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5.일본학 연구 (책소개)/2.일본문화

일본서기/고사기 (2021)

동방박사님 2024. 7. 2. 2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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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일본 역사와 정신, 그 뿌리를 찾아서

『일본서기(日本書紀)』는 일본의 가장 오래된 정사(正史)이다. 고대 일본에서는 『속일본기(續日本紀)』, 『일본후기(日本後紀)』 등 여섯 권의 역사서가 ‘육국사(六國史)’로 편찬되었는데, 그 가운데 가장 먼저 나온 것이 『일본서기』이다. 비슷한 시기에 『고사기(古事記)』도 편찬되었기에 이 둘은 자주 비교된다. 『고사기』를 훈독하면 ‘후루코토부미’로, 이는 ‘옛 일을 기록한 책’이라는 뜻이다. 이름 그대로 『고사기』에는 일본의 탄생이야기를 알 수 있는 흥미로운 단서들이 가득 들어있다.

천황의 명에 따라서 편찬된 『일본서기』와 달리 『고사기』는 천황이 일본을 통일하기 이전의 전설적 이야기가 많이 실렸고, 권력에서 밀려난 자와 싸움에서 패배한 자 등, 정사에서 탈락된 이야기도 많다. 그러한 것들과 곳곳에 남아있는 신화와 전승을 융합해 펼쳐지는 신들과 사람들이 흥미로워 할 이야기들을 집대성하고 있다.

목차

『일본서기』와 『고사기』를 읽기에 앞서 ... 68

일본서기

제1권 ... 89
제2권 ... 123
제3권 ... 154
제4권 ... 172
제5권 ... 181
제6권 ... 193
제7권 ... 209
제8권 ... 231
제9권 ... 237
제10권 ... 260
제11권 ... 272
제12권 ... 292
제13권 ... 300
제14권 ... 314
제15권 ... 339
제16권 ... 357
제17권 ... 364
제18권 ... 381
제19권 ... 389
제20권 ... 424
제21권 ... 436
제22권 ... 448
제23권 ... 473
제24권 ... 484
제25권 ... 502
제26권 ... 533
제27권 ... 550
제28권 ... 568
제29권 ... 585
제30권 ... 627

고사기

천지의 기원과 신들의 탄생 ... 657
신의 자손들의 영웅전설 ... 694
천황의 황위계승 이야기 ... 714

『일본서기』 『고사기』에 대하여

일본의 뿌리를 찾아서 『일본서기』 ... 727
『일본서기』 약년표(略年表) ... 864

저자 소개

역 : 최박광
옮긴이 최박광은 성균관대학을 졸업. 같은 대학 대학원 석사. 일본 도쿄대학 대학원 비교문학 修士·박사과정을 수료. 성균관대학 교수 역임. 도쿄대학 초빙교수(강의담당). 일본 국제일본문화연구센터 전근대 동아시아 문화교류와 표상프로젝트 담당 초빙연구원. 일본 神戶學院大學 초빙교수. 天理大學 초빙 외국인교수 역임. 현재 성균관대학 명예교수·중국 山東大學 객좌교수. 옮긴책 西田幾多郞 《善の硏究》 高橋 進 《李退溪と敬の哲學》

책 속으로

처음에 성인이 제도를 마련해야 도리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백성에게 이로운 일이라면 어떤 것이든, 성인이 하는 일을 방해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다.
--- p.171

천하에 임금으로서 만민을 다스리는 자는 백성을 하늘같은 마음으로 덮어주고, 땅과 같은 마음으로 품어야 합니다. 위에서 기쁜 마음으로 백성을 쓰면, 백성도 즐겁게 봉사하여 천하가 편안해집니다.
--- p.275

백성이 가난한 것은 나 자신이 가난한 것과 같고, 백성이 부유하면 나 자신이 부유한 것이라오.
--- p.280

자기를 낮추며, 남에게 양보하고 자기는 뒤로 물러나는 성품이오. 삼가 공경하고 절조를 지키며, 겸손하게 양보하고 예절이 바르니, 가히 군자라 할 만하지 않소?
--- p.349

어느 날 천황은 산에 올라가 온 주위를 둘러보면서 말했다. “아니, 굴뚝에 연기가 피어오르는 집이 하나도 없지 않은가. 온 나라 백성들이 먹을 것이 없는 모양이다. 백성들에게 부역과 산물의 공납을 부과하지 말라.” 그리하여 궁전 지붕이 무너져 비가 새도 수리하지 않은 채, 떨어지는 빗물을 그릇에 받거나 비가 새지 않는 장소로 이동하는 것을 되풀이했다. 3년 뒤, 온 나라의 굴뚝에서 다시 연기가 피어오르자 사람들이 이제는 살만해진 것으로 보고, 천황은 그제야 과세의 재개를 허락했다.
--- p.726

출판사 리뷰

일본의 가장 오래된 역사서『고사기』

『고사기』 상, 중, 하 세권으로, 천황가의 계보와 신화·전설 등을 기전체(紀傳體, 하나의 사건을 중심으로 기술)로 기록하고 있다. 상권은 신들의 이야기, 중·하권은 각 대(代) 계보와 천황·황자들을 중심으로 엮었다. 내용은 「제기」(천황 기록)와 「구사」(전승)로 나눌 수 있다. 「제기」는 초대 천황에서 제33대 스이코 천황까지의 이름, 황후·황자·황녀 이름 및 그 자손의 씨족과 황궁 이름·치세 햇수·세상 떠난 해의 간지·수명·능묘 소재지 및 그 치세의 주요 사건 등을 적고 있다. 「구사」는 궁정 내 이야기, 황실 및 국가 기원 이야기를 집계했으며 「제기」와 같은 시기에 쓰였다.

『고사기』는 ‘머릿말’에서 덴무 천황이 편찬 취지를 밝히고 있다. “전 천황인 덴치 천황은 고대부터의 다양한 사상을 탐구하고 그것을 참고해 널리 선정을 베푸시었다. 과거의 역사는 가문들에 전해져 내려오는 ‘가전(家傳)’이나 ‘구사(舊辭)’ 등에 자세히 이야기되었으나, 그 책들은 자기 집안에 유리하도록 허위를 가한 것이 매우 많고 오류도 많다. 그래서 그 허위와 오류를 바로잡고 천황 중심의 정치의 기본이 되는 올바른 것을 정하여 후세에 전하고자 한다.”

다이카 개신(大和改新)으로 율령국가체제를 확립한 천황가는 호족들을 누르고 절대 권력을 장악하게 된다. ‘가전’이나 ‘구사’는 유력 씨족의 역사와 국가 역사를 기록한 것으로 당연히 씨족마다에 유리하게 각색되었다. 이를 바로잡아 올바른 역사서를 만들고자 한 것이 덴무 천황의 의지였다. 천황가의 역사를 정리하고, 그에 따라 정치를 펼치려고 생각한 것이다. 그러한 취지에서 편찬된 『고사기』에는 문학적이면서 정서를 자극하는 이야기들이 많다.

일본 최초 정사(正史)『일본서기』

『고사기』 의 탄생은 인간적이고 정서적인 이야기나 다른 씨족을 찬양하는 신화, 연심을 표현한 것 등은 천황가 역사를 기록해 강한 천황을 부각시키는 데 부적절했다. 그런 까닭에 『고사기』와는 다른 새로운 역사서를 기획했는데, 그것이 『일본서기』로, 천황은 이를 정사(正史)로 정하고 정치의 바탕으로 삼았다.

『일본서기』는 모두 30권으로 신대(神代)부터 지토천황까지를 편년체로 기록하고 있다. 덴무조는 골육상쟁의 동란 끝에 성립된 왕조였다. 때문에 그 행동의 정통성을 나라 안팎으로 증명할 필요가 있었다. 덴무왕의 명으로 도네리친왕이 중심이 되어 680년 즈음 편찬을 시작, 720년에 완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편찬 자료는 제기와 구사는 물론 가기(家記), 정부 기록, 한국과 중국의 사료 등을 널리 활용했다.

본디 정사는 새로운 왕조에 불리한 일은 기술되지 않고 유리한 사건이나, 거짓과 진실이 뒤섞인 이야기로 구성된다. 『일본서기』도 예외는 아니다. 더욱이 이 책은 신대(神代)부터 시작해 초대 진무 천황에 이르고, 그 뒤에도 같은 계통이 쭉 이어진다는 ‘만세일계’ 생각으로 이어진다. 그것은 메이지시대에도 강조되고 정치에도 이용되었는데, 그 뒤 연구에 의해 ‘왕조교체’ 사상으로 제시되었다.

일본 고대사 연구에 꼭 필요한 사료

『일본서기』와 『고사기』는 모두 일본의 고대사 연구에 꼭 필요한 귀중한 사료로, 두 책에는 신화와 천황가의 역사처럼 내용이 일치하는 부분이 있기도 하지만, 같은 일을 기술한 부분에도 크고 작은 차이가 있다. 일반적으로 이야기성이 강하여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고사기』는 국내용으로 편찬되고, 『일본서기』는 동아시아 각국에 통용되는 국가의 증거로서 외부용으로 편찬된 것으로 본다.

실제로 『일본서기』는 『고사기』에 비해 읽기 어렵다고 여겨진다. 그 원인의 하나로 『일본서기』에는 ‘일서(一書)에 말하기를’이라는 형태로 다양한 이설(異說)이 병기되어 있는 것을 들 수 있다. 호족마다 전해지는 역사를 함께 다룸으로써 정통성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도록 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서기』는 국가의 역사를 후세에 계승한다는 내부 목적도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일본문화의 실마리『일본서기』

‘일본’과 ‘천황’이라는 명칭은 『일본서기』에서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그때까지 중국의 역대왕조가 일본을 가리켰던 호칭인 ‘왜(倭)’에 대해 ‘일본’이라는 이름을 가짐으로써 독립 국가임을 주장하는 동시에, 유일한 지배자인 ‘천황’이 국가건설 완성했음을 보여준 것이다. 따라서 일본 조정에서는 최초의 정사(正史)로 중시되어, 완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부터 헤이안, 가마쿠라, 무로마치, 에도 각 시대를 통해 강의와 연구가 진행되었고, 의식과 법률제정에도 활용되어 왔다. 또 『일본서기』에 기술된 스사노오의 야마타노오로치(큰 뱀) 퇴치와 우라시마 타로(浦島太郞)의 용궁 방문은 설화와 옛날이야기에도 영향을 주어 일본문화를 이야기하는 데 중요한 원전 자료가 되어왔다.

또한 아내에게 『겐지모노가타리』를 읽게 한 제66대 이치조(一?) 천황이 ‘이 『겐지모노가타리』 작자 무라사키는 틀림없이 일본기(일본서기)를 읽었을 것이다’ 칭찬한 데서 무라사키 시키부 그녀가 궁중에서 ‘니혼기노쓰보네(日本紀の局)’라는 별명으로 불렸다는 일화도 널리 알려져 있다. 『일본서기』는 세계 최초 장편소설문학인 『겐지모노가타리』에도 영향을 준 셈이다.

『일본서기』와 한반도의 관계

『일본서기』는 『백제기』, 『백제본기』 등 한국 사료(史料)와 『위서』, 『진서』 등 중국사서(史書)를 병용하고 있어 일본에서는 객관적으로 저술한 역사서라고 자부한다. 그러나 이 책에 서술된 한반도 관련된 기록에는 왜곡된 부분이 많다. 진구 황후가 신라를 정복했다는 터무니없는 대목이 있는가 하면, 연대(年代)도 백제의 기년(紀年)과는 120여 년의 차이가 있다.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의 근거가 되는 내용 또한 문제가 많다. 임나일본부설이란 야마토 왕권이 4세기 중반부터 6세기 중반까지 한반도 남부를 지배했다는 내용으로서 일본 학계의 해묵은 주장이다. 그런 까닭에 일각에서는 이 책을 후대에 조작된 사서(詐書)라 비판하기도 하고, 터무니없는 내용을 담은 이야기책으로 간주하기도 한다. 따라서 이제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일본서기』에 대한 연구는 물론이고, 그 속에 인용된 한반도 관련 기사에 대한 연구도 매우 한정적이었다.

그러나『일본서기』에는 고대 한반도 관련 내용이 수없이 나온다. 백제가 온갖 선진 문물을 일본열도에 전한 사실, 가야의 여러 나라가 멸망해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일들을 『일본서기』는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때문에『일본서기』는 일본 고대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고대사를 연구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며 특히 고대 한반도 제국과 일본의 관계를 규명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왜곡된 한반도 역사를 바로잡기 위하여!

『고사기』 신화를 바탕으로 탄생한 『일본서기』는 그 시대 일본 지배층의 정치 이념을 이해하는 데는 유용하지만 객관적 사실을 반영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일본국을 통일한 천황가의 역사로서 천황의 절대 존엄을 강조하고 다른 씨족과 타민족에 대해 우월한 일본 중심적 이념으로 서술되고 있다. 더욱이 만세일계의 천황이 다스리는 일본 제국주의의 침략주의적인 역사관도 여기에 근거한다.

오늘날 일본 정치인의 극우사상도 『일본서기』에 내재된 천황이라는 절대 존재에서 비롯한다. 그러한 까닭에 한일 두 나라 사이에서 『일본서기』 해석을 둘러싼 논쟁은 끊이지 않고 일본 내에서도 많은 의견 차이를 보이는 실정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일본서기』와 『고사기』 연구를 해야 하는 까닭은 왜곡된 한국사관을 바로잡아 대한민국 역사를 올바로 인식시키기 위해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