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인문교양 (책소개)/1.인문교양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온다 : 정치와 실패가 부른전쟁

동방박사님 2021. 12. 14. 0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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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국방 현장경험으로 풀어낸 임진왜란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온다』는 육사를 졸업한 후 국방부에서 공직 생활을 하고 국립현충원 원장을 역임한 저자가 국가 관리 체제와 군사 관리 체제의 관점에서 임진왜란의 과정을 살펴보고,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와 오늘날 우리가 새겨야 할 임진왜란의 교훈을 짚어보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가 임진왜란의 역사를 면밀히 살펴서 준비하지 않으면 구한말 일제강점과 6?25처럼 또다시 수난을 당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 책은 1부와 2부로 나뉘어 있다. 1부 「무너진 국가 리더십, 임진왜란은 정치의 실패가 불렀다」에서는 조선의 정치 체제와 정치 지도자들의 리더십을 분석하며 임진왜란의 전 과정을 살펴보고 그동안 이순신의 영웅담에 가려졌던 임진왜란의 실상을 잘 보여준다. 특히, 그동안 우리가 애써 외면했던 조선 수군의 치욕적인 칠천량 패전의 전 과정을 4장에서 생생히 복원한다.

2부 「공짜 없는 평화,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온다」에서는 임진왜란을 당한 조선의 군사 체제와 전쟁 대응 태세를 분석하며 임진왜란이 불러온 조선 백성들의 고통과 참상을 살펴본다. 임진왜란 당시 진관체제와 제승방략 같은 조선의 군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원인과 조선, 명, 일본의 군량 조달 과정을 분석함으로써 전쟁을 억제하고 전란 시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통찰을 제시한다.

 

목차

들어가며 _ 4

제1부 무너진 국가 리더십, 임진왜란은 정치의 실패가 불렀다

1장 국가리더십의 실패가 초래한 전란, 임진왜란
풀리지 않는 임진왜란의 의문점들 _ 18|명나라 원정을 핑계로 조선을 점령하려 했던 일본 _ 20|통신사 귀국보고 혼선으로 전란 대비에 실패한 조선 _ 22|조정의 파쟁과 자만심으로 일본의 변화 간과 _ 26

2장 국방 책임자들보다 통신사의 잘못만 가르쳐오는 역사
엇갈린 귀국 보고가 불러온 파국 _ 32|조정의 회피와 변명 _ 39|일본의 야심찬 전쟁 준비와 조선의 안일한 대응 _ 44

3장 안타까움으로 점철된 전란 경과
심각성을 간과하여 자초한 전란 _ 49|먼저 도망간 임금 선조 _ 56|분발하는 백성들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명군 참전 _ 61|이순신과 관군의 분전, 명나라의 대규모 원군 파병 _ 64|무너진 백성들의 삶, 그리고 조선을 분할하려한 명·일 간의 강화협상 _ 73|왜군의 재침입(정유재란)과 이순신의 하옥 _ 79|칠천량 패전과 코 베기 속에 거둔 눈물의 명량대첩 _ 92|전란이 남긴 피해와 상처 _ 98

4장 조선 수군 최대의 패전, 칠천량 해전
조선 수군이 유일하게 왜군에 패한 해전 _ 100|전투 지휘보다 도원수 호출에 시달린 원균 _ 104|곤장 맞는 통제사 _ 106|부산포 앞바다로 출전하는 조선 수군 _ 108|칠천량의 졸전, 통제사의 전사 _ 110|칠천량 패전의 원인과 평가 _ 115

5장 전란의 리더들
국왕 선조를 어떻게 보아야 할까? _ 123|조선 최초 후궁의 자손으로 왕이 된 선조 _ 125|조선 왕조의 대내외 사정 _ 126|스승 복이 많았던 선조 _ 127|나라와 백성을 위해 전란의 수습에 혼신을 다한 류성룡 _ 132|선조에게 인정받지 못한 통제사 이순신 _ 153|파격적인 통제사 특진 임명, 압송·참형까지 지시한 선조 _ 156|자기 성찰과 솔선수범에 충실했던 이순신 _ 159|선조에게 총애받은 통제사 원균 _ 161|칠천량 해전의 참패와 통제사 원균의 전사 _ 166|고압적이기만 했던 명나라 구원군 대장 이여송 _ 170|임진왜란의 원흉이자 일본의 영웅 도요토미 히데요시 _ 172|명나라와의 무역을 위해 조선과의 관계 정상화를 이용한 도쿠가와 이에야스 _ 178|조선의 고아를 양녀로 삼은 고니시 유키나가 _ 186|민족의 자존심, 천년고찰 불국사를 불태운 가토 기요마사 _ 189

제2부 공짜 없는 평화,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온다

6장 무너진 조선의 사회·군사 시스템
지배체제와 신분제에 의한 장수와 정병 확보 _ 193|자전자수(自戰自守)의 진관체제 _ 196|중앙의 리더십과 지방의 동원태세가 조화된 방위태세, 제승방략(制勝方略) _ 202

7장 왜란 극복에 혼신을 다한 백성들
어이없는 관군의 임전 태도 _ 209|유명무실한 제승방략 _ 213|의병운동으로 나타난 백성들의 분발_ 215|대표적인 의병 활동들 _ 222|의병의 정치적 통제 _ 225

8장 명나라 원군의 군량 해결에 속 썩은 조선
전쟁의 관건은 군량이다 _ 229|조선 조정의 군량 공급 _ 231|군량을 핑계로 철수와 통제를 일삼은 명나라 군사지도부 _ 237|약탈과 착취로 병량미를 해결한 왜군 _ 243

9장 일본에 끌려간 조선 백성들의 피맺힌 절규와 한탄
포로와 인신매매로 끌려간 10여 만의 조선 백성들 _ 248|왜군에 짓밟히고 명군에 안전을 구걸해야 했던 조선의 백성들 _ 251|왜군의 조선인 연행 목적과 납치 이후의 생활 _ 255|조선 피로인(被虜人)들의 송환 노력 _ 261|귀환 피로인들에 대한 조선 조정의 차가운 시선 _ 277

10장 대비하지 않으면 다시 온다
임진왜란 평가 _ 281|임진왜란의 교훈 _ 292|평화에 공짜는 없다 _ 298|대비하지 않으면 또 당한다 _ 301

나가며 _ 307
부록 임진왜란이 남긴 통영과 남해와 여수의 유적들 _ 312
참고문헌 _ 325
 

 

 

저자 소개

저 : 김형기
 
통영고등학교와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성균관대 행정대학원, 미국 위스콘신 주립대 대학원에서 수학하였다. 강원도 동북방의 비무장지대와 철의 삼각지대인 중부 전선 등에서 소대장과 중대장으로 복무하였고, 국방부에서 대외정책과 국제협력 등 여러 직무와 기획조정관?대변인?국립서울현충원장의 직위를 수행하였다.
 
 

책 속으로

우리는 언제나 깨어 각성하며 일본을 바라보아야 한다. 420여 년 전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은 구한말에 이르러 다시금 조선을 침략했다. 역사는 반복되어 우리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어느 한구석 남기지 않고 피해를 입었고, 민족의 자존과 명예는 짓밟혔다. 앞으로도 그런 일이 일어나지 말라는 법이 없다.
--- p.8-9

명나라의 강남과 일본 열도, 조선의 남해안 사이에는 매우 활발한 교역 루트가 형성되었고 무역을 통해 엄청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이 출현하고 있었다. 주된 거래 품목은 명나라의 견직물과 생사, 일본과 신대륙으로부터 건너온 은이었다. 풍부한 은을 생산하여 교역에 나선 일본 상인들은 자연히 은을 뇌물로 하여 명과 조선 조정의 내부 정보를 빼내 가기도 했다. 일본의 상인들에 의해 파악된 인접국 정보가 히데요시 등 최고 지도부에 전달되는 것은 당연지사였다.
--- p.29

징비록에서 필자가 인상 깊게 본 이순신의 모습 중 하나는 백의종군 이후의 임무 수행 자세이다. 먼저 군인으로서의 의연한 자세를 견지한 점이다. 보직 해임도 모자라 압송·투옥 등 모멸감을 준 조정에 대해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묵묵히 종군했다.
--- p.96

선조와 이순신은 직접 얼굴을 맞댄 적이 없었다. 전란으로 인해 국가의 존망이 경각에 달린 상황에서 충청 경상 전라의 삼도수군통제사라는 막중한 직위에 임명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선조와 이순신이 한 번도 대면한 적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필자는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 p.124

조선의 방위체제는 당초 평안도와 함경도 북방의 여진족의 침입에 대비하던 군익도(軍翼道) 체제와 왜구가 출몰하는 남방(영·호남)의 해안과 내륙지방을 방비하는 영진체제(營鎭體制)로 구축되어 있었다. 이후 세종 말기에 이르러 영호남의 남방지역에 왜적의 침입이 점차 심각해지자 세조 원년(1455년)에 남방의 영진체제를 군익도 체제로 흡수, 확대하여 전국적인 방비체제를 정비함에 따라 국가적인 군사태세가 확립되었다.
--- p.196

국지전이 아닌 전면전이 일어났을 경우 사전에 강력한 방어태세가 구축되어 있지 않은 상태에서 최초 접전하는 진관이 버티지 못하면 인접한 다른 진관들이 제대로 된 방어 전투를 할 수 없었다. 방어선이 조기에 무너졌을 경우 대응할 수 있는 방비 능력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중앙에서 파견되어 온 지휘관과 지방에서 대기하고 있는 전투 현장의 장졸 간에 생면부지 관계이다 보니 군사행동의 일치를 기대하기 어려운 문제점이 있었다.
--- p.204

왜군의 수군 능력이 생각보다 약했다는 사실을 감안하면, 당시 조선 지도자들이 국정 운영과 군사력 운용에 얼마나 무능했는지를 간파할 수 있다. 적을 알기 위한 노력과 파악된 적정에 어떻게 대비하느냐가 전쟁의 승패를 좌우한다(知彼知己白戰不殆)는 손자병법의 원칙은 이순신의 수군 지휘에서도 입증되었다.
--- p.207

전쟁은 곧 국민의 피해로 귀결된다. 그러므로 전쟁을 겪은 국가의 최우선 책무는 납치·연행되어 간 군인과 관료, 백성들을 송환하기 위한 외교 노력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의 조정이 전쟁포로 송환 노력을 어떻게 하였는지 점검해 보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 p.248

우리가 임진왜란의 교훈을 통해 배우는 중요한 깨달음 중 하나는 한반도라는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자칫 우리 땅이 발판이 되는 국제전이 일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이 있기 전에 우리 선조들이 경험한 전쟁은 중국 대륙으로부터 오는 무력 침입이 대부분이었고 우리가 당했거나 극복했던 일대일의 양자 대결에 그쳤던 전쟁이었다.
--- p.299

조정은 진관체제를 개선하여 제승방략이라는 군사 전략상의 보완조치를 강구했다고는 하나 제대로 된 방비 태세를 기대할 수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조정과 같은 중앙 정부의 무능과 관리들의 부정부패는 국가 방비 체제의 약화로 연결되는 법이다. 임진왜란이 있었던 선조 때라고 해서 예외일 수는 없었다.
--- p.302

세계의 4강이라는 거대국들과 인접하며 그 틈바구니 속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제의 연속선상에 있다. 우리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극복 정신, 교훈이 전수되지 않는다면 비극적인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것이다.
--- p.311
 

 

출판사 리뷰

무너진 국가 리더십,
임진왜란은 정치의 실패가 불렀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일본은 420년 뒤 다시 조선을 침략했다. 일본의 35년 강점은 임진왜란처럼 한반도를 유린하고 국가 발전의 기운을 가로막아 국력을 약화시키고 부흥의 가능성을 차단했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 6.25전쟁과 남북 분단 상황이 있다. 임진왜란과 일제 지배는 한반도를 지배하고자 침략 전쟁을 일으킨 주체도 일본이었지만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 걸쳐 잔혹한 만행과 약탈로 우리 민족의 자존과 명예를 짓밟은 행태도 같았다. 오늘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국가 리더십과 정치의 실패는 국가적 위기를 초래하고 국민을 희생시킨다는 사실이다. 임진왜란도 그랬고 일제강점, 6.25전쟁도 그랬다.

공짜 없는 평화,
임진왜란 대비하지 않으면 언제든 다시 온다


세계의 4강이라는 거대국들과 인접하며 그 틈바구니에서 생존하고 성장하는 국가는 지구상에서 대한민국이 유일하다. 오늘의 대한민국은 어제의 연속선상에 있다. 우리 조상들이 겪어야 했던 어려움과 극복 정신, 교훈이 전수되지 않는다면 비극적인 역사는 또다시 반복될 수 있다. 국가가 적에게 침략을 허용하고 무참히 패배하는 이유는 국방태세 유지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역사는 우리를 향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있다. 정신 차리고 대비하지 않으면 임진왜란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다고.
임진왜란은 조선과 일본 두 국가 간의 전쟁이면서 명나라를 포함한 동아시아 3국의 운명을 가른 국제전이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 역사적 사건이었으며, 오늘날까지도 우리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 현실적인 사건으로 임진왜란은 자리매김하고 있다. 대륙으로 진출하여 지리적 한계를 극복하려는 일본의 시도는 임진왜란에서 끝나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가 국가 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한반도는 지금도 남북이 분단되어 200여만 명에 이르는 병력이 휴전선을 경계로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어 여전히 전쟁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세계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지역으로 평가받는다. 고통스러운 날이 지나고 평화가 찾아와도 그 평화를 착실히 지키고 미래를 대비하지 않으면 임진왜란, 병자호란, 국권의 상실과 일제의 강점, 6·25 전쟁과 같은 국가적 비극은 언제든 다시 도래할 수 있다. 필자가 이 책에서 임진왜란을 다시 살펴보는 이유도 고난의 역사가 이 땅에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간절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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