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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존의 조건 : 절망을 이기는 철학

동방박사님 2021. 12. 14. 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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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난세를 살아남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
제자백가, 처세의 지혜를 전하다

전작 『강자의 조건』을 통해 서양 세계사에서 강자로 거듭난 국가들의 비결을 전했던 작가는, 이 책을 통해 동양 철학에서 난세의 철학가들이 강조했던 처세의 지혜를 전한다. 2017년 신년특집으로 방영된 EBS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를 통해서 난세의 절망을 이기고자 했던 사상가들의 이야기를 전했던 이주희PD가 『생존의 조건』을 통해서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가?

혼란스러운 세상일수록 인간은 자신의 존재에 대해 고민한다. 우울할수록 인간 개인은 자신이 왜 이 삶을 살아가는지를 자문하게 된다. ‘이토록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나는 왜 살아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모든 철학적 질문의 근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매일같이 전쟁이 일어나고, 전쟁의 결과로 승자와 패자가 갈리며, 승자가 패자를 착취하는 것이 당연시되던 춘추전국시대와 같은 난세에서 제자백가(諸子百家)로 불리는 수많은 사상가들이 등장한 것은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이들이 만들어낸 생각의 폭발은 조금이나마 더 잘 살기 위한, 조금이나마 더 행복하기 위한 고민이라는 점에서 당시 시대의 절망과 우울감, 혼란스러움과 좌절을 모두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매일이 전쟁’이라는 어구는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꽤나 익숙한 말이다. ‘승자독식’, ‘적자생존’, 그리고 ‘시대의 우울’ 역시 마찬가지다. 물론 현재 대한민국이 살이 찢기고 피가 튀기는 전투를 치루는 것은 아니지만, 현 시대의 대한민국이 그 어느 때보다 철학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다시 말해 시대의 우울함을 그 어느 때보다 많이 느끼고 있다는 사실은 많은 이가 공감할 것이다. 우리는 이 우울한 시대를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가?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춘추전국시대, 유묵도법(儒墨道法)으로 대표되는 사상가들은 어떻게 그 시대를 살아냈는지를 살펴보다 보면 자신이 나아가야 할 길이 보일 것이다.

목차

저자 서문: 철학은 우울증에 대한 답이다
들어가며: 춘추전국, 절망이 지배하는 세상

01 儒家, 인간을 믿을 수 없을 때
인간에 대한 믿음을 잃다
세상에 기꺼이 뛰어드는 용기
믿음이 없으면 설 수 없다
모성은 생존의 근본이다
사랑받은 이만이 사랑할 수 있다
자식조차 사랑하지 않는다면
사랑보다 우선한 충성은 거짓이다
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다
같은 마음을 품어라
황금률과 은백률
사랑하면 할수록 더 원수가 되는 이유
남에게 차마 잔인해지지 못하는 마음
군자는 푸줏간을 멀리한다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
신뢰가 없으면 국가도 없다
작은 나라일수록 공감의 정치가 중요하다
폭군, 공감 능력이 없는 인간
백성은 군주의 수단이 아니다
되지도 않을 일을 하는 자
나 자신을 믿을 수 있다면

02 墨家, 정의 없는 세상에 분노할 때
인류 최초의 가상 전쟁
춘추시대에서 전국시대로
문명과 야만의 차이
묵(墨)의 비밀
약자를 위한 전쟁은 없다
민중 자신의 철학
반드시 행하려는 마음
묵자의 전쟁 기술
싸우는 평화주의자
싸움으로 싸움을 막을 수 없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 이익이다
‘한 사람쯤’의 희생
이익에 대한 두 가지 견해
물질적 이익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다
가족은 특별한 존재여야 하는가?
평등하고 보편적인 사랑
차라리 미친 사람이 될지언정
무엇이 현실적인가?

03 道家, 불안을 견딜 수 없을 때
견딜 수 없다면 도망쳐라
천하를 위해 나의 털 한 올이라도 뽑지 않겠다
왕의 자리에서 도망치다
진흙 속에 꼬리를 끌며
세상의 올가미로부터
선 밖으로 탈출하라
오만한 원숭이의 최후
쓸모없음의 쓸모
상수리나무가 베어지지 않은 이유
지금 현재를 살라
쓸모의 문제를 초월하라
신념이라는 이름의 물웅덩이
도적질에도 도가 있다
신념에 대한 집착은 위험하다
죽음을 직시하라
장자 부인의 죽음
죽음에서 도망치기
장자, 죽다
진정한 지혜는 배울 수 없다

04 法家, 간교한 기득권에 맞설 때
우리 모두 현실주의자가 되자
내일의 성군은 의미가 없다
‘지금! 당장!’의 정신
현재에서 출발하라
인간에 대한 통찰
이타심이란 또 다른 형태의 이기심
한비자는 성악(性惡)을 말하지 않았다
법은 태양처럼 분명해야 한다
법은 태양처럼 뜨거워야 한다
법은 태양처럼 공평하게 비춰야 한다
법은 태양처럼 믿을 수 있어야 한다
기득권은 사나운 개와 같다
썩은 사과를 먹는 방법
술(術), 음지의 기술
검(劍)은 양쪽에 날이 있다
겨드랑이에 속마음을 숨겨라
이해관계는 반드시 충돌한다
이익을 얻는 자를 주목하라
만장일치를 경계하라
책임 소재를 분명히 하라
방법을 알면 결과를 알 수 있다
현실주의자의 결기

글을 마치며: 절망의 반대말은 희망이 아니다
주석

저자 소개

저 : 이주희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에 EBS PD로 입사했다. 인간의 삶으로서의 역사에 꾸준한 관심을 가지고 역사전문 PD로서 다양한 역사 프로그램을 만들어 왔다. 제작한 작품으로 『역사극장』(2003), 『정치교실』(2004) 등이 있으며, 어린이 역사 드라마 『점프』 (2005-2006)로 서울 드라마 어워드를 수상하기도 했다. 2008년부터 EBS 다큐프라임 『절망을 이기는 철학 - 제자백가』, 『...
 

책 속으로

철학에 관심이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 대부분의 사람은 손사래를 칠 것이다. “이 인간이 무슨 쓸데없는 소리를 하려고 이러나?”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나는 인간으로 태어난 이상 누구나 한 번쯤은 철학자가 되는 순간이 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차이가 있다면 그가 사용하는 언어가 현학적인가 직설적인가의 차이일 뿐이다. 그럴 리가 없다는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되물어보고 싶다. 정말 당신은 살면서 “내가 왜 사나?” 혹은 “내가 이러려고 태어났나?” 하는 질문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는지 말이다. 이런 질문 한 번 해보지 않은 사람이 있다면 정신세계에 아무런 상처도 없는 인간일 터인데, 난 아직까지 그런 사람을 만난 적이 없다.
혹시 그 정도의 질문이 무슨 대단한 철학적 질문이 될 수 있냐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질문을 던지는 사람의 머릿속에는 철학에 대한 교과서적인 정의가 들어있을 것이다. 그 교과서적인 정의란 대체로 이런 식이다.
“인간과 세계에 대한 근본 원리와 삶의 본질 따위를 연구하는 학문. 흔히 인식, 존재, 가치의 세 기준에 따라 하위 분야를 나눌 수 있다.”
물론 틀린 정의는 아니다. 교과서에 틀린 답을 써놓을 리는 없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이런 식의 정의로는 도대체 ‘왜’ 혹은 ‘어떤 순간’에 철학이 필요한지는 전혀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이유 때문에 우리는 정말로 철학이 필요한 그 순간에 돈이나 페이스북의 좋아요 갯수, 혹은 부적 따위의 엉뚱한 곳으로 달려가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철학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위해서는 인간의 삶에 깊숙이 박혀있는 철학에 대한 생생한 정의가 따로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칼을 들어 자신의 피부에 상처라도 낼 것 같은 그런 생생한 정의 말이다. 나에게 있어서 그런 정의는 이것이다.
“철학은 우울증에 대한 답이다.”
그런데 왜 ‘우울증’일까? 앞에 써놓은 교과서의 대답처럼 철학은 근원적인 질문을 하는 학문이다. 우주의 근원, 존재의 근원, 인식의 근원…. 그런데 문제는 ‘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가?’다. 일상의 삶에서 이런 질문은 사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것일 뿐이다. 내가 오늘 하루 먹고사는 데 존재의 근원이나 인식의 근원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런데도 많은 이가 이런 질문을 던진다. 쓸데없는 생각이나 한다는 핀잔을 참아가면서.
나는 우울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삶이 고통스럽고 답답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도저히 해결책을 찾을 길이 없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절망감을 견딜 수 없기 때문에 질문이 근원적인 곳에까지 이르는 것이다. 그 결과 ‘이토록 우울하고 절망적인 삶을 나는 왜 살아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이 모든 철학적 질문의 근본에 자리 잡고 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해서 나는 그렇게 믿는다.
따라서 철학이란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과 대답으로 구성될 수밖에 없다. 조금 고급스럽게 표현하자면, 철학이란 인간의 삶에 대한 체계적이고 반성적인 사색이어야만 한다. 철학의 고전적인 구성 요소인 존재론과 인식론도 결국 인간의 삶에 대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필요한 것일 뿐이다. 우주의 존재가 중요한 이유도 우리의 삶이 우주라는 존재를 배경으로 하기 때문이며, 인식의 옳고 그름이 중요한 이유 역시 우리의 삶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지 알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는 철학의 진짜 질문은 ‘이토록 우울하고 절망적인 세상에서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또 살아야만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고 생각한다. 우울증 혹은 절망감이야말로 철학으로 나갈 수 있는 진정한 힘인 셈이다.
춘추전국시대(春秋戰國時代) 사상가들도 절망감에 시달렸다. 더구나 이 시대의 절망감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가지고 있는 숙명적인 절망감” 따위의 표현은 사치라고 느껴질 정도로 처절한 것이었다. 옳다고 여겼던 기존의 모든 가치는 파괴되고,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조차 사라졌으며, ‘만인에 대한 만인의 투쟁’이 문자 그대로의 현실이 되었다. 맹자(孟子)의 표현을 빌리자면 “짐승을 몰아 사람을 잡아먹게 만드는 것과 다름없는” 절망적인 시대였고 고염무(顧炎武)의 표현을 따르자면 망국(亡國)의 시대가 아니라 망천하(亡天下)의 시대였다.
하지만 절망적이었기에 그 시대의 사상가들은 오히려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좋은 삶이란 무엇인지,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지, 정의는 어떻게 실현할 수 있는지를 밑바닥에서부터 다시 생각한 것이다. 그 결과가 바로 제자백가(諸子百家)라 불린 그 시대의 다양한 사상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다채롭고 풍부한 ‘생각의 폭발’은 아마도 춘추전국시대가 야기한 절망이 있기에 가능했으리라. 물론 단지 절망감만으로 이런 사색이 가능했던 것은 아니다. 그저 절망감뿐이라면 오히려 현실을 외면하고 도피하는 것에서 끝났을 터이기 때문이다. 공자와 묵자, 장자와 한비자 같은 이들이 이 절망을 넘어설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절망적인 춘추전국시대의 현실에서 눈 돌리지 않을 수 있는 용기 역시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절망감과 용기의 결합이야말로 제자백가 사상의 진정한 원천이었다.
--- 본문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