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서양사 이해 (책소개)/1.로마제국사

로마인 이야기 (시오노 나나미)

동방박사님 2022. 10. 15.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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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인류 역사상 처음으로 구축한 세계제국 로마! 시공을 관통한 고대 1천년의 흥망성쇠를 통해 20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근원적 좌표를 낱낱이 주시한다.

목차

1. 프롤로그

2. 로마의 탄생

3. 로마 공화정
4. 연표
5. 참고문헌
6. 역자후기
 
 

저자 소개

저 : 시오노 나나미 (Nanami Shiono,しおの ななみ,鹽野 七生)
 
1937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63년 가쿠슈인대학 문학부 철학과를 졸업한 뒤, 1964년 이탈리아로 건너가서 1968년까지 공식 교육기관에 적을 두지 않고 혼자서 르네상스와 로마 역사를 공부했다. 1968년에 집필 활동을 시작하여 『르네상스의 여인들』을 잡지 《주오코론(中央公論)》에 연재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1970년부터 이탈리아에 정착하여 40여 년 동안 고대 로마와 르네상스에 천착해왔으며, 기존의 관념...

역 : 김석희

서울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대학원 국문학과를 중퇴했으며, 1988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소설이 당선되어 작가로 데뷔했다. 영어,불어,일어를 넘나들면서 존 파울즈의 『프랑스 중위의 여자』, 허먼 멜빌의 『모비 딕』,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월든』,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 쥘 베른 걸작선집(20권),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15권) 등 많은 책을 번...
 

 

책 속으로

지성에서는 그리스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 인보다 못하고, 체력에서는 켈트인이나 게르만인보다 못하고 기술력에서는 에트루리아인보다 못하고 경제력에서는 카르타고인보다 뒤떨어지는 것이 로마인이라고, 로마인들 스스로가 인정하고 있습니다.
--- p.11
전쟁을 어떻게 수행하고 전후 처리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를 추적해 보면, 전쟁을 치른 민족의 성격을 알 수 있다. 역사 기술에 전쟁 묘사가 많은 까닭은 인류가 여전히 전쟁이라는 악에서 발을 못 빼고 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전쟁이 역사 서술, 다시 말하면 인간 서술의 좋은 소재이기 때문이다.
--- p.125
인질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그리스 문화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고 한곳에 집단으로 수용되지도 않았다. 천 명의 그리스인들은 제각기 로마 공화국의 여러 도시 및 촌락의 유력자한테 맡겨졌을 뿐이다. 게다가 그리스 이외의 곳이라면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는 자유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폴리비오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스의 독립을 지키려는 마지막 시도이기도 했던 아카이아 동맹에서 기병대 사령관을 지낸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장군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와는 그리스에 살던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스키피오가 힘써준 덕분이겠지만, 인질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스키피오한테 맡겨지게 되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하여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로마의 승리로 이끈 무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조카이자 양손이기도 하다. 폴리비오스보다 열여덟 살쯤 아래였으니까, 당시에는 약관의 젊은이였다.

***프롤로그중..
--- p.4
'인간 세계에서 처음부터 먼 장래까지 내다보고, 그것을 바탕으로 백년대계를 세우고,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길 수 있는 인간은 그리 많지 않다. 적기 때문에 천재다.'
--- p.216
우리는 시련을 대할 때에도 그들처럼 비인간적인 엄격한 훈련을 받은 뒤의 예정된 결과로써 대하지는 않는다. 우리 개개인이 가진 능력을 바탕으로 한 결단력으로 시련을 대한다. 우리가 발휘하는 용기는 관습에 얽매이고 법률에 규정되었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아테네 시인 개개인이 일상생활을 할때 갖고 있는 각자의 행동원칙에서 생겨난다(중략).

우리는 질박함 속에서 미를 사랑하며, 탐닉함 없이 지를 존중한다. 우리는 부를 추구하지만, 이것은 가능성을 유지하기 위함일 분, 어리석게도 부를 자랑하기 위함이 아니다. 또한 일신의 가난을 인정함을 수치로 여기지 않지만, 빈곤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게을리 함은 깊이 부끄러워 한다. 우리는 사적인 이익을 존중하지만, 그것은 공적인 이익에 대한 관심을 높이기 위해서다.
--- p.143-144
알렉산드로서에게는 전투에 패하는 것이 곧 전쟁에 패하는 것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다. 반면에 로마군의 전통은 전투의 패배가 저쟁의 패배로 이어지지 않는 것이 특징이었다.
--- p.236
사람들은 흔히 말합니다. 로마인이 대제국을 건설하여, 그 광대한 영광을 그토록 오랫동안 경영할 수 있었던 것은 군사력 덕분이라고. 과연 그럴까요. 사람들은 또 이렇게 말합니다. 로마인도 결국 쇠망의 길을 걸은 것은 패권을 장악한 민족이 흔히 빠지기 쉬운 교만 때문이었다고. 과연 그럴까요. 이런 의문들에 대해 나는 서둘러 해답을 내놓고 싶지 않습니다. 역사란 수많은 사람들의 노고가 축적된 결과물입니다. 거기에 대해 가볍게 해답을 내놓는 것은 실례일뿐더러, 아직은 나 자신도 해답을 확실히 알고 있지 못합니다. 역사적 사실이 기술됨에 따라, 나도 생각하겠지만 여러분도 함께 생각해 주기 바랍니다. '왜 로마인만이 그럴 수 있었는가'를.
--- p.11
도로는 숙명적으로 양날의 칼이 될 수 밖에 없다. 아군의 연락이나 이동이 편리해졌다는 것은 적군의 정보 수집이나 이동도 편리해졌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로부터 수십 년 뒤에는 에페이로스의 왕 피로스가, 100년 뒤에는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로마인이 건설한 가도를 따라 로마로 처들어와, 로마인을 혼비백산하게 만들었다.

그렇기 때문에 방어를 최대 목표로 삼는 민족은 도로공사 기술이 있든 없든 상관없이, 평탄하고 편리한 도로를 건설하는 일에는 열성을 쏟지 않는다. 지평선까지 일직선으로 이어지는 아피아 가도를 따라가다 보면, 고대 로마인의 외향성의 표본을 보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적에게도 이렇게 편리한 길을 만들어 버렸기 때문에, 로마인은 숙명적으로 전쟁을 영원히 계속할 수 밖에 없었던 게 아닐까하는 생각도 든다.
--- p.224
누마는 로마인을 지키는 신들에게 봉사하는 신관 조직을 정비했다. 전투를 시작하기 전에 흉하다는 점괘가 나온 경우에도 그것을 직접 보지 않은 사람에게는 효력이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사제가 눈을 감으면 그만이다. 또한 길흉을 판단하는 것은 사제들의 임무였기 때문에, 그들이 점괘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길흉이 결정되는 실정이었다. 새가 군단 지휘관이 바라는 점괘를 내놓게 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였다. 요컨대 병사들이 길조라고 믿으면 그만이다. 윗사람은 어느 시대에나 깨어있었다.
--- p.49
기원전 167년, 쇠퇴해가는 그리스에서 천 명의 인질이 로마로 끌려왔다. 그리스에서는 모두 행세깨나 하던 사람들이었다. 이들 가운데 서른여섯 살 먹은 폴리비오스가 있었다. 인질이라고는 하지만, 당시 로마인들 사이에서는 그리스 문화에 대한 존경심이 대단히 높았기 때문에, 그리스인들은 감옥에 갇히지도 않았고 한곳에 집단으로 수용되지도 않았다.

천 명의 그리스인들은 제각기 로마 공화국의 여러 도시 및 촌락의 유력자한테 맡겨졌을 뿐이다. 게다가 그리스 이외의 곳이라면 어디로든 여행할 수 있는 자유도 있었다. 다른 사람들에 비하면 폴리비오스는 운이 좋은 편이었다. 그리스의 독립을 지키려는 마지막 시도이기도 했던 아카이아 동맹에서 기병대 사령관을 지낸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장군인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와는 그리스에 살던 시절부터 절친한 사이였다. 그래서 스키피오가 힘써준 덕분이겠지만, 인질 폴리비오스는 로마의 스키피오한테 맡겨지게 되었다.

스키피오 아이밀리아누스는 자마 전투에서 한니발을 격파하여 제2차 포에니 전쟁을 로마의 승리로 이끈 무장 스키피오 아프리카누스의 조카이자 양손이기도 하다. 폴리비오스보다 열여덟 살쯤 아래였으니까, 당시에는 약관의 젊은이였다.

하지만 로마의 명문 귀족인 스키피오 가문의 남아답게 군대에서는 눈부신 경력을 쌓고 있었다. 또한 열린 마음을 갖고 있어서, 아버지와 함께 그리스 문화를 사랑했고, 그의 저택에 모이는 교양있는 사람들은 로마에서는 '스키피오 서클'이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었다.

그리스의 명문 집안에서 태어나 수준 높은 교육을 받았으며, 실생활에서도 책임있는 지위를 차지하고 풍부한 경험을 쌓은 폴리비오스가 이 서클에 기꺼이 받아들여진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폴리비오스도 조국의 쇠퇴를 한탄하며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에는 아직 너무 젊은 나이였다.
--- p.
 

출판사 리뷰



제1권 {로마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았다}에서는 B.C. 753년의 건국으로부터 이탈리아 반도를 통일하는 B.C. 270년까지를 다루고 있다. 로마인들이 나라의 초석을 세우는 과정에서부터 그 조그만 땅에서 점점 영토를 확장해 가는 과정과 그 결과 늘어나는 인구를 어떻게 수용해 가는지, 또 그 정치기구 확립과정을 통해 결국 대로마 문명권을 어떻게 이루어나가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제2권 {한니발 전쟁}에서는 이탈리아 반도의 통일에서 지중해의 패권국가가 되는 130년간을 다루고 있다. 16년에 불과한 제2차 포에니 전쟁에 지면의 3분의 2를 할애하면서 말이다. 시오노는 결과로서의 역사인 '히스토리아'가 아닌 과정으로서 역사를 보는 '게스타이'를 쓰고 싶다고 하고 있는데, 전쟁만큼 이를 잘 다루기에 적합한 소재는 없다. 어떠한 사상도 어떠한 윤리도덕도 심판하지 않고 숙명에 처한 인간과 국가의 행적을 하나하나 따라간다. 전쟁을 통해 인간과 국가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지중해 전체를 그토록 짧은 기간에 '마레 노스트롬'(우리 바다)으로 만들어버린 스키피오를 비롯한 로마인들과 희대의 명장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우리 눈앞에 생생하게 그려진다.

결론적으로 시오노 나나미는 {로마인 이야기} 제1권에서는 하나의 나라가 어떻게 체제를 만들어가는지, 제2권에서는 그 체제가 어떻게 기능하는지, 제3권에서는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 체제를 어떻게 재조정해가는지를 쓰고 있다.

현대인의 삶의 철학과 좌표를 제시하는 동양인이 쓴 서양사

{로마인 이야기}는 방대한 자료를 취재·정리해가면서 엮어간 거대한 로마 통사이면서 현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지침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서양인에 의해 씌어진 서양서보다 이 {로마인 이야기}는 서양의 역사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시하여 의문조차 갖지 않는 조그만 사실들에 대해 집요한 의문을 가지면서 크나큰 역사적 의문을 풀어가는 작가 특유의 방법이 서양문화에 속하지 않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저작들을 읽는 데 훨씬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자신의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줄 것이다.
 

추천평

{로마인 이야기}는 방대한 자료를 취재·정리해가면서 엮어간 거대한 로마 통사이면서 현대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지혜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지침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서양인에 의해 씌어진 서양서보다 이 {로마인 이야기}는 서양의 역사에 대해 냉정한 판단을 내렸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당연시하여 의문조차 갖지 않는 조그만 사실들에 대해 집요한 의문을 가지면서 크나큰 역사적 의문을 풀어가는 작가 특유의 방법이 서양문화에 속하지 않은 독자로 하여금 그녀의 저작들을 읽는 데 훨씬 도움을 줄지도 모른다. 그리하여 자신의 문화를 상대화할 수 있는 시야를 갖게 해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