국 쇠망사』는 영국의 역사 서술에 주요한 발전을 이룩해 낸 저서로도 평가받는다. 영문학사상으로도 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이 책이 역사가로서의 기번의 이러한 성실성이 없었다면 그 유려하다는 문체만 자랑하게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로마 제국 쇠망사』-수많은 로마사 관련 책들을 파생시킨 모태

『로마 제국 쇠망사』와 관련하여 항상 언급되는 것이 그 서술의 규모다. 로마는 조그마한 도시국가였다. 이 조그마한 도시국가가 불멸의 성공을 거듭하여 거대한 제국을 이루었다가 스러져가기까지의 과정의 서술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하는 일이어서, 제1권이 출간된 1776년부터 마지막 제6권이 나올 때까지 12년의 기간이 소요되었다.(준비 과정, 집필 기간 등을 포함하면 모두 20여 년의 기간이 걸렸다고 한다.) 서기 98년부터 시작되는 이 책은 서로마 제국의 몰락을 지나 그 후 1000년 동안 더 존속한 동로마 제국, 제국과 접하고 있던 모든 문명국 및 이른바 ‘야만국’과 그 구성원들, 이슬람교의 대두, 신성 로마 제국, 십자군 운동 등 요컨대 서기 100년경부터 1400여 년에 이르는 서방의 역사, 그리고 서방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 동방의 역사(기번은 당시 영어로 번역된 동양사 관련 서적을 모두 섭렵했다.)를 망라한다. 그 긴 세월과 광범위한 지역의 역사가 오랫동안 가다듬어진 기번의 통찰력과 균형 잡힌 시각 속에서 서로 연관을 이루며 잘 결합되어 방대한 규모를 지니게 된 것이다.
사실 주지하듯이 기번의 주된 관심은 서로마 제국의 역사였다. 기번은 『로마 제국 쇠망사』의 제3권까지 집필한 다음, 다소 망설인 끝에 1453년 동로마 제국의 멸망까지 서술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의 저작은 두 부분으로 대별된다. 제1권에서 4권까지로 구성된 첫 부분은 서기 2세기부터 헤라클리우스 황제가 사망한 서기 641년까지를 다루고 있으며(1~47장), 나머지 두 권은 7세기에서 15세기까지를 다루고 있다.(48~71장) 그 결과 처음 네 권에서는 약 500년의 역사를 서술하고 있는 반면 마지막 두 권은 거의 1000년 동안의 역사를 다루는 불균형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당시의 연구 풍토에 비추어 볼 때, 그리고 서로마에 비해 훨씬 빈약한 자료를 바탕으로 동로마 제국의 역사를 개관하고, 이슬람에 대해 불편부당한 서술을 하고 있는 것 자체로 벌써 큰 의미가 있는 일이라 하겠다.
흔히들 로마 제국은 서기 476년의 서로마 제국의 몰락으로 그 생명을 다했다고 본다. 하지만 오늘날 학계에서는 ‘로마의 몰락’이라는 급격한 변혁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즉 476년의 서로마 제국 멸망에 역사적 의의를 크게 두지 않으며, 고대에서 중세로의 이행은 수세기에 걸친 과도기를 거쳐 점진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주장하고, 동로마 제국 존속의 의의를 보다 중요시하고 있다. 어느 순간 흥하고 망하는 ‘단절’의 역사가 아니라 ‘연속’의 역사가 중요시되는 것이다.

국내 최초 영한 대역 완역본 출간

기번의 『로마 제국 쇠망사』에 나타나는 몇 가지 특징은 다른 역사서들과 차별화된 위상과 영향력을 보여 주는데 우선 그 문체가 많이 언급된다. 기번 자신이 스스로 밝힌 대로 제1장은 세 번, 제2장은 두 번을 썼다고 할 정도로 이 책에 맞는 표현과 서술 방식을 찾기 위해 상당히 고심하였다. 평소에 그의 집필 방식은 “긴 단락을 하나의 문장에 넣어 귀로 음미해 보고 머릿속에 넣어 두었다가, 마지막 손질을 하고 나서 펜을 움직이는” 식이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기번의 문장은 소리 내어 읽지 않더라도 그 낭랑한 음률이 귀에 들리는 듯한데 영어의 가장 큰 강점인 구어체를 잘 살려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당시 영국에서의 역사 서술의 경향과 연결되는 부분으로, 영국은 유럽 대륙과 달리 일찍 혁명을 경험하여 18세기에 들어 상대적으로 정치적 안정을 누리고 있었으며, 영국인들은 자신들이 만들어 낸 제도들에 대체로 만족해하고 있었다. 따라서 역사 서술에서 다소 표면적인 사고에, 사실에 대한 분석보다는 설명을 선호하여 수사학적인 표현과 미학적인 서술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러한 경향은 아마도 독특한 표현 방법에 대한 기번의 개인적인 관심에 더해 그의 역사 서술에 영향을 주었을 것으로 보인다.
큰 문장가인 기번을 동시에 위대한 역사가로 돋보이게 하는 것은 그의 냉철함과 독창성이다. ??로마 제국 쇠망사??에서 호불호를 드러내는 것을 꺼려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그는 최대한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균형 잡힌 시각을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기번의 과감하고 정확한 기준, 문제를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지혜, 현명한 유보와 적절한 회의 등은 후대의 역사학자들이 역사를 서술하면서 끊임없이 곱씹어 보는 화두가 되었다.
또 한 가지 기번이 색다른 점은 역사가의 주요 역할이 도덕적인 교훈을 찾아내는 데 있다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시대에, 사회의 운명을 결정짓는 보편적인 법칙을 찾아내거나 흥망성쇠의 필연적인 주기를 주장하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다만 인간과 역사를 탐구함으로써 과거와 과거의 다양하고 복잡한 사건들을 이해하고 설명하려 했던 것이다.

오랫동안 계획했던 유럽 여행을 하던 에드워드 기번이 1764년 가을 로마에 도착했다. 로마의 폐허를 바라보고 로마의 역사를 쓰기로 마음먹은 그는 인고의 세월을 거쳐 그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대작을 탄생시켰다. 기번은 정치(精緻)하면서도 재미있다. 『쇠망사』가 발간되고 그 견고한 구조를 헐뜯는 비판서들이 많이 발표되었지만, 로마 제국의 쇠망의 과정을 기번만큼 설득력 있게 다룬 사람은 없을 것이며, 아직도 그를 뒤집거나 그 예봉을 꺾지 못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그대들은 군주의 고통을 알지 못한다. 머리 위에는 언제나 검이 매달려 있다네. 군주는 자신의 근위병들마저 두려워하며, 동료도 믿지 못한다네. 움직이거나 쉬는 것을 선택하는 것도 더 이상 군주의 뜻대로 되지 않는다네. 또한 나이나 덕성, 품행 그 어떤 것도 질투심에서 비롯되는 비난에서 보호해 줄 수 없다네. 이렇게 나를 제위에 올려놓았으니, 그대들은 나에게 근심 가득한 일생과 때 이른 죽음이라는 운명을 안겨 준 셈이네. 다만 남아 있는 유일한 위안은 나 혼자서 죽게 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확신뿐이네.”

로마 황제의 변이다. 사실 로마 역사가 근본적으로 생경한 것일 수밖에 없는 우리의 교양 터전에서 이 방대하고 포괄적인 역사 여행에 선뜻 참여하기가 주저되지만, 이 책에는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권력과 배반, 명예, 전쟁, 인물, 사건, 제도, 경제, 예술, 문화, 종교, 미신, 유럽 아닌 세계, 민중의 투쟁, 사랑, 덧없음, 지구온난화 문제 등 (26장에는 ‘Corea'가 나온다.) 인간사의 거의 모든 분야를 망라하는 이 영원한 고전은 우리에게 두렵지만 유익한 교훈이다.

* 일본에서는 동경대학 영문학과 교수를 지내고 지난 1985년에 작고한 나카노 요시오(中 野好夫)외에 두 명의 번역자가 붙어서, 1976년부터 1993년에 걸쳐 『쇠망사』를 번역해 놓았다. 그러나 이 책은 완역이 아니다. 역자들 스스로도 기번을 따라잡지 못한(그의 언어 능력과 방대한 지식에 당황했다고 솔직히 밝혀 놓고 있다.) 번역의 완성도에 대해서는 충분히 밝혀 놓았으며, 수많은 각주는 대부분 생략해 버렸다. 기번의 ‘잡담’이라고도 불리는 각주가 원본에는 8300여 개가 있었는데, 가장 뛰어난 편집판으로 인정받고 있으며 이번에 우리가 번역 대본으로 삼은 버리(J. B. Bury) 판에는 4700여 개로 줄어 있다. 일본에서도 이 버리의 판을 번역했는데 본문 이해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한다고 판단했는지 각주를 생략해 버린 것이다. 이번 민음사 판에서는 각주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하였으며, 4700여 개 중에 본문 이해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350여 개는 번역을 생략하였음을 밝힌다. 하지만 민음사 판은 영어판을 제외한 어느 다른 판본보다 각주를 많이 번역했기 때문에 감히 완역판이라 자부한다. 총 여섯 권으로 우선 1, 2권을 내고 2, 3개월 간격으로 두 권씩 해서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