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2.일본문화

일본사 시민강좌 (2024)

동방박사님 2024. 7. 2.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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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방법’으로서의 일본사 읽기,
감정을 넘어 체계적 이해와 건전한 비판을 통해 역사를 주시하는
첫 일본사 대중 강연을 한 권의 책으로!

여행, 음식, 대중문화를 통해 우리의 일상이 된 이웃나라. 식민 경험의 쓰라린 역사가 가로놓여 있기에 ‘가위바위보’조차도 질 수 없는 숙명의 라이벌. 호기심과 불편함이 뒤얽힌 뜨거운 관심에 비해 우리는 일본이 걸어온 역사를 얼마나 냉철하게 알고 있을까? 이러한 질문을 던지며 2022년 가을, 일본사학회와 경향신문 후마니타스 연구소 공동 주최로 최초의 ‘본격’ 일본사 대중 강연이 한 권의 책으로 묶였다. 10명의 강사진이 제안하는 첫 번째 공부법은 전체를 시대순으로 훑어야 하는 부담스런 통사 읽기가 아니라, 구체적인 관심사에서 확장하는 일본사 깊게 읽기다. 그래서 이 책은 티격태격 한일 관계의 원형이 된 고대 양국 관계사로 시작하여 호칭부터 핫이슈인 ‘천황’과 ‘왜왕’의 역사적 의미를 탐색한다. 세계사적 대전환 속에서 총과 은으로 촉발된 근세 일본의 격동을 살피고, 일본에서 유교(유학)와 그리스도교가 우리와 비교해 어떤 전개를 보였는지를 검토한다. 또한 모든 현재의 원점이 된 ‘메이지유신’이라는 푯대를 설정하고, 이후 일본의 상황을 천황제, 여성운동, 식민지 지배 전략, 전쟁과 집단학살 등의 키워드로 톺아본다. 『일본사 시민강좌』의 두 번째 제안은 일본의 역사를 어떤 대상과 상황을 이해하기 위한 인식의 소재로 파악하는, ‘방법’으로서의 일본사 읽기다. 위와 같은 공부법은 단순한 이웃나라의 역사를 알아가는 것을 넘어 우리, 아시아, 세계의 이해로 확장되는 지적 경험을 선사한다. 10명의 강사가 일식당의 ‘오마카세’ 코스요리 차림표처럼 가지고 온 흥미진진한 토픽은 객관적인 역사 인식을 통해 한일 관계를 슬기롭고 비판적으로 주시하고 싶은 시민에게 흥미와 공부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선순환이 만들어지는 독서 체험을 가져다 줄 것이다.

목차

일본사 시민강좌를 시작하며

1강 고대사에서 본 한일관계의 원풍경 | 이재석
2강 왜왕과 천황 사이 | 김현경
3강 ‘전국시대’, 총과 은 이야기 | 박수철
4강 사무라이, 칼을 차고 유학을 말하다 | 김선희
5강 메이지유신이란 무엇인가? | 박훈
6강 일본인은 왜 그리스도교를 믿지 않는가? | 박은영
7강 근대의 천황, 천황의 정치 | 박삼헌
8강 최소한의 ‘근대 일본 여성 분투기’ | 이은경
9강 제국의 헌병, 식민지 조선을 지배하다 | 이승희
10강 왜 전쟁에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는가? | 서민교

저자 소개

저 : 이재석
한성대학교 역사문화학부 교수. 고대 일본의 역사를 전공했고 한일 관계 및 고대 동아시아사에 관해서도 관심이 많다. 최근은 일본의 국사 편찬을 비롯한 8~9세기의 문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는 『고대 한일관계와 일본서기』(동북아역사재단, 2019)가 있으며, 그밖에 『일본서기 한국관계기사 연구(전3권)』(일지사, 2002~2004), 『일본고중세사』(방통대출판부, 2007) 『아틀라스 일본사』(사계절,201...
저 : 김현경
서울대학교 역사학부 강사. 서울대학교와 일본 교토대학에서 각각 석사학위를 취득했고, 교토대학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9~12세기 일본의 역사를 주로 공부하고 있다. 주요 논문으로는 「일본 헤이안시대 중후기 家格의 형성」(『동양사학연구』 158, 2022), 「일본 고대사 연구의 '왕조(王朝)' 개념」(『한국고대사연구』 110, 2023), 「平安貴族社會と‘貴種’」(『史林』 100(4), 2017), 「平安後期に...
 
저 : 김선희
건국대학교 아시아콘텐츠연구소 선임연구원. 근세 일본의 유학사상사를 중심으로 공부했으며 ‘경계’를 키워드로 일본의 역사와 문화에 관련한 글쓰기를 하고 있다. 『왕인박사』(주류성, 2022), 『일본 근세 유학과 지식의 활용』(보고사, 2021), 『한국인, 근대적 건강을 상상하다』(소명출판, 2021), 『명동 길거리 문화사』(한국학중앙연구원출판부, 2019), 『동북아시아의 근대체험과 문화공간』(경인문화사, 20...

책 속으로

누군가 나에게 ‘일본이 대체 무엇이냐’고 질문한다면, 일본은 연구의 대상인 동시에 ‘방법’ 그 자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일본 연구를 통해 일본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지만, 동시에 한국을 이야기할 수도 있고, 또 일본을 통해서 아시아나 세계를 이야기할 수도 있습니다. 일본은 어떤 대상을 이해하기 위한 인식의 소재가 되는 거지요. 이처럼 무언가를 인식의 소재, 연구의 방법으로 삼으려면 흥미와 관심이 필요합니다. 흥미와 관심이 생겨나면 오래 바라보고 주의 깊게 보게 되고 한 걸음 더 나아가면 자세히 관찰하게 됩니다. 관찰한다는 것은 학술적으로 말하면 ‘연구한다’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연구하다 보면 또 다른 분야로 흥미와 관심이 뻗어 나가게 되고 다시 주시와 관찰을 거쳐 연구의 범위가 확장하게 됩니다. 흥미와 공부가 꼬리에 꼬리를 무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것입니다.
--- p.17

오늘날 한일관계의 원풍경을 찾아간다면, 8~9세기 신라와 일본의 관계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1강에서는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이야기하려고 합니다. 당시 신라와 일본의 관계를 특징짓는 두 개의 키워드는 ‘자존’과 ‘교류’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예요.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서로 지지 않으려고 자존심을 굽히지 않는 대항 의식이 있습니다. 한편으로 두 나라는 분발케 하는 자극제로서 서로를 바라보기도 합니다. 한일관계는 한국사에서도, 일본사에서도 비중이 꽤 큽니다. 한국이나 일본 두 나라 모두 관계사를 통해 자기 나라의 본모습,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관계사 연구는 단순히 A와 B의 관계를 공부하는 것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상대방을 통해서 자기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 있는 중요한 방법론이기도 합니다.
--- p.33~34

일본의 군주를 가리키는 호칭으로 과연 어떤 게 적절할까요? 솔직히 판단하기 어려운 일이에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서 선택이 달라질 테니까요. 다만 제2강에서는 천황 호칭을 써도 되느냐 쓰지 말아야 하느냐 하는 문제를 떠나서, 정말 천황이 정말 천황이 하느님이나 하늘의 황제라는 의미를 담고 있는지, 그리고 천황은 원래 어떤 의미로 사용되었는지에 대해 고민해 보려고 합니다. (중략) 일본도 처음부터 천황 호칭을 사용하지 않았을 거예요. 천황이라는 군주 호칭은 고대 일본에서 생겨났고, 그 이전에는 왕 또는 ‘왜왕’이라는 호칭이 존재했습니다. 일본에서 군주 호칭이 변화하는 과정을 살펴본다면, 우리가 일본의 군주를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는 데도 참고할 만한 좋은 자료가 될 거예요.
--- p.80~81

‘긴 16세기’로서의 전국시대는 일본 내부적으로 큰 혼란과 변화의 시기였지만 외부적으로도 세계사적 대전환이 시작된 격변의 시기였습니다. 이번 강의에서는 대부분 한국인이 다소 낯설게 느낄 이러한 외적 변화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일본이 전국시대를 겪고 있을 무렵 당시 세계사는 어떻게 돌아가고 있었는지, 그러한 외부 환경의 변화가 일본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하는 점입니다. 이 시기 일본 사회가 외부에서 받은 자극은 ‘총銃’과 ‘은銀’으로 상징됩니다. 이 두 가지는 당시 일본 사회에 드라마틱한 변화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러면 이러한 변화가 역사적으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한번 살펴볼까요?
--- p.132

어느 날 안사이가 제자들에게 “만약에 중국이 공자를 대장으로 하고 맹자를 부장으로 삼아서 일본을 공격해 온다면 어찌할 것인가?”라고 질문합니다. 조선의 유학자들이라면 감히 공자와 맹자를 이런 식으로 언급할 수 없는 대단히 불경하고 대담한 발상입니다. 우물쭈물하는 제자들에게 안사이는 “온 힘을 다해 싸워 공자와 맹자를 포로로 만들어 나라의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 바로 공자와 맹자의 도이다.”라고 답을 하지요. 이러한 문답에서 우리는 안사이 학파 내부에서는 자국 ‘일본’에 대한 의식이 굉장히 강렬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훗날 일본은 다른 나라보다 특별하며 우월한 나라라는 인식으로 발전시킨다는 것도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 p.225

어떤 일본의 학자는 메이지유신을 사무라이들의 ‘신분적 자살’이라고까지 표현합니다. 하급 사무라이가 혁명을 일으켜서 정권을 잡았으나, 그들은 에도막부를 대신하는 새로운 막부를 세우지 않고, 영국이나 프랑스 같은 ‘네이션스테이트’를 만들기 위해서 사무라이라는 신분 자체를 폐지해버렸기 때문입니다. 메이지유신은 이처럼 사무라이가 일으킨, 사무라이 스스로의 자기 혁신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반 민중의 참여는 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일본의 사회 변화는 주로 엘리트가 주도하여 선제적으로 이루어지고 그 변화를 민중들이 나중에 받아들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지요. 이것은 한국 사회와는 대비되는 일본 사회의 특징입니다.
--- p.311

일본에는 ‘절대자’로서의 신에 대한 관념이 상대적으로 약했습니다. 굳이 비교하자면 한국인들은 항상 머리 위에 절대적인 천天을 지고 사는 것에 익숙합니다. 퇴계 이황은 방 안에 홀로 앉아 있을 때도 천은 모든 것을 꿰뚫어 보고 있으므로 자세도 마음가짐도 바르게 하라고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수치스러운 모습도 그것을 누군가에게 ‘들키지 않으면’ 아무도 알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곧 그리스도교에서 말하는 절대적인 신, 행여나 마음속으로라도 죄를 지으면 그것마저 꿰뚫어 보는 신이라는 관념이 일본인들에게는 희박했다고 볼 수 있겠지요.
--- p.326

메이지천황 사진은 1873년 9월경에 다시 촬영한 것입니다. 1년 전보다 상당히 많은 변화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복장 변화입니다. 이 당시, 일본의 산업을 일으켜 ‘한번 잘 살아보자.’라는 ‘식산흥업’과, 나라를 부강하게 만들고 군대를 키우자는 ‘부국강병’이 시대의 정신으로 등장합니다. 그래서 천황은 부국강병이라는 이상을 온몸에 체현하는 존재로서 더는 일본의 전통 의상이 아닌 군복을 입은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머리도 짧게 잘랐습니다. 이처럼 천황은 그때그때의 시대정신을 반영함으로써 존재의 의의를 정당화해야 했습니다. 또 다른 변화는 시선 처리입니다. 천황은 이 사진을 바라보게 될 사람을 상정하고 연출된 시선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황후의 사진과 나란히 놓고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습니다.
--- p.423

만 여섯 살의 어린 여자아이가 100년 앞을 내다본 국가의 장기적 전략으로 유학을 떠나게 되고, 돌아와서는 실제 국가의 기대에 부응하는 눈부신 활약을 했다는 사실은 분명 메이지 정부 개혁의 성공담으로 회자될 만합니다. 또는 메이지시대 정치인의 빼어난 안목과 선견지명을 설명하기 위한 일화로도 사용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이 이야기를 일본 정부의 입장에서 들었을 때와 우메코 당사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봤을 때에는, 같은 사건인데도 전혀 다른 서사로 읽힐 수 있습니다. 우메코만이 아닙니다. 남성만으로 구성된 일본 정부가 여성에게 기대하고 추구했던 역할과 모습이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실제 여성들은 그런 상황에 대해 어떻게 반응했는지를 살펴보고 싶어졌습니다. 나아가 정부 또는 남성의 입장에서가 아니라 당시 여성들의 입장에서 근대 일본의 역사를 생각해 보고 싶기도 합니다.
--- p.457

헌병제도는 다른 나라에도 많이 있지만, 헌병을 이용해 피지배 지역을 지배하고 식민지의 민중을 탄압하는 도구로 사용한 것은 일본 헌병제도만의 독특한 특징입니다. 일본은 메이지유신 이후 서구 열강으로부터 많은 제도와 시스템을 받아들이면서 이를 바탕으로 일본만의 독자적인 제도를 만들어 냈습니다. 이를테면 서구 열강의 군주제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천황제 같은 것이 그렇습니다. 헌병제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일본은 프랑스의 헌병제도를 모델로 삼았지만, 이 제도가 일본 사회에 실제로 적용될 때는 상당 부분 바뀌었지요. 일본의 육군은 헌병에 의한 제국 지배를 꿈꿨습니다. 그리고 일본이 ‘헌병에 의한 지배’를 시험하고 발전시킨 곳이 바로 ‘식민지’ 조선이었으므로, 일본이 조선에서 운용한 헌병제도를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 p.516

‘전쟁’과 전쟁 중에 자행된 ‘제노사이드’ 즉 ‘집단 살해’는 결코 가볍게 이야기할 수 없는 무거운 주제인 동시에 굉장히 현실적이면서 중요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비록 전쟁을 직접 체험하지 않았더라도 전쟁은 비극적인 일이며 현실 세계에서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전쟁의 역사’를 통해서 배워야 하기 때문입니다. 직접 체험하지 않고 역사를 통해서 생생하게 체득하는 것을 전문 용어로 ‘추체험’이라고 합니다. 이번 강의가 ‘전쟁’과 ‘제노사이드’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 주는 일종의 ‘추체험’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p.577

출판사 리뷰

시민이 함께 읽는 일본사

일본의 역사는 궁금하지만 어쩐지 다가서기 힘든 분야다. 길고 입에 잘 붙지 않는 인명과 용어에서부터 진입 장벽은 높겠지만, 무엇보다 불편한 과거사와 연결된 심리적 거부감이 크다. 일본 유학을 떠나기 전 집안 어른들로부터 “뭐 하러 ‘왜놈의 역사’를 배우느냐?”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강좌의 기획자이자 공저자 박훈은 이렇게 말한다.

“한국 시민 중에, 일본은 괘씸한 나라이니 그런 나라의 역사는 거들떠보지 않겠다는 사람과, 비록 불편한 역사이긴 하지만 왜 그렇게 됐는지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일본사 시민강좌를 수강하며 공부를 하는 사람. 일본인의 입장이라면, 이 두 사람 중에서 어느 쪽을 더 경외(敬畏)할까요?”(본서 257쪽)

25여 년 간 50권이 발행된 잡지 『한국사 시민강좌』(일조각, 1987~2012)를 기억하는 독자라면 이 책의 제목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한국사 시민강좌』가 “학계의 연구 성과와 주요 논점을 일반 시민과 공유”하려는 취지와, “역사를 합리적·과학적으로 이해하고 이를 체계화된 지식으로 제시”하려는 목적을 밝혔다면, 다루는 영역은 다르지만 『일본사 시민강좌』 역시 그 계보를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어떤 나라를 알기 위해서는 그 나라의 역사를 이해하고 학습하는 것만큼 빠른 길은 없다. 한일 관계는 여전히 해결하지 못한 역사 문제를 비롯해 정치·경제적 갈등으로 난항을 거듭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사 시민강좌』는 막연한 적대감을 걷어내고 객관적인 이해와 제대로 된 비판으로 꼬인 실타래를 풀고자 하는 시민에게 함께 읽는 ‘새 일본사’를 제안한다.

통사 No! 열 가지 테마로 접근하는 일본사

대하 역사소설 『대망』에서 전국시대를 호령하던 오다 노부나가, 도쿠가와 이에야스, 만화 『배가본드』의 검객(무사) 미야모토 무사시, 임진왜란의 원흉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일제 침략의 원흉 이토 히로부미…. 일본사는 이렇게 문학이나 대중문화 속 몇몇 영웅들, 또는 한반도와 관련된 문제적 인물의 피상적 이미지로 각인되어 있기 쉽다. 간혹 학교 강의나 일본의 역사를 다룬 책으로 일본사 공부에 도전해보려 해도 쇼군, 천황, 다이묘, 사무라이 등 한국사에서는 볼 수 없던 신분과 계급, 정치 체제가 낯설게 다가온다. 황실의 혈통이 한 번도 단절되지 않았다는 ‘만세일계’를 주장하지만, 시대 구분에서부터 아스카, 나라, 헤이안, 가마쿠라, 남북조, 센고쿠(戰國), 무로마치, 모모야마, 에도 등등 뭉텅뭉텅 나누어 봐도 우리보다 많고 복잡해서 학습 의지를 꺾곤 한다.

그래서 『일본사 시민강좌』는 통사로 전 시대를 훑어나가기 보다 한국인이 특히 관심을 두고 있을만한 주제, 그러나 본격적으로 일본사를 연구할 때도 핵심적으로 다뤄야 할 토픽을 선정했다. 열 개의 강의는 내용적으로는 각각 독립되어 독서의 부담을 줄이면서도 유기적인 연결로 역사적인 흐름을 그려가는 방식을 취했다.

강의의 문을 여는 1강에서 이재석은 “가까운 역사이든 먼 역사이든 그것을 기억하는 순간은 항상 현재이자 지금”이라고 말하며 천 년도 더 지난 고대사 속 한일관계의 원풍경으로 찾아 들어간다. 그러나 한일고대사라면 우리가 늘 이야기하(고 싶어하)는 백제의 ‘선진 문화 전승론’과는 결이 조금 다르다. 팽팽한 자존심 싸움 속에서도 필요에 따라서는 밀월 관계를 맺었던 신라와 일본의 라이벌 구도를 사료 속 흥미진진한 사건을 통해 제시한다.

2강에서는 국민정서와 결부되어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본 임금’의 호칭 문제를 파고든다. ‘천황’이냐 ‘일왕’이냐는 갑론을박은 JTBC 뉴스룸의 팩트체크에서도 등장했지만 김현경은 성급히 답을 내기보다, ‘왜왕’에서 시작된 호칭이 신화와 역사가 뒤얽히고 때로는 외부(중국)와의 관계 속에서 뒤얽히면서 ‘천황’으로 변화하는 과정을 꼼꼼히 추적한다. 논지 전개를 위해 복잡한 일본 신화를 흥미롭고 간결하게 요약한 정리는 2강의 고마운 부록이기도 하다.

3강에서 박수철은 16세기 일본 사회가 외부로부터 받은 자극과 대응, 그 드라마틱한 변화를 다룬다. 배경은 군웅할거와 하극상의 시대로서 소설, 영화, 드라마의 소재로도 수없이 묘사된 ‘전국시대’다. 오다 노부나가와 다케다 신겐 등의 등장인물을 꼽을 수 있지만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주인공은 ‘총(화승총)’과 ‘은’(의 제련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선진 문물은 서양과 조선을 통해 들어왔는데 쇄국을 고수하지 않던 개방성이 넘쳤던 시기였기에 가능하기도 했다. 지방 유력자들이 자유롭게 경쟁했던 전국시대라는 ‘열린 사회’의 특성을 말해주는 것이다.

4강에서 일본사상사 연구자 김선희는 칼을 찬 무사가 문치(文治)의 상징인 유교 경전을 공부했던 상반된 이미지를 설명하러 에도시대로 떠난다. 중국에서 탄생한 유학은 한반도(조선)을 거쳐 일본에서 자유롭고 다양한 갈래로 퍼져나가 취미나 실용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세속을 따르는 특성을 가졌다. 저자는 유학이라는 공통분모에 서로 다른 분자가 어떻게 올라탔는지를 비교하며 살피는 과정을 통해 지금까지도 일본과 우리 사이에 가로놓인 친근감과 이질감의 차이도 이해하는 길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제안한다.

5강은 현대 일본의 출발점이자, 일본을 동양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이룩하며 강대국으로 도약케 했던 ‘메이지유신’을 다룬다. 메이지유신 연구의 권위자 박훈은 웨스턴 임팩트, 즉 서세동점의 혼란 속에서 일본이 겪었던 시행착오와 대응을 문명개화와 부국강병이라는 키워드로 제시하며 교육을 포함한 각종 제도의 정비, 식산흥업에 바탕을 둔 경제 정책, 군비 강화와 대외 팽창 전략 등의 면면을 살핀다. 메이지유신이 대표하는 엘리트 주도의 선제적 사회 변혁을 맛본 일본, 민중의 직접적인 참여와 행동을 통해 사회적 변곡점을 만들어간 한국은 서로의 모습에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며 이해의 폭을 넓혀 갈 수 있을 것이다.

6강에서 박은영은 애니미즘, 불교, 신도를 포함한 일본(인)의 종교관을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일본과 그리스도교의 관계에 초점을 맞추는데, 유입과 전파가 활발했던 전국시대, 쇄국 시대에 철저한 박해를 받고 숨어들어갔던 에도시대, 강화되는 국가주의와 천황제 속에서 활로를 모색한 메이지시대 등을 넘나들며 시대별로 고찰한다. 한국보다 먼저 서양의 사상과 문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근대화를 이룬 일본에서 유독 그리스도교의 영향이 미약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번쯤 가졌을 이 의문의 답을 일본인의 종교관을 맥락적으로 검토하며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7강은 이 책의 문제적 키워드 ‘천황’과 핵심적 키워드 ‘메이지유신’이 다른 각도에서 재등장하는 심화편이다. 2강에서 고대사 속 명칭을 통해 살펴본 천황은 과연 어떤 존재라고 말할 수 있을까? 박삼헌은 메이지유신 전후 격변기를 거치며 각고의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천황이 정치의 주체로 재등장하는 과정을 사진과 초상화 등의 시각 이미지를 곁들여 흥미롭게 서술한다. 또한 메이지시대 이후 천황이 ‘국민의 천황’으로 기억되고 해석되는 양상을 메이지신궁과 성덕기념회화관 등 지금 우리가 찾아가 확인할 수 있는 공간과 장치를 통해 현재적으로 자리매김하며 상징천황제의 앞날까지 가늠해본다.

일본을 묘사하거나 일본사를 서술할 때는 무사, 막부 등 유독 ‘남성적’ 요소가 선행, 강조되곤 한다. 8강에서 이은경은 남성만으로 구성된 근대 일본 정부가 여성에게 기대했던 역할과 모습에 실제 여성들은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들의 입장과 목소리에 귀 기울여 읽는 시도를 권한다. 주된 고찰 대상은 교육과 정치, 두 영역에서 일어난 여성 문제와 그들의 활동이다. 즉 양처현모 육성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사회진출을 위한 진정한 고등 교육에 힘써 쓰다주쿠대학을 설립한 쓰다 우메코와, 모성보호논쟁을 벌이고 여성참정권 획득 운동을 펼친 요사노 아키코, 히라쓰카 라이초, 이치가와 후사에 등 여성활동가가 분투했던 현장으로 데려가는 것이다. 고액권 지폐 도안에는 여성 인물(신사임당, 쓰다 우메코)을 배치했지만, OECD 국가 중 젠더갭 지수 최하위권에서 사이좋게 어깨를 나란히 한 한일 양국의 현재 지점을 돌아보는 기회도 될 것이다.

9강은 사실상 침략의 역사라고도 말할 수 있는 일본 근대사를 ‘헌병’이라는 특수한 제도에 초점을 맞춰 살펴본다. 이승희는 프랑스식 헌병 제도를 들여와 변형한 일본이 헌병에 의한 제국 지배를 꿈꾸는 과정을 설명하면서 조선 합병과 통치 과정에서 헌병 제도가 적용되는 양상을 일본 내부의 복잡한 정치 상황과 유기적으로 연결한다. 일본의 식민지 지배 모델이자 시험장이었던 조선에서의 헌병 제도 운용은 이후 대만, 점령지 만주국 등으로 이어져 활용되었을 뿐 아니라 제국주의적 팽창이 일본 본국으로 역류(역수입)되는 양상으로 이어졌다. 9강은 지배하는 제국과 저항하는 식민지라는 이분법적 구도에서, 제국사·동아시아사라는 큰 틀에서 통합적으로 바라보기 위한 시야를 제시한다.

『일본사 시민강좌』의 마지막 10강은 동아시아 근대사의 참혹한 귀결점이었던 전쟁 이야기로 끝을 맺는다. 청일전쟁 중 뤼순학살 사건, 정미의병 탄압, 간도대학살, 난징대학살, 그리고 일본 ‘자국민’까지 대상으로 한 제노사이드인 ‘애투섬 옥쇄’와 ‘사이판 옥쇄’, 오키나와 전투를 살피면서 서민교는 일본 제국의 전쟁 범죄를 그저 단죄하고 비판하는 것을 넘어 “왜 전쟁에서 무고한 생명이 희생되어야 하는가?”라는 묵직한 질문을 던진다. 직접 체험하지 않고도 역사를 통한 ‘추체험’으로서의 공부를 권하여 지금도 세계 속에서 끊이지 않는 ‘전쟁’과 ‘제노사이드’를 향한 경각심을 일깨운다.

풍부한 이미지, 심화학습을 위한 더 읽을거리, 책을 덮고 떠나는 일본사 답사까지

『일본사 시민강좌』는 그간 축적된 한국의 일본사학계의 연구 역량, 전문적이고 최신의 연구 동향을 시민의 눈높이 맞춰 친근한 말맛으로 풀어낸 강의를 그대로 책으로 담았다. 설명을 시각적으로 풀이하기 위해 사진과 작품 도판, 표와 지도 등으로 나누어 190여 컷의 컬러 자료를 수록했다. 각 장을 마무리하는 자리에는 강의를 듣고 나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호기심의 선순환을 만들기 위해 심화 학습용 참고 도서와 논문을 ‘더 읽을거리’로 수록했다.

또한 흥미롭고 친절한 해설로 일본사 공부의 문을 연 뒤 책 바깥으로 나가는 ‘역사 답사’를 제안하며 ‘가 볼만한 곳’을 사진과 함께 수록했다. 고대 신라와 일본이 교류했던 흔적이 남은 홍려관 유적지, 중국 황제에게 ‘왕’이라고 인정받은 금도장이 발견된 후쿠오카 시카노시마, 전국시대 일본 최고의 은 생산지인 이와미 은광, 에도의 쇼군이 유학을 장려하기 위해 세운 학습소 유시마 성당, 검은 배를 몰고 일본의 문을 연 페리 제독이 상륙한 요코스카 우라가 항구와 요코하마 개항지, 일본 그리스도교의 시작, 박해, 순교의 역사가 고스란히 남은 도시 나가사키의 유적지, 메이지천황의 기억 공간인 성덕기념회화관, 5000엔 신권의 모델이 된 쓰다 우메코가 세운 엘리트 여대 쓰다주쿠대학, 제국의 무단통치 흔적이 남아 있는 마산헌병분견대 건물, 민간인 포함 20만 명의 사망자를 낳은 제노사이드를 추모하는 오키나와평화기념공원 등 20곳이 넘는 답사지 여행 정보를 꾸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